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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

인과를 믿고 두려워하라

by 회심사 2017. 8. 1.

한 치도 어김이 없는 인과의 법칙,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인과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인과를 알아라. ‘인과를 두려워하라’ ‘인과응보를 믿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등 인과라는 말을 깊이 새겨서 부끄럽지 않고 후회 없는 인생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인과(因果)는 원인과 결과를 말합니다. 어떠한 사물이나 일에도 일어난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에 따라 결과가 생깁니다. 즉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고 하는 것이 인과의 이치입니다. 사람의 행위에 따라 좋은 업인(業因)을 뿌리면 반드시 좋은 열매가 맺어지고, 나쁜 업인에는 악의 과보가 따릅니다. 이것을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라고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선인낙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속담에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하였으며, ‘덕은 닦는 대로 가고 죄는 지은 대로 간다. 고도 하고, ‘고운 일을 하면 고운 밥을 먹는다. 고 하였습니다. 『화엄경』에 보면 문수보살이 보수보살에게 묻습니다. “불자여, 사람은 똑같이 흙, 물, 불기운, 바람기운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다 같이 나와 내 것이 없는 터인데, 어찌하여 사람은 어떤 사람은 괴로움을 받고, 어떤 사람은 즐거움을 받으며, 어떤 사람은 단정하고, 어떤 사람은 추악하며, 어떤 사람은 현세에서 과보를 받고, 어떤 사람은 후세에 가서야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까?” 이에 보수보살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 행위를 따라서 과보의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맑은 거울이 그 대하는 사물의 모양에 따라 비추는 모습이 각기 다른 것과 같습니다. 업의 본성(本性)도 이와 같아 밭에 뿌려진 씨가 각기 스스로 느끼지 못하지만 저절로 싹을 틔우는 것과 같으며, 환술사(幻術師)가 네거리에서 여러 몸을 나타내는 것과도 같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또 『열반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선악의 보(報)는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인과가 휘돌아 없어지는 일이 없으니 생을 헛되이 보낸다면 후회해도 소용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인과를 부정하면 불자가 아닙니다. 인과를 부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그르치는 것이 아니라 남까지 악으로 끌고 가므로 큰 죄악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과는 인연업과(因緣業果)를 줄인 말입니다. 인(因)은 원인 즉 씨앗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연(緣)은 연지(緣地) 곧 씨앗이 뿌려지는 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밭이 없으면 자랄 수가 없습니다.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토양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연(緣)입니다. 불가에서는 인연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설법명안론』에는 ‘한 그루의 나무 그늘에 쉬고 한 하천의 물을 쓰는 것도 전생으로부터의 인연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속담에서는 ‘치맛자락만 스쳐도 보통 인연이 아니다’ 하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씨앗이 촉이 트고 잘 자라려면 토양이 좋아야 하듯이 연줄이 좋아야 좋은 원인이 성숙하여 훌륭한 열매를 맺고 빛을 낼 수가 있습니다. 모든 현상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상호관계를 가짐으로써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현상도 독립적이며 자존적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인연을 중시해서 사소한 인연도 예사롭게 여기지 마시고 굳게 맺어서 승화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업(業)은 밭에 뿌린 씨앗이 결실을 볼 때까지 가꾸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 행위가 선이냐, 악이냐에 따라 선과가 될 수도 있고 악과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과 연과 업이 모아지면 결과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인과는 연과 업의 과정을 잘 거쳐야만 좋은 결과를 맺게 됩니다. 사람들은 인과 과만 따지지 연과 업은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과정이 옳아야 과도 제대로 갖출 수가 있습니다. 인과의 이치는 엄연해서 조금도 흩어지지 않는 것을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합니다. 인과의 법칙은 어길 수 없습니다. 인과는 철칙입니다 ……. 옛날 중국 소주(蘇州) 땅에 돈 많은 장자 시대창(施大昌)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불교 신도가 되어 신심이 남달리 돈독하더니 호구산(虎丘山)에 관음사(觀音寺)를 창건하였습니다. 절의 중앙에는 주법당인 관음전을 건축하여 화려하게 장엄하고 백의관음보살상을 모시고 현판을 금으로 도금하니 운치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시대창이 어려운 환경에도 이만한 절을 지어 놓으니 호구산마저 방광을 놓은 듯 산색이 빛을 더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백의 관음보살을 조성하여 모셔놓고 보니 백화도량(白花道場)을 꾸며 놓은 것 같아서 시대창의 마음은 더없이 흐뭇하였습니다. 며칠 후면 낙성식을 하게 되었으므로 도량 청소와 경내 정리를 다 마치고 목욕을 한 후 새 옷을 갈아입고 관음전에 들어가서 수없이 예배를 드리고 축원과 맹세를 하였습니다. “중생을 위하여 모든 어려움을 구해주시고 고통을 건져주시는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저는 보살님을 한시라도 떨어져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항상 보살님을 스승으로 삼고 마음속에 모시고 다니겠습니다. 저의 죄를 소멸하여 주시고 복을 이루어 주시는 동시에 무수한 중생을 이 백화도량으로 이끌어 제도하여 주소서.” 지극하게 축원을 하였습니다. 장차 주지로 모실 단계(丹溪) 화상도 시씨와 함께 관세음보살님께 예배하고 꿇어앉아서 시씨의 소원이 성취되기를 축원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이렇게 축원을 마치고 법당 문을 나오려는데 절 뒤에서 사람 우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습니다. 단계 스님과 시대창은 이상하게 여기고 찾아 올라가서 보니까 오랫동안 시대창과 헤어져 있던 어릴 적 친구인 계한경(桂漢卿)이 아닌가. 시대창은 깜짝 놀라서, “이게 웬일인가, 자네가 어찌하여 이곳에 와서 울고 있는가?” “자네 보기에 면목이 없네. 내가 남의 빚돈이 많아서 갚을 길이 없어 나무에 목을 매어 죽음으로 사죄하려고 하였지만, 내가 죽으면 마누라가 불쌍해 죽을 수가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신세타령을 하고 울며 앉아 있는 것일세.” 이 말을 들은 시대창은 말하되, “잘된 일일세. 우리 절에 모신 관세음보살님이 도와주실 걸세. 대관절 빚이 얼마나 되기에 죽으려고 결심까지 하였단 말인가?” “자그마치 3만 냥일세.” “어쩌다가 그런 큰 빚을 졌단 말인가?” “살림이 기울어져서 무슨 장사를 해 보려고 남에게 빚돈을 얻어서 시작한 장사가 번번이 실패만 당하고 보니 오늘날 이 지경이 되었다네.” “친구의 말을 들으니 나의 가슴이 아프네. 사람이 나고 돈이 났지 돈부터 나고 사람이 났겠는가? 나도 그간 산을 사서 절을 짓고 불사를 하느라고 돈의 여유가 없으나 3만 냥은 있으니 빚을 갚고 형편이 되는대로 갚게나.” “정말 고맙네. 시군은 나의 은인일세. 자네의 은혜는 잊지 않겠네.” 하면서, ‘시군은 군자란 말이야. 저런 친구를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내가 저런 친구를 어찌 잊을 것인가.’하고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이 사람아, 빚만 갚으면 살 것 같은 생각이 들겠지만 당장에 먹고 살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결실이 다 된 몇 천 평이나 되는 과수원까지 주었습니다. 계씨는 너무 감격하여 관음전을 향하여 머리 숙여 절하면서 맹세하였습니다.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이게 다 보살님의 공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군이 불자가 아니었다면 어찌 이와 같이 너그럽게 친구를 살려 주었겠습니까. 제가 만일 금생에 이 돈을 갚아주지 못한다면 우리 식구가 죽어 저 세상의 개나 말이 되어서라도 갚겠나이다.” 계씨는 시씨가 준 돈으로 먼저 빚을 다 갚고 과수원을 경영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또 자녀가 3남매인데 큰 딸을 시대창의 아들인 시환(施還)에게 주어서 성혼을 시키겠다고 먼저 약속까지 하였습니다. 얼마 뒤에 계한경은 시씨가 준 과수원에서 큰 횡재를 하였습니다. 하루는 과수원에서 일을 하다가 대추나무 밑에서 토금(土金)으로 묻혀있던 벽돌장만한 순금덩어리를 주웠습니다. 그것을 몰래 팔아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한편 시대창은 어찌된 일인지 실패를 거듭하여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계한경은 빚돈 3만 냥도 갚지 않고 약혼을 한 딸도 며느리로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타지방(회계 땅)으로 이사를 하여 떠나가 버렸습니다. 계씨는 황금에 눈이 어두워 돈을 더 벌려고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에 가서 무역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협잡꾼에게 속아 재산을 송두리째 털려버리고 알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기가 막혀서 도로변에 쓰러져 울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어떤 큰 집에 이르러 밖에서 개구멍으로 들어갔는데 뜻밖에도 시대창이 있는지라 양심에 찔려서 어찌할 줄 모르다가 사과 인사를 하려는데 시대창이 그를 보고 꾸짖되, “이 개가죽을 쓴 친구가 무엇을 또 얻어먹으려고 왔느냐?” 하고 발길로 찹니다. 그는 도망하여 뒷마당으로 들어가 보니까 두 아들과 아내가 개가 되어 있지 않은가. 그도 깜짝 놀라서 자기 몸을 돌아본즉 이미 개가 되어 있었습니다. 앞으로 땅을 후벼 파다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요?” “여보, 당신이 호구산 관음사에 계신 관세음보살님께 맹세한 일을 잊었소? 당신이 마음을 잘못 썼기 때문에 그대로 된 거요. 누구를 원망하겠소.” 계씨가 꿈을 깨서 집으로 돌아가 본 즉 벌써 두 아들이 죽었고, 아내도 병이 들어 죽으려고 하는데 허공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오되, “아버지, 우리 집에서 시대창씨의 은혜를 저버렸다고 해서 명부시왕(冥府十王)이 우리들 모자 셋을 개가 되게 하였습니다. 숫강아지 두 마리는 우리 형제가 되고, 혹이 달린 암 강아지는 어머니요, 아버지도 오래지 않아서 사자에게 붙들러 가서 시왕님의 판결을 받고 이 집으로 개가 되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누님만은 남은 인연이 있기 때문에 개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을 하는데 그 목소리가 꼭 큰 아들의 목소리와 같았습니다. 그 뒤에 화재를 당하여 집이 타버리니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이 가련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딸을 데리고 소주(蘇州)로 가서 시대창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간에 시대창은 다시 살림이 일어나서 거부장자가 되어 대궐 같은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서씨의 아들 환(還)이도 벌써 대갓집 딸과 성혼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계씨는 시씨를 보고, “시형에게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 너무나 염치없는 일이지만 먼저 당신 아들인 환이 에게 내 딸을 데리고 왔으니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애원하였더니, 환이가 아버지 대신 나서서 말하되, “계씨, 말 같지 않는 말씀은 하지도 마시요. 사람으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도 분수가 있지 않습니까. 계씨가 3만 냥의 빚 때문에 죽게 된 것을 우리 아버지가 갚아주게 하고 더구나 과수원까지 주지 아니하였소. 계씨는 우리 과수원에서 금덩이를 얻어 가지고 말 한마디 없이 회계 땅으로 도망가서 장사를 한답시고 낙양, 장안으로 왕래하며 호화판으로 잘 살더니 급기야 망하니까 무슨 얼굴로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오? 우리 집이 기우니까 아주 망할 줄 알고 당신은 횡재를 하여 아주 잘 살 줄로 알았지요? 하지만 사람은 마음을 잘 써야 합니다. 도대체 이 마당에 무슨 염치로 다시 찾아왔단 말입니까. 당신께서 우리 관세음보살님께 맹세한 대로만 하였으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거절합니다. 그러한즉 다른 하인들이 가세하여 욕설을 퍼붓고 쫓아냅니다. 계씨는 창피를 무릅쓰고 사지(四肢)를 땅에 뻗치고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하며, “내가 미련해서 저지른 일이니 한 번만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요.” 하며 애원하고 있으니까, 그 집에 세 마리의 강아지가 쫓아 나와 슬프게 울고 짖고 하는 것이 아닌가. 계씨는 이것이 자기의 처자라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고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환이를 붙들고 애원하였습니다. “오갈 데 없는 내 딸을 그대의 후실이라도 받아들여 주면 죽어서 혼령이 되어서도 잊지 않고 갚겠소.” 이때 옆에 있던 시대창이 말하기를, “계씨의 소행은 괘씸하지만 그의 딸이야 무슨 죄가 있겠느냐. 네가 용서하고 받아들여서 둘째 아내로 삼아라.” 하고 권고하니 환이도 생각을 바꿔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계씨는 그 딸을 시씨에게 맡기고 호구산 관음사로 올라가서 모든 죄업을 관음보살님께 참회하는 기도를 지극하게 3년을 하였습니다. 백년 묵은 때도 하루아침에 씻어서 깨끗하게 하듯 죄는 지극하게 참회하면 말끔히 씻을 수 있습니다. 계씨는 깨끗한 마음으로 출가까지 하여 스님이 되어 시씨의 행복을 빌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개의 몸을 받은 처자가 인간으로 환생하기를 기도 발원 하였습니다. 그 뒤 어느 날 밤에 계씨가 꿈을 꾸었는데 아내가 나타나서 말하되, “당신이 늦기는 하였지만 과거의 죄를 관음보살님께 참회하고 수도한 공덕으로 나와 당신의 두 아들도 업보를 소멸하고 고통을 여의고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치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음날 계씨는 사실을 알아보려고 시씨집에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았더니 개 세 마리가 한꺼번에 죽었다고 하더랍니다. 계씨은 단계화상의 뒤를 이어 관음사의 주지가 되고 시씨는 화주로서 80세까지 같이 살면서 도반이 되어 염불삼매(念佛三昧)로써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은혜를 배반하고 덕을 잊다가 과보를 받은 좋은 예입니다. 이렇듯 분명한 것이 인과응보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찌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죽어서 뱀이 된 여인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80여 년 전에 경북 달성군 가창면 어느 마을에 이씨 성을 가진 갑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감나무가 80주가 넘어 감이 매우 흔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너무나 인정이 없고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라 감이 물러서 떨어지는 것이 있어도 누구 하나 주워가지 못하게 하고 밤낮으로 지켰습니다. 나이 70세가 넘어서도 꼭꼭 쌀독을 지키며 며느리에게 쌀독 근처에 가지 못하게 하고, 또 돈이 생겨도 아들이 참견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저 할머니는 재물 밖에 모르는 할머니다’고 하였답니다. 할머니가 나이가 많아 죽자 아들은 좋은 묏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우선 감나무 밑에 가매장을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죽은 지 3개월이 좀 넘어서 며느리가 밥을 지으려고 쌀독 뚜껑을 열어보니 그 속에 한자 가량 되는 뱀이 있었습니다. 기겁을 해서 쫓아내고 쌀을 꺼내어 밥을 지었습니다. 지은 밥을 빈소에 올리려고 하니 얼마 전에 쌀독에서 보았던 그 뱀이 혼백상자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 부자가 상식(上食)을 하고 곧 묘소로 가보니 묘소에 조그마한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데 그 뱀이 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릴 때 들은 말 중에, ‘죽은 혼령도 팔도 구경을 하면 좋은 곳에 간다. 는 것이 기억났습니다. 어느 날 이 부자는 상자 하나를 잘 마련하여 뱀 구멍 앞에 두고, “어머님 뱀이 되었거든 이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제발 들어가십시오.” 하였습니다. 얼마 뒤에 뱀이 나와 곧 상자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부자는 이 상자를 들고 팔도를 유람하였습니다. 금강산이 좋다 해서 금강산을 유람시키던 중 유점사에 이르렀습니다. 유점사 주지 스님께 말씀드리니 천도를 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49일간 기도를 지극히 하여 49재를 올려드리니 그만 그 속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며칠 후 이부자의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더니, ‘내가 살아서 욕심을 많이 내고 남에게 베풀 줄 모르고 좋은 일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못하여 뱀의 몸을 받았다. 그러나 너의 그 정성과 유점사 스님의 법력으로 부처님께서 인도하셔서 좋은 곳에 태어나니 그렇게 알고 안심하여라.’ 하였습니다. 이 부자는 그제야 어머니가 천도된 줄 알고 집에 돌아와 불사와 선행으로 여생을 바쳤다고 합니다.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받는 것 이렇듯 어김이 없는 것이 인과의 법칙입니다. 그리하여 『법구경(法句經)』에서 말씀하시기를 “설사 백천 겁을 지날지라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인연이 모여 만날 때에는 많은 과보를 돌려받느니라.” 하였습니다. 인과는 바로 나타나는 수도 있지만 몇 달 후 또는 몇 년 후에 나타나기도 하고, 심지어는 몇 생후에 또는 몇 겁 후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당장 과보를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세세생생(世世生生) 언젠가는 반드시 응보가 있게 될 것입니다. 살다 보면 흔히 신세타령 팔자타령을 합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놈의 신세, 개보다 못한 내 신세야!’ 하며 땅을 치고 대성통곡(大聲痛哭)하기도 합니다. 팔자나 신세는 자기가 지은 인과의 응보입니다. 인과는 누구에 의해 받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업(業)을 만들어서 얻는 것이고,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받는 것입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요 자작자수(自作自受)한 것이 바로 오늘의 나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 가지 업은 스스로 지어서 받는다. 고 하시면서. ‘만약 전생에 인과를 묻는 자가 있거든 동서고금(東西古今)의 현인달사(賢人達士)를 보라. 그들은 전생에 복을 지었기 때문에 현인이 되고 달사가 되었느니라.’ 하셨습니다. 남보다 성공하는 것도, 출세하는 것도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한 복을 짓고 덕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도 세세생생 원력을 세워 남다른 보살행을 하였기에 부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무여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