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따라 잠시 만나서,-청화스님
부처님 가르침은 깊고도 오묘해서 한마디로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소승과 대승이 있고, 또 우리 중생들이 보는 차원의 현교(顯敎)도 있고, 우리 중생이 볼 수 없는 차원의 밀교(密敎)도 있습니다. 이러한 소ㆍ대승의 관계와 현ㆍ밀교의 관계를 바로 알고자 하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젊은 불자님들은 기초교육이 튼튼한 분들이기 때문에, 앞으로 정진을 하신다면 잘 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불교를 마음 심(心)자 마루 종(宗)자를 써서 심종(心宗)이라 합니다. 물질도 있고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적인 사물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불교는 어째서 마음뿐이라고 하는가? 왜 마음의 종교라고 하는가? 이런 중요한 문제를 우리 젊은 불자님들은 꼭 푸셔야 합니다. 모든 물질과 사물들이 엄연히 현존해 있는데도, 왜 심종이라고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견해를 가지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른바 반야의 지혜가 나옵니다. 사실상 마음뿐이기 때문에 심종이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사상에서 볼 때 절대물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간성도 공간성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질이 분명히 내 눈앞에 있고 물질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공간성이 있으므로, 존재가 있고 또 시간도 있을 터인데 왜 그런가? 그 해답은 모든 존재가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잠시간 이루어졌기 때문에 시간성과 공간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성과 공간성이 없기 때문에 물질이 없습니다. 인연 따라 잠시간 이루어졌다는 말은 모두가 조건부라서, 인연을 떠나서는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기초를 다 아시는 분들에게는 새삼스럽게 말씀드릴 필요가 없겠습니다만, 우선 '자기'라고 하는 존재를 본다 하더라도 오온(五蘊)의 가화합(假和合)입니다. 오온은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아닙니까? 오온이 잠시 동안 가짜로 화합되었단 말입니다. 색은 물질이므로 산소, 수소, 질소 등 각각의 원소들이 결합된 것에 불과하며, 수상행식은 우리들의 관념 활동입니다. 내 몸뚱이를 비롯한 일체 물질과 우리가 느끼고, 의혹하고, 분별 시비하는 정신활동과 같은 것들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있다고 한다면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는 말이 거짓말이 되겠지요. 분석한 뒤에 공인 것이 아니라 내 몸 구성이 바로 공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야심경의 색이 곧 공이라고 할 때 색이라는 것, 즉 물질은 분석하면 끝에 가서는 에너지가 되는 것이므로, 공 아닌가 하는 식으로 분석적인 입장에서 생각합니다만, 반야심경의 '즉공(卽空)'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즉공'은 색 그대로 공, 다시 말해서 물질 그대로 공이라는 것입니다. 내 몸뚱이가 이대로 공입니다. 다이아몬드도 그대로 공입니다.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연생(因緣生)이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라 하더라도 결국 탄소의 결정체일 뿐입니다. 아무리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도 그것은 결국 원소의 결합체일 뿐입니다. 더 추궁해 들어가면, 각 원소라는 것은 결국 원자핵과 그 주위를 회전하고 있는 전자가 몇 개 있는가. 양성자 중성자가 몇 개 있는가에 따라서 구분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의 소립자들을 떠나서 다른 것은 없습니다. 저는 법문을 할 때마다 서투른 물리학 풀이를 합니다. 왜 그런고 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의 의미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공만 알아버리면 사실 불교는 참답게 대승(大乘)으로 입문되는 것입니다. 공을 모르면 대승이 못 되는 것입니다. 반야지혜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대승이 되고 못 되고 하는 것입니다. 반야지혜가 있어야 대승이 됩니다. 대승이 되어야 참다운 생사해탈을 할 수 있는 부처님 법문입니다. 즉 방편설을 떠난 진실한 법문이 됩니다. 따라서 어렵더라도 과학적으로 또는 다른 방법으로라도, 이것저것 모두를 유추해서 인용하고 원용해 가지고 공도리(空道理)를 알아야 합니다. 저 같은 사람도 토굴생활을 무던히 했습니다. 한번은 백장암 저 위쪽 1000미터 이상 되는 고지에다 조그마한 토굴을 마련해서 한 철을 지냈습니다. 삼동이 임박해서야 아무런 준비도 없이 겨우 들어갔습니다. 방이라야 사방 일곱 자 정도의 협소한 공간인데도,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하려면 장작이 하루에 여남은 개비는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나무 준비를 충분히 안 했습니다. 그래서 장작을 절약하기 위해 하루에 세 개비씩 뗐습니다. 마음을 못 통하면 방에서 죽을 각오로 나오지 않으려고, 지붕도 천년만년 간다는 참나무 굴피로 이었습니다. 참나무 껍질도 부족해서 촘촘히 올리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해 비가 억수로 쏟아져, 그 사이로 빗물이 새어들어 와도 우산이 없어서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방바닥에 물이 흥건해져서 할 수 없이 나무토막을 놓고, 그 위에 앉아서 빗물을 퍼내면서 지냈습니다. 그때는 또 생식을 했습니다. 지리산 쪽이기 때문에 이곳보다 훨씬 추운 지방인지라 계곡물이 전부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생식을 하므로 따뜻한 물은 필요 없으나 찬물마저 얼어붙어서 물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음을 깨서 양푼에다 넣고 불을 때서 녹인 물을 좀 마셨습니다. 생식도 콩가루나 깻가루를 섞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쌀만 불려서 그냥 먹었습니다. 찬물에다 쌀만 불려 그냥 먹었으니 소화가 잘 될 수가 있겠습니까? 설사도 하고 여간한 고통을 겪은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무아'라고 하는 소식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미운 사람 밉고, 고운사람 곱단 말입니다. 나한테 좋게 한 사람은 분명히 보고도 싶고 나한테 짓궂게 군사람은 또 밉단 말입니다. 내가 보란 듯이 무얼 좀 해야 하겠구나. 그런 관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단 말입니다. 이것저것 다 버리고 이 목숨 다 바치겠다는 각오로 들어갔지만, 그런 속에서도 나라는 관념을 떨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모두가 비었다'는 금강경도 수백 번 읽었고, 반야심경이야 중 된 지 12년이 되었을 때이니 몇 천 번은 읽었겠지요. 그래도 제법공(諸法空) 도리가 와 닿지 않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불자님들한테 모두가 공이다 본래가 공이고 마음뿐이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서 저 양반들이 지금 알아먹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대는 지극히 총명한 세대입니다. 다행히 물리학적으로도 물질 자체가 종당에 가서는 에너지가 되어 버린다는 것쯤은 이미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사가 다 공이라는 즉공(卽空)을 알 듯 말 듯 할 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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