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삼신(三身)-
선지식들아, 모두 모름지기 자기의 몸으로 모양 없는 계(無相戒)를 받되,
다 함께 혜능의 입을 따라 말하라.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의 삼신불을 보게 하리라.
"나의 색신의 청정법신불에 귀의하오며,
나의 색신의 천백억화신 불에 귀의하오며,
나의 색신의 당래원만보신불에 귀의합니다.".
[이상 세 번 부름]
색신은 집이므로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다.
앞의 세 몸은 자기의 법성 속에 있고 세상 사람이 다 가진 것이다.
그러나 미혹하여 보지 못하고 밖으로 세 몸의 부처를 찾고
자기 색신 속의 세 성품의 부처는 보지 못하느니라.
선지식들은 들으라.
선지식들에게 말하여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의 색신에 있는 자기의 법성이 세 몸의 부처를 가졌음을 보게 하리라.
이 세 몸의 부처는 자성으로부터 생긴다. 어떤 것을 깨끗한 법신의 부처라고 하는가?
선지식들아,
세상 사람의 성품은 본래 스스로 깨끗하여 만 가지 법이 자기의 성품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악한 일을 생각하면 곧 악을 행하고 모든 착한 일을 생각하면
문득 착한 행동을 닦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이 다 자성 속에 있어서 자성은 항상 깨끗함을 알라.
해와 달은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이면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워서 일월성신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가 지혜의 바람이 불어 구름과 안개를 다 걷어 버리면 삼라만상이 일시에 모두 나타나느니라.
세상 사람의 자성이 깨끗함도 맑은 하늘과 같아서, 혜(惠)는 해와 같고 지(智)는 달과 같다.
지혜는 항상 밝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구름이 덮여 자성이 밝지 못할 뿐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이 참 법문을 열어 주어 미망을 불어 물리쳐 버리면 안팎이 사무쳐 밝아
자기의 성품 가운데 만법이 다 나타나나니, 모든 법에 자재한 성품을 청정법신이라 부르니라.
스스로 돌아가 의지함이란,
착하지 못한 행동을 없애는 것이며 이것을 일러 돌아가 의지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천백억화신불이라고 하는가?
생각하지 않으면 자성은 곧 비어 고요하지만 생각하면 이는 곧 스스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악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지옥이 되고 착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천당이 되고
독과 해침은 변화하여 축생이 되고 자비는 변화하여 보살이 되며, 지혜는 변화하여 윗 세계가 되고
우치함은 변화하여 아래 나라가 된다.
이같이 자성의 변화가 매우 많거늘, 미혹한 사람은 스스로 알아보지를 못한다.
한 생각이 착하면 지혜가 곧 생기나니, 이것을 일러 자성의 화신이라 하니라.
어떤 것을 원만한 보신불이라고 하는가?
한 등불이 능히 천년의 어둠을 없애고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애나니,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항상 미래만을 생각하라.
항상 미래의 생각이 착한 것을 이름하여 보신이라고 하느니라.
한 생각의 악한 과보는 천년의 착함을 물리쳐 그치게 하고
한 생각의 착한 과보는 천년의 악을 물리쳐 없애나니,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미래의 생각이 착함을 보신이라고 부르니라.
법신을 좇아 생각함이 곧 화신이요, 순간순간의 생각마다 착한 것이 곧 보신이요,
스스로 깨쳐 스스로 닦음이 곧 돌아가 의지하는 것이다. 가죽과 살은 색신이며
집으로 귀의할 곳이 아니다. 다만 세 몸을 깨치면 큰 뜻을 아느니라.
*내외명철(內外明徹 안팎이 사무쳐 밝음)은 묘각(妙覺)이니 불교의 구경(究竟)이다.
시방세계 및 몸과 마음이 깨끗한 유리처럼, 내외명철은 식음(識陰)이 다하였다고 부르나니,
부처님의 묘장엄해에 들어가 보리를 원만케 하니라
깨끗한 유리 속에 밝은 달을 담은 것 같으면 문득 지위를 초월하여
괴해(果海)에 들어가 무소득에 돌아가나니,
바야흐로 구경극칙인이라고 부르니라.
만약에 식음이 다하면 바아흐로 지위를 넘어 얻는 바가 없이 구경을 원만성취하여
깨끗한 유리에 보배달을 담음과 같으니라.
수정영락은 안팎이 사무쳐 밝아서 묘각에 항상 머무나니,
일체지혜의 지위라고 부르니라.
*육조스님은 내외명철을 청정법신이라고 하였다.
이는 불교의 구경인 원교불상(圓敎佛相 원교의 부처님 모습)이다.
묘각의 지위에 들어가서 청정법신을 성취하니, 원교불상이니라
*조사스님의 말씀을 구차하게 교리에 배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육조스님이 강조하신 내외명철은 불교의 구경극칙인 원교묘각(圓敎妙覺)이다.
육조스님은 내외명철이라야 식심견성(識心見性 마음을 알아 성품을 봄)이라고 하였으니,
종문의 표방(標榜)인 견성(見性)은 불교의 구경묘각 즉 성불(究竟妙覺卽成佛)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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