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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불교자료실

석존은 보리수 아래에서 무엇을 깨달았는가?

by 회심사 2017. 4. 24.


卍-석존은 보리수 아래에서 무엇을 깨달았는가?-卍
    고행을 그만 두고 수자타라는 소녀의 우유죽을 받아 마시고 기력을 되찾은 고타마는 보리수 아래 앉아 사색에 들었습니다. 마음은 고요하고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처럼 맑게 개어 있었습니다.

    [줄(絃)이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소리나지 않으리니
    알맞게 조여 아름다운 가락을 타리.]

    경전에는 한 농부를 통해, 세 속의 욕망에 치우치는 것도, 극심한 단식 고행도 모두 바른 지혜에 이르는 길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아, 나는 고행으로부터 벗어났다.
    아무런 이익도 주는 바 없는 고행에서 벗어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악마 파피야스가 속삭였습니다.
    [그대, 젊은 사문이여, 고행을 계속해야 청정해지느니
    그대는 수행의 길을 잃고 헤매며 청정하지도 못하면서 청정하다고 생각하는가?]

    악마(마라)란 욕망의 지배자입니다. 마음속의 갈등을 경전에서는 파순(악마의 왕 마왕의 이름)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합니다.
    이 파피야스는 석존이 출가할 때부터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방해를 합니다. 싯타르타가 애마 칸다카를 타고 궁을 빠져나올 때 파피야스가 속삭입니다.

    [태자여, 어리석은 짓을 그만 두어라.
    말머리를 돌려 화려하고 행복한 궁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7일 안에 만천하를 호령할 거룩한 성왕(聖王)이 되리라.]

    이런 파리야스와의 싸움 즉 쉴새 없이 일어나는 마음속의 악희(惡戱), 요동치는 번뇌, 그리고 온갖 욕망, 이런 것들을 단절하고 조복(調伏)함으로써 붓다가 된 것입니다. 경전에서는 이를 항마(降魔)라고 표현했습니다.

    선정(禪定)에 든지 얼마나 되었을까? 선정이 깊어 갈수록 마음의 눈에 깨달음(正覺)의 모습이 또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날이 새기 전 동녘의 샛별이 밝게 빛나는 이른 새벽,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을 맞았습니다.

    무엇이 삶을 얽어매는 고뇌의 그림자인가? 어떻게 하면 그 고통의 사슬을 끊어버릴 수 있는가? 무엇이 삶의 장애인가? 이 모든 문제 등이 한꺼번에 그리고 확실하게 태자의 뇌리를 엄습하였습니다.

    이제 태자는 평범한 인격에서, 위대한 인격으로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게 된 것입니다. 대지는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꽃이 흩날립니다. 이제 그 분은 부처가 되신 것입니다. 그때 고타마의 나이 35살이었습니다.

    고타마를 이렇게 환희하게 한 그 깨달음이란 어떤 것인가?

    그 깨달음의 내용에 대해

    [내가 깨닫기 이전부터 법으로서 정해져 있었고, 법으로서 확립돼 있는 것]이라고 석존은 말했습니다. 마치 뉴우튼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의 인력을 발견한 것과 똑같습니다. 즉 뉴우튼이 만유인력을 발견했건 못했건 만유인력은 이미 만고불변의 진리였으며 진리로서 확립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던(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길)을 발견한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행복을 열반(涅槃). 해탈(解脫) 등 여러 가지 말로 표현합니다. 그 길은 석존이 처음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법으로서 정해져 있고 법으로서 확립되어 있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입니다. 그 길(道)은 앞으로 이 불교공부를 하는 동안 이해하게 되겠지만 그 요점은 이러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서로 관계되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그 원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죽음의 원인(因)은 태어남이라는 것입니다. 태어났기에 죽음이라는 결과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석존은 인간의 태어남. 늙음. 병. 죽음을 이 논리에 따라 논리적으로 추구한 끝에 고통의 원인을 밝혀내고 그 원인을 없애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이 곧 (연기법 緣起法)인 것입니다.

    석존은 진리를 신의 계시를 통해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적인 노력으로 이룩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위대한 것이며 성스러운 것입니다. 또 그러기에 스스로 정각자(正覺者)라고 자각(自覺)한 것입니다.

    석존은 자신이 깨달은 이 진리는 매우 난해하여 극히 현명한 자가 아니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번뇌로 가득 차 있는 세간의 인간들에게 이 어려운 진리나 안락의 경지, 열반을 깨닫게 한다는 것은 보람없는 헛수고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세간을 살펴보니, 번뇌에 가득 찬 자도 있거니와 번뇌에 물들지 않은 자도 있고, 우둔하여 법을 알지듣지 못할 자도 있거니와 현명한 자도 있고, 악행을 저지르는 자도 있거니와 선한 자도 있고, 깨우쳐 주기 어려운 자도 있거니와 그렇지 않은 자도 있음을 알게 되어 마침내 자신이 깨달은 법을 세상에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감로의 문을 열리니 다른 선입견을 버리고 귀 있는 자는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