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을 찾는 이들에게,
요즈음은 길을 잘 닦아 놓아 절 마당까지 자가용을 타고 들어가는 사람이 많지만, 1980년대까지만 하여도 깊은 산중에 있는 유명 사찰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시절, 우리의 할머니들은 쌀 1되, 양초 1통을 보자기에 싸서 머리 위에 이고 수십 리 길을 걸어 절을 찾아가곤 하였다. 마침내 법당 앞에 당도하면 하얀 고무신과 버선발에는 흙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고…. 할머니들은 법당 앞 돌계단에 앉아 고무신과 버선을 벗어 힘껏 내리치며 먼지를 털어내고, 손발과 얼굴을 깨끗이 씻은 다음 부처님께로 나아갔다. 아픈 다리를 끌고 수십리 길을 걸으면서 그분들은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분명 부처님을 그리며 심중心中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분들이 절에 도착할 즈음이면 불공의 반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고, 기도의 반은 성취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이미 정성이 그만큼 익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불자들은 너무나 편안하게 절을 찾고 있다. 물질적인 시주야 옛 할머니들보다 많이 할 수 있겠지만, 정성은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특별히 무거운 물건 없이 절을 찾을 때에는 적어도 절 밑의 주차장에서부터 걸어가는 것이 좋다. 한 손으로는 짐을 한 손으로는 염주를 굴리면서 끊임없이 염불을 하며 걸어보라. 절을 찾는 마음이 남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일단 집을 나서면 절에 도착할 때까지 불공을 올릴 때와 다름없이 몸과 마음을 단속해야 한다. 혹 일부 사람들은 불공을 드리러 절에 가다가 죽은 동물이나 나쁜 일을 보면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있다. '부정을 탔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이 탈수록 더욱 찾아야 할 곳이 절이요, 의지해야 할 분이 부처님이다. 부처님은 동물의 시체를 보고 왔다고 하여 부정하다고 여기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 부정을 밝혀 주시는 분이 부처님이다. 오직 중요한 것은 '나'의 정성이요, 나의 경건한 몸가짐 · 마음가짐이다. 그 예로써 나의 부모님께서 생남불공生男佛供을 드리러 다니던 때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불심이 매우 깊었던 우리 부모님은 자식을 낳기 위해 절을 찾아다니며 정성을 다해 불공을 드렸다. 하지만 부처님 전에서 불공을 올릴 때만 정성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 농사를 지을 때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하였고, 벼가 다 익으면 낫으로 베는 것이 아니 라 손으로 직접 벼를 훑어 방아를 찧었다. 그 쌀을 아버지는 손수 만든 무명베자루에 한 말 담은 다음, 깨끗한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집에서 80리나 떨어져 있는 마곡사 대원암까지 지게에 얹어 짊어지고 가서 불공을 드렸다. 한번은 평소와 같이 쌀을 짊어지고 대원암으로 향하였는데, 그날따라 배가 사르르 아픈 것이 자꾸만 방귀가 나오려 하였다. 억지로 참고 또 참았는데, 대원암을 10리 남겨놓은 지점에서 시냇물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뛰다가 방귀가 나오고 말았다. '아,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러 가다가 방귀를 뀌다니! 가벼운 방귀 기운이 이미 위로 솟아 쌀로 올라갔을 것 아닌가?' 방귀 기운이 섞인 쌀로는 공양을 올릴 수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그 쌀을 도로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른 벼를 손으로 훑어 방아를 찧은 다음, 그 쌀을 새 자루에 넣어 다시 80리 길을 걸어서 불공을 드리러 가셨다고 한다. 우리는 분명 알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불공을 드리러 갈 때의 마음가짐을 이렇게만 가진다면 그 불공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불공은 정성이다. 내 정성을 내가 기울이면서 불보살님께 기원하는 것이 불공이다. 내 정성 내가 들이 고, 내 불공 내가 드리고, 내 기도는 내가 하고, 내 축원은 내가 해야 참 불공이요 참 기도인 것이다. 불공하는 자세로 절을 찾아가는 불자. 그에게는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저절로 깃들게 되고 기도 성취가 저절로 뒤따르기 마련이다. 부디 잘 명심하여, 절을 찾을 때 마음 단속· 입 단속. 몸 단속을 잘하기 바란다. -일타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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