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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

성자의 가르침은 '나그네 길'의 등불,-청화스님

by 회심사 2022. 1. 23.


성자의 가르침은 '나그네 길'의 등불,-청화스님
    대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우리는 각자 성자의 가르침 따라서 정다웁게 살고 있는가?
    성자의 가르침은 우리 나그네 길에서 하나의 등불입니다.
    그 분들은 인생과 우주의 본 바탕을 훤히 깨달은 분들이고 또 우리 출발점은 어디고, 목적지는 어디고, 어떻게 가야만이 바르게 헛눈 팔지 않고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러한 것을 극명하게 우리한테 가르쳐 주신 것이 성자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화 국제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성인들의 가르침도 포섭하고 같이 대비해 가면서 화합해야 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고서 우리가 믿는 종교의 가르침만이 최고다 이렇게 생각해서는 화해를 못합니다.

    또는 다른 가르침에는 진리가 없고 우리 불교만이 유일하게 옳다고 생각할 때는 할 수 없이 다른 가르침을 배격도 해야 하겠습니다만 사실 핵심은 다 똑같습니다.

    이른바 근본주의(根本主義) 또는 원리주의(原理主義)라, 이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진리에 있어서 근본주의나 원리주의 이런 편협한 경색주의를 떠나야 합니다.
    꼭 자기 것만이 옳다하는 이런 것을 떠나지 못하면 국제화 시대에 있어서 어떤 면으로나 우리가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자기 마음도 더욱 더 부담스럽고 남한테 화해도 못하고 국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우리 지표, 우리 등불이 바로 성자의 가르침인데, 성자들의 가르침은 출발점이나 목적지는 똑같습니다.
    다만 어떻게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할 것인가?
    그런 방법적인 문제만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특히 그런 방법론적인 문제에 관해서 제가 말씀을 주로 드리겠습니다.
    여태까지는 그냥 윤곽만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한테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어떻게 공부를 할 것인가?
    어떻게 공부를 해서 목적지에 이를 것인가?
    어떤 방법이 지름길인가?
    이런 것에 역점을 두고서 말씀을 하겠습니다.

    생사대사(生死大事)

    생사대사라, 이것저것 인간 세상에 중요한 일이 많이 있으나 역시 죽고 살고 하는 그 문제가 제일 크지 않습니까.
    어떠한 물질적인 풍요라든가 고귀한 지위라든가 우정이나 애정이나 그런 건 모두가 다 죽음 앞에서는 무엇이 남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문제를 소홀히 생각합니다.
    위대한 분일수록 죽음의 문제를 항시 끼고 삽니다.
    사실은 우리 삶 자체가 죽음의 물결 위에 잠시간 떴다 꺼졌다 하는 물거품에 불과합니다.

    죽음 문제를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에 불교의 말씀으로 하면 이것은 염사(念死)라, 생각할 념(念)자, 죽을 사(死)자입니다.
    죽음을 생각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건강할 때는 항시 건강할 것 같이 함부로 먹고 함부로 행동을 합니다만 아파보면 그때는 주의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죽음을 좀 생각을 독실히 한다고 할 때는 우리 행동을 함부로 못합니다.

    종교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나는 종단에 죽어야 할 것인데, 아직 젊은 세대는 다른 사람의 죽음도 별로 경험도 않고, 또 부모님도 살아 계시는 지라 죽음에 대한 실감이 별로 안 나지만 저같이 나이가 꽤 많이 먹은 사람들은 전쟁에 나가서 죽은 사람도 많이 보고, 또 6.25사변이라고 하는 그 무시무시한 대에 총으로도 아니고 장작개비로 사람을 때려서 죽이는 것도 무수히 보았습니다.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것도 보았습니다.

    별고나 기타 천재지변으로 인한 죽음이나 어떻게 죽든지 간에 어느 누구나 조만간에 빠르고 더딘 차이뿐인 것이지 다 죽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 가르침도 '불출세 일대사 인연(佛出世 一大事 因緣)이라' 부처님께서 출세하신 가장 큰 일이 무엇인가 하면 '생사대사(生死大事)'라.
    죽음의 문제란 말입니다.
    공포, 공포 하지만 죽음의 번뇌가 제일 큽니다.
    따라서 부처님 가르침이나 다른 종교의 가르침이나 모두가 생사대사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영생(永生)이라,
    영생은 죽음의 반대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과연 영생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이런 것에 무진 애를 많이 씁니다.
    삼천갑자 동박삭이도 그렇게 살려고 애써서 삼천 갑자동안이나 살았지만 결국은 죽음인 것이고, 진시황이 불노장수라 늙지 않고 장수하기 위해서 가지가지 꾀를 많이 부렸지만 지금 어디 흔적이나 있습니까.

    그런데 다행히도 성자의 가르침은 죽음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가장 큰 문제,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우리가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큰일입니다.
    우리가 재가불자로서 부처님 공부를 할 때나 또는 수행자가 되어서 공부할 때나 이 문제하고 맞닥뜨려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인생으로 태어난 아무런 보람이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다른 것은 모두가 다 죽음의 무덤에 함께 다 들어갑니다.
    소중한 금쪽같은 자기 몸뚱이가 죽음의 무덤에 들어가거든 자기 집이나 자기 금, 패물이나 그런 것이 죽음의 무덤에 같이 안 들어가겠습니까.

    그러나 성자의 가르침에는 죽음을 이기는 참 지혜가 있습니다.
    또는 죽음을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닦아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