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심(無明心)과 십법계(十法界)-청화스님
천지 우주가 오직 진여불성뿐인데, 우리가 우주의 순환 과정에서 마음이 가려져서 그것을 미처 모른단 말입니다. 학식이 많고 적고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설사 박사 학위, 석사 학위가 몇 십개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식에 불과한 것이지 참다운 지혜가 못됩니다. 따라서 제 아무리 세간적인 학문을 많이 한다 하더라도, 불교에서 볼 때에는 아직은 무명심을 못 떠나 있습니다. 무명심을 어떻게 떠날 것인가? 그것은 방금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모든 존재의 근본 생명의 실상 자리, 이 자리를 깨달아야 비로소 무명심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명심을 여의어 버리지 못하면, 무명심을 깨버리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 생명의 고향인 진여불성 자리에 돌아가지 못합니다. 무명심을 떠나버리지 못하는 한, 우리는 욕계, 색계, 무색계를 영원히 끝도 없이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윤회하는 것입니다. 십법계라. 극락세계도 분명히 존재하고 또 지옥세계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지옥은 무엇인가? 우리 무명심이 가장 어두운 세계입니다. 오늘 같이 청명한 날은 우리 기분도 좋지 않습니까. 우리 중생은 밝은 것을 다 좋아합니다. 왜 좋아하는가? 우리 생명 자체가 본래로 밝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미워하면 그만큼 마음이 어둡지 않습니까. 본래 진여불성에는 미움도 좋음도 없습니다. 우리가 남을 미워하는 것은 불성에 어긋나는 행동이므로, 그만큼 우리 마음이 금방 어두워집니다. 우리가 물질에 너무 집착하여서 이렇게 욕심을 낼 때에, 청정 미묘한 마음이 금시에 어두워집니다. 우리가 무명심에서 말도 함부로 하고 행동도 함부로 하면, 본래 청정 미묘한 마음이 더욱 어두워집니다. 가장 어두운 중생심의 세계 이것이 지옥입니다. 조금 밝아지면 아귀(餓鬼) 세계라. 더 밝아지면 개나 소나 돼지 같은 축생(畜生) 세계라. 조금 더 밝아서 싸움 좋아하는 아수라(阿修羅) 세계라. 훨씬 더 밝아지면 우리 인간(人間) 세상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래도 그런대로 무던히 밝아 온 셈입니다. 더 밝아서 천상(天上)이요. 더 밝아서 진여불성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는 세계가 성문승(聲門乘)이요, 더 깨달아서 우주의 연기법을 깨달아서 연각승(緣覺乘)이요. 모든 중생과 더불어서 성불로 가는 참다운 중생이 보살(菩薩)이고, 온전히 깨달아야 비로소 부처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지금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그런 요소가 다 들어 있습니다. 다행히도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인간은 전생에 다섯 가지 계율 정도는 닦았단 말입니다. 살생도 별로 하지 않고 훔치지도 별로 않고 음탕한 행동도 별로 않고, 이렇게 해서 다행히 인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진여불성 극락세계라 하는 우리 고향으로 갈 것인가? 그렇지 않고 다시 인간 정도로 헤맬 것인가? 여느 사람들은 잘 모르고서 인본주의(人本主義)라. 인간이 제일 높다고 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기는 합니다만 인간이 제일 높은 것은 아닙니다. 인간보다도 더 높은 천상도 있습니다. 욕계에도 천상이 있고, 색계, 무색계에는 천상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그보다 훨씬 못합니다.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 생명의 고향 자리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런 것은 우리 결단에 달린 것이고, 또 우리가 인생고를 떠나서 마음의 고향 자리로 가기 위한 가르침은 앞서도, 누누이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 가르침 이외는 없습니다. 기왕이면 빨리 가고 싶은데 부처님 가르침을 어떻게 믿어야 빨리 갈 것인가? 불자님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암시(自己暗示)라는 법문을 알으시지 않습니까. 법문이라기 보다는 일반 심리학적인 용어입니다만, "내가 나쁜 놈이다," "나는 별 볼일 없지 않은가,“ " 내가 아무리 바로 살려고 해도 진심(嗔心)이나 욕심(慾心)을 도저히 제거할 수가 없다," 이렇게 자기비하(自己卑下)를 하고 이렇게만 생각할 때 자기 발전이 오겠습니까. 본래 석가모니는 저기 있고 나는 여기 있다. 이렇게 생각한단 말입니다. 석가모니는 우리보다도 훨썩 위대하기 때문에 부처가 된 것이고, 나는 과거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고, 금생에 타고난 죄도 역시 많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을 절대로 마십시오. 견성오도나 불은 나하고는 무관하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을 절대로 마십시오. 석가모니 마음과 예수 마음과 우리 마음이 똑같습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것도 역시 똑같습니다. 진여불성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더하고 덜하고, 또는 청정하고 더럽고 이런 차이가 없습니다. 도둑놈 마음이나 도둑놈 몸이나 우리 몸이나 똑같습니다.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변동이 없습니다. 다만 인연 따라서 그 텅 빈 상만 차이가 있습니다. 상의 결합적인 차이만 있습니다. 같은 탄소도 결합 여하에 따라서 더러는 검은 숯 부스러기가 되고, 또는 결정체로 되면 그때는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결합 여하에 따라서 숯이 되고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그와 똑같이 진여불성이 결합 여하에 따라서, 전자가 되고 양성자 또는 중성자가 됩니다. 본래는 우주의 순수 생명인 그 진여불성, 현대 말로 하면 순수 에너지 말입니다. 물질이 아닌 순수 에너지가 그때그때 결합 여하에 따라서, 양자가 되고 전자가 되곤 합니다. 또 그들의 결합 여하에 따라서 산소가 되고 수소가 되곤 합니다. 어떤 물질이나 그런 원소로 안 된 것은 없지 않습니까. 이 자리에서 한 말씀 더 명심해야 할 것은, 현대 물리학과 불교는 굉장히 밀접 불가 분리합니다. 현대 물리학이 사실은 지금 부처님 가르침을 가면 갈수록 밝히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현대 물리학은 모든 것은 본래로 비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 에너지는 파멸이 안 되고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에너지가 산이 되고 달이 되고 별이 되고 하여도 에너지 자체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 허망 무상한 상만, 모양만 차이가 있을 뿐이지 본질은 변질이 없다. 이러한 것이 현대 물리학적인 설명입니다. 따라서 앞서 말씀드린바 예수의 몸이나 내 몸이나 석가모니 몸이나 똑같은 몸입니다. 마음이야 본래 모양이 없으므로 석가모니 마음, 내 마음 차이가 없어야 하겠지요. 다만 우리 중생이 자작범부(自作凡夫)라. 우리가 잘 못 봐서 나는 나요, 너는 너요, 나는 못나고, 너는 잘나고, 이런 마음 때문에 스스로 우리가 범부가 되는 것입니다. 설사 범부가 되었다 하더라도 본바탕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석가모니나 나나 누구나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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