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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불교자료실

불타(佛陀)와 불전(佛傳)-불교 교단의 성립

by 회심사 2017. 5. 2.


-불교 교단의 성립-
    1. 다섯 제자와 상가의 성립

    불전(佛傳)에 의하면, 석존은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바라나시(Bārānasi, 波羅奈城, 현재의 베나레스)의 이시빠따나 미가다야(Isipatana Migadāya, 仙人住處 鹿野苑)에서 다섯 명의 고행자들을 향해 최초로 설법하였습니다. 이 최초의 설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하며, 범천권청(梵天勸請)의 에피소드와 함께 불전(佛傳)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였습니다. 붓다는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사람들에게 설하기로 결심하고 설법의 상대로서 먼저 생각한 것이 옛날의 스승이었던 알라라 깔라마(Ālāra Kālā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āmaputta)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예전에 함께 수행했던 다섯 명의 고행자들이었습니다. 다섯 명의 고행자 이름은 팔리 율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꼰단냐(Kondañña, 憍陳如), 마하나마(Mahānāma, 摩訶那摩, 摩訶男), 밧파(Vappa. 婆破, 婆濕婆), 앗사지(Assaji, 阿說示, 馬勝), 밧디야(Bhaddhiya, 跋提伽, 婆提) 등입니다.

    이 다섯 명의 고행자들은 석존이 출가했을 때, 그를 지키기 위해 부왕 숫도다나(淨飯王)가 딸려 보냈다고도 합니다만 그 사실 여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석존의 수행시절의 동료로서 함께 고행하였으마, 석존이 고행을 멈추고 깨달음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을 보고 타락하였다고 생각하여 그의 곁을 떠나 바라나시 교외에서 계속 수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석존이 붓다가 되어 미가다야(Migadāya, 鹿野苑) 가까이 온 것을 보고 이들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고행을 포기하였던 석존이 가까이 와도 경의를 표시하지 않기로 서로 결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 가까이 다가오자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경의를 표하지 않기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예배하고 의발(衣鉢)을 받아주기도 하고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하면서 붓다를 맞이하였습니다. 붓다는 준비된 자리에 앉자 다섯 명의 수행자들이 옛날의 습관대로 ‘고따마여’ 또는 ‘친구여’라고 불렀는데, 붓다는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비구들이여, 이름을 말하거나 ‘친구여’라고 여래(如來)를 불러서는 안 된다. 여래는 존경받아야 할 사람, 정각자(正覺者)이다. 비구들이여, 잘 들어라. 나는 불사(不死)를 얻었다. 나는 가르치려 한다. 나는 법(法)을 설하려 한다. 너희들이 가르침대로 행한다면 머지않아, 훌륭한 집안의 아들들이 집을 나와 출가한 목적인 위없는(無上) 불도(佛道) 수행의 구극(究極)을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깨달아 실증(實證)할 것이다.

    다섯 명의 비구들은 처음에는 이 말을 믿지 않았지만, 붓다께서 이 말을 세 번 반복하자 저절로 붓다의 설법에 귀를 기울일 마음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때 붓다는 자신에 넘치는 태도로 깨달은 바를 거짓없이 설했습니다. 그러자 먼저 꼰댠냐(Kondañña)라는 수행자가 깨달음의 문에 들어섰습니다. 경전에는 그때 붓다께서는 “아 참으로 꼰단냐는 깨달았구나!”4)라는 감탄의 말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깨달은 꼰단냐’의 뜻으로 ‘안냐 꼰단냐(Añña Kondañña)’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맨 처음으로 정각을 얻은 꼰단냐의 뒤를 이어서 밥파(Vappa)와 밧디야(Bhaddhiya)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 사람은 당시에 곧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경전에는 이미 정각을 얻은 세 사람의 비구가 탁발하여 얻은 공양으로 여섯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동안 최후의 두 사람인 마하나마(Mahānāma)와 앗사지(Assaji)가 정각을 얻어, 붓다를 포함한 여섯 명의 아라한(阿羅漢, Arahat: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 생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가다야에서 다섯 명의 비구들이 붓다께 귀의함으로써 최초의 출가 제자의 무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비로소 불교 상가(Samgha, 僧伽)가 성립되었던 것입니다. 불교는 우주의 진리성인 법(法)을 자각하여 ‘깨달은 자[覺者]’가 된 붓다와 그의 가르침인 ‘법(法)’과 그의 가르침을 신봉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단(敎團)이 갖추어져 비로소 하나의 종교로서 성립하였습니다.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라고 할 때, 승(僧)이라고 하는 것은 상가(Samgha)라고 하는 원어를 승가(僧伽)라고 음사하고 이를 줄여서 승(僧)이라고 한 것으로, 이 불, 법, 승 중의 어느 하나가 빠져도 불교는 성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섯 명의 비구가 교단에 들어오기 전에 붓다의 가르침에 귀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붓다께서 아직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우유죽을 공양한 수자따(Sujāta, 善生)와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바라문 가족의 남녀, 그리고 붓다의 성도(成道) 직후 보리죽과 꿀을 세존께 공양올리고, 붓다께 귀의한 따뿟사(Tapussa)와 발리까(Bhallika)라는 두 상인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재가 불자들로서, 아직 공식적으로 교단이 형성되기 전에 붓다께 귀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다섯 비구의 귀의는 조직적 교단의 형성에 관련된 최초의 사건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 비구에 대한 그 후의 동정은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최후의 앗사지 장로에 대한 기록으로는, 후에 사리뿟다(Sariputta, 舍利弗)와 목갈라나(Moggallāna, 目犍連)가 라자가하(Rājagaha, 王舍城)에서 이들을 만났을 때, 그의 자세가 단정한 것을 보고서 자신들도 붓다의 제가가 될 단서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2. 야사의 출가

    다섯 명의 비구들로부터 귀의를 받은 붓다는 다음에는 바라나시에 사는 부유한 장자의 아들인 야사(Yasa, Skt. Yaśas, 耶舍)를 교화하여 출가시켰습니다. 경전에 의하면 야사의 청소년 시대와 출가 전후의 기록은 붓다의 경우와 매우 비슷합니다. 겨울, 여름, 우기를 위한 세 개의 궁전 속에서 오직 홀로 기녀들에게 둘러싸여 지낸 온 야사는 어느 날 밤, 문득 잠에서 깨어나 시녀들이 머리칼을 흩트리고 잠꼬대를 하면서 보기 흉하게 잠들어 있는 광경을 보고, 마치 눈앞에 묘지를 보는 것 같은 심한 혐오감을 느껴 출가의 결심을 굳혔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집을 뛰쳐나온 야사는 붓다께서 머물고 있던 이시빠따나로 오게 되었는데, 붓다는 괴로워하는 야사를 자리에 앉게 한 뒤 다음과 같은 법문을 들려주었습니다.

    보시(布施)을 실천하고 계율(戒律)을 준수하면 하늘에 나게 된다. 여러 애욕에는 환난과 공허함과 번뇌가 있기 마련이다. 애욕에서 벗어나면 큰 공덕이 드러난다.

    이와 같이 붓다가 야사에게 들려준 법문은 보시와 계율, 그리고 생천(生天)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각각 시론(施論), 계론(戒論), 생천론(生天論)이라고 불리는 이들 세 가지를 차제설법(次第說法: 순서대로 설법함)이라 하는데, 특히 재가 신자에 대한 교화의 주된 내용으로 삼았습니다. 시(施)는 보시를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갖가지 공덕을 말하고, 계(戒)는 계율을 준수함으로써 얻어지는 질서의 유지라는 두 가지 덕행을 기반으로 하여 도덕적인 선(善)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이 일상 생활을 영위한다면, 사후에는 하늘에 태어날 수 있다는 생천론은 당시 인도의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 널리 신봉되고 있었던 사상이므로, 붓다는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난해한 교리를 설한 것이 아니라 그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길잡이로써 우선 일반적인 도덕론을 설했던 것입니다.

    야사는 이어서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 즉 인간의 괴로움과 그 원인, 괴로움으로부터의 해탈과 그에 도달하는 길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 일체의 집착에서 떠나 마음속의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 다음에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습니다.

    3. 재가 신자 - 우바새와 우바이

    아들의 출가를 막으려고 뒤쫓아온 야사의 아버지는 아들의 출가를 슬퍼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전하지만, 야사의 결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장자도 붓다의 설법을 듣고 마음이 움직여 귀의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한 첫 번째 남성 재가 신자, 즉 우빠사까(upāsaka, 優婆塞)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야사의 어머니와 아내도 붓다께 귀의하여 최초의 여성 재가 신자, 즉 우빠시까(upāsika, 優婆夷)가 됩니다. 이렇게 하여 앞서 말한 남성 출가자(比丘)와 함께 상가의 사중(四衆) 가운데서 여성 출가자(比丘尼)를 제외한 기타의 성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출가자가 계를 받고 머리와 수염을 깎아 버리고 황색 가사를 입는 데 대하여, 재가 신자는 계를 지키고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불, 법, 승에 귀의하겠습니다”라는 소위 삼귀의(三歸依)를 외움으로써 불교 신자가 됩니다. 재가 신도는 가정에 거주하면서 출가자 교단을 경제적으로 지탱해 나가도록 뒷받침해 주는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시빠따나에서 이루어진 재가 신자의 귀의는 후에 불교 교단을 성립시키는 데 있어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야사에게는 네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크고 작은 부호의 아들들로서, 비말라(Vimala, 無垢), 수바후(Subāhu, 善臂), 뿐나지(Punnaji, 滿足), 가밤빠띠(Gavampati, 牛王)였습니다. 이들도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그 뒤 다시 야사가 재가 시절에 사귀었던 50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그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거나 그 다음 오래된 가문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이들 야사의 친구 50명도 출가하여 교단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바로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불교교단에는 붓다를 포함하여 61명의 아라한이 있었던 것입니다.

    4. 전도의 길

    이제 붓다는 60명의 제자를 거느리게 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아라한으로서 법을 깨닫고 충분히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을 갖추 분이었습니다. 우기(雨期)가 끝나자, 세존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나는 신들과 인간들의 덫으로부터 벗어났다. 비구들이여, 너희들도 신들과 인간들의 덫으로부터 벗어났다. 비구들이여, 길을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세상에 대하여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 신들과 인간들의 이익, 축복, 행복을 위해서. 둘이서 한 길로 가지 마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뜻과 문장이 훌륭한 법을 설하라. 오로지 깨끗한 청정한 삶을 드러내라. 눈에 티끌 없이 태어난 사람이 있지만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버려지고 있다. 그들은 가르침을 아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도 또한 가르침을 펴기 위해서 우루벨라의 세나니 마을로 간다.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전도선언(傳道宣言)'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순 한 사람의 아라한이 각기 갈 곳을 정해서 포교활동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그때 붓다는 가르침을 펼치기 위해 곧바로 바라나시를 출발하여 붓다 가야로 되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도중에 길에서 좀 떨어진 밀림 속에 들어가 한 나무 아래서 좌선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 고장의 상류층 청년 서른 사람이 그 숲으로 놀이를 왔었습니다. 저마다 아내를 데리고 왔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의 독신자는 기녀를 데리고 왔었습니다. 다들 노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그 기녀는 여러 사람의 옷가지와 패물 등을 가지고 도망쳐버렸습니다. 청년들은 허둥지둥 그 뒤를 쫓다가 부처님이 좌선하고 있는 장소에 이르러 부처님에게 물었습니다.

    “한 여자가 지나가는 것을 혹시 보지 못하셨습니까?”
    “여자를 어떻게 하려는가?”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그 여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때 부처님은 청년들을 돌아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들이여, 여자를 찾는 것과 자기 자신을 찾는 것과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물론 자기 자신의 일이 더 중요합니다.”
    “좋다, 그러면 거기들 앉거라.”

    이와 같이 해서 서른 사람의 청년들은 부처님께 예배하고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설법을 듣고 모두 즉석에서 출가했습니다. 이리하여 부처님의 새로운 교단은 점점 성장해 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은 입멸하시는 날까지 계속하게 되는 성스러운 전법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제자들과 더불어 부처님께서는 인도의 크고 작은 길을 빠짐없이 두루 편력(遍歷)하시며 무한한 자비와 지혜의 광명으로 그 모든 길을 가득히 채우셨습니다. 처음 승단은 겨우 60여명으로 시작되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수천으로 늘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