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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불교자료실

능엄신주 법문

by 회심사 2019. 5. 5.



-능엄신주 법문-
    견명(甄明) 거사의 이층집이 낙성되었다.
    경사를 알리는 폭죽소리 가운데 견명 거사 부부는 팔십 세의 부모를 부축하여 새집으로 이사하였다.

    그날 오후 그들은 축하하러 온 이웃들에게 과일, 빵, 음료수 등을 대접하였다.
    그들의 이층집은 그 마을에서 제일 처음 지어진 것이라 더욱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견명 거사 댁은 3년 전만 해도 그 마을에서 가장 가난했다. 찢어진 천막으로 둘러 부엌을 만들 정도였다. 위로는 부모님, 아래로는 네 자녀가 있었는데, 이들을 부양할 모든 막중한 짐을 견명 거사의 아내가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남편인 견명은 어디로 갔느냐?
    사업을 하다가 빚을 져서 잠시 몸을 피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개혁개방이 막 시작된 1980년 초 견명 거사는 촌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전답을 아내에게 맡기고 ‘유령회사’를 차려 사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런 대로 돈을 벌었으나 좀 더 크게 사업해보려고 은행에 20만 위안(중국 화폐단위)을 대출받았다. 그는 20만 위안을 가지고 친구를 합작파트너로 삼아 동업하였다.

    그러나 오래되지 않아서 친구에게 몽땅 사기를 당하여 친구도 돈도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은행에서는 대출금을 상환하도록 요구하였으며, 법원의 전표가 날아들었다.

    어떻게 할까? 어찌할 도리가 없어진 그는 할 수 없이 몸을 피하여 오랜 친구인 H현의 단량에게 의탁하였다. 마침 그 당시 단량은 T시에 와서 나를 찾아왔었다. 왜냐하면 그는 내 고향의 동생으로부터, 내가 어떤 고승(高僧)을 스승으로 모시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도교(道敎)의 수행을 연구하던 단량은 자연히 이 좋은 인연을 놓치고 싶지 않아, 혼이 나간 견명을 데리고 와서 묘법 노스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인연이란 정말 불가사의한가 보다. 견명은 친구에게 돈을 몽땅 사기 당한 인연 때문에 묘법 노스님의 제자가 된 것이다.

    단량의 집으로 돌아온 견명은 그곳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법원에서 이미 사람을 파견하여 그의 행적을 뒤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황폐한 땅에 저수지를 관찰하기 위하여 만든 낡고 허물어진 집을 매월 10위안에 세를 내었다. 친구인 단량이 매일 밥을 한 번씩 보내왔다. 촌사람들도 오지 않아 매우 조용하였다. 견명은 이곳에서 8개월을 거주하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좌선하고 ‘능엄주(楞嚴呪)’를 외웠다.
    마치 출가한 스님이 폐관(閉關)수행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채식하면서 염불하고 능엄주를 암송하는 일이 하루의 모든 일과였다.
    저녁에는 전등불도 밝히지 않았으며 심지어 기름등조차도 켜지 않았다.

    사십여 세가 된 그는 다리가 굳고 배가 나와 가부좌로 앉는 자세가 잘 되지 않아, 항상 걱정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좌선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뚱뚱한 스님 한 분이 나타나서 좌선하는 자세를 가르쳐주었다.

    “너는 너무 뚱뚱하니 나처럼 이렇게 앉으면 돼.”
    그래서 그 스님이 가르쳐주는 대로 앉아, 두 손바닥을 아래로 향해 자연스럽게 양측 다리 위에 놓았다. 두 눈을 가볍게 감고 좌선하는데, 칠흑 같은 밤이 푸른 허공으로 변하면서 사방이 망망하며 공적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어디에 있지. 어찌 내 몸이 보이지 않는 걸까?
    그런데 설마 내가 죽은 것은 아니겠지.’ 마음이 긴장되면서 두 눈을 떠보니 하늘은 밝아 있었으며, 자신은 분명히 앉아 있었고, 뚱뚱한 스님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꿈을 꾼 것은 아닌가?’
    견명은 머리를 숙여 자신의 앉은 자세가 뚱뚱한 스님이 가르쳐 준 모습임을 알았다.
    ‘꿈을 꾼 것도 아닌데 어째서 날이 밝았을까? 나는 어제 저녁 날이 어두워지자 곧 좌선하였으며, 뚱뚱한 스님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잠깐 동안이었는데 벌써 날이 밝았으니….
    설마 밤새 앉아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그러나 정신은 오히려 매우 맑은데!’

    그날 오전 그는 망상이 분분하고 의혹이 일어나, 단량이 밥을 가지고 왔을 때 어제 저녁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단량은 이 지역에서 그렇게 뚱뚱한 스님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하였다.
    다음날 정오에 단량이 한 장의 불보살님 사진을 견명에게 보여주면서, 이 분의 모습과 닮지 않았는지를 물어보았다.

    “맞아, 이렇게 생긴 스님이 나에게 이렇게 앉으라고 했어.”

    단량은 견명에게 “이분은 미륵보살이며, 석가모니불 다음에 성불하실 미래의 부처님”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는 “미륵보살께서 오셔서 너에게 가르쳐주셨으니, 너의 행운은 작지 않으며 장래에 너는 반드시 성취할 것”이라고 하였다.

    견명은 미륵보살이 자신을 ‘항운(恒云)’이라고 부르던 것이 생각났다.
    단량은 “그것은 법명(法名)이며, 법명은 부처님께 귀의한 제자가 가지는 이름이다.
    아마도 너의 전생은 출가한 스님인가보다.
    잘 수행해. 조만간 모든 것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야.”라고 말해주었다.
    그 후 몇 개월의 기간 중 견명은 좌선 중에 여러 가지의 경계가 나타났다고 한다.

    홀로 지낸 지 8개월이 지난 어느 날 단량이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다.
    어느 운수회사의 사장이 장기간 석탄운송을 담당할 업무직원을 찾는다고 하는데, 월급은 1,000위안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견명은 그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으며, 최소한 몇 백 위안은 집으로 보내줄 수가 있었다. 만약 묘법 노스님께서 그에게 모든 인연을 놓고 일심으로 능엄주를 염송하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모를 일이었다.

    견명의 업무는 화물트럭에 질 좋은 석탄을 실어 보내는 일이었다.
    업무 이외의 시간은 ‘미륵좌(미륵보살, 즉 중국 포대화상의 모습과 같이 앉는 자세)’로 앉아서 능엄주를 매일 사오십 회는 염송하였으며, 저녁에 한번 좌선하면 몇 시간이 흘렀다.

    그 후 3년이 지난 어느 날 사장이 견명을 불렀다.
    석탄을 원하는 공장과 의견충돌이 발생하여 석탄을 공급하지 못하게 되었다며, 거래처 공장과 관계를 끝내야 하니 결산을 해오라고 시켰다. 그래서 공장에 갔는데 생각지도 않은 제안을 받았다.

    공장 측에서 회사와 거래를 끊고 견명과 거래하기를 원하니, 책임지고 계속 석탄을 공급해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견명은 자금이 없다고 거절하였으나, 공장 측은 단지 석탄의 품질만 보증한다면 매월 결산해 주겠다고 하였다.

    견명은 마음에 자신이 있었고, 공장과의 관계도 좋아 제안을 받아들였다.
    공장 측도 견명을 신임하였기 때문에 운송료를 매월 한 번에 결산하기로 합의하여, 돈 한 푼 수중에 없이도 장사를 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 당시 운수업계에 있어서 상식 밖의 파격적인 대우로서, 견명은 이 모든 것을 부처님의 가피와 능엄주의 영험으로 돌렸다.

    『능엄경』에서 이르기를 “시방의 여래는 이 주(呪)의 마음에 의지하여 시방에서 여러 중생의 고통을 구제해 줄 수 있다.

    지옥, 아귀, 축생, 각종 신체의 장애와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통,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통, 오음이 치성하는 고통, 크고 작은 여러 횡화(橫禍) 등을 동시에 해탈시키며, 도적난, 병난, 왕난, 감옥난, 풍수해, 화재, 기갈, 빈궁을 당하여 (이 능엄주를) 염송하면 모두 없앨 수 있다.

    시방의 여래는 이 주(呪)의 마음에 따라 시방에서 선지식을 섬기고 네 가지 위의 가운데서 뜻대로 공양할 수 있으며, 항하사와 같이 많은 여래의 회중에서 대법왕자가 되는 것이다.”

    2년 후 견명은 20만 위안의 수표를 가지고 전에 돈을 빌린 은행 문에 들어서서, 온 뜻을 이야기하였다. 은행 관계자는 감동되어 말하였다. “당신이 대출한 돈은 벌써 결손으로 처리하였는데, 이렇게 갚으려고 오셨으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견명이 말하였다. “오늘 가지고 온 돈은 원금밖에 안 됩니다.
    이자는 나중에 갚겠습니다. 나는 국가에 손해를 끼칠 수 없으니 은행에서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은행 책임자는 “좋습니다.”를 연거푸 말할 뿐이었다.

    견명이 묘법 노스님께 귀의한 후 그의 아내와 자녀, 심지어 부모님까지도 그를 따라 육식을 끊고 염불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모친에게 각종 경전을 들려주자, 본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고부간의 관계도 많이 좋아졌다.

    견명의 아내가 나에게 말하였다.
    “불교를 믿은 후 다시는 시어머니에게 화를 내지 않았으며 갈등도 없어졌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밭에 가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밭의 물결을 바라보면, 저의 마음속에서 올라오던 화도 어느새 없어집니다.

    남편이 매번 산서(山西)에서 전화를 걸어와 열심히 염불하라고 하며, ‘염불하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어진다. 고 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는 것이 무슨 뜻인가?’ 하고 물으니 ‘염불이 지극하면 벽의 구멍에서 불꽃이 타오른다(일종의 염불의 경계)’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또 말하였다.
    “염불을 배우고부터 자전거를 타고 밭에 갈 때에도 마음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합니다. 밭에서 일을 할 때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염하는데, 염불을 하니 마음이 든든해지더군요. 주위에 사람이 없을 때 큰소리로 염불하면, 마음은 더욱 후련해집니다.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한 후에도 예전처럼 이웃집에 가서 놀지 않습니다.

    시간이 나면 염불해야 하는데, 그들과 한담하며 보낼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여 부자가 되었는지 물으면, 저는 ‘염불한 공덕’이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마을에서 그녀를 따라 고기를 먹지 않고 염불하는 사람이 날이 갈수록 많아진다고 한다.

    반년 전의 일이었다. 마을의 어떤 사람이 귀신이 붙은 병에 걸려 횡설수설하곤 하였다.
    그녀와 아들이 병자의 집에 가서 살펴보니 과연 크게 고함지르며 야단법석을 치던 중이었다.

    그런데 병자가 그 모자를 보자마자, 곧 얌전해지면서 무얼 바라는 눈치였다고 한다.
    누군가가 그에게 어째서 소동을 부리지 않고 얌전해졌느냐고 물으니, “우리 집에 온 몸에서 금빛이 나는 보살 두 분이 들어와서 감히 소동을 부리지 못한다. 고 하였다.

    견명의 아들이 말하기를 “그럼 너는 가거라!”라고 하자, 그가 말하기를 “당신이 말하지 않으면 저는 감히 가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견명의 아들이 “그럼 너도 ‘나무아미타불’을 염하거라.” 하자, 병자는 단지 한 구의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더니 “그럼 저는 태를 받으러 가야겠습니다.”라는 말을 마치고 곧 잠을 자게 되었다. 가족들이 침대에 눕히자 그 다음날까지 잠을 자더니, 그 후 아무 일도 없이 괜찮아졌다고 한다.

    이 일이 온 마을에 널리 알려지자 사람들마다 귀신은 ‘육식을 끊고 염불하는 사람’을 두려워한다고 말하면서, 견명의 아내를 찾아와 염불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농사일이 한가한 시기에는 항상 견명의 집에서 사람들의 능엄주 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출처 - 오대산 노스님의 그 다음 이야기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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