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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

임종시 절대 중요한 염불-인광대사

by 회심사 2017. 8. 1.


卍-임종시 절대 중요한 염불-인광대사-卍
        임종에 갖추어야 할 지혜로운 배와 노(臨終舟楫) 부처님께서 사람에게 여덟 가지 인식(八識)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곧 지식(知識:지각)이오. 앞의 다섯 인식[前五識]은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이고 제6식은 의식[意:뜻]이오. 제7식은 말나식(末那識)으로 전송식(傳送識)이라고도 하고, 제8식은 아뢰야식(阿賴耶識)으로 또한 함장식(含藏識)이라고도 부르오. 무릇 사람이 생겨날 때는 제8식이 가장 먼저 오고 제7·6·5식이 차례로 뒤따라온다오. 그리고 죽을 때는 이 제8식이 가장 뒤늦게 떠나고 나머지 인식은 역순으로 차례대로 떠나간다오. 무릇 제8식은 곧 사람의 영적 인식(靈識)으로 세속에서 흔히 말하는 영혼(靈魂)이라오. 그런데 이 제8식은 신령스러워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 수태(受胎)될 때에 맨 먼저 찾아온다오. 그래서 어머니 뱃속에 자리 잡은 태아가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라오. 사람이 숨이 끊어져 죽은 다음에는 곧장 떠나가지 않고, 반드시 온몸이 다 차갑게 식기를 기다려 따뜻한 기운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뒤 비로소 이 제8식이 떠나가오. 제8식이 떠나간 다음에는 터럭 끝만큼도 지각(知覺)이 없소. 그래서 만약 몸에 한 곳이라도 따뜻한 기운이 조금만 있다면, 제8식은 아직 떠나가지 않는 것이오. 이 때 몸을 만지고 움직이면 그 고통을 알아 느끼기 때문에, 옷을 갈아입히거나 손발을 펴고 굽히거나 몸을 옮기는 따위의 일을 해서는 결코 안 되오. 만약 조금이라도 만지고 손댄다면 그 때 고통은 가장 참기 어려운데, 단지 입으로 말할 수 없고 몸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뿐이라오. 불경을 찾아보면, 목숨[壽]과 따뜻한 기운[煖]과 인식[識] 세 가지는 항상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적혀 있소. 만약 사람 몸에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다면 인식도 존재한다는 뜻이고, 인식이 존재하면 목숨도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오. 예부터 죽었다가 사흘 또는 닷새나 지나 다시 살아난 사람이 많은데, 역대 기록을 찾아보면 하나하나 상세히 확인할 수 있소. 유교에서도 죽은 뒤 사흘 만에 대렴(大殮:시신을 관 속에 넣고 뚜껑을 덮어 못 박는 일)의 예법을 행하는데, 이는 가족들이 사모와 비애의 감정으로 만에 하나 혹시라도 살아나지 않을까 바라는 마음을 배려하기 때문이오. 우리 불교의 승가에서는 비록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가 몹시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소. 부랴부랴 움직이고 옮기거나 변화시킨다면 자비심은 과연 어디에 있겠소? 옛말에 “토끼가 죽으면 여우가 슬퍼한다”(兎死狐悲)는 속담이 있소. 짐승 같은 미물도 비슷한 종류(처지)를 서글퍼함이 오히려 이와 같거늘, 하물며 사람이고 더구나 같은 불자인 우리들이 그러하지 않을 수 있겠소? 그리고 사람의 감정이란 게 고통이 극도에 이르면 성질을 내기 쉬운 법인데, 임종에 성질내는 마음을 품으면 타락하기 가장 쉽소. 불경에 보면, 아기달왕(阿耆達王)이 불탑과 사원을 세워 그 공덕이 매우 크고 높았는데, 임종에 시중들던 신하가 부채를 들고 있다가 왕의 얼굴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왕이 고통스러워 성질을 낸 까닭에 죽어서 그만 뱀의 몸으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기록이 실려 있소. 물론 생전의 커다란 공덕으로 말미암아 나중에 사문(沙門:수행스님)을 만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설법을 듣고 뱀의 몸을 벗어나 천상에 올라갔다고 하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죽은 이의 인식이 완전히 떠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옷을 갈아입히고 옮기거나 화장을 하면, 그로 하여금 고통스러워 성질을 내게 함으로써 더욱 타락하도록 조장하는 결과가 되겠소. 잔인한 마음으로 이치를 어기고 일부러 참혹한 독약을 베풀려는 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소? 내가 죽은 이와 무슨 원수를 지고 무슨 한이 있다고 선량한 마음으로 악한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지 정말로 잘 생각해야 하오. 만약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아득한 일이라 증거를 댈 수 없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경전에 기록된 내용도 믿을 수 없단 말이오? 지금까지 불어난 각종 폐단은 결국 산 사람들이 죽은 이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단지 신속하게 일을 끝마치려는 생각에서 몸의 따뜻한 기운이 식어 감을 자세히 살펴볼 여유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오. 이러한 습관이 반복되어 일상처럼 되었기 때문에, 설령 이러한 이치를 언급하는 자가 있더라도 도리어 어리석다고 비웃음을 당하고, 죽은 이의 고통은 더욱 펴지기가 어렵게 되었소. 오호라!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태어남과 죽음밖에 없도다. 태어남은 산 거북이의 등가죽(甲)을 벗기는 것과 같고, 죽음은 산 게를 끓는 물에 집어넣는 것과 같다오. 여덟 가지 괴로움[八苦]이 한꺼번에 번갈아 지지고 볶아댈 때 그 아픔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소? 바라건대, 환자를 보살피고 시중드는 모든 사람들은 세심하게 주의하고 신경 쓰되, 특히 환자와 쓸데없이 한가한 잡담을 나누어 그의 마음을 어지럽게 흩어 놓아서는 절대로 안 되오. 어수선하게 떠들어대거나 구슬픈 심기를 내색하지 말아야 하오. 오직 환자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놓아버리고 한마음으로 염불에 집중하여 극락왕생을 발원하도록 권해야 마땅하오. 또한 자신이 스스로 염불조력[助念]하여, 환자가 그 염불 소리를 듣고 마음속으로 따라서 염송하도록 이끌어야 하오. 만약 재력이 넉넉하다면, 여러 스님들을 초청하여 조를 짜서 번갈아 염불해 주도록 안배하여 염불 소리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게 하면 더욱 좋겠소. 환자가 귓속에 늘 염불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속으로도 부처님의 성호를 늘 염송하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부처님의 자비원력의 가피를 받아 극락왕생할 것이오. 만약 재력이 없다면 가족 모두 함께 마음을 내서 직접 염불 조력함으로써 최후의 연분을 잘 매듭짓도록 하여야 하오. 사후에 처리할 일들일랑 행여라도 환자 앞에서 발설하여서는 절대 안 되오. 다만 목탁이나 방울 치는 박자에 맞춰 큰 소리로 염불하여 한 글자 한 글자가 또렷또렷 환자 귓속에 들어가고 환자 마음이 늘 염불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해야 하오. 소리가 둔탁(鈍濁)한 목탁은 임종시 염불조력에 결코 써서는 안 되오. 환자의 몸은 앉든지 눕든지 그의 자세에 자연스럽게 맡기고 절대로 움직이거나 옮기지 말며, 모두 염불에만 전심전력하며, 숨이 끊어지고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 정신의식(神識)이 완전히 떠나가기를 기다린 후, 다시 두어 시간은 지나야 바야흐로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힐 수 있소. 만약 몸이 싸늘해져 딱딱하게 굳은 경우에는, 뜨거운 물로 씻기고 뜨거운 수건을 팔이나 무릎 관절에 덮어씌우면 한참 지나 다시 부드러워진다오. 그 때 감실(龕室:坐棺) 안에 안치해도 늦지 않소. 할 일이 모두 끝나면 더욱이 계속 염불해야 하오. 독경이나 참회예불과 같은 다른 불공(佛功)은 그 어느 것도 염불만큼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오. 출가나 재가를 막론하고 모든 권속들이 한결같이 이에 따라 실행한다면 죽은 이나 산 사람 모두 큰 이익을 얻게 되리다. 그리고 우리 부처님께서는 열반하실 때 본래 오른쪽 옆구리를 땅바닥에 대고 누우셨기 때문에, 그 자태 그대로 관에 넣어 다비(茶毗:화장)하였소. 그러므로 후대 사람들도 각기 자연스러운 자세에 따라서, 앉아서 입적한 사람은 감실에 안치하고 누워서 열반한 사람은 관에 안치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오랜 습관이 풍속으로 굳어져 아마도 그렇게 여기지 않을 것이니, 또한 각자 편리한 대로 행하도록 그 뜻에 맡기면 되오. 사람이 죽은 후에 나타나는 좋고 나쁜 모습과 감응은 원래 사실상의 근거가 있소. 좋은 곳[善道]에 나는 사람은 몸의 열기가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며, 나쁜 곳[惡道]에 떨어지는 사람은 열기가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가오. 온몸이 다 식은 뒤 마지막 열기가 정수리(頂)에 모이면 성도(聖道:극락세계)에 올라가고, 눈(眼)에 모이면 천상(天道)에 생겨나며, 심장(心)에 모이면 인간(人道)에 환생하고, 배(腹)에 이르면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지며, 무릎에 이르면 축생(畜生道)으로 태어나고, 발바닥에 몰리면 지옥(地獄道)에 떨어진다오. 그래서 대집경(大集經)의 임종징험게(臨終徵驗偈)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소. 頂聖眼天生 人心餓鬼腹 畜生膝蓋離 地獄脚板出 정수리는 성인에 눈은 천상에 생겨나고 사람은 심장에 아귀는 배에 모여든다. 축생은 무릎을 통해 떠나가고 지옥은 발바닥으로 빠져나간다. 무릇 태어남과 죽음은 그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중대한 일이오. 그래서 이 한 순간만큼은 가장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오. 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마땅히 한 몸과 같은 자비심(同體之悲心)으로 죽는 이가 극락왕생의 대업을 원만히 성취하도록 적극 도와주어야 하오. 옛사람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소. 我見他人死 我心熱如火 不是熱他人 看看輪到我 내가 다른 사람 죽는 걸 보면 내 마음 불처럼 뜨겁게 달아오네. 다른 사람 때문에 뜨거운 게 아니라 곧 내 차례가 돌아올 걸 생각해 보니…. 인연(因緣)과 그에 대한 과보(果報)의 감응(感應)은 한 치도 어그러짐이 없소. 그래서 스스로 이롭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먼저 남을 이롭게 해 주어야 하오. 이 글을 적어 동포들에게 널리 알리노니, 모든 사람이 각자 주의하고 명심하여 실행하길 간절히 기원하오. ~~~~~~~~~~~~~~~~~~~~~~~~~~~~~~~~~~~~~~~~~~~~~~~~ 인광대사에 관하여 (성원스님) 중국 근대스님 중 태허 스님과 인광 스님은 중국근대불교를 대표하는 큰스님이시다. 특히 인광 스님은 정토사상을 홍양하신 분으로 학문과 수행을 겸비하고 평생을 염불수행으로 일관하셨는데, 스님은 열반 하신 후 백만 자로 이루어진 주옥같은 내용의 인광대사 전집을 남기시어 오늘날 대만과 중국본토에서 스님들과 불자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참다운 수행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당시의 중국에 있어 인광 스님의 출현은 목마른 중국불교의 한 줄기 감로수와 같은 존재였다. 인광 스님은 당시 승려들이 수행을 게을리 하는 것을 가슴 아파하시고 당신의 방 벽에 “사死”자를 적어 걸어 두시고 젊은 수행자들을 경책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도道를 배우는 사람이 만약에 순간순간 이 글자의 뜻을 잊지 않는다면 도道는 자연히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스님의 이러한 수행정신은 현대중국에 있어 수많은 스님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스님은 평생 사원의 주지소임을 살지 않았으며 또한 출가제자는 두지 않았으나 세속제자는 10여만 명을 헤아리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러한 점은 스님의 독특한 승려관의 일부분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국운이 쇠퇴하고 정치는 부패하며 설상가상으로 외국세력의 침입으로 민족생존을 우려하는 총체적이며 국가적인 대 난국을 맞이한 청나라 말기의 중국에 있어 전통불교마저 참다운 수행자상을 찾아보기 어렵게 쇠퇴하는 현상과 더불어 기독교 사상을 이용한 홍수전의 태평천국 동란 중 장강 남쪽의 사원은 심한 파괴와 박해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역사의 안목으로 헤아려 본다면 인광 스님이 홍양하신 정토염불 법문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고 이것은 당시의 사회 환경과 승가의 실제상황을 혜안으로 관찰하신 결과이니, 청나라 말기의 전란으로 많은 생명들이 도탄에 빠졌을 때 일반법문으로는 빠른 시일 내에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없다 판단하시고 오직 극락왕생의 정토염불 법문만이 당시의 사부대중을 구제할 방법이라 생각하셨다. 그 후 중국불교는 새로운 서광과 생기를 맞이했으니 이것은 스님의 시대에 맞는 방편법문과 언행言行이 일치하는 높은 수행력의 결과로 당시 많은 수행자들이 존경하며 배우고 싶어 하는 부분이기도 하였다. 인광 스님은 나라가 어지러울 때일수록 백성은 불안하여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며 불자님들 또한 염불할 때 마음은 온갖 걱정과 번뇌 망상으로 이것을 생각하고 혹은 저것을 생각하기도 하며 마음을 한곳으로 전념하기가 힘든데, 이때 스님께서 몇 가지 염불기도 방법을 말씀하시며 마음을 다스리고 생활하는 데 도움을 삼으라고 하셨다. 첫째 염불할 때는 항상 정성스러운 마음과 공경스러움을 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한 집안의 어른에게 인사를 드릴 때도 조심스럽게 예의를 갖추며 공경심을 내는데 하물며 부처님과 대승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르는데 마음을 경박하게 하며 속으로는 잡스러운 생각을 품고 입으로만 소리 내어 염불한들 복이 될 수가 없다. 옛날 성현의 말씀에도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으니 지극한 정성과 공경으로 하는 기도는 복을 부르고 경솔하고 나태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오히려 화를 부르기 쉽다 . 둘째 염불할 때는 입으로 정확하게 소리 내어야 하며 귀로는 스스로의 염불소리를 정확하게 들어야 하며 마음으로는 염불을 정확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마음과 귀와 입이 하나로 삼위일체가 되고나면 염불하는 사람의 눈동자는 이리저리 동쪽으로 혹은 서쪽으로 보지 않게 되고 코는 밖의 모든 냄새에 이끌리지 않아 각종 냄새에 민감하지 않고 몸은 자연히 안정을 찾게 되니 마음 또한 온갖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 쉽게 다스려지게 된다. 셋째 염불할 때는 십념十念 단위로 염불하라. 이 방법은 염불을 한번부터 열 번까지 분명하게 염불하고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으로 열 번을 모두 부르고 나면 다시 되풀이하여 염불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되풀이하여 계속 염불하면 기도처에서 기도할 때 염주가 필요 없고, 염주가 필요 없으니 자연히 염주 돌리는 소리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며 제일 편리한 것은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떠한 시간 어떠한 장소에 상관없이 염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은 세 가지 방법은 평상시 조금만 신경 써서 노력하고 습관 들이면 누구나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기도방법이라고 본다. 스님은 또한 열심히 그리고 정성들여 염불하면 어떠한 불치병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셨는데 이것은 당신의 경험이 근거가 되고 있다. 스님은 젊은 시절에 눈병으로 고생하시다가 거의 실명하시게 되었을 때 염불왕생 정토법문이 고통에서 벗어나 생사를 해탈하는 근본임을 깨닫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하여 실명의 위기에서 벗어나 눈병이 완전하게 쾌차되는 불가사의 염불공덕을 받으셨으니, 이것은 우리가 지성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불보살님의 대자대비심으로 질병의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는 것을 당신의 체험으로 증명하여 주셨다. 스님은 스스로 부르기를 “상참괴승常愧僧”이라 하셨으니 이것은 승려로서 항상 부끄럽고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수행자의 한 면모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어떤 보살님의 꿈에 대세지보살님이 상해에서 홍법활동 하는 것을 선몽받고 꿈속에서본 장소로 달려가 보니 그분이 바로 인광 스님이셨고, 대세지보살의 화신이 오신 것을 깨닫고 자기의 꿈 내용을 다른 이에게 말하였으며 이 소식은 오래지 않아 인광 스님의 귀에 들어갔고 이 소문을 퍼뜨린 보살님은 스님으로부터 크게 혼났으니, 이 또한 스님의 별호에 어울리는, 항상 스스로를 낮추며 겸허하게 살아가는 수행자의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인광 스님은 일상생활에서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시어 하루에 두 끼를 드시고 오후불식을 하셨으며 평상시에도 끊임없이 염불 정진하시면서 일흔이 가까우신 연령인데도 불구하고 당신의 옷빨래부터 시작하여 크고 작은 일들을 직접 처리 하셨다고 한다. 스님은 수행뿐만 아니라 중생을 구제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는데 화재나 수재 등으로 생활이 어려운 난민이 생기면 법회를 하시는 도중이라도 즉석 모금운동을 벌여 어려운 사람을 돕고 또한 고아원을 짓는가 하면 염불방생 도량을 만들었다. 인광 스님은 중일전쟁이 일어난 3년 뒤 1940년 11월 서방을 향하여 단정히 앉으신 채 입적하셨다. 스님의 시신은 다비 후 수많은 오색찬란한 사리가 나왔는데 거기에는 연꽃모양의 정골사리와 구슬모양과 곡식모양 등 가지가지 모양의 사리가 있었는데 특히 치아 사리 32과는 그 모양이 완전한 채로 모습을 나타내어 중국의 유명한 역경승려 구마라집대사의 혓바닥 사리에 비유되기도 하며 다비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환희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중국의 공산화 정책과 문화대혁명으로 수많은 불상과 사원들이 피해를 입었으나 다행히 스님의 사리와 유품은 무사히 보존되어 스님의 사리는 장쑤성 쑤조우 영암산 인광대사 사리탑에 안치되어 있고 유품은 인광대사 기념관에 보존되어 있다. 현재 영암사는 염불수행도량으로 인광 스님의 사리탑에 참배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성원 스님은 中國 南京大學 中國哲學專攻 博士科程에 在學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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