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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불교자료실

불타(佛陀)와 불전(佛傳)-초기의 교화활동

by 회심사 2017. 5. 1.


-초기의 교화활동-
    녹야원에서의 설법을 계기로 붓다의 교화활동은 급속히 전개되었습니다. 팔리어 [율장(律藏)] 「대품(大品)」에서는 그러한 교화활동 상황을 역사적 순서대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라나시에서 장자(長者)의 아들 야사(Yasa, 耶舍)가 교화를 받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으며, 그의 부모와 아내도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재가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뒤 야사의 친구 4명과 50명의 옛친구도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불교 교단에는 붓다를 포함하여 61명의 아라한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 때 붓다께서는 저 유명한 ‘전도선언(傳道宣言)’을 단행했던 것입니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전도의 여행을 떠나라고 당부하고, 자신은 홀로 성도지(成道地) 우루벨라(Uruvelā, 優樓頻螺)로 향하였습니다. 붓다께서 우루벨라로 돌아오는 도중에 30명의 젊은이들을 교화하여 제자로 받아들입니다. 30명의 젊은이들은 각자 아내를 거느리고 숲속으로 나들이를 나와 즐겼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은 아내가 아닌 기녀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이 놀이에 빠져 있는 동안 기녀는 그들의 귀중품을 모두 가지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들이 도망간 여인을 찾느라고 소란을 피우고 있을 때, 숲속에서 명상 중이었던 붓다를 발견하고, 붓다께 여인의 행방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붓다는 도망간 기녀를 찾는 일과 자신을 찾는 일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를 묻고, 그들에게 법을 설하여 교화시켰습니다. 그들은 모두 출가하여 붓다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1. 깟사빠 삼형제

    초기불교 교단에서 가장 큰 수확은 깟사빠(Kassapa, 迦葉) 삼형제를 개종시킨 사건일 것입니다. 이들 깟사빠 삼형제는 붓다께서 깨달음을 이룬 붓다가야(Buddhagayā, 佛陀伽倻, 현재의 보드가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당시 가장 명성이 높은 종교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의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제일 먼저 이들을 교화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이들 삼형제 중 첫째는 우루벨라 깟사빠(Uruvelā Kassapa, 優樓頻螺迦葉)입니다. 그는 우루벨라 숲속에 살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불렸는데, 그에게는 500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둘째는 나디 깟사빠(Nadī Kassapa, 那提迦葉)인데, 그는 우루벨라 숲과 가야를 연결하는 네란자라 강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습니다. 팔리어 나디(Nadī)는 강(江) 또는 하(河)이라는 뜻입니다. 그에게는 300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셋째는 가야 깟사빠(Gayā Kassapa, 伽倻迦葉)입니다. 그는 하류(下流)인 가야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는데, 그에게도 200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머리를 땋고 불을 숭배하면서 해탈을 목표로 고행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불의 신 ‘아그니(agni, 火神)’를 받들고 있었기 때문에 사화외도(事火外道) 혹은 배화교도(拜火敎徒)라고 불렸으며, 머리를 땋고 주로 고행하였기 때문에 결발행자(結髮行者) 혹은 결발외도(結髮外道)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그 종교의 교리와 수행 내용 등과 같은 자세한 사항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팔리 [율장] 「대품」에는 붓다께서 우루벨라 깟사빠를 신통력으로 교화하는 내용이 아주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우루벨라의 신통’으로 널리 알려진 것입니다. 경전의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세존께서는 결발의 행자 우루벨라 깟사빠가 머물고 있던 수행처로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깟사빠여, 그대가 불편하지 않다면 나는 오늘 하룻밤을 그대의 화옥(火屋)에서 지내고자 한다.”

    “위대한 사문이시여, 저는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흉악하고 신통한 용왕이 살고 있는데, 그 용은 맹렬한 독을 뿜는 독사여서 당신을 해치게 될까 걱정됩니다.”

    이렇게 세존께서는 깟사빠에게 세 번 반복하여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깟사빠는 마음대로 하라고 허락하였습니다.

    여기서 화옥(火屋)이란 불을 섬기는 성화당(聖火堂)을 말하는데, 이곳에 나가(Nāga)가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팔리어 나가(Nāga)는 용(龍), 코끼리(象), 뱀(蛇)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아마 거대한 독을 가진 뱀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드디어 세존께서는 화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풀로 엮은 자리를 깔고 그 위에 가부좌로 앉으신 뒤 몸을 세우고 선정(禪定)에 드셨습니다. 큰 독을 가진 뱀은 세존께서 들어와 계시는 것을 보고는 괴롭고 쓰라린 심정으로 독의 연기를 내뿜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생각하셨습니다.

    ‘나는 이제 이 독을 가진 뱀의 피부와 가죽과 살과 힘줄과 뼈와 골수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나의 불로써 독뱀의 불을 소멸시켜야겠다.’

    세존께서는 신통력으로 연기를 뿜어 내셨습니다. 그러자 독뱀은 분노를 참지 못한 채 불을 뿜었습니다. 세존 역시 화계삼매(火界三昧)에 들어 불을 뿜으셨습니다. 세존과 독뱀, 그 둘이 불꽃에 휩싸이자 성화당 안은 마치 거세게 불타는 것과 같았습니다. 수행자들은 성화당 주위에 모여 말했습니다.

    “아, 그 위대한 사문은 참으로 아름다웠는데, 이제 독뱀에게 죽임을 당하는구나.”

    세존께서는 피부, 가죽, 살, 힘줄, 뼈, 골수 등 그 어느 것도 다치지 않게 하면서 자신의 불로써 독뱀의 불을 소멸시켰고, 밤이 지나자 그 독뱀을 발우에 담아 우루벨라 깟사빠에게 보여 주며 말씀하셨습니다.

    “깟사빠여, 이것이 그대의 독뱀이다. 이 독뱀의 불은 나의 불로 소멸되었다.”

    그러자 우루벨라 깟사빠는 생각했습니다.

    ‘이 위대한 사문의 위력은 참으로 훌륭하다. 이 흉악하고 신통한 독뱀이 맹렬한 독으로 불을 뿜는데도, 그 불을 자신의 불로써 소멸시켰다.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아라한은 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우루벨라 깟사빠는 세존께서 보이신 신통을 보고 존경심을 일으켰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승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루벨라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사문이시여, 여기서 머무십시오. 언제나 제가 당신께 공양 올리겠습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우루벨라 깟사빠의 수행처 근처에 있는 숲에서 지내셨습니다. 그런데 밤이 으슥한 무렵에 사대천왕(四大天王)이 뛰어난 용모를 한 채, 숲 전체를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 왔습니다. 그들은 세존께 공손히 절하고 사방에 서 있었는데, 마치 거대한 불기둥과 같았습니다.

    밤이 지나자 우루벨라 깟사빠는 세존께로 다가와서 아뢰었습니다.

    “위대한 사문이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그런데 위대한 사문이시여, 어젯밤에 뛰어난 용모를 한 채, 숲 전체를 밝히면서 당신이 계신 곳으로 와서 공손히 절하고 사방에 서 있던, 거대한 불기둥과 같았던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깟사빠여, 그들은 사대천왕으로 법을 듣기 위해 나에게 온 것이다.”

    그러자 우루벨라 깟사빠는 생각했습니다.

    ‘이 위대한 사문의 위력은 참으로 훌륭하다. 사대천왕조차 법을 듣기 위해 그에게 오지 않는가?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아라한은 되지 못한다.’

    세존께서는 우루벨라 깟사빠가 준비한 음식을 드시고는 숲으로 돌아가 머무셨습니다.

    그 뒤에도 붓다는 여러 가지 신통력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팔리 [율장] 「대품」에는 3,500가지의 신변(神變), 즉 신통력을 보이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신통력으로써 우루벨라 깟사빠를 계속적으로 압박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쉽게 세존께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이 어리석은 자는 나를 위대한 사문으로, 그리고 나의 위신력을 진정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자신과 같은 아라한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이 자가 스스로 자신의 생각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해야겠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우루벨라 깟사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깟사빠여, 그대는 아라한도 아니고, 아라한의 경지에 들지도 못했다. 아라한과 아라한의 경지에 들기 위한 도(道)를 그대는 갖추지 못했다.”

    그러자 우루벨라 깟사빠는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는 예를 갖추고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깟사빠야, 그대는 500명의 수행자들을 이끌고 있는 최고의 지도자이다. 그대는 그들이 자신들의 생각대로 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루벨라 깟사빠는 수행자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나는 저 위대한 사문 곁에서 청정한 수행을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들의 생각대로 하길 바랍니다.”

    “깟사빠여, 우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저 위대한 사문에게 큰 믿음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만약 깟사빠께서 저 위대한 사문에게 가서 청정한 수행을 하신다면 우리들 모두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행자들은 머리를 깎고, 소지품과 불을 섬기는 제사 도구 등을 모두 물에 떠내려보내고, 세존께 가서 머리를 발에 대는 예를 갖추고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고자 합니다.”

    “오너라, 비구들이여. 내 이미 교법을 잘 설해 놓았다. 바르게 괴로움을 소멸시키고자 한다면 청정한 수행을 하라.”

    이렇게 그들은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그때 강의 하류에 살던 나디 깟사빠는 물 위에 머리카락과 짐과 불을 섬기는 제사 도구들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형에게 어떤 재난도 닥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수행자들을 형이 있는 곳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300명의 수행자들과 함께 우루벨라 깟사빠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깟사빠여, 이것이 더 뛰어난 것입니까?”

    “그렇다. 이것이 진정 더 뛰어나다.”

    그리하여 나디 깟사빠와 그 제자 300명이 세존께 귀의하고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야 깟사빠도 자신의 제자 200명과 함께 세존께 귀의하고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깟사빠 삼형제는 자신들의 제자 1,000명과 함께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요약하면, 붓다는 우루벨라에서 결발의 행자였던 우루벨라 깟사빠를 신통력으로써 항복시키고, 나디 깟사빠와 가야 깟사빠 및 이 세 명의 깟사빠가 이끄는 제자 천 명을 귀의시켜 교단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던 것입니다.

    이러한 전승은 마가다국 최대의 도시인 가야로 되돌아 온 붓다께서 전통 힌두교와는 다른 출가자 교단의 지도자와 격렬한 종교 논쟁이나 또는 종교상의 대결을 통해서 그를 물리치고 불교 교단의 기반을 이 지역에 구축해 나간 것을 상징해 주는 것입니다. 불교 교단은 개종자를 흡수하면서 계속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2. 불의 설법

    붓다는 이제 6년 전에 마가다국의 국왕 빔비사라와 한 약속을 지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깟사빠 삼형제를 비롯한 천 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마가다의 수도 왕사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왕사성 교외의 가야시사(Gayāsīsa, 伽倻尸沙)에 머물렀습니다.

    가야시사는 상두산(象頭山)이라고 한역되었습니다. 현장(玄奘) 스님의 기록에 의하면, 가야시사는 가야성(伽倻城)의 서남(西南) 5-6리(里)에 있었다고 하였고, [우다나]의 주(註)에는 가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못과 내가 있는데 그곳은 세속의 사람들이 악(惡)을 씻어버리는 영장(靈長)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 거기에 한 산이 있는데, 코끼리의 머리와 비슷한 큰 바위가 있어 천 명의 비구를 수용할 수 있어 상두산이라고 불린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사촌동생 데와닷따(提婆達多)가 부처님을 배반하고 독립한 곳도 바로 이곳입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우루벨라에서 좋을 만큼 지내신 뒤, 예전에 결발외도(結髮外道)였던 천 명의 비구들과 함께 가야시사를 향해 떠나셨습니다. 이윽고 가야 지방의 가야시사에 도착하여 천 명의 비구들과 함께 머무셨습니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불타고 있는가? 눈이 불타고 색(色)이 불타고, 안식(眼識)이 불타고, 안촉(眼觸)이 불타고, 안촉에 기대어 발생한 즐거움과 괴로움, 그리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 불타고 있다. 무엇으로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타고 노여움의 불로 타고 어리석음의 불로 타고, 출생, 늙음, 죽음, 슬픔, 눈물, 괴로움, 근심, 갈등으로 불탄다. 귀도, 코도, 혀도, 몸도,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비구들이여, 들은 것이 많은 나의 성스러운 제자들은, 이와 같이 보는 까닭에 눈도 싫어하고 색들도 싫어하고 안식도 싫어하고 안촉도 싫어하고 안촉에 기대어 발생한 즐거움과 괴로움, 그리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싫어한다. 귀도, 코도, 혀도, 몸도,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까닭에 그들에 대해 탐욕을 제거하고 그들로부터 해탈한다. 그리고 해탈했다는 지혜를 일으킨다.

    나의 괴로운 생존은 끝났다.
    청정한 수행은 완성되었다.
    실천해야 할 바를 모두 실천했다.
    다시는 괴로운 생존을 받지 않는다.

    이렇게 불의 설법이 베풀어졌을 때, 천 명의 비구들은 집착이 사라져 모든 번뇌에서 해탈하였다.

    이것이 저 유명한 ‘불의 설법(燃火經)’입니다. 이 법문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단(壇)을 꾸미고 불을 태워 그 타오르는 화염(火炎) 속에 제사를 지냈던 자들에게 설한 것입니다. 이 법문의 핵심은 외부의 불보다 인간의 내부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더 무서우며, 그 불길을 꺼버리고 해탈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