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卍-불법을만나고/卍-불교자료실

권왕문(勸往文) 1

by 회심사 2019. 7. 3.


권왕문 1

    대저 삼계고해(三界苦海)를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 방법뿐입니다.
    첫 번째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성을 깨달아 번뇌를 끊어 버리고 해탈하는 길이 있고,
    두 번째는 염불수행으로 부처님세계, 즉 불국토(정토)에 왕생하는 길이 있습니다.

    첫째 방법인 자력으로 자성을 깨닫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령 화두 참구라든가, 간경, 주력, 예배, 요가, 위빠사나 등...
    어떠한 수행방법을 통해서든 자신의 적성(근기)에 맞추어 열심히 수행 정진하여 자성을 깨닫기만 하면 되는 것이며,

    둘째 방법인 염불수행은 염불정진을 통해서 왕생발원을 하여 부처님의 원력과 가피력에 의지해 불국토에 왕생하여 삼계를 초월하는 자력과 타력을 겸한 수행방법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처럼 각종 수행법이 난무하고, 수많은 큰 스님네들께서 서로 자신들의 수행법이 옳다고 주장하며, 다른 수행법은 별 볼일 없는 것 처럼 무시하여 중생들이 닦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이 말법시대에 어떠한 법을 선택하여야 과연, 올바른 길로 갈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어떤 법문을 닦아야만 보다 쉽고 보다 빠르게 윤회로부터 벗어나며 또한, 빨리 성불할 수 있을 것인가? 를 검토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역대의 수많은 조사스님과 선지식들께서는 염불수행과 자력수행(가령, 대표적으로 화두수행)을 비교해서 말씀하실 때 자력수행은 난행문(難行門)이요, 염불수행은 이행문(易行門)이라, 즉 자력수행은 아주 수행하기 어려운 법문이요, 염불수행은 아주 수행하기 쉬운 법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자력수행은 마치 파도가 험난한 생사의 바다(生死苦海)를 스스로의 힘만으로 헤엄쳐 건너려 함과 같아서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고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반면, 염불수행은 마치 불보살님의 배(般若龍船)를 타고서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아서 참으로 안전하고 마음 든든한 수행이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염불을 하는 수행자에게는 항상 불보살님과 신장님들이 환희심을 내고 다가오셔서 지켜 주시기 때문에 나쁜 귀신들이 해치지 못하게 되므로, 다겁생에 지은 업장으로 금생에 여러 가지 좋지 않은 과보를 받게 될 때도 이러한 불상사를 피해 가거나 또는 받더라도 아주 경미하게 받는다고 했는데, '지도론'을 보면

    "염불삼매는 능히 모든 번뇌와 전생의 죄업을 없애 준다.
    그러나 다른 삼매는 혹은 욕심만 없애고 성내는 마음은 없애지 못하며, 혹은 치심만 없애고 음욕과 성내는 마음은 없애지 못하며, 혹은 삼독은 없애고 전생의 죄업은 없애지 못한다. 그러나 염불삼매는 능히 모든 번뇌와 죄업을 없애 준다."라고 하였으며, 또 '관무량수경'에서도 "나무아미타불 일념(一念)을 염불하는데 80억겁 동안 지은 무거운 죄업을 없앤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들이 본래가 부처님과 똑 같은 불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들이 부처님을 염(念)할 때, 가장 먼저 부처를 이루게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천상사람과 같이 착한 마음을 생각하면 하늘세계가 열리고, 지옥중생과 같은 마음을 쓰면 지옥문이 열린다고 하신 것 처럼.... 항상 부처님을 마음속으로 사모하고 그리워하는데 어찌 부처님을 닮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역대의 선지식들께서는 항상 자력과 타력을 겸비하여 수행을 하셨으며, 참선을 하신 분들도 후학들에게 안거철을 마치고 해제철에는 기도(염불)를 할 것을 권하시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즈음 큰스님입네 하시는 분들께서는 그저 참선만이 최고요, 다른 수행은 모두가 하열하기 짝이 없다고 큰 소리로 외치시는가 하면 '염불하는 수행자는 모두가 하근기 수행자'라고 하며 염불을 폄하시킬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심지어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마저 비방하고 왜곡하여 '극락세계는 없는 것이요 모두 방편가설이다.' 또는 '염불로는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라고 주장하시어 이러한 풍토에 부응해서 약 5년전 까지만 해도 일부 선방 수좌 스님들은 염불수행을 외도로까지 취급하기도 했으며, 결국 염불수행을 완전히 초토화 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그 큰스님들께서 법상에서 설법을 하시면서 게송을 읊을 때 자세히 들어보면, 게송 끝머리에 모든 대중과 더불어서 <나∼무∼아미타불>하고 다 함께 염불로 회향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정답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이와 같이 혼란한 말법시대에 있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구에 비추어보고 바른 길을 찾아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온갖 마왕의 권속들이 선지식으로 가장하고 내려와서 우리 중생들을 모두 윤회의 수렁텅이로 몰고 가서 무량한 고통 속에 빠트리려고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마구니들의 꾐에 빠져 무량억겁의 세월을 두고 후회를 하게 될 우려가 없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법멸진경(法滅盡經)'에서 말씀하시길,
    "말법시대에는 오역죄를 범하는 자가 많아지고 마도(魔道)가 치성해지며, 마구니가 선지식을 가장하여 중생을 유린하고, 악마가 출가 스님이 되어 교단 내부에서 불도를 혼란케하고 파괴할 것이며, 마승(魔僧)들은 속인의 옷을 좋아하고 오색(五色)가사를 좋아하며,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살생하고 맛을 추구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전등록'에도 보면 우바국다 존자께서 삼매에 들으셨을 때, 마왕이 우바국다 존자를 우롱하다가 도리어 나중에 우바국다 존자님의 신통력에 곤혹을 치르고 마왕이 마지못해 존자님 앞에서 존자님께서 시키신 대로 삼귀의를 하여 풀려난 뒤에 도망가면서 다시 외치길,

    "내가 말법시대에 가면 내 권속(마졸)들을 풀어 출가 스님을 만들어서, 모두 고기 먹고 술 마시고 춤추며 온갖 계율을 무너뜨려 기어코 불법을 망하게 하고 말겠다." 라고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비추어보고 정견(正見)에 의지하여 어떤 길이 우리 중생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것인지 잘 판단하여, 하루 빨리 윤회로부터 벗어나고 구경에는 불도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지금시대는 정말 말법시대임이 분명하며, 이런 말법시대에 태어나는 중생들은 과거 부처님 당시처럼 근기가 수승하지 못하여 도를 이루는 것은 고사하고, 십악을 범하지 않고 살아가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출가를 하여 한 평생 뼈를 깎는 고행과 난행을 하고도 완전한 도를 이루기가 힘이 드는 법인데, 그 외에 그냥 먹을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대충 대충 정진한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세속에서 온갖 경계에 부딪쳐,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때론 남을 속이기도 하며, 울고 웃고 살아가는 인생살이 속에서 일반 불자님들이 어떻게 자력수행만을 고집한단 말입니까?

    하지만, 끝까지 이런 고집을 피우는 사람은 사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기 지은 바 선근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직 윤회를 벗어날 만큼 선업을 쌓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올 바른 이야기를 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못하며 과거생에 선업을 많이 쌓아 금생에 윤회를 끊을 시기가 도래한 사람이라야만 설령, 한평생 자력수행을 해 왔다 하더라도 염불법문 한마디에 환희심을 내어, 바로 자력과 타력을 겸비한 정토법문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정토법문을 의지해야 될까요?
    그 이유는 말법시대의 우리 중생들이 자력수행만으로는 윤회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인간의 몸을 다시 받는 것조차도 너무 너무 힘들기 때문인 것입니다.

    경전에서도 인간 몸 받기가 어느 정도로 어렵다고 하셨느냐 하면, 부처님께서 손에 한줌 흙을 쥐시고 시자인 아난에게 말씀하시길,

    "아난아, 이 손안에 든 흙이 많느냐, 아니면 땅 위에 있는 흙이 더 많느냐?"라고 물으시자
    이때 아난존자가
    "세존이시여, 그건 비유할 수조차도 없이 땅위에 있는 흙이 많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하자 다시 부처님께서 "그와 같이 중생들이 인간 몸을 받는다는 것은 마치 손에 들어 있는 한 줌 흙과 같고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은 마치 땅위에 있는 흙과 같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또 초발심자경문에 나와 있는 비유로는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
    즉, '눈먼 거북이가 태평양 저 깊은 바다 속에서 삼천년에 한 번씩 수면 위로 올라오는데,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널빤지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라고 했습니다.

    널빤지가 한 자리에 있지도 않고 물결 따라서 계속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데 어떻게 그 널빤지를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자주 물위로 올라오는 것도 아니고 3천년에 한 번씩 올라온다는데, 거기다가 눈까지면 봉사 거북이라니…….
권왕문1.mp3
권왕문1.mp3
2.52MB

'卍-불법을만나고 > 卍-불교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설필추오법경(佛說苾芻五法經)  (0) 2019.07.04
정토사상(淨土思想)  (0) 2019.07.04
권왕문(勸往文) 2  (0) 2019.07.03
권왕문(勸往文) 3  (0) 2019.07.03
권왕문(勸往文) 4  (0) 2019.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