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공덕은,-월하스님
“무엇이든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만약 형상이 없다고 한다면, 어둡고 밝은 것이 어떤 인연과 거래가 있다고 할 것이냐 궁금하기 한량 없습니다. 모든 일이 사람의 마음으로 인해 통하기도 하고 막히기도 하고, 장애가 생기기도 하고 애로가 쉽게 해결되기도 합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기가 지은 만큼 복을 받기도 하고 잘못하면 벌은 받는 것이지, 다른 누가 과일을 바구니에 담아주듯 복을 짓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벌을 받는 것도 누가 다른 사람이 떠밀어 주듯 받는 것도 아닙니다. 행동을 잘못하면 스스로 벌이 되는 것이고, 행동을 잘하고 마음을 잘 쓰면 복이 스스로 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어떻게 행동하면 복이 되고 어떻게 행동하면 죄가 된다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하고 안 하고의 행동의지는 각자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소시수대공덕(小施受大功德)’이란 조그마한 것을 베풀어 큰 공덕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아함경》이란 경전에 보면 부처님께서 모친의 유래를 말한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모친께서 생전에 궁전에 계실 때, 궁전에는 사방 백보를 걸어갈 수 있는 곳을 전부 금은과 유리로 깔았습니다. 땅이 금빛도 나고 은빛도 나고 칠보로 장엄이 돼 휘황찬란했습니다. 거기에다 백미의 음식이 원하는 대로 자기 앞에 진열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아난다 존자라고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아난다는 부처님 사촌입니다. 부처님 모친에게는 조카가 됩니다. 아난다가 부처님께 묻기를, “숙모께선 어떻게 그렇게 찬란한 복을 수용하게 됐습니까?”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친이 전생에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났는데, 그 당시 쌀 한 되를 길가 돌부처님에게 올려 그 공덕으로 복을 수용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앞으로 5백 생은 전륜왕위를 지어 전륜왕이 되고, 5백 생은 제석신의 몸을 받고, 5백 생은 대국 왕후의 자리를 받고 있습니다. 모든 쾌락을 다 받은 후에는 그 몸에서 천불을 출생시킨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청정광여래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즉, 쌀 한 되의 공덕이 이와 같은 복을 받고, 마지막에 가서는 청정광여래가 된다고 하니, 조그만 하지만 진실한 공덕을 쌓은 사람은, 쌀 한 되를 부처님께 올린 공덕처럼 크나큰 복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의 입장에서 가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첫째 살아가는데 아무런 재해가 없어야겠고 복도 많아야 합니다. 명도 길어야 하고 중간에 아무런 재앙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중생의 입장에서는 누구나 원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 필요 없고, 재해라는 것에도 구애를 안 받고, 모두 초월하시지만 중생들은 초월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걸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 먹어야 하고 입어야 되고 편해야 되며 욕심이 있으니, 뭐든지 가져야 힘이 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유머가 많은 사람이 건강하다고 합니다. 유머러스한 사람은 남을 잘 웃기고 남에게 이맛살 찡그리는 일은 안 합니다. 자기 마음이 쾌활한 사람이라야 남을 웃기지, 자기 마음이 찌그러진 사람은 남을 잘 웃기지 못하거든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오래 사는 것이나 오래 못 사는 것이나 다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분이 안 좋고 쾌활한 느낌이 없이 살다보면, 항상 이마가 찡그려지고 얼굴에 주름살도 는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신과 모든 힘이 위축이 되고 결국 죽게 마련입니다. 중생계는 살아가는 데 많은 장애가 있습니다. 불교에 조예가 깊고 많은 경험이 있는 분들은, 장애를 요령 있게 피하고 잘 이해하며 잘 해석하는데, 그렇지 못한 분들은 막혀서 자기가 그런 것을 피할 수 있는 소견이 안 생기고 혼미에 빠집니다. 그런 것을 잘 피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밝아야 하는데, 지혜가 밝으면 그런 묘리가 금방 생긴다고 합니다. 이래서 그야말로 자기가 죽지도 살지도 않은, 그런 경계까지 밝혀서 잘 실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생사를 초월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죽는 것에도 걸리지 않고 사는 것에도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은 육체를 중심으로 사는 것이지, 육체를 떠난 입장에서는 생사의 구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 입장에서는 죽고 사는 것이 분명히 있는데, ‘어떻게 죽고 사는 것이 없다 하고 그것을 초월하느냐’ 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사람은 육체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마음을 중심으로 하는 것인데, 마음이라는 것은 죽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가 죽는 것이고 육체가 사는 것이지 마음 자체는 죽으나 사나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산다고 해서 별스럽고 더해지는 것도 아니고, 죽는다고 해서 감해지고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출처 : 붓다월드 : http://www.buddhaworld.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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