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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

봄을 찾는 기도,-원산스님

by 회심사 2022. 4. 12.

봄을 찾는 기도,-원산스님


    종일토록 봄을 찾아 헤맸건만 봄이 보이지 않아
    짚신이 다 닳도록 산 위의 구름들을 밟고 다녔네.
    지쳐 돌아와 뜰에서 웃고 있는 매화 향기 맡으니
    봄은 매화가지 위에 완전히 무르익어 있는 것을​

    진 일심춘불견춘 망혜답파롱두운
    盡日尋春不見春 芒鞋踏罷隴頭雲​

    귀래소살매화후 춘재지두이십분
    歸來笑撒梅花嗅 春在枝頭已十分​

    당나라의 어느 비구니 스님 오도송으로, 남송 때의 학자인 나대경羅大經이 편찬한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실려 있는 선시입니다.​

    새해 들어 입춘을 넘기면 추운 바람이 차츰 멎고, 따스한 기운이 점점 퍼지게 됩니다. 그리고 백매화가 봉오리를 맺고, 홍매화가 빨갛게 피어 향기가 코를 찌르게 되며, 만물이 생장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매화의 향기도, 만물의 생장도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추운 겨울을 잘 견뎌 내어야 가능합니다.
    황벽선사의 시가 그것을 잘 나타내어 줍니다.​

    번뇌를 벗어나기란 예삿일이 아니니
    밧줄을 단단히 잡고 한바탕 공부를 할지어다.
    추위가 뼛속까지 사무치지 않을 것 같으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 얻을 수 있으리​

    진로형탈사비상 긴파승두주일장
    塵勞迥脫事非常 緊把繩頭做一場​

    불시일번한철골 쟁득매화박비향
    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

    이제 이 두 편의 시를 기도와 함께 엮어 봅시다.

    삶은 마음과 같이 되지 않고, 성공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추운 겨울과 같은 것이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인생살이에서 봄을 찾기가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봄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봄을 찾음은 소원을 이루는 것이요,
    성공하는 것이요,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요, 본래의 자기를 찾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봄을 제대로 찾기 위해서는 승두(밧줄)를 잡고 간절한 마음으로 한바탕 힘을 써야 합니다. 그냥 남 따라 설렁설렁 힘을 쓰고 내 편한 대로 힘을 쓰면 잘 되지가 않습니다. 도대체 봄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봄을 찾으려면 온 산천을 돌아다녀야 합니다.
    짚신이 다 닳도록 헤매고, 때로는 추위가 뼈에 사무치도록 돌아다녀야 합니다.​

    그렇게 다니다가 지쳐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 그토록 찾았던 봄이 뜰 안에서 매화 향기가 되어 웃고 있습니다.

    봄이 내 집에서, 내 안에서 무르익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봄 향기,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어찌 그냥 얻을 수 있겠습니까?
    기도를 하든 염불을 하든 참선을 하든, 소원을 이루고 성공을 하려면, 봄을 찾아 온 산천을 돌아다니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간절해야 하는가? 먼저 무엇을 이루겠다는 원願이 분명하고 간절해야 합니다. 이 분명하고 간절한 원에 정성이 더해지면 힘이 생겨나 원력이 되고, 힘이 있으니 이룰 수 있습니다. 장애에 굴복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꼭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놀라운 인연을 만나면 꽃피는 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요 순리입니다.​

    그럼 어떠한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가?
    무릎이 아프고 몸이 아프도록 천배 만 배를 해야만 정성을 기울이는 것인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성의 첫째는 집중입니다. 무엇보다 집중을 잘해야 합니다.
    신실한 마음으로 집중을 잘하여 한 번의 절이라도 정성스럽게 하면 됩니다.​

    나의 젊은 시절에 통도사 극락암 독성각에서 기도를 하던 불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나반존자'를 독송하며 기도하였는데, 처음에는 나반존자를 염송하다가, 나중에는 '나만 좋다, 나만 좋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반존자'에 집중하지 않고, 의식 없이 기도하다 보니, '나반존자'를 '나만 좋다'로 바꾸어 부른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는 진실함과 절절함이 배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몸뚱아리만 법당에 있게 되고, 아무리 많은 절을 하여도 효험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음을 잘 모으지 못하는데 성스러운 도량을 찾아간들 무엇합니까?
    관세음보살의 도량인 보타산, 문수보살의 상주처인 오대산, 보현보살이 늘 머물러 계신다는 아미산, 지장보살의 영험도량인 구화산을 찾아간들 무엇합니까? ​

    문제는 깊은 신심이요, 깊은 신심은 집중력입니다.
    신심이 깊은 불자에게는 보타산 · 오대산 · 아미산 ᆞ구화산이 따로 없습니다.
    굳센 원력으로 집중을 잘하여 기도하면, 성지를 가지 않고도 지금 이 자리에서 불보살님들을 친견하고 가피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염불기도를 하든 다라니기도를 하든 독경 · 사경을 하든, 집중을 잘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이 최고의 정성이요 기도 성취의 지름길입니다.​

    이 방법으로 하면 될까 안 될까?
    과연 불보살님의 가피가 있기는 한 것인가?
    도대체 얼마나 해야 되고 언제 된다는 말인가?​

    이렇게 불안해하고 스스로를 흔들면 기도도 수행도 인생살이도 잘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할 때 일어나고 솟아나는 번뇌들을 따라가게 되면, 그 기도는 그야말로 '말짱 도루묵'이 됩니다.​

    집중은커녕 일어나는 번뇌를 따라 움직이는데 어찌 정성스러운 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