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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불교자료실

불탑과 불상의 조성과 유래

by 회심사 2019. 4. 26.


卍-불탑과 불상의 조성과 유래.-卍
    찰(寺刹)에 가면 으레히 볼 수 있는 것이 불상(佛像)과 불탑(佛塔)입니다.
    그러면서도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불교 신자(信者)이면서도, 불상과 불탑의 참뜻을 제대로 모르거니와 그 유래(由來)에 대하여서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불탑의 기원(起源)은 부처님 당시의 여러 가족들의 조묘(祖廟)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조묘는 제다(制多)라고도 하며, 이 제다의 풍속(風俗)은 가족이 죽으면 시신을 화장하거나 일정한 장소에 매장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부처님이 입적하신 후 사리(舍利)를 팔 등분(八等分)하여 여덟 곳에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奉安)한 이후부터는 제다와 불탑을 구분(區分)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탑이란 것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이고, 사리라함은 부처님 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불교인들은 사리를 곧 부처님으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을 모시고 설법을 들으면서 생활했든 것처럼, 사리를 모신 탑에 예배하고 의식(儀式)을 갖추며 수도(修道)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초기 불교 사원의 모습 이였습니다.
    이때를 학자들 사이에는 탑불교 시대라고 합니다.
    이 무렵엔 법당을 세운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초기 인도 불교 사원의 모습 이였습니다.

    더욱이 당시 불교인들이 부처님 모습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것은, 부처님에 대한 모독(冒瀆)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상이나 법당을 지을 생각을 하지 못했든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의 초기 불교 미술품이나 조각품을 보면, 부처님의 탄생이야기라든가, 일생에 관한 이야기들을, 직접적으로 그리거나 조각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회화적 표현이 많습니다.

    또, 이 무렵 사원들이라 하여 불상이나 불서(佛書)가 없기 때문에 법당은 있을 수 없었고, 오직 탑만이 예배의 대상 이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곳곳에 사원이 세워지고, 탑을 세우게 되었으나,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는 한계(限界)가 있어 탑 속에 봉안할 사리를 구하기가 어렵게 된 것입니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불상(佛象)은 불탑(佛塔)보다 이삼 백년 뒤에 조성 되였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불상 조각을 가능 하게한 첫 번째 이유는, 사리를 구하기 어려운데서 비롯되었지만, 외적(外的)으로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대원정(大遠征)에서, 동서(東西) 문화가 교류(交流) 되기 시작하여, 그리스 문화가 인도에 소개되면서 부터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리스의 신상(神像)이 인도의 불교도들에게 전해지면서, 불상 조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학설은 인도의 고유의 신상(神像)조각이 불상 조각에도 영향을 끼쳐 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 문화를 가장 많이 받아들인 인도의 간다아라 지방이 불상 조성의 중심이 되었든 것을 미루어 보면, 그리스 신상 조각에 영향을 받아 불상을 조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불상 조성이 이루어지자, 불탑과 더불어 예배의 대상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불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불탑을 능가하게 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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