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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불교자료실

윤회

by 회심사 2022. 3. 25.

윤회


    중생이 죽은 뒤 그 업에 따라서 또 다른 세계에 태어난다는 것을 천명한 불교의 교리 중의 하나. 생명이 있는 것은 여섯 가지의 세상에 번갈아 태어나고 번갈아 죽어 간다는 사상으로서 이를 육도윤회라고 한다.

    육도 중
    첫째는 지옥도로서 가장 고통이 심한 세상이다. 지옥에 태어난 이들은 심한 육체적 고통을 받는다.
    둘째는 아귀도이다. 지옥보다는 육체적인 고통을 덜 받으나 반면에 굶주림의 고통을 심하게 받는다.
    셋째는 축생도로서, 네발 달린 짐승을 비롯하여 새 · 고기 · 벌레 · 뱀까지도 모두 포함된다.
    넷째는 아수라도이다. 노여움이 가득찬 세상으로서, 남의 잘못을 철저하게 따지고 들추고 규탄하는 사람은 이 세계에 태어나게 된다.
    다섯째는 인간이 사는 인도이고,
    여섯째는 행복이 두루 갖추어진 하늘세계의 천도이다. 곧 인간은 현세에서 저지른 업에 따라 죽은 뒤에 다시 여섯 세계 중의 한 곳에서 내세를 누리며, 다시 그 내세에 사는 동안 저지른 업에 따라 내내세에 태어나는 윤회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윤회의 여섯 세상에는 절대적인 영원이란 없다.
    수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지옥에서 다시 인간도로, 천국에서 아귀도로 몸을 바꾸어서 태어난다. 곧 육도의 세계에서 유한의 생을 번갈아 유지한다는 것이 불교의 윤회관이다.

    이 윤회는 철저하게 스스로 지은 대로 받는다는 자업자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스스로 착한 일을 하였으면 착한 결과를 받고, 악한 일을 하였으면 악한 결과를 받는 자기책임적인 것이다. 자기가 지은 바를 회피할 수도 없고 누가 대신 받을 수도 없다. 오직 자기가 지은 업의 결과에 따라서 다른 세계로의 향상과 향하가 가능할 뿐이므로,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자율적인 의지와 실천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러한 윤회는 윤리도덕적인 측면, 즉 권선징악적인 차원에서 특히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권선징악을 넘어선 해탈의 차원에서 아(我) 윤회설이 강조되었다.
    윤회한다는 것은 결국 괴로움이므로 윤회에서 벗어나는 열반이나 극락의 왕생 등을 보다 중요시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한 생에서 다음 생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 데 대한 관심보다 한 생각 한 생각을 깊이 다스려서 언제나 고요한 열반의 세계나 불국토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점검하도록 하는 데 치중하였다. 그리고 마음이 분노로 가득차 있는 것이 곧 지옥이고, 탐욕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아귀이며, 어리석음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축생이라고 보는 등, 이 순간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끊임없이 육도를 윤회한다고 보았다.

    특히, 신라의 원효는 윤회의 원인을 일심에 대한 미혹이라고 보았다.
    그는 <대승기신론소>에서 “일심 외에 다시 별다른 법이 없으나 다만 무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일심을 알지 못하고 갖가지 파도를 일으켜서, 육도를 윤회한다”고 하였다. 곧 일심을 깨달을 때 윤회를 면하여 해탈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삼국유사>에도 윤회에 대한 기록은 풍부하게 보이고 있는데, 일반인을 교화시키는 데 가장 설득력이 강하였던 사상이 윤회설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윤회에 관한 이야기들은 중생의 교화를 위해서 가장 널리 이용되었다. <삼국유사>의 사복불언에 보면 남편 없이 아이를 낳은 한 과부가 죽자, 열두살이 되도록 말도 못하고 기동도 하지 못하였던 아들 ‘사복’이 고선사로 원효를 찾아 와서 함께 장례를 치르고자 하였다. “그대와 내가 전생에 불경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죽었으니 같이 가서 장사를 지내자.” 곧 과부 어머니는 전생의 소였던 것이다.

    또, <혜통항룡>에도 윤회사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당나라에서 병을 내고 다니던 교룡은 혜통의 신술에 쫓겨 신라 땅으로 가서 횡포를 부리고 다녔다. 이에 정공이 당나라에 가서 혜통을 모셔와 용을 쫓아 보내자, 앙심을 품은 용은 정씨 집 앞에 한 그루의 버드나무로 환생하였다. 원한을 품은 용의 환생인 줄을 모르는 정씨는 이 버드나무를 무척 애지중지하였다. 그 뒤 신문왕이 죽어 장례행차를 하는데 이 버드나무가 지장을 주게 되자 베어버릴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내 목은 베어도 이 나무만은 벨 수 없다.”고 하면서 정공이 버티자 왕은 격분하여 정공의 목을 베고 그 집을 묻어 버렸다. 버드나무로 환생한 용이 이렇게 원한을 푼 것이다.

    또, 불국사를 지은 김대성은 전생에 가난한 집에 살았던 불심이 돈독한 아이였다.
    몹시 가난하였지만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내세의 행복을 기원하면서 전답을 모두 법회에 보시한 뒤에 죽었다. 이 아이가 죽은 바로 그 순간에 정승 김문량은 그 아이가 대성이라는 아기로 환생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는다. 그 뒤 그의 아내가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주먹 안에 ‘대성’ 두 글자가 새겨진 금간자를 쥐고 태어났다. 자라서 재상이 된 김대성은 현생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지었고,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 현재의 석굴암인 석불사를 지었다.

    이와 같이 신라시대에는 전생과 내생이 현세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윤회사상이 토착화되어 민중의 의식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나아가 왜구에 시달린 문무왕은 죽어서 용이 되어 호국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수중릉을 만들게 하였으며, 김유신은 죽어서 삼십삼천의 신이 되어 신라를 돌보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윤회사상이 호국사상에까지 결부될 수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윤회사상은 고려시대에도 크게 유행하였다.
    고려 공양왕 때 개성에 전염병이 크게 나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 중에는 겨우 다섯 살 된 눈먼 아이만을 남겨놓고 부모가 죽어버린 집도 있었다.

    그 집에서는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부모가 죽어 아이가 굶주리게 되자, 이 개가 눈먼 동자에게 꼬리를 잡게 하여 마을의 집들을 다니면서 걸식할 수 있도록 하고, 밥을 다 먹고 나면 샘가로 데리고 가서 물을 먹여주기까지 하였다. 이 소문이 조정에 알려지자 어명으로 개에게 정3품의 벼슬을 내렸다. 또한 마을에서는 이 개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합장하여 절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직접 선행과 수행을 닦아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면보다는 기복 의식 등을 통하여 내세를 기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같은 그릇된 실천 때문에 불교의 윤회설은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유생들로부터 크게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정도전의 <불씨잡변>이다. 정도전은 성리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죽고 나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윤회설의 기본사상이 되는 영혼불멸설을 부인하였다.

    또 남효온은 그의 <귀신론>에서 불교의 윤회설을 유교의 이기설로 비판하고, 죽은 뒤에는 아무 것도 없음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조선 초기의 고승 기화는 <현정론>을 저술하여 윤회설의 도덕성 · 사회성 등을 피력하였다.

    “천당과 지옥이 설사 없고 육도윤회가 전혀 없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그러한 말을 듣고 천당을 생각하여 선을 좇고, 지옥을 두려워하여 악을 버리게 되는 것이니, 윤회설은 백성을 교화하는 데 있어서 그 이익이 막대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출처: 불교사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