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라는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일어나는 안팎의 일체 모든 경계는
재수 없게 어쩌다 생겨난 일이 아니요,
우연이나 숙명적으로 생겨난 일도 아니며
그 어떤 절대자가 나를 시험해 보기 위해
만들어 낸 것 또한 아닙니다.
내 앞에 펼쳐진 모든 경계는
모두가 내가 만들어 낸 환영일 뿐입니다.
잠시 분별심 내어 만들어 낸
거짓된 신기루이며 한바탕 꿈일 뿐입니다.
인연 따라 잠시 생기고 인연이 다하면
자연스레 소멸해 버리는 인연생(因緣生)이며 공생(空生)입니다.
그렇기에 일체는 다 공(空)하다 하는 것입니다.
일체는 다 인연생이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그리고 전생에 지어 온 일체의 모든 행위들이
원인의 씨앗이 되어 때가 되면 무르익어 열매가 열리듯
그렇게 때맞춰 과보를 가져오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고정됨이 없이 만들어졌다가
그저 인연 따라 흩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누가 인연 지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입니다.
쉽게 내 뱉었던 말 한마디 머리 굴려 쥐어 짜낸 생각 하나 하나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 하나 하나가
0.1%의 에누리도 없이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 냅니다.
어느 것 하나 우연이란 없습니다.
수 억겁을 윤회하며 우린 참 많은 행위를 일으키며 살았습니다.
수많은 업을 짓고 살았습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속엔 그 오랜 세월동안 지어 온
일체의 모든 업장이 고스란히 다 녹아 있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일으킨 신구의 세 가지 선업도 들어 있고
악한 마음으로 일으킨 탐진치 3독심도 가득합니다.
누구 하나 선한 업만을 지은 이도 없고
누구 하나 악한 업만을 지은 이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선악의 모든 업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현실은 괴로움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것입니다.
선업만을 짓고 살았다면 물론 즐거운 일만 있을 것이고
악업만을 짓고 살았다면 물론 괴로운 일만 있을 테지만
이 모든 선악의 일상이 우리의 과거이므로 내 앞에 펼쳐진
현실이나 미래 또한 괴로움과 즐거움의 수 없는 반복이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을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과의 도리를 실천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절에 오며
좋은 일만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나쁜 일들은 부처님께서 다 거두어 주시고
늘 즐거운 일만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건 아닙니다.
부처님 앞에서 당당해 져야 합니다.
떳떳해 져야 합니다.
'내가 지은 것 모두 내가 받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진실 된 수행자의 마음입니다.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내 앞에 펼쳐진 일체의 모든 경계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다 이유가 있기에, 원인이 있기에 나온 것입니다.
짓지 않은 것은 절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안팎의 일체 모든 경계를
다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수행심입니다.
불교 교리의 핵심을 연기법, 인과법이라 말합니다.
대승불교에서는 '공'이라 말합니다.
큰스님네들은 연기와 공을 실천키 위해
'마음을 비워라' '놓아라.' 고 이야기 합니다.
어떻게 해야 연기, 공을 실천할 수 있고
어찌 해야 비울 수 있습니까.
모두를 버리고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진정 비우는 것인가요?
비운다는 것은-
공을 실천한다는 것은-
연기를 실천한다는 것은-
내 앞에 펼쳐진 일체 모든 경계를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지을 때는 선도 악도 모두 닥치는 대로 지어놓고
받을 때 되어선 좋은 것만 받겠다고 하니
중생심이란 얼마나 교활합니까.
괴로움은 받기 싫은데
지어 놓았으니 지은대로 자꾸 나오게 되고
그걸 받지 않으려고 하니 괴로운 것입니다.
내 앞에서 당당해 지세요.
있는 그대로 모두를 받아들이세요.
나는 수행했으니
나는 기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괴로움이 비켜갈 것이란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는 않으셨나요.
진정한 수행자라면
괴로움, 즐거움 이 모두를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당히 싸워 몽땅 녹일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 수행 많이 한다고
괴로움이 비켜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수행심으로 괴로움에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괴로움 없는 이가 아니라
괴로움에 얽매이지 않는 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괴로움의 과보가 왔을 때 싫다고 비켜 가면 그만인 듯 하지만
도리어 더 큰 과보가 되어 언젠가 내 앞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 법계의 이치입니다.
그렇기에 다 받아들이고 그 모든 경계를 다 녹여 내셔야 합니다.
내 안에서 다 녹여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용광로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 어떤 경계일지라도 나의 참 생명 주인공 속에
몰록 놓고 나면 다 녹아들게 되어 있습니다.
까짓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그 어떤 경계가 두려움을 몰고 온다 해도
묵묵히 관찰하고
다 놓고
다 비우고
다 받아들이세요.
나의 참 생명은
무엇이든 다 녹일 수 있는 부처님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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