잡보장경(雜寶藏經) 제2권
10. 육아백상(六牙白象)의 인연
옛날 사위국의 어떤 큰 장자가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은 스스로 제 전생 일을 알고 나면서부터 능히 말을 하였다. 그래서 말하였다.
“선하지 않은 행동은 효도하지 않는 행동이요, 부끄러움이 없는 행동은 해치는 행동과 은혜를 배반하는 행동이다.”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잠자코 있었다.
그 아이가 날 때에는 큰 복과 덕이 있었기 때문에 이름을 현(賢)이라고 지었다.
그 아이는 차츰 자라면서 가사(袈裟)를 매우 공경하였다. 가사를 공경하는 인연으로 집을 떠나 비구니가 되었지마는 부처님 곁에는 가지 않고, 혼자서 부지런히 닦아 익혀 곧 아라한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부처님 곁에 가지 않은 것을 뉘우치고 곧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께 참회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 때 이미 너의 참회를 받았느니라.”
비구들이 이상히 여겨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 현 비구니는 무엇 때문에 집을 떠난 뒤에도 부처님을 뵙지 않다가, 이제 부처님을 뵙고 참회하는 것은 어떤 인연입니까?”
부처님께서 곧 그 인연을 말씀하셨다.
“옛날 여섯 개 어금니를 가진 흰 코끼리가 있었는데, 그 무리가 많았다.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첫째는 이름이 현(賢)이요 둘째는 이름이 선현(善賢)이었다.
그는 숲속에서 마침 연꽃을 얻어 현에게 그것을 주려고 하였는데, 선현이 먼저 뺏어갔다.
현은 연꽃을 빼앗기고 질투하는 마음이 생겨 '저 코끼리는 선현만 사랑하고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 때 그 산중에 부처 탑이 있었다. 현은 항상 꽃을 꺾어 그 탑에 공양하면서 발원(發願)하였다.
'나는 인간에 나서 스스로 내 전생 일을 알고 또 저 흰 코끼리의 어금니를 빼어 가지리라.'
그리하여 곧 산꼭대기에 올라가 제 몸을 쳐 죽은 뒤에, 이내 비제혜왕(毘提醯王) 집에 태어나 그 딸이 되었고, 스스로 제 전생 일을 알았다.
그는 자라나 범마달왕(梵摩達王)의 아내가 되자, 전생의 원한을 생각하고 그 왕에게 말하였다.
'코끼리 어금니로 상(床)을 만들어 주면 나는 살겠지마는,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죽고 말겠습니다.'
왕은 곧 사냥꾼을 불러 '만일 코끼리 어금니를 얻어 오면 백 냥 금을 주리라'고 하였다.
그 때 사냥꾼은 거짓으로 가사를 입고 활과 독화살을 끼고 코끼리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때 그 코끼리 아내 선현이 사냥꾼을 보고 코끼리왕[象王]에게 말하였다.
'저기 사람이 옵니다.'
코끼리왕이 물었다.
'어떤 옷을 입었는가?'
'가사를 입었습니다.'
'가사 속에는 반드시 선(善)이 있고 악은 없느니라.'
사냥꾼이 가까이 가서 독화살로 쏘자, 선현은 그 코끼리왕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가사 속에는 선이 있고 악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습니까?'
코끼리왕은 대답하였다.
'그것은 가사의 허물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속에 있는 번뇌의 허물이다.'
선현은 곧 그 사냥꾼을 해치려 하였으나, 코끼리왕은 여러 가지로 위로하고 타이르며 설법하여 해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또 5백 마리 코끼리 떼들이 그 사냥꾼을 죽일까 걱정하여, 그들을 산골짝으로 몰아넣어 멀리 보내 버렸다.
그리고 사냥꾼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이 필요하여 나를 쏘았는가?'
사냥꾼은 대답하였다.
'나는 필요한 것이 없다. 범마달왕이 네 어금니를 구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러 왔다.'
'그러면 빨리 빼어 가라.'
'감히 내 손으로 뺄 수 없다. 그러한 자비로 나를 보호해 주었는데, 만일 내 손으로 빼어 가진다면, 내 손은 반드시 썩어 떨어질 것이다.'
그러자 그 코끼리는 곧 큰 나무에 받아 스스로 어금니를 빼고는, 코로 그것을 집어 주면서 발원하였다.
'이 어금니의 보시로 말미암아 나는 장래에 일체 중생들의 삼독(三毒)의 어금니를 제거하리라.'
사냥꾼은 곧 그 어금니를 가져다 범마달왕에게 바쳤다.
그러나 그 때 부인은 그 어금니를 얻고는 곧 뉘우치는 마음이 생겨 말하였다.
'지금 내가 어떻게 이 어질고 훌륭하며 깨끗한 계율을 가진 이의 어금니를 가지겠는가?
크게 공덕을 닦자.'
그리고 곧 서원을 세웠다.
'원컨대 저이가 장래에 성불할 때에, 나는 그이의 법 안에서 중이 되어 도를 배워 아라한이 되게 하소서.'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그 때의 그 흰 코끼리는 바로 이 나요, 그 사냥꾼은 바로 저 제바달다(提婆達多)이며, 현은 지금의 저 비구니요, 선현은 바로 저 야수타라(耶輸陀羅) 비구니이니라.”
11. 토끼가 제 몸을 구워 큰 선인에게 공양한 인연
사위국에 어떤 장자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부처님 법 안에서 중이 되었으나, 항상 속가의 권속들과 즐기고 도인들과 더불어 일을 같이 하기를 즐기지 않으며, 또 경전을 읽고 도를 닦기도 즐기지 않았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분부하여 아련야(阿練若:寂靜處)로 가서 부지런히 닦아 익혀 아라한이 되어 육통(六通)을 두루 갖추게 하셨다.
비구들은 이상히 여겨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세상에 나오심은 참으로 기이하고도 기이합니다. 그러한 장자의 아들도 마음을 잡고 아련야로 가서 아라한의 도를 얻고 육통을 갖추게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만 그를 마음잡게 한 것이 아니라, 옛날에도 일찍 마음을 잡게 하였느니라.”
비구들이 아뢰었다.
“알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옛날에도 마음을 잡게 하신 그 일은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어떤 선인(仙人)이 숲속에 있었다. 그 때 세상에는 큰 가뭄이 들어 산중의 과실들은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가 모두 말라 버렸다.
그 선인은 어떤 토끼와 친하였는데, 토끼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마을에 내려가 걸식하고자 한다.'
토끼가 말하였다.
'가지 마십시오. 제가 당신에게 먹을 것을 드리겠습니다.'
이에 토끼는 섶을 모아 놓고 그 선인에게 말하였다.
'제 음식을 받으시면 반드시 비가 내리리니, 사흘만 지내면 꽃과 열매가 도로 살아나 캐어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는 가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한 뒤에 큰 불을 피워 놓고 그 속에 뛰어들었다.
선인은 그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이 토끼는 나의 좋은 동무다. 내 먹을 것을 위해 능히 제 목숨을 버렸으니, 참으로 어려운 일이로다.'
그 때 그 선인은 몹시 괴로워하면서 그것을 먹었다.
보살(토끼)의 이러한 어려운 행과 괴로운 행 때문에 석제환인의 궁전이 진동하였다. 석제환인은 생각하였다.
'지금 무슨 인연으로 내 궁전이 흔들리는가?'
그는 토끼가 그 어려운 일을 한 것을 관찰해 알고, 그 행에 감동되어 곧 비를 내렸다. 그래서 선인은 거기 머물러 과실을 먹으면서 부지런히 공부하여 오신통(五神通)을 얻었다.
비구들이여, 알고 싶은가?
그 때 오신통을 얻은 선인은 지금 저 비구요, 그 토끼는 지금의 내 몸이었느니라.
나는 그 때에도 내 몸을 버렸기 때문에, 그 선인으로 하여금 아련야에 머물러 오신통을 얻게 하였거늘, 하물며 지금 내가 그 비구로 하여금 권속들을 멀리 떠나고 아련야에 머무르면서, 아라한이 되어 여섯 가지 신통을 얻게 하지 못하겠느냐?”
12. 선하고 악한 원숭이의 인연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셨다.
그 때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바달다에게 의지하면 언제나 고뇌를 받고, 세존께 의지하면 현재에도 안락을 얻고 뒤에도 좋은 곳에 태어나 해탈의 도를 얻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오늘만이 아니다. 옛날에 두 마리 원숭이가 있었는데, 모두 5백 마리씩의 권속을 거느리고 있었다. 때마침 가시왕의 아들이 사냥을 나와 그들을 포위하려 하였다.
선한 원숭이는 나쁜 원숭이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지금 이 강을 건너가면 어려움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쁜 원숭이는 말하였다.
'우리는 건널 수 없다.'
그러자 선한 원숭이는 여러 원숭이들에게 말하였다.
'저 비다라(毘多羅) 나뭇가지가 매우 길구나.'
5백 권속들은 그 나뭇가지를 잡고 강을 건너갔다.
그러나 나쁜 원숭이 권속들은 건너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왕자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비구들이여, 그 때의 그 선한 원숭이는 바로 내 몸이요, 나쁜 원숭이는 바로 저 제바달다이다. 그가 거느린 권속들은 그 때에도 괴로웠는데, 지금 그에게 의지한 자들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 때 내게 의지한 자들은 언제나 즐거움을 받아, 현재에는 명예와 공양을 얻고, 장래에는 인간이나 천상에서 해탈을 얻을 것이다.
그 때 제바달다에게 의지한 자는 언제나 괴로움을 받아, 현재에는 나쁜 이름을 얻고 사람들이 공양하지 않으며, 장래에는 3악도(惡道)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부디 나쁜 벗을 멀리 떠나고 좋은 벗을 친해야 한다. 좋은 벗은 언제나 사람에게 안온과 즐거움을 준다. 그러므로 좋은 벗을 친해야 한다.
그러나 나쁜 벗은 멀리 떠나야 한다. 왜 그런가? 나쁜 벗은 사람을 불살라, 이 세상에서나 뒤 세상에서 뭇 괴로움이 모이기 때문이다.”
13. 부처님이 지혜의 물로 세 가지 불을 끈 인연
남방산(南方山)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그 나라에 가시는 도중에 어느 마을에서 주무셨다.
마침 그 마을에 좋은 모임이 있어서 사람들이 모두 술에 취해 어지러이 놀면서 불이 일어난 것도 알지 못하니, 불은 그 마을을 태웠다.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하여 갈 바를 모르고 서로 말하였다.
“우리는 오직 부처님을 의지하여야 이 화재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구제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들은 모두 세 가지 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즉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불인데, 나는 지혜의 물로써 그 불을 끈다. 만일 이 말이 진실이라면 저 불은 꺼질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불이 곧 꺼졌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부처님을 더욱 믿고 존경하였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니, 그들은 모두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었다.
비구들이 이상히 여겨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심은 참으로 놀랍고 장한 일입니다. 이 마을을 위하여 큰 이익을 주셨습니다. 마을의 불도 꺼지고 사람들 마음의 때도 없어졌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만 저들에게 이익을 준 것이 아니다. 지나간 세상에도 저들에게 큰 이익을 주었느니라.”
비구들이 여쭈었다.
“알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과거에 이익을 준 그 일은 어떠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나간 세상에 설산 한 쪽에 큰 대숲이 있었다. 많은 새와 짐승들이 그 숲을 의지해 살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환희수(歡喜首)라는 앵무새가 있었다.
그 때 그 숲에 바람이 몹시 불어 대나무끼리 서로 마찰하여 불이 일어나 그 숲을 태우자,
새와 짐승들은 모두 두려워 떨며 의지할 곳을 찾았다.
그 때 앵무새는 자비심으로 새와 짐승들을 가엾이 여겨, 물에 가서 날개를 적셔 불 위에 뿌렸다.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에 제석천을 감동시켜 그 궁전을 진동하게 하였다.
석제환인은 천안(天眼)으로, 무슨 이유로 내 궁전이 진동하는가. 관찰하다가, 한 앵무새가 대비심을 일으켜 불을 끄려고 온 힘을 다했으나 불을 끄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석제환인은 곧 앵무새를 향하여 말하였다.
'이 숲은 넓고 크기가 수 천만 리인데, 네 날개가 적시는 물은 몇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그 큰 불을 끌 수 있겠는가?'
앵무새가 대답하였다.
'내 마음은 크고 넓으므로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으면 반드시 불을 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이 몸이 다하도록 불을 끄지 못하면 다시 내생의 몸을 받더라도 맹세코 불을 끄고야 말 것입니다.'
석제환인이 그 뜻에 감동되어 큰 비를 내리니, 불이 곧 꺼졌다.
비구들이여, 그 때의 그 앵무새는 바로 지금의 내 몸이요, 숲 속의 새와 짐승들은 지금의 이 마을의 인민들이다. 나는 그 때에도 불을 꺼서 그들을 편안하게 하였고, 지금도 불을 꺼서 이들을 편안하게 한 것이다.”
“또 어떤 인연으로 그들은 도를 얻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인민들은 과거 가섭부처님 때 오계(五戒)를 받들어 가졌기 때문에, 그 인연으로 지금 도를 얻어 수다원의 도를 얻었느니라.”
14. 바라내국(波羅國)의 어떤 장자의 아들이 천신(天神)과 함께 왕을 감동시켜 효도를 행한 인연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 범천이 있게 하고 싶거든 부모에게 효도하라. 범천은 곧 그 집에 있을 것이다. 제석천을 자기 집에 있게 하고 싶거든 부모에게 효도하라. 제석천은
곧 그 집에 있을 것이다. 모든 천신을 자기 집에 있게 하고 싶거든 부모를 공양하라. 모든 천신은 그 집에 있을 것이다.
화상(和尙)을 자기 집에 있게 하고 싶거든 부모를 공양하라. 화상이 그 집에 있을 것이다.
아사리(阿?梨)를 자기 집에 있게 하고 싶거든 부모를 공양하라. 아사리는 곧 그 집에 있을 것이요, 만일 여러 성현들과 부처님을 공양하고 싶거든 부모를 공양하라. 여러 성현들과 부처님이 곧 그 집에 있을 것이다.”
비구들은 말하였다.
“여래·세존께서는 부모를 공경하심이 매우 희유(希有)하십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만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희유한 것이 아니었다. 지나간 세상에서도 부모를 공경한 것이 희유하였느니라.”
비구들이 여쭈었다.
“과거에 공경한 그 일은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바라내국에 어떤 가난한 사람이 외아들을 두었다. 그런데 그 외아들은 많은 자식들이 있었고, 그 집은 빈궁하였다.
그 때 마침 흉년이 들자 그 외아들은 부모를 산 채로 땅 속에 묻음으로써 자식들을 먹여 살렸다. 그 이웃 사람이 물었다.
'너의 부모는 지금 어디 있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우리 부모는 나이 늙어 곧 죽게 되었으므로, 나는 그들을 땅에 묻고, 부모의 먹을 몫으로 아이들을 먹여 기르려 합니다.'
다음 집에서 그 말을 듣고 '그것은 이치에 맞는 일이다'고 하였다. 이렇게 서로 전하여, 온 바라내국에서는 그렇게 함으로써 법을 삼았다.
어떤 장자가 아들을 낳아 길렀다. 그 아들은 이 말을 듣고, 그것은 도리가 아니라 하여, '
어떤 방법을 써야 이 나쁜 법을 없앨 수 있을까' 하고 늘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그 아버지에게 아뢰었다.
'지금 아버지는 멀리 떠나 경론(經論)을 공부하십시오.'
아버지는 곧 떠나 어느 정도 공부한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나이가 더욱 늙어가자, 아들은 그를 위해 땅을 파고 좋은 집을 만들어, 아버지를 그 속에 모셔 두고 좋은 음식을 드리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누가 나와 함께 이 나쁜 법을 없앨 것인가?'
그 때 천신이 몸을 나타내어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제 너를 위해 짝이 되어 주리니, 천신의 상소 종이[紙]에 네 가지 일을 써서 왕에게 물어 보되, 만일 이 상소하는 일을 해답하면 왕을 보호하겠지만, 해답하지 못하면 지금부터 이레 뒤에는 왕의 머리를 부수어 일곱 조각을 내겠다.'
네 가지 물음이란, 첫째는 어떤 것이 으뜸가는 재물인가? 둘째는 어떤 것이 가장 즐거운가? 셋째는 어떤 맛이 가장 훌륭한가? 넷째는 어떤 것이 가장 오래 사는가? 이었다.
그는 이것을 써서 왕궁의 문 위에 붙였다. 왕은 그것을 보고 온 나라에 영을 내려 물었다.
'이것을 아는 이에게는 무엇을 요구하든지 그의 소원대로 하여 주리라.'
장자의 아들은 그 글을 가져다 그 뜻을 풀이하였다.
'믿음이 으뜸가는 재물이고, 바른 법이 가장 즐거우며, 진실한 말이 제일 맛이 좋고, 지혜의 목숨이 제일 길다.'
그는 그 뜻을 이렇게 풀이한 뒤에 도로 왕의 문 위에 붙였다.
천신은 그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고, 왕도 또한 매우 기뻐하였다. 왕은 그 장자의 아들에게 물었다.
'누가 그 말을 너에게 가르쳐 주었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저의 아버지가 제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네 아버지는 지금 어디 있는가?'
'원컨대 왕은 저에게 두려움이 없게 하소서. 진실로 저의 아버지는 늙었습니다. 그래서 국법을 어기게 되기 때문에 땅 속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저의 말을 들어 보소서.
부모의 은혜가 무겁기는 천지와 같습니다. 태 안에서 열 달을 안고 있다가 낳아서는 마른자리 진자리를 가리면서 길렀고, 사람의 자격을 갖추게 되었으니, 이것은 다 부모 때문이고, 해와 달을 보게 되고 음식을 먹고 살아 가게 되는 것도 모두 부모의 힘입니다.
가령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얹고 오른 어깨에 어머니를 얹고, 백 년 동안 다니면서 갖가지로 공양하더라도 부모의 은혜는 갚지 못할 것입니다.'
그 때 왕은 물었다.
'너는 무엇을 구하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아무 것도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그 나쁜 법을 버리도록 하여 주소서.'
왕은 그 말을 옳다 하고 온 나라에 '만일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는 그 죄를 엄중히 다스리라'고 영을 내렸다.
비구들이여, 알고 싶은가? 그 때 장자의 아들은 바로 지금의 내 몸이다. 나는 그 때에도 한 나라를 위해 나쁜 법을 없애고 효순 하는 법을 성취하였으니, 그 인연으로 부처가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도 또한 효순 하는 법을 찬탄하는 것이니라.”
15. 가시국왕의 흰 향상(香象)이 장님 부모를 봉양하고 두 나라를 화목하게 한 인연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덟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는 결정코 보시하되 조금도 의심을 내지 말라. 부모와 부처님과 그 제자와 멀리서 오는 사람과 멀리 떠나는 사람과 병자와 병자를 간호하는 사람이다.”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참으로 놀랍고 훌륭하십니다. 항상 부모를 찬탄하고 공경하십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과거부터 항상 존중하고 공경하였느니라.”
비구들은 여쭈었다.
“존중하고 찬탄한 그 일은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 옛날 두 국왕이 있었다. 하나는 가시국(迦尸國)의 왕이요, 또 하나는 비제혜국(比提醯國)의 왕이었다.
비제혜왕에게는 큰 향상(香象)이 있었는데, 그는 그 향상의 힘으로 가시왕의 군사를 무찔러 항복받았다. 그러자 가시왕은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어떻게 향상을 얻어 저 비제혜왕의 군사를 무찔러 항복받을 수 있을까?'
그 때 어떤 사람이 왕에게 말하였다.
'나는 저 산에서 흰 향상을 보았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곧 사람들을 구하였다.
'누구나 저 향상을 잡아 오면 많은 상을 주리라.'
어떤 사람이 그 모집에 응하여 군사를 많이 데리고 가서 그 코끼리를 잡자, 코끼리는 생각하였다.
'만일 내가 멀리 도망가면 눈멀고 늙은 부모는 어떻게 하는가? 차라리 순순히 왕에게로 가는 것이 나으리라.'
그 때 사람들은 그 향상을 잡아 가지고 왕에게로 갔다. 왕은 매우 기뻐하여 좋은 집을 짓고 털 담요를 깔아주고, 여러 기녀들과 함께 거문고와 비파를 타면서 모두 즐기었다. 그러나 코끼리는 음식을 주어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 때 코끼리를 지키는 사람이 와서 왕에게 아뢰었다.
'코끼리가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왕이 몸소 코끼리에게 갔다. 왕은 코끼리에게 물었다.
'너는 왜 아무것도 먹지 않는가?'
코끼리가 대답하였다.
'내게는 눈멀고 늙은 부모가 계시는데, 그에게 물이나 풀을 주는 이가 없습니다. 부모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데 나만 어떻게 먹겠습니까?'
코끼리는 이어 말하였다.
'내가 만일 달아나려 하였다면 왕의 저 많은 군사들도 나를 막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다만 부모가 눈멀고 늙었기 때문에 순순히 따라 왕에게 왔습니다. 만일 왕이 내가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부모가 목숨을 마칠 때까지 공양하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하였다.
'우리는 사람 중의 코끼리요, 이 코끼리는 코끼리 중의 사람이다.'
가시국 사람들은 일찍부터 부모를 미워하고 천대하여 공경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 코끼리로 말미암아 왕은 곧 나라에 영을 내렸다.
'만일 이제부터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큰 죄를 주리라.'
그리고 나서 코끼리를 놓아 돌려보내어 부모를 공양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부모가 살 만큼 살다가 죽자 코끼리는 약속대로 왕에게 돌아왔다.
왕은 코끼리를 얻어 매우 기뻐하면서, 곧 코끼리를 장엄하게 하여 저 비제혜국을 치려하였다.
코끼리는 왕에게 말하였다.
'싸우지 마십시오. 대개 싸움에는 서로 피해가 많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저들은 나를 속이고 업신여긴다.'
'저를 거기 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 원수들로 하여금 감히 왕을 속이거나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네가 가면 혹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지 않겠는가?'
코끼리는 대답하였다.
'아무도 저를 돌아오지 못하도록 막지 못할 것입니다.'
코끼리는 곧 그 나라로 갔다.
비제혜왕은 코끼리가 왔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몸소 나가 맞이하였다. 그는 코끼리를 보자 말하였다.
'우리나라에 살아라.'
코끼리는 말하였다.
'여기 머물 수 없습니다. 나는 자라서부터 언약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저 나라 왕에게 돌아오겠다고 이미 약속하였습니다. 당신들 두 국왕이 서로 원한을 풀고 제각기 자기 나라에 만족하고 살면 유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기게 되면 원수를 더 만들고
지게 되면 근심과 괴로움 더하나니
이기고 지는 것 다투지 않으면
그 즐거움은 가장 제일이니라.
코끼리는 이 게송을 마치고 곧 가시국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부터 두 나라는 서로 화목하게 지냈다.
비구들이여, 그 때의 그 가시국왕은 바로 지금의 저 바사닉왕(波斯匿王)이요, 비제혜왕은 저 아사세 왕이며, 그 흰 코끼리는 바로 지금의 내 몸이었느니라.
그 때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였기 때문에 많은 중생들로 하여금 부모에게 효도하게 하였고, 또 그 두 나라를 화목하게 하였는데, 지금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16. 바라내국의 아우가 형에게 충고하고 왕에게 권하여 천하를 교화한 인연
옛날에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알아라. 옛날 바라내국에 좋지 못한 법이 있어 세상에 두루 퍼졌으니, 아버지 나이 60만 되면 깔개를 주어 문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그 때 두 형제가 있었는데, 형이 아우에게 말하였다.
'너는 아버지에게 깔개를 드리고 문을 지키게 하여라.'
그 집에는 깔개가 단 하나뿐이어서, 아우는 그 반을 잘라 아버지에게 주면서 아뢰었다.
'이것은 형이 아버지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형은 아버지더러 문을 지키라 합니다.'
형이 아우에게 말하였다.
'왜 깔개를 전부 드리지 않고 반을 잘라 드리느냐?'
아우가 대답하였다.
'마침 하나뿐이어서 반을 잘라 드리지 않으면, 뒤에 다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누구에게 주려는가?'
'잘 두었다가 어찌 형님에게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왜 내게 주려고 하는가?'
'형님도 늙으실 것이니, 형님 아들도 형님을 문지기로 만들지 않겠습니까?' 형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면서 말하였다.
'나도 장차 그렇게 될 것인가?'
아우가 대답하였다.
'누가 형님을 대신하겠습니까?'
그리고 이어 형에게 말하였다.
'그런 나쁜 법은 다 같이 버리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들은 서로 이끌고 정승에게 가서 이런 사실을 말하였다. 정승도 '진실로 그렇다. 우리도 다 늙어야 하는 것이다' 하고 왕에게 아뢰었다.
왕도 그 말을 옳다 하고, 나라에 영을 내려 부모를 효도로 봉양하게 하고, 나쁜 법을 금하여 다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17. 범마달 부인이 시기하여 아들 법호(法護)를 죽인 인연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시면서 제바달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언제나 너를 매우 사랑한다. 나는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너를 조금도 미워하지 않는다. 지금 다 같이 참회하자.”
그러나 제바달다는 욕하고 떠났다.
비구들이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그처럼 사랑하는데, 저 제바달다는 어찌하여 도리어 욕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오늘만이 아니다. 옛날 바라내국에 범마달(梵摩達)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 부인은 이름이 불선의(不善意)요, 그 아들은 이름이 법호(法護)인데, 총명하고 인자하므로 스승에게 보내어 공부하게 하였다.
그 때 범마달은 여러 궁녀들을 데리고 동산에 나가 즐거이 놀다가, 먹다 남은 술을 그 부인에게 보내었다. 그러자 부인은 화를 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차라리 법호의 목을 찔러 그 피를 마실지언정 이 술은 마시지 않겠다.'
왕은 이 말을 듣고 화를 내어 말하였다.
'공부하는 법호를 불러 오라.'
법호가 오자 왕은 그의 목을 찌르려 하였다. 법호는 아버지에게 아뢰었다.
'저에게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 저는 왕의 외아들인데, 왜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내가 너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다. 네 어미 뜻일 뿐이다. 네 어미에게 말하여 참회하고, 그를 기쁘게 하면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아들은 곧 어머니에게 참회하면서 말하였다.
'아들이라고는 저 하나뿐이요, 또 아무 죄도 없는데, 왜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그러나 어머니는 참회를 받아들이지 않고, 아들의 목을 찌르고 그 피를 주어 마시게 하였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 때의 그 부왕은 바로 지금 저 구가리(拘迦離)요, 그 어머니는 지금 저 제바달다며, 그 아들은 바로 내 몸이다.
나는 그 때 조금도 나쁜 마음이 없었지만, 그는 내 참회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금도 또한 그렇다.
나는 그 때 죽임을 당하였지만 조금도 성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거늘, 하물며 지금 성내어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겠는가?”
18. 타표(駝驃) 비구가 비방을 받은 인연
“옛날 타표(駝驃)라는 비구가 있었다. 그는 큰 역사의 힘이 있었고, 출가하여 부지런히 공부하여 아라한이 되어 위엄과 덕을 두루 갖추었으며, 항상 절 일을 맡아 보면서 다섯 손가락에서는 광명을 내었다. 그리하여 여러 스님들에게 갖가지 깔개를 마련하여 주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일 잘하기 제일[營事第一]'이라고 말씀하셨다.
미다(彌多) 비구는 복덕이 엷어 모임이 있을 때마다 음식이 나쁘자 그는 도리어 성을 내어 말하였다.
'저 타표가 절 일을 맡아 보는 동안 좋은 음식 먹기는 다 글렀으니 무슨 방법을 써야 하겠다.'
미다에게는 비구니가 된 누이가 있었다. 그는 누이에게 가서 서로 의논하고, 세 번이나 타표를 모함하였다.
타표는 그것이 싫어져 허공에 올라 열여덟 가지 신변(神變)을 보이고, 불꽃 삼매에 들어 허공 위에서 불꽃처럼 사라져 시체마저 없어졌다.
비방과 탐욕과 질투는 성현들까지도 죽게 하거늘, 하물며 범부이겠느냐?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비방을 삼가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야 하느니라.”
그 때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 타표 비구는 무슨 인연으로 비방을 받으며, 무슨 인연으로 큰 힘을 가졌으며, 또 무슨 인연으로 아라한이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수명이 2만 세이던 지난 세상에 가섭이라는 부처님이 있었다.
그 때 그 부처님의 법 안에 어떤 젊은 비구가 있었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얼굴빛이 아름다웠다.
그 젊은 비구가 걸식하고 돌아갈 때에, 어떤 젊은 여자가 아름다운 그 얼굴에 반하여, 그 비구를 바라보면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때 타표 비구는 음식 감독으로 있었는데, 마침 그 여자가 그 비구를 따르면서 잠깐도 눈을 떼지 않는 것을 보고 비방하여 말하였다.
'저 여자는 틀림없이 저 비구와 정을 통하고 있는 사이다.'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그는 삼악도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았고, 오늘까지도 그 남은 재앙이 다하지 않아 비방을 받고 있다. 그리고 과거 가섭부처님 때 집을 떠나 도를 배웠기 때문에 이제 아라한이 되었으며, 또 과거에 절 일을 맡고 있을 때 쌀과 국수를 실은 나귀를 진창에서 끌어내었기 때문에, 그 인연으로 큰 역사의 힘을 얻게 되었느니라.”
19. 이월(離越)이 비방을 받는 인연
옛날 계빈국의 이월(離越) 아라한이 산에서 좌선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소를 잃고 그 자취를 쫓아 거기에 이르렀다.
그 때 이월은 풀을 삶아 옷을 물들이는데, 옷은 저절로 변하여 쇠가죽이 되고 물감은 변하여 피가 되며, 삶는 물감 풀은 변하여 쇠고기가 되고 가졌던 바루는 변하여 쇠머리가 되었다.
소 주인이 그것을 보고 곧 그를 결박하여 왕에게 끌고 가자, 왕은 그를 옥에 가두었다. 그는 12년 동안 늘 간수가 되어 말을 먹이면서 말똥을 치우고 있었다.
이월 제자로서 아라한이 된 5백 사람들은 그 스승을 찾았으나 있는 곳을 알지 못하였다.
그의 업연(業緣)이 다하려 할 때 어떤 제자가, 그 스승이 계빈국의 감옥에 있는 것을 보고, 곧 왕에게 가서 말하였다.
“우리 스승 이월이 왕의 감옥에 있습니다. 원컨대 판결하여 주소서.”
왕은 곧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조사하게 하였다. 왕의 신하는 감옥에 가 보았으나, 어떤 사람이 얼굴이 초췌하고 수염과 머리가 길며, 간수가 되어 말을 먹이면서 말똥을 치우고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하였다. 그는 돌아와 왕에게 아뢰었다.
“감옥 안에는 어떤 사문 도사도 없고, 옥졸 비구가 있을 뿐입니다.”
제자는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원컨대 영을 내려 감옥에 있는 비구들을 모두 내어 주소서.”
왕이 즉시 영을 내려 감옥에 있는 도인들을 모두 석방하게 하니, 존자 이월은 감옥 안에서 수염과 머리가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졌다. 그는 허공에 솟아올라 열여덟 가지 신변을 나타내었다.
왕은 그것을 보고 일찍 없던 일이라 찬탄하면서, 온몸을 땅에 던져 존자(尊者)에게 아뢰었다.
“원컨대 내 참회를 받아 주소서.”
그가 곧 내려와 왕의 참회를 받자, 왕은 그에게 물었다.
“어떤 업연으로 감옥에서 여러 해를 지내면서 고통을 받았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나는 옛날에 소를 잃고 그 자취를 쫓아 어떤 산중을 지내다가, 벽지불이 혼자 앉아 참선하는 것을 보고, 하루 낮 하룻밤을 비방하였습니다. 그 인연으로 삼악도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았는데, 그 남은 재앙이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라한이 되었어도 오히려 비방을 받는 것입니다.”
20. 바사닉왕의 추한 딸 뇌제(賴提)의 인연
옛날 바사닉왕에게 뇌제(賴提)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열여덟 가지 추한 꼴을 하고 있어 도무지 사람 같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보면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그 때 바사닉왕은 나라에 영을 내려 사람을 구하였다.
“어떤 양민의 아들로서 빈궁하고 고독한 이가 있으면 데리고 오라.”
그 때 시장 주변에 어떤 장자의 아들이 홀로 외로이 구걸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왕에게 데리고 갔다. 왕은 그 사람을 데리고 후원으로 들어가 약속하면서 분부하였다.
“내게 딸이 있는데, 얼굴이 추하여 남에게 보일 수가 없다. 지금 그대의 아내로 주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자의 아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왕의 분부시라면 가령 개를 준다 해도 사양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공주이온데 어떻게 싫다 하겠습니까?”
왕은 곧 그에게 딸을 주어 아내로 삼게 하고, 궁실을 지어 주고는 분부하였다.
“이 여자는 얼굴이 추하니, 부디 남에게 보이지 말라. 나갈 때에는 문을 밖으로 걸고, 들어와서는 문을 안으로 닫는 것을 하나의 법식으로 하라.”
여러 장자의 아들들이 그와 친한 벗이 되어 잔치를 베풀고 놀게 되었는데, 모이는 날에 다른 장자의 아들들은 그 부인과 함께 와서 모였으나, 이 왕의 딸만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은 “이후의 모임에는 모두 그 부인을 데리고 오되, 만일 오지 않으면 많은 재물로 벌을 매기자”라고 서로 약속하였다.
그 뒤에 다시 모임이 있었으나 이 가난한 장자의 아들은 여전히 그 부인을 데리고 오지 않았기에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중한 벌을 주었으나, 그는 그 벌을 공손히 받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약속하였다.
“내일 다시 모일 때 부인을 데리고 오지 않으면 더욱 중한 벌을 주리라.”
그리하여 그는 두 번 세 번 벌을 받았지만 그 모임에 부인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그 뒤에 그는 집에 들어가자 부인에게 말하였다.
“나는 당신 때문에 여러 번 벌을 받았소.”
부인이 물었다
“왜 그랬습니까?”
“여러 사람들의 약속이 있었소. 모여서 노는 날에는 모두 부인을 데리고 모임에 나오도록 했는데, 나는 당신을 데리고 나가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라는 왕의 분부를 받았기 때문에 여러 번 벌을 받은 것이요.”
부인은 이 말을 듣고 매우 부끄러워하고 못내 슬퍼하여, 밤낮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였다.
뒷날 다시 연회가 있어서 남편이 또 혼자 나가자, 부인은 방에서 혼자 더욱 간절히 발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많은 이익을 주십니다만 저는 지금 무슨 죄로 홀로 그 은혜를 입지 못합니까?”
부처님께서 그 마음에 감동되어 땅에서 솟아올랐다. 그녀가 처음으로 부처님 머리털을 뵙고 존경하고 기뻐하자, 그녀의 머리털은 곧 변하여 아름다운 머리털이 되었다.
다음에는 부처님 이마를 뵙고 또 다음에는 눈썹·눈·귀·코·몸·입을 뵙자, 뵐 때마다 기쁨은 더욱 더하여 그 몸에 변화가 일어나 추한 것은 아주 없어지고 얼굴이 저 천녀와 같이 되었다.
그때 여러 장자 아들들은 가만히 서로 의논하였다.
“저 왕의 딸이 우리 모임에 나오지 않는 것은 반드시 보통 사람보다 미인이거나, 혹은 아주 못났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저 남편에게 술을 먹여 정신없이 만들어 놓고, 그 열쇠를 가지고 가서 문을 열어 보자.”
그리하여 그를 술에 취하게 한 뒤에, 그가 차고 있는 열쇠를 가지고 여럿이 가서 문을 열어 보았다. 거기서 그들은 왕의 딸이 너무도 아름다운 것을 보고, 문을 닫고 돌아왔다.
그 때 그 남편은 아직도 술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므로 그 열쇠를 도로 그 허리 밑에 채워 두었다.
남편은 잠을 깨어 집으로 돌아가 문을 열고, 그 부인이 단정하고 뛰어나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 괴상히 여겨 물었다.
“당신은 어떤 처녀이기에 내 방에 와서 있습니까?”
부인이 말하였다.
“당신 아내 뇌제입니다.”
남편은 이상히 여겨 다시 물었다.
“어떻게 갑자기 그런 모습이 되었습니까?”
부인이 대답하였다.
“당신이 저 때문에 여러 번 벌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몹시 부끄러워하여, 부처님을 간절히 생각하자 부처님이 땅에서 솟았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더니 제 몸이 이렇게 아름답게 변하였습니다.”
그는 매우 기뻐하여 곧 왕에게 들어가 아뢰었다.
“공주가 저절로 아름답게 변하였습니다. 이제 왕은 와서 보소서.”
왕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곧 딸을 불러 보고 못내 기뻐하면서도 이상히 여겨 딸을 데리고 부처님께 나아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딸은 무슨 인연으로 깊은 궁중에 태어났으나 몸이 추하여, 사람들이 보고는 놀라고 괴상히 여기며, 또 무슨 인연으로 지금 갑자기 아름답게 변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에 어떤 벽지불이 날마다 걸식하면서 어떤 장자집 문 앞에 이르렀을 때, 그 장자의 딸이 밥을 가지고 나와 벽지불에게 주었소. 그 때 그녀는 벽지불의 몸이 추한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소.
'이 사람은 매우 추하다. 얼굴은 고기 껍질 같고 머리털은 말 꼬리 같구나.' 그 때 장자의 딸은 바로 지금의 이 왕의 딸이오. 그 벽지불에게 밥을 준 인연으로 궁중에 태어났고, 그 부처를 비방하였기 때문에 몸이 추하며, 부끄러워하고 간절한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나를 보게 되었고, 기뻐하였기 때문에 몸이 아름답게 변한 것이오.”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공손히 예배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1. 바사닉왕의 딸 선광(善光)의 인연
옛날 바사닉왕에게 선광(善光)이라는 딸이 있었다. 그는 총명하고 단정하여 부모들은 사랑하고 온 궁중에서 모두 존경하였다.
그 아버지는 딸에게 말하였다.
“너는 내 힘으로 말미암아 온 궁중이 모두 사랑하고 존경한다.”
딸은 대답하였다.
“저에게 업의 힘이 있기 때문이요, 아버지의 힘이 아닙니다.”
이렇게 세 번 말하였으나 딸의 대답은 여전하였다.
아버지는 화를 내어
“과연 너에게 업의 힘이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해 보리라.”
하고, 좌우에 명령하였다.
“이 성안에서 가장 빈궁한 거지 한 사람을 데리고 오너라.”
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받고, 가장 빈궁한 거지 한 사람을 찾아, 왕에게 데리고 왔다. 왕은 곧 그 딸 선광을 거지에게 아내로 주면서 딸에게 말하였다.
“만일 너에게만 업의 힘이 있고 내 힘은 없다면, 지금부터 앞의 일을 징험해 알 것이다.”
그러나 딸은 여전히
“저에게 업의 힘이 있습니다.”
하고, 그 거지를 데리고 집을 떠났다. 그는 그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부모님이 계십니까?”
거지는 대답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전에 이 왕사성 안에서 첫째가는 장자였었는데,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에 나는 거지가 되었소.”
선광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지금 옛날의 그 집터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 터는 알지만 지금은 집도 담도 다 허물어지고 빈 땅만 남아 있습니다.”
선광이 남편을 데리고 옛 집터로 가서 돌아다니자 가는 곳마다 땅이 저절로 꺼지고, 땅 속에 묻혔던 보물 광이 스스로 나타났다.
그는 그 보물로 사람을 부려 집을 지었는데, 한 달이 차지 못해 집이 모두 이루어지고, 궁인(宮人)과 기녀들은 그 안에 가득 차며 종과 하인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그 때 왕은 문득 생각이 났다.
“내 딸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어떤 사람이 대답하였다.
“궁실과 재물이 왕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하였다.
“부처님 말씀은 진실이다. 자기가 선악을 짓고 자기가 그 갚음을 받는 것이다.”
딸은 그 날로 남편을 보내어 왕을 청하였다. 왕이 청을 받고 딸 집에 가보니, 털자리와 담요와 집의 장엄이 왕궁보다 더 훌륭하였다. 왕은 그것을 보고 처음 보는 일이라 찬탄하면서, 그 딸의 말이 옳은 줄 알고 이렇게 말하였다.
“자기가 업을 짓고 스스로 그 갚음을 받는 것이다.”
왕은 부처님께 가서 여쭈었다.
“이 딸은 전생에 무슨 복업을 지었기 때문에 왕가에 태어나 몸에 광명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거 91겁 전에 비파시(毘婆尸)라는 부처님이 계셨고, 그 때 반두(盤頭)라는 왕이 있었으며, 그 왕에게는 첫째 부인이 있었다.
비바시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반두왕은 그 부처님 사리로 칠보탑(七寶塔)을 일으켰고, 왕의 첫째 부인은 하늘관[天冠]을 잘 털어 비파시부처님 동상 머리에 씌우고 하늘관 안의 여의주를 내어 문설주 위에 달매, 그 광명이 세상을 비추었다. 그는 이내 발원하였다.
'장래에 내 몸에는 자마금빛의 광명이 있고, 영화롭고 부귀하여 삼악 팔난(三惡八難)의 곳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왕이여, 그 때 왕의 첫째 부인이 바로 지금의 저 선광이오.
그가 가섭부처님 때에 가섭여래와 네 큰 성문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공양하였을 때 남편이 그것을 만류하자 그녀는 남편에게 청하였소.
'나를 만류하지 마십시오. 내가 저분들을 청하여 충분히 공양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남편의 허락을 받고 공양을 마치게 되었소.
왕이여, 그 때의 그 남편이 바로 오늘의 저 남편이고, 그 아내는 오늘의 저 아내요. 남편은 그 아내의 공양을 만류하였기 때문에 항상 빈궁하였다가 다시 아내의 공양을 허락하였기 때문에 아내의 덕으로 지금 크게 부귀하여졌지만 뒤에 아내가 없어지면 그는 도로 빈궁하게 될 것이요. 이와 같이 선악의 업이 따라 다니는 것은 일찍 어긋나는 일이 없었소.”
왕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행업을 깊이 통달하여 스스로 잘난 체하지 않고, 깊이 믿고 깨달아 기뻐하면서 떠났다.
22. 옛날 왕자 형제 두 사람이 나라에서 쫓겨난 인연
옛날에 어떤 왕자 형제 두 사람이 나라에서 쫓겨나 어느 넓은 벌판에 이르러 양식이 모두 떨어졌다. 아우는 그 아내를 죽여 그 살을 베어 형과 형수에게 먹게 하였다. 형은 그 살을 받았으나 먹지 않고 모두 감추어 두고, 제 다리 살을 베어 부부끼리 먹었다.
아우는 그 아내의 살이 다 되자 그 형수를 죽이려 하였다. 형은 죽이지 말라 하고, 전에 감추어 두었던 살을 내어 그 아우에게 주워 먹게 하였다.
그들은 그 광야를 지나 신선들이 사는 곳에 이르러 과실을 따 먹으면서 살았다.
그 뒤에 아우는 병으로 죽고 형만이 혼자 남았다.
그 때 왕자는 형벌을 받아 수족이 없는 어떤 사람을 보고 자비심을 내어 과실을 따다 그에게 주어 그를 살렸다.
왕자는 사람됨이 탐욕이 적었다. 그가 과실을 따러 간 사이에 그 아내는 뒤에 남아 있으면서, 그 월인(?人)과 정을 통하였다. 정이 깊어지자 그 남편을 미워하게 되었다.
어느 날은 남편을 따라 과실을 따러 나갔다가 강가에 이르자 그 남편에게 말하였다.
“저 나무 꼭대기 과실을 따 주십시오.”
남편이 말하였다.
“저 나무 밑에는 깊은 강이 있는데, 혹 떨어질는지 모르오.”
아내는 말하였다.
“밧줄로 허리를 묶으십시오. 제가 그 밧줄을 당기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벼랑가로 가까이 가자 아내는 그 남편을 밀쳐 강 가운데로 떨어뜨렸다. 그러나 자애롭고 착한 힘이 있기 때문에 물에 떨어졌으나 떠내려가면서 빠져 죽지는 않았다.
그때 그 강 하류에 있는 어떤 나라의 왕이 죽었는데, 그 나라의 관상쟁이는 누가 왕이 될 만한지 온 나라 안을 두루 찾아보았다.
마침 그는 멀리 물 위에 누런 구름 일산이 떠 있는 것을 보았다. 관상쟁이는 점을 쳐 보고는 말하였다.
“저 누런 구름 일산 밑에는 반드시 신인(神人)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사람을 그 물 가운데 보내어 그를 맞이하여 왕으로 세웠다.
왕의 옛 아내는 그 월인을 업고 돌아다니면서 구걸하다가, 이 왕자의 나라에까지 왔다. 그러자 그 나라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였다.
“저기 어떤 선량한 여자가 월인이 된 그 남편을 업고 다니면서 공경하고 효순한다.”
이 소문은 왕에게까지 알려졌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곧 사람을 보내어 부르니, 그녀가 왕 앞에 왔다.
왕은 그 여자에게 물었다.
“이 월인이 진실로 네 남편인가?”
그녀는 대답하였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나를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너는 아무개를 아는가?”
“압니다.”
그는 왕을 바라보다가 비로소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왕은 자비심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보내어 생활하게 해 주었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알고 싶은가, 그 때의 그 왕은 바로 이 내 몸이요, 그 아내는 바로 저 나무바리를 들고 나를 비방하던 전차(?遮)라는 바라문의 딸이며 손발을 베인 이는 바로 지금의 저 제바달다이니라.”
23. 수달(須達) 장자의 아내가 부처님을 공양하고 그 갚음을 받은 인연
옛날 부처님이 세상에 계셨다.
수달 장자는 마지막으로 빈곤하여 재물은 전연 없고, 품팔이로 나가 서되 쌀을 얻어 그것으로 밥을 지었다.
밥을 다 지었을 때 마침 아나률(阿那律)이 와서 밥을 빌었다. 수달의 아내는 발우를 받아 밥을 가득 채워 주었다.
그 뒤에 수보리(須菩提)·마하가섭·대목건련·사리불들이 차례로 와서 밥을 빌었다. 그 아내는 여전히 각각 그 발우를 받아 밥을 가득 채워 주었다.
마지막에 부처님이 몸소 와서 밥을 빌자, 그녀는 또 발우를 받아 밥을 가득 채워 바쳤다.
그 때 수달이 밖에서 돌아와 아내에게 밥을 청하니, 아내는 대답하였다.
“만일 저 존자 아나률이 오신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이 먹겠습니까? 저 존자님께 드리겠습니까?”
남편은 대답하였다.
“내가 굶고서라도 저 존자님께 드리겠소.”
“또 가섭·대목건련·수보리·사리불과 부처님이 오신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굶고서라도 모두 그분들에게 드리리다.”
아내는 말하였다.
“아침부터 여러 성현들이 오셔서 밥을 청하기에 있는 밥을 모두 드렸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죄가 다하였으니, 이제는 복덕이 생길 것이요.”
그리고는 곧 창고를 열자, 곡식과 비단과 음식이 모두 그 안에 가득 찼고, 다 쓰고 나면 다시 생겼다.
24. 사라나(娑羅那) 비구가 악생왕(惡生王)에게 고뇌를 당한 인연
옛날 우전왕(優塡王)의 아들은 이름을 사라나(娑羅那)라 하였다.
그는 불법을 즐기어 집을 나와 도를 배우고 두타(頭陀)의 고행을 닦으면 서 숲속 나무 밑에 앉아 생각을 거두어 좌선하고 있었다.
그 때 악생왕(惡生王)은 여러 미녀들을 데리고 두루 다니면서 놀다가, 그 숲에 이르러 이내 잠이 들었다.
여러 미녀들은 왕이 자기 때문에 저희끼리 놀다가 어느 나무 밑에서 어떤 비구가 생각을 모으고 좌선하는 것을 보고, 그리로 가서 예배하고 문안하였다.
그 때 그 비구는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여 주었다.
왕은 잠에서 깨어나 미녀들을 찾다가 여러 미녀들이 멀리 나무 밑에 얼굴이 단정하고 나이 한창 젊은 어떤 비구 앞에서 법을 듣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왕은 비구에게 가서 물었다.
“너는 아라한이 되었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되지 못했습니다.”
“아나함이 되었는가?”
“되지 못했습니다.”
“사다함이 되었는가?”
“되지 못했습니다.”
“수다원이 되었는가?”
“되지 못했습니다.”
“부정관(不淨觀)을 얻었는가?”
“얻지 못했습니다.”
왕은 잔뜩 화를 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구나. 그런데 어떻게 나고 죽는 하나의 범부로서 여러 미녀들과 한 자리에 앉아 있는가?”
왕이 곧 그를 붙잡고 때리자, 그는 온몸이 터지고 헐었다. 여러 미녀들이 말하였다.
“이 비구는 허물이 없습니다.”
그러자 왕은 더욱 화를 내어 그를 쳤다. 미녀들이 모두 울면서 괴로워하니, 왕은 더욱 심하게 화를 내었다.
그 때 비구는 가만히 생각하였다.
'과거의 여러 부처님들은 능히 욕됨을 참았기 때문에 위없는 도를 얻었다. 또 과거의 욕을 참는 선인들은 귀·코·손·발을 끊기면서도 그 욕을 참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몸이 아직 단단하고 성한데 어찌 이것을 참지 못하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잠자코 참으면서 매를 맞았다. 다 맞고 나자 온몸은 더욱 아파 그 고통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생각하였다.
'만일 내가 속가에 있었으면 한 나라의 왕자로서 왕위를 이어 받아, 군사의 세력은 저 왕보다 못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집을 나와 홀몸이기 때문에 저의 때림을 받는다.'
그는 매우 괴로워한 끝에 도(道)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그 스승 가전연(迦?延)에게 가서 하직 인사를 드렸다.
그 스승은 말하였다.
“너는 지금 매를 맞아 몸이 매우 아플 것이니, 여기서 쉬었다가 내일 떠나도록 하라.”
그 때 사라나는 그 스승의 분부를 받고 거기서 잤다.
밤중이 되자 존자 가전연은 그를 꿈꾸게 하였다.
즉 사라나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는 도를 버리고 집에 돌아갔다. 그 부왕은 이미 죽고 그가 왕위를 이어 받았다. 그리하여 네 종류 군사를 모두 모으고 악생왕을 치려고 그 나라에 가서 진을 치고 싸우다가, 그에게 패하여 군사들은 흩어져 달아나고 그 몸은 사로잡혔다.
그 때 악생왕은 그를 잡아서는 사람을 시켜 칼을 가지고 죽이려 하였다. 그러자 사라나는 매우 두려워하여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우리 스승님을 한 번 뵈었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그 때 스승은 그 마음속의 생각을 알고, 지팡이를 짚고 발우를 가지고 걸식하러 그 앞에 나타나서 그에게 말하였다.
“아들아, 나는 항상 너를 위해 여러 가지로 설법하였었다. 싸워서 승리를 구하지만 마침내는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고. 그런데 너는 내 교훈을 듣지 않았다. 지금 너는 장차 어찌될 것을 아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만일 스승님께서 지금 이 제자의 목숨을 구제해 주시면, 다시는 감히 거역하지 않겠습니다.”
그 때 가전연이 그 왕의 신하에게 말하였다.
“원컨대 잠깐만 기다리시오. 내가 왕에게 아뢰어 저 생명을 구제하리다.”
이렇게 말하고 스승은 곧 왕에게로 갔다. 그러나 그 왕의 신하는 기다리지 않고, 사라나를 죽여 버리려고 막 칼을 들어 내리치려 하였다. 사라나는 몹시 놀라고 두려워 소리를 쳤는데, 그 바람에 깨어났다.
그는 깨어나자 곧 스승에게 가서 꿈에서 본 일을 낱낱이 아뢰었다. 스승은 대답하였다.
“살고 죽는 싸움에는 어느 편에도 승리가 없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대개 싸움이란 남을 죽이는 것으로 승리를 삼는 잔인한 길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에는 현재에 이겨야 속이 시원하겠지만 장래 세상에는 삼악도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만일 남에게 져서 그의 해침을 받으면, 자기 몸을 잃을 뿐 아니라 그 재앙이 남들에게 미쳐 남에게 무거운 죄를 짓게 하여 그를 지옥에 떨어뜨리고, 거기서 또 서로 죽이게 되면 원한은 끝내 쉬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섯 가지 길을 바꿔 돌면서 마침내 끝날 때가 없을 것이니, 이것을 자세히 생각하면 지금 매를 맞아 몸이 아픈 그 고통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만일 네가 지금 나고 죽는 두려움과 매 맞는 그 고통을 떠나려 하거든, 부디 그 몸을 잘 관찰하고 원한을 쉬어야 한다. 왜냐 하면 이 몸이란 온갖 고통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즉, 주림과 목마름과 추위와 더위와 생로병사와 모기·등에·독한 짐승의 침해 등 이런 모든 원수가 한량없이 많지만, 너는 그것을 갚지 못한다. 그러면서 어찌 구태여 악생왕의 원수만 갚으려고 하는가?
원수를 없애려 하면 먼저 번뇌를 없애야 한다. 번뇌의 원수는 한량없는 몸을 해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원수는 아무리 중하더라도 바로 한 몸을 해칠 뿐이지만, 번뇌란 원수는 좋은 법의 몸을 해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원수는 아무리 가혹하다 하더라도 이 변하는 더러운 몸만을 해칠 뿐이다.
이로써 본다면 원수가 생기는 근본은 바로 번뇌에 있는 것이다. 너는 지금 번뇌란 도적은 치지 않고 왜 악생왕만을 치려 하는가?”
이와 같이 그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였다.
그 때 사라나는 이 말을 듣자,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 수다원을 얻었다. 그리고 큰 법을 깊이 즐기어 곱절이나 노력을 더하여, 도를 행한 지 오래지 않아 아라한이 되었다.
25. 내관(內官)이 불치려는 소를 사서 남근(男根)을 얻은 인연
옛날 건타위국(乾陀衛國)의 어떤 백정이 5백 마리 송아지를 끌고 가서 모두 불치는 벌[刑?]을 주려고 하였다.
그 때 어떤 내관(內官)이 돈으로 그 소들을 사서 떼를 지어 놓아 보냈다. 그 인연으로 현재의 몸으로 남근(男根)을 갖추게 되었다. 그는 왕가에 돌아가 사람을 보내어 아뢰었다.
“지금 아무개가 밖에 있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그는 우리집 사람으로서 사람을 통해 아뢰지 않고 마음대로 드나들었었는데, 지금은 무엇 때문에 그러는가?”
왕이 곧 그를 불러 까닭을 묻자, 그는 왕에게 아뢰었다.
“아까 백정이 5백 마리 송아지를 끌고 가서 불치는 벌을 주려는 것을 보고, 신은 그것을 사서 놓아 보냈습니다. 그 인연으로 몸이 완전하게 되었기 때문에 감히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고 놀라면서, 부처님 법을 깊이 믿고 공경하였다. 대개 꽃 갚음[華報]1)으로써도 그 영험이 이러하거늘 하물며 그 결과 갑으로써도 그 영험이 이러하거늘 하물며 그 결과 갚음[果報]이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1) 미래의 업보를 받기 전에 현세에서 비슷한 업보를 받는 것. 꽃은 열매에 앞서 피므로 과
보(果報)보다 먼저 받는 것을 화보(華報)라고 한다.
26. 두 내관(內官)이 도리를 다툰 인연
옛날 바사닉왕이 자고 있다가 두 내관이 서로 도리를 다투는 말을 들었다. 즉 첫째가 말하였다.
“나는 왕을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말하자, 둘째가 대답하였다.
“나는 의지하는 데가 없다. 내 업의 힘으로 살아간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왕을 의지해 살아간다는 자에게 정이 가므로, 그에게 상을 주려고 곧 당직을 보내어 그 부인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금 한 사람을 보낼 것이니 그에게 재물과 의복과 영락을 두둑이 주시오.”
그리고 왕을 의지해 살아간다는 자를 불러 자기가 먹다 남은 술을 주어 부인에게 보냈다.
그 때 그는 그 술을 가지고 문을 나서자 코에서 피가 흘러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마침 제 업으로 살아간다는 이를 만나 곧 그 술을 주어 부인에게 가져가게 하였다.
부인은 그를 보자 왕의 말을 생각하고, 재물과 의복과 영락을 그에게 주었다.
그가 왕에게로 돌아오자, 왕은 그를 보고 이상히 여겨, 그 왕을 의지해 살아간다는 이를 불러 물었다.
“나는 너를 가라고 하였는데 왜 가지 않았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제가 막 문을 나서자 갑자기 코에서 피가 흘러가지 못하겠기에, 그에게 청하여 저 대신 왕의 남은 술을 가져다 부인에게 드리게 하였습니다.”
그 때 왕은 탄식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이제야 부처님이 '제가 그 업을 지어 제가 그 갚음을 받는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다'라고 하신 말씀이 진실임을 알았다.”
이로써 본다면 선악의 갚음은 그 행업이 불러 오는 것으로서, 그것은 하늘이나 왕이 주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