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기도의 원리
모든 불보살님들은 본원과 별원에 의해 수행하여 그것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무량한 공덕을 갖추고 있다. 이것을 확신하는 수행이 기도이므로 불보살과 감응하여 가피를 얻는 것이다. 이러한 타력신앙의 관점은 불교의 기본적인 입장이 자력수행이다 보니 교리적으로 모순되는 것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타력이란 자력과 상관없는 별개의 타력이 아닌 자력이면서 타력이고 타력이면서 자력이다. 왜냐하면 불보살님의 위신력에 감응하여 가피를 얻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자가 일심이 되어야 하는데 이 일심 속에서는 자력과 타력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잘 명심한다면 기도수행을 하는데 맹신이라는 장애와 의심이라고 하는 장애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 부인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연화대를 관조하였으면 다음에는 부처님을 생각하여라. 어째 그런가하면 모든 부처님은 바로 온 세계인 법계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의 마음속에 들어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의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하면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의 32상과 80隨形好인 것이니라. 그래서 이 마음으로 부처를 이루고 또한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니라.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른 지혜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니, 마땅히 일심으로 생각을 골똘히 하여 저 아미타불과 그 지혜 공덕인 여래, 응공, 정변지를 깊이 관조해야 하느니라." <관무량수경> 불보살의 위신력이 분명히 있어 기도 중에 가피를 받게 되지만 그것은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고 바로 자기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관무량수경>에서도 말씀하셨듯이 부처님은 중생의 마음속에 계시며 그 마음으로 부처를 이룸을 명심해야 마구니에게 홀리지 않고 부처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앞의 염불수행에서 유심정토와 타방정토가 둘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자력과 타력은 둘이 아닌 것이다. 2)기도 성취의 원리 왜 자력과 타력은 둘이 아닌지, 기도 성취의 원리를 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기도의 첫 번째 기능은 소원성취라고 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대상은 관세음보살일 수도 있고, 지장보살일 수도 있고, 하나님일 수도 있고, 바위일 수도 있다. 또 같은 대상을 두고 기도를 해도 어떤 사람은 이루어지고 어떤 사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또 어떤 원리가 있기에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는가. 불교에서는 불보살님의 위신력이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하며 무속에서는 무당의 힘 또는 그 무당이 받드는 신의 힘 또는 바위가 신령해서 라고 한다. 과연 그런 힘이 거기에 있다면 왜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결과를 갖지 않는가. 믿음이 부족해서, 정성이 부족해서라고 말한다. 여기서 왜 믿음이라든가 정성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문제는 간단히 풀린다. 아무리 타력이라고 해도 실은 자력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속에서 일부 신통력이나 어떤 부분적인 능력에 의해 외부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아주 없진 않지만 기도라고 할 때는 기원하는 주체가 어떤 목적과 방법으로 했느냐하는 것이 관건이지 기도의 대상은 방편일 뿐이라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것을 방편이라고 하지 않고 외부의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맹신이고 이것을 조장하는 것이 사이비이다. 만일 외부에 절대적 존재가 있다면 그리하여 그가 기독교의 하나님이라면 왜 사랑의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지 않고 오직 예수를 믿는 자만,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는가. 또한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은 자비의 화신인데 왜 먼저 와서 구해주지 않고 중생이 그 이름을 불러 주기를 기다리는 것인가. 또한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은 한 모습이 아니고 상인으로도 승려로도 여자로도 남자로도 아이로도 노인으로도 나타난다 했는데 그럼 이때 도움을 준 그 사람은 관세음보살인가 지장보살인가.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라고 한다. 그러므로 마음에서 한 치의 의심이나 간격도 없이 온전히 부처를 이루고 관세음보살을 이룰 때 기도도 성취되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라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네 이름을 부르면 곧 삼재팔난을 면할 것이다. 이 모두가 "네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중생의 마음이란 변덕이 심하고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따라서 마음에 의지한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해오던 분별하고 의심하던 알음알이를 내려놓고 본심에 의지한다는 말이다. 이 때 올바른 방편이 필요한 것이다. 중생심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쉽게 근본으로 돌아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부사의한 공덕을 갖춘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르거나 진언을 염송하는 것이다. 이때 바른 방편은 본심을 여의지 않으므로 바른 길로 인도한다. 본심을 한마음이라고도 하고 자성이라고도 하고 주인공이라고도 한다. 마음이라고는 하나 나와 너, 안과 밖이 없는 거기에 의지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원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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