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왕문 2
'삼계유여급정륜(三界猶如汲井綸) 백천만겁역미진(百千萬劫歷微塵)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 '삼계가 마치 우물 푸는 두레박줄과 같아 백천만겁의 한량없는 세월을 윤회해 왔도다. 만약 이번 사람 몸 받았을 적에 이 몸을 제도하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생에 또 인간 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그때 가서 또 어떻게 불법을 만나고 정법 에 의지하여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는가!' 라고 하시면서 인간 몸 받았을 때 자신을 제도하여야 된다고 읊으신 내용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왜 이렇게 인간 몸을 받기가 어려우며, 두 번째 인간 몸을 받으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세 번째 어떻게 해야 자신을 제도(윤회로부터 벗어남)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도 제도하는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의 대승적인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중생들이 인간 몸을 받기 어려운 까닭은 온갖 욕망을 저버리지 못하고 욕망에 끄달려 한평생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불도를 이야기하고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 하지만, 실제로 눈앞에 벌어지는 오욕락의 경계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마음자리를 가꾸어 나갈 때 인간의 몸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천만 원어치 저축을 한 사람은 천만 원짜리 자가용을 살 수 있지만, 백만 원 밖에 저축하지 못한 사람은 백만 원짜리 오토바이 밖에 살 수 없으며, 심지어 한 푼도 돈을 모으지 못하고 빛을 진 경우에는 자전거 한 대도 사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 밑에서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노동을 해 주어야 되는 것처럼……. 가령 돼지처럼 먹고 자는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돼지와 같은 업(행위)을 부지런히 연습했다면, 그 사람이 다음생에 어떻게 다시 인간 몸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지은 행위(업력)에 따라 중음의 경계에서, 그 사람은 돼지의 우리와 돼지의 몸이 마치 호화찬란한 집과 사랑스런 사람들로 보이게 되어, 돼지의 태를 쫓아 들어가 결국 돼지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 같은 마음을 연습하면 개의 껍질을 뒤집어쓰게 되며, 독사 같은 마음을 연습하면 독사의 껍질을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모든 만법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천당도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내고 지옥도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법입니다. 두 번째는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중생들이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 쉽고 인간 몸은 받기가 너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한다면, 최소한 5계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계는 불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계시겠지만, 1. 불살생: 살아 있는 목숨을 죽이지 않는 것. 2. 불투도: 주지 않은 물건은 절대로 가져오지 않는 것. 3. 불사음: 삿된 음행, 즉 부부 외에는 절대로 사랑행위를 하지 않는 것. 4. 불망어: 큰 거짓말, 즉 도를 이루지 못했으며 도인인척 하는 큰 거짓말에서부터 남에게 불이익을 주는 모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5. 불음주: 술을 마시지 않는 것. 다섯 가지입니다. 이 다섯 가지 계율은 사람들을 속박하기 위해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인간의 마음가짐 참다운 도덕 그 자체이며 이러한 행위가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마음이기 때문에 이런 5계를 지켜 나갈 땐 바로 인간의 몸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반대로 이 다섯 가지 계율을 저버리는 행위는 인간의 마음가짐이 아니요, 축생의 마음, 짐승의 행동인 것이며 더 나아가서 아귀라는 귀신의 세계, 끔찍한 지옥 속에서 고통 받는 지옥중생들의 마음과 닮아 있기 때문에, 아무리 천상을 이야기 해주고 극락세계를 이야기 해 주어도 알아듣지 못 하고 바로 삼악도를 향하여 달려가는 법입니다. 그러면 과연 다음생에 인간 몸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한 줌의 흙'과 '맹구우목'의 비유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스스로 한번 자신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나는 다음생에 인간이 될 수 있는 기본 조건인 5계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또, 불자가 아닌 우리 주변의 여러 사람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도 얻어듣지 못한 이들이 과연 몇 사람이나 이런 5계와 같은 인간의 덕목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사람 몸을 받아 소중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났을 때 최소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인 5계를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다음생에도 최소한 인간의 몸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심지어 불자님들까지도 "어떻게 이 5계를 완벽하게 지키며 살아 갈 수 있습니까?"라고 항변해 오는 분들이 대 부분입니다. "5계를 지키다 보면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진리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불교를 믿든지 타종교를 믿든지 간에 상관없이, 이 우주의 법칙은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며 또한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인간 몸을 받고자 한다면 최소한 5계를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염불법문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가령, 우리가 다음생에 인간 몸을 받았다고 해도 또 다시 윤회로부터 해탈이라는 숙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며, 태어나는 과정에서도 한량없는 고통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태를 받게 되면 처음 태 속에 끌려 들어갈 때 굉장한 충격으로 혼절하여 의식이 한번 끊어진다고 했고, 또 태어날 때도 어머니 자궁을 빠져 나오면서 마치 소의 생가죽을 벗기는 고통과 코끼리가 쥐구멍을 빠져 나오는 듯 한 고통으로 인해 어머니가 받는 고통의 7∼8배에 달하는 심한 고통을 받아 다시 한 번 의식이 끊어져 전생의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전생에 닦았던 지혜도 다 없어져서 다시 처음부터 먹고, 잠자고, 걷는 것 등을 새로 배워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어머니의 태 속에서 처음 정자와 난자가 합쳐지며 자신의 몸이 생길 때는 지옥의 펄펄 끓는 쇠솥에 담겨지는 듯 한 고통이 따르고 또 머리와 두 팔, 두 다리가 생길 때는 마치 쇠막대기로 자신의 몸 안에서 다섯 곳으로 밀어내는 듯 한 고통이 생기며, 만약 어머니가 춥다고 뜨거운 물을 마시게 되면 끓는 물속에 들어간 고통을 받게 되고, 덥다고 찬 것을 마시게 되면 얼음 속에 갇힌 듯 한 고통을 받으며, 어머니가 화를 내게 되면 불칼로 지지는 듯 한 고통을 받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태어난 후에 우리들이 살아온 삶을 한 번 돌이켜 보십시다. 단지 자꾸 잊어 먹어 버려서 기억을 못하고 살아갈 뿐이지, 거의가 고통으로 얼룩져 있는 삶 아닙니까?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생로병사의 괴로움,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뜻대로 구하여지지 않는 괴로움, 부모, 형제, 부부, 자식 등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서 헤어지거나 또는 죽어서 이별하는 괴로움, 보기 싫도록 미운 사람을 직장의 동료나 선후배, 또는 가정의 부부나 부모형제 등의 인연을 통하여 만나서 헤어지지 못하고 다투며 살아야 하는 괴로움, 또 이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에는 반드시 받게 되는 추위, 더위, 희로애락 등 온갖 괴로움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윤회하는 중생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세 번째, 우리가 자신을 제도하고 더 나아가서 가족과 친족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랑하는 이웃들과 더불어서 모두 함께 윤회의 사슬을 끊고 또 참다운 대승적인 가르침인 '자타일시성불도'를 실천해 나가는데 있어서는 정말 '염불'이 최고의 수행방법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말법시대에는 오직 자력의 수행만으로는 정말 내세를 기약하기가 힘이 듭니다. 부처님은 가신지 오래되었고, 갈수록 법은 쇠퇴해지며, 마(魔)는 치성하여 중생들의 근기는 하열해질 대로 하열해져 있는 이런 열악한 시기에, 우리가 정말 완전무결한 종합보험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법문은 오직 '정토법문' 뿐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임종시 죽음이 눈앞에 닥쳐왔을 때, 화두를 들기도 정말 힘들겠지만 설사 화두를 들고 있다고 해서 윤회로부터 벗어난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아니면 위빠사나 같은 관법(觀法)을 한다고 해서 윤회로부터 벗어난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 어떤 방법이든지 자력수행은 죽음 앞에서는 정말 우리를 윤회로부터 해탈시켜 준다는 보장이 없으며 다른 간경이나 주력, 요가, 예배 등 부처님의 서원이 담겨 있지 않은 수행은 결국, 우리에게 죽음 앞에서는 안심을 가져다 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임종을 맞이하면서 할 수 있는 법문이 못 됩니다. 오직 간단하면서도 공덕이 무량한 염불만이 우리를 안심시켜 줄 것이며 윤회로부터 해탈 시켜 줄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차를 타고 가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 순간 '나무아미타불'하는 염불을 열 번이 아니라 단 한번만이라도 하게 된다면, 어느 누구라도 바로 삼계를 벗어나 영원히 나고 죽는 윤회의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염불은 부처님의 약속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 이름(아미타불)을 부르는 자는 반드시 내가 맞이해서 극락세계에 왕생케 하여 윤회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나는 결코 부처가 되지 않겠노라고....' 이러한 부처님의 서원이 있으시기에 우리는 정말 안심하고 염불수행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토발원에 관한 법문은 결코 범부 중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위로는 문수, 보현, 관음, 세지를 비롯한 대 보살님들로부터, 아래로는 십악과 오역죄를 범한 악업 중생들이라 할지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과거의 죄업을 참회하고 왕생발원을 하면서, 일심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만 명이면 만 명 모두 다 극락세계에 왕생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결코 억지 논리나 궤변이 아닙니다. 엄연히 경전상에 나와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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