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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

참선은 성불의 지름길,-성철스님

by 회심사 2022. 3. 23.

참선은 성불의 지름길,-성철스님


    이제까지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계속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마음을 깨치려고 하면 여러 방법이 있는데 교(敎)에 있어서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삼승십이분교〉가 벌어지고 또 선(禪)에 있어서는 언어 문자를 버리고 바로 깨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의 근본 입장에서 볼 때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기 전에 이미 알아 맞혔다 해도 까닭 없이 땅에서 넘어져 뼈를 부러트리는 사람입니다. 하물며 덕산스님이 비 오듯이 몽둥이로 때리고 임제스님이 우뢰 같은 할(喝)을 한다 하여도 곽 속에서 눈을 부릅뜨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 송장이 곽 속에서 아무리 눈을 떠 봐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법상에 앉아서 쓸데없이 부처가 어떻고 선이 어떻고 교리가 어떻고 이러니저러니 하는 이 법문은 중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생들에게 독약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이 법문이 사람 죽이는 독약인 비상인줄 바로 알 것 같으면 그런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불법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 부처되려는 병,
    조사(祖師)되려는 병,
    이 모든 병을 고치는 데는 우리의 자성을 깨치면 이런 모든 집착을 벗어나서 참으로 자유자재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자기자성을 깨치지 못하고서는 집착을 버릴래야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이 바른 사람이라면 부처님이나 달마조사가 와서 설법을 한다 하여도 귀를 막고 달아나 버려야 합니다.

    ​ 예전에 무착(無着)이라는 스님이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려고 그 절 공양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큰 가마솥에 팥죽을 끓이고 있는데 그 팥죽 끓는 솥 위에 문수보살이 현신(現身) 하였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큰 종을 치고 향을 피우고 대중을 운집(雲集) 시키려고 야단했을 터인데 무착스님은 팥죽을 졌던 주걱으로 문수보살의 뺨을 이리치고 저리 치면서 말했습니다.

    ​ 「문수보살은 너 문수보살이며 무착은 내 무착이로다.」
    그러자 문수보살이 게송을 읊고 사라졌습니다.
    그와 같이 이 대중 가운데서 「성철은 저 성철이고 나는 나다.
    그런데 긴 소리 짧은 소리 무슨 잠꼬대가 그리 많으냐」 하고 달려드는 진정한 공부인이 있다면 내가 참으로 그 사람을 법상 위에 모서 놓고 한없이 절을 하겠습니다.

    ​ 그런 무착스님의 기재가 참으로 출격장부(出格文夫)이며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내 밥 내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어째서 남의 집 밥을 구걸하느냐 말입니다. 부디 내 밥 내 먹고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 언어문자를 익히는 것 뿐만 아니라 육도만행(六途萬行)을 닦아서 정각(正覺)을 성취하는 것이 어떠냐고 흔히 나에게 수화들이 묻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예전 조사스님들이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 「육도만행을 닦아 성불하려고 하는 것은 송장을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 같다」고 그런데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송장을 타고 바다를 건너 갈 것입니까. 육도만행이 보살행으로서 아무리 좋다고 하지만은 바로 자기 자성을 깨치는 것만은 못한 것입니다.

    ​ 우리가 앞으로 공부를 함에 있어서 이론과 실천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경전을 배우면서 참선을 하고, 참선을 하면서 경전을 배우고 조사어록을 얽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언어문자는 산 사람이 아닌 종이 위에 그린 사람인줄 분명히 알아서 마음 깨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 여기 대중 가운데서도 여러 가지 공부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염불하여 삼매를 성취하여 성불한다. 주력으로 삼매를 성취하여 성불한다.
    경을 보아 삼매를 성취하여 성불한다는 등등, 그러나 그 무엇보다는 화두(話頭)를 참구하는 것이 성불하는 지름길이라고 조사스님들은 다 말씀합니다.

    ​ 그러니 이 법회(法會) 동안에는 누구든지 의무적으로 화두를 해야겠습니다.
    이제 내가 화두를 일러줄 터이니 잘 들으십시오.

    ​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고」
    (不是心 不是物 不是佛이니 是什麽오)
    내가 일러준 이 화두의 뜻을 바로 알면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고 자성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흔히 이 화두의 뜻을 잘못 알고 마음이라 하면 어떻고 물건이라 하면 어떻고 부처라 하면 어떠냐고 하는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늘 마음속에 「…이것이 무엇인고」 하고 의심을 지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 다만 지금까지 자기가 참구하는 화두가 있는 사람은 그 화두를 놓치지 말고 더욱 간절히 의심을 지어가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잠깐 동안이나마 조용히 앉아 있으면 항하사 모래알 같이 많은 철보탑을 만드는 것보다 나으니라. 칠보탑은 필경 부서져 티끌이 되거니와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은 바른 깨달음을 이루느니라.」

    ​ 부처님 당시에도 마음을 깨치는 방법으로 경행(輕行)과 화선(座禪)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선정(禪定)을 익혀라〉고 간절하게 말씀하셨습니다.

    ​ 선정(禪定)은 앉아 있든지 서 있든지, 말할 때나 말하지 않을 때나 마음이 망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오로지 경행과 화선만을 가르치시고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 우리들은 오직 참선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 이와 같이 우리도 참선에 신심을 내어 자성을 바로 깨치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