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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

짐승을 기르지 말라

by 회심사 2021. 11. 22.



짐승을 기르지 말라,
    우리의 마음은 서로 서로가 대상경계를 사진 찍듯이 우리의 거대한 메모리칩에 저장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는데, 불교학에서는 이것을 아뢰야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어떤 대상을 자주 인식하고 자주 접하다보면 그 대상이 그만큼 우리의 아뢰야식이라는 거대한 메모리 칩 안에 자주 사진이 찍히게 되고 인식된 비중이 큰 대상에 우리의 마음은 물들어 가게 되어 마침내 업(業: 까르마)을 형성하게 됩니다. ​

    우리가 전혀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남남지간인 부부가 서로 함께 살다보면 타인으로부터 남매처럼 닮았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 경우도 있고, 또 스님들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 상호를 닮는 경우가 많아, 대개 사찰에 들어가서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만 뵈어도 그 절의 주지스님 인상을 대략 짐작할 수가 있게 되는 것들이 모두 이러한 아뢰야식이라는 거대한 메모리칩에 대상경계를 사진 찍어서 그 인식이 마음의 겉옷에 해당되는 우리 육신에 전달되어서 우리의 껍데기인 육신이 물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우리가 법당에 거룩한 32상을 갖추신 부처님을 모시고 열심히 염불을 하면 우리의 아뢰야식에 부처님 상호를 사진 찍어 우리가 점점 부처님을 닮아 가게 되므로 염불 수행에 있어서 불상이나 불화를 모시고 수행을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원리를 우리가 잘 이해하면 왜 부처님께서 우리 불자들에게 짐승을 기르지 말라고 하셨는지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사람들이 짐승을 기르다보면 알게 모르게 많은 업(業)을 짓게 됩니다. 짐승을 기르게 되는 동기도 각양각색이어서 어떤 사람은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서, 방범용으로, 외로움 때문에, 등 등 각기 다양한 사연들이 있지만, 모두 인연 없이 들어온 경우는 없습니다. ​

    하지만 짐승을 기르게 되면 외로움을 달래주고 정을 나누며 지내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모두 세속적이고 우리 중생을 윤회의 고리로 얽어 묶는 사슬에 해당되며, 진리를 향한, 해탈을 향한 바른 길은 결코 아닙니다. ​

    더구나 짐승을 기르다보면 때론 사람들이 짐승을 집안에 가두고 밖에 일을 보러 가야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론 사랑하고 귀여워하다가도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는 짐승을 귀찮아하거나 짐승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짐승이 병들고 골칫거리라고 여겨질 때는 팔아버리거나 밖에다가 내다 버리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하여 사회적으로도 버림받는 애완동물이 문제가 되기도 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일들은 모두 우리의 아뢰야식 인식 안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윤회 속에서 인과의 법칙에 의해 커다란 장애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니 어찌 적은 일이라고 하겠습니까, ​

    오늘날 사회적으로 부모자식이나 부부간에 학대받고 폭력에 신음하며, 더 나아가서 버림받은 자식, 버림받은 부모가 이제 더 이상은 커다란 뉴스거리로 부각되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린 도덕 불감증의 세상이 된 것도 사실은 모두 이러한 인과윤회의 법칙에 의한 과보이고 결과인 것임을 안다면 함부로 짐승을 기르거나 또는 이미 기르고 있는 애완동물들을 함부로 구박하거나 내다버리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지리산 칠불암 선원에서 정진할 때 전해들은 칠불암의 역사기록 한 장면도 이러한 인과의 법칙을 여실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 정책아래 불교가 지독히도 탄압을 받았었고 스님들은 천민이나 노비에 버금갈 정도로 업신여김을 받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아랫마을에 사는 사또가 칠불사에 구경삼아 올라 왔는데, 아무도 내다보며 맞이하는 이가 없어 사또는 내심 기분이 무척 상했습니다. ​

    하지만 꾹 참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마침 지금의 아자방(亞字房)이 있는 선원을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스님 몇 명이 앉자 있는데, 한 스님은 바르게 앉아 있고 한 스님은 혼 침에 빠져 고개가 뒤로 젖혀져서 하늘을 쳐다보는 듯 앉아 있고, 또 한 스님은 고개를 수그리고 앉아 있고 한 스님은 좌우로 흔들 흔들리면서 졸고 있는 것 이였습니다. ​

    사또는 중들이 자신이 행차를 하였는데도 내다보지도 않고 방안에서 앉아 있는 모습에 은근히 괘씸한 생각이 들어 그 가운데 한 스님을 불러내어 도대체 중들이 백성들의 피땀 어린 시주를 받아먹으면서 무엇 하는 짓인가를 따져 물었습니다. ​

    그러자 불려나온 스님이 청산유수처럼 대답하기를 반듯하게 앉아 있는 스님은 정좌부동관(正坐不動觀)을 하는 중이고,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있는 스님은 하늘을 우러러 보고 별자리를 관하는 앙천성수관(仰天星宿觀)을 하는 중이며,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스님은 지하에서 고통 받는 지옥 중생들을 관하는 지하망령관(地下亡靈觀)을 하는 중이며 좌우로 흔들거리는 스님은 봄바람에 버드나무가지가 흔들리듯 관을 하는 춘풍양류관(春風楊柳觀)을 하는 중이라고 대답을 하자 사또는 화가 치밀어 올라 포졸로 하여금 그 스님을 곤장을 치도록 하여 스님은 엉덩이에 피멍이 들도록 곤장을 맞았습니다. ​

    사또 일행이 돌아가고 난 뒤 곤장을 맞은 스님은 하도 억울해서 도대체 저 사또가 나하고 전생에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렇게 곤장을 때리는가 하는 생각이 끊어지지를 않고 몇날 며칠을 머릿속에 맴돌다 어느 날 문득 전생이 보였습니다. ​

    까마득한 과거 어느 생인가 알 수 없지만 그때 당시에 자신이 절에서 행자생활을 하고 있을 때 아랫동네에 누렁개 한 마리가 절에 자주 올라왔습니다. 절에서 헌식을 한 음식을 주워 먹는 것에 길들어진 그 누렁개는 심심찮게 절에를 올라왔던 것입니다. ​

    그러던 하루는 천도재가 있어서 행자가 법당 안에 음식들을 차려놓고 다른 음식을 가지러 간 사이에 마을에서 올라온 누렁개가 법당에 들어가서 떡을 한 조각 물고 나오다가 법당 문 앞에서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

    아직 천도재도 시작하지 않은 상황에 개가 떡을 물고나오다니, 화가 난 행자는 냅다 발로 누렁개의 엉덩이를 걷어 차버렸습니다. 누렁개는 입에 물었던 떡을 떨어뜨리고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는데, 행자가 화가 풀리지 않은 마음으로 떨어진 떡 조각을 주우며 마음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기왕 개가 물고 나온 떡으로는 다시 제상에 올리지도 못할 것인데, 괜히 개를 발로 찼다. 라는 마음에 떨어진 떡 조각을 주워들고 누렁개를 찾아나서 멀리 떨어져서 여전히 주변을 맴돌고 있는 누렁개에게 떡을 던져주는 상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

    바로 전생에 한 번 발길로 걷어찬 그러한 과보로 자신이 그 사또에게 곤장을 맞게 된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또는 관가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니 괜히 그 스님을 곤장을 쳤다. 라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나중에 포졸을 시켜 칠불암에 있는 스님들에게 쌀을 가져다주라고 하여 스님들이 식량에 걱정 없이 정진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고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

    실로 인과의 법칙은 부처님도 어쩌지 못한다. 라고 하셨는데, 바로 그 칠불암의 스님은 발로 누렁개의 엉덩이를 걷어찬 과보로 곤장을 얻어맞고 또 떡 조각을 던져 준 과보로 많은 쌀을 시주 받았으니 모두가 인과의 법칙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실화로 보여준 교훈이라고 할 것입니다. ​

    그러므로 가정에서 애완동물을 기르며 학대를 하거나 또는 가두어서 홀로 있게 만들어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내다버리는 등의 행위 끝에 오는 과보를 생각한다면 함부로 짐승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 줄 알게 될 것입니다. ​

    또 애완동물을 기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애완동물과 정이 들고 애완동물의 모습을 마음속에 사진 찍어 담아두어 먼 훗날 윤회의 고리 속에서 애완동물의 태를 빌려 몸을 받게 될 인(因:씨앗)을 심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우리 불자들에게 짐승을 기르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청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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