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解題)
불유교경(佛遺敎經)의 원제목은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으로 5세기 초에 후진(後秦) 구자국(龜玆國)의 삼장법사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하였다.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 [유경], [약설교계경]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불교유경’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 원전은 현존하지 않으며 물론 티베트어 역본도 없다. 한역본이 유일한 것이다. 그러나 주소본(註疏本)은 매우 많다.
1) 이 경은 부처님 만년(晩年)의 행적을 내용으로 하는 아함부의 열반경 또는 마명(馬鳴, Asvaghosa)의 불소행찬(佛所行讚) 등과 문체상의 유사점이 많아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불소행찬은 제28품인 대반열반품(大般涅槃品)과는 운문, 산문의 다름은 있지만 내용상에서는 일치하는 점이 매우 많다.
2) 이 경에 대한 주석에는 명(明)대에 도패(道霈)의 유교경지남(遺敎經指南) 일권, 명 지욱(智旭)대사의 유교경해 일권, 명 수수의 유교경보주 일권, 송 원조(元照)의 유교경론주법기(遺敎經論住法記) 일권, 송(宋) 관복(觀復)의 유교경론기 3권이 있다. 또 당 태조의 어주(御註) 1권, 지원(智園)의 소(疏) 2권과 과 1권, 정원(淨源)의 논소절요(論疏節要) 1권, 광선초(廣宣鈔) 1권, 절요과(節要科) 1권 등 주소류도 극히 많은 편이다.
이 경은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위산경책(潙山警策)과 함께 불조삼경(佛祖三經)의 하나로 선종(禪宗)에서는 중요하고 비중있게 다루는 경전이다. 옛날부터 우리나라나 일본까지 불유교경은 총림에서 스님들의 필습(필습)의 기본경전이었다.
경전은 '서분','정종분','유통분'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분은 경을 설하게 되는 동기이고, 정종분은 그 경의 중심 내용이며, 유통분은 결론과 같은 부분이다. 불유교경도 예외는 아니다.
서분은 부처님께서 최후의 설법으로 수발타라를 제도하여 인연 있는 중생들 모두 제도하심으로써 그 사명을 마치시고 쿠시나가라의 숲 속 사라쌍수 아래에서 입멸 직전에 마지막 가르침을 설하려 하는 정경을 보여준다.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유통분에는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열심히 수행하여 생사고(생사고)에서 해탈하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육성이 간절하게 실려 있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제자들을 생사의 고에서 해탈케 하기 위하여 대비심으로 간절히 수행하기를 권하신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때문에 세상은 무상하고 위태롭다.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실로 여유를 가질 여가가 없애고 경고하시면서 오로지 간절히 수행하기를 제자에게 당부하신다. 이것이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가르침이다. 이 불유교경의 내용은 '오로지 수행정진하리'라는 부처님 말씀뿐이다.
그러면 수행법은 무엇인가? 바로 계. 정. 혜 삼학이다. 여기서 벗어난 불교 수행의 길은 없다.
불유교경의 내용도 바로 이 삼학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당신이 열반에 드신 후 제자들에게 마땅히 계를 스승으로 삼고 수행할 것을 제일 먼저 말씀하신다. 말 그대로 삼학 중 먼저 계를 가지는 것부터 수행이 시작됨을 말한다. 그 이유는 계는 선정과 지혜를 낳고, 해탈을 이류는 근본이 된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정종분의 시작이자 주된 골격이다.
깨침에 도달하는 수행의 길은 삼학 중 혜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혜는 선심(善心)에 의해서만 작용한다. 계를 지켜야 착한 마음이 생기고 커진다. 계의 성질이 그릇된 것을 막는 방비지악(防非止惡)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는 혜가 나타날 수 있는 기반이라면 선정(선정)은 혜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선정의 깊이에 따라 지혜도 깊어지고 힘이 강해진다. 혜의 작용은 번뇌를 그 뿌리까지 잘라버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이 점점 높아지는 길은 바로 이 혜가 번뇌의 잡초를 제거하면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행상에서는 혜가 계와 정을 바탕으로 하여 번뇌 속에서 번뇌를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바로 수행의 길을 개척하고 궁극에 가서 정각을 이루어 열반의 성(城)에 도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정은 단지 번뇌를 제어할 정도이지, 무명과 번뇌를 죽이지는 못한다. 마치 큰 돌로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눌러놓는 것과 같다. 그러나 혜는 풀의 뿌리까지 잘라버리는 날카로운 칼이다. 물론 계. 정. 혜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계. 정. 혜는 한 몸이라는 것을[三學同轉]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계로서 스승으로 삼고, 선정의 힘으로 번뇌를 제압하고, 혜의 공덕으로 번뇌를 멸하는 것이 불유교경(佛遺敎經)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행의 목적이 생로병사의 고해(苦海)에서 벗어나는 것인 만큼, 벗어나는 오직 한 가지 길인 수행체계가 바로 사성제(四聖諦)이다.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께 “스승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사람들이 부처님이라고 부릅니까?”하고 여쭈었을 때 바로 네 가지 진리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갖췄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씀하셨다.
그래서 부처님은
“나는 알아야 할 바를 알았고,
닦아야 할 바를 닦았고,
버려야 할 것을 버렸노라.
바라문이여, 그래서 나는 붓다,
즉 깨달은 사람이노라.“
(숫타니파타 게송 558, 중부경 92, 율장 1 245 : 장로게송집 828.)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사성제의 가르침은 곧 중생이 부처되는 유일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최초의 설법도, 최후의 가르침도 바로 이 사성제인 것이다.
따라서 정종분의 삼학은 바로 사성제 중 도성제(道聖諦)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결론 부분인 유통분(流通分)에서 사성제에 대하여 의심이 있으면 물어 보라고 제자에게 간곡히 말씀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서분에서 정종분 유통분까지 관통하고 있는 것은 계. 정. 혜 삼학의 수행도(修行道)이고 사성제의 수행체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불유교경(佛遺敎經)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수행도와 수행체계에 의지하여 간절히 생사의 고해를 건너기를 바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대비심(大悲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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