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부처: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옛말이 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다 잘 되어간다는 뜻이다.
행복한 가정은 가족들 서로가 닮아 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그 구성원들 각자가 따로따로다. 흔히들 말하기를, 집은 있어도 집안은 없다고 한다. 가정의 본질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 이해와 사랑으로 엮인 영원한 공동체다. 이 공동체 의식이 소멸되면 썰렁한 집만 휑뎅그렁하게 서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마치 혼이 나가버린 육신과 같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비행이 사회 문제로 대두하게 된 그 근원을 추구해 보면 가옥만 남은 가정의 부재에 까닭이 있을 것 같다. 이해와 사랑이 있는 따뜻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비행이나 탈선에 물들 위험이 적다.
가정(家庭)이란 어떤 곳인가?
우리가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 우리가 없으면 우리를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곳, 우리가 죽으면 통곡하는 곳,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될 수 있고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아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다. 이런 아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서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일찍이 농경사회에서는 이런 위협이 적었는데, 일터가 입 안이나 농경지가 아닌 산업사회의 냉혹한 기구로 옮겨지면서 그 위협이 가속화되었다.
가정의 구성원인 가족들-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들, 딸 혹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형제자매들끼리 마주 앉아 차분히 속마음을 열어 놓고 대화를 할 기회가 별로 없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해라, ~하지 말라' '~해 달라, 싫다' 등 일방적인 명령이나 요구와 불만의 표시만 있지, 거기에 이해와 사랑으로 주고받는 대화가 없기 때문에 딱딱하고 무표정한 집만 버티고 있을 뿐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어떻게 이런 재미없는 집에 머무르려고 할 것인가. 자연히 밖으로 나돌 수밖에, 밖에 나가 유유상종, 같은 무리들끼리 어울리다 보면 해서는 안 될 일에도 빠져들기 십상이다.
오늘날의 가정은 한낱 숙박소로 변모되어 간다.
각자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에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기회가 별로 없다.
식사 시간도 각각이고 밖에서 돌아오면 저마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나 TV 아니면 전화에 매달려 지낸다. 해체되어 가는 가정에 활기를 되찾게 하려면 어머니나 아버지 쪽에서 의식적으로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사랑스런 자식을 기르려면 먼저 사랑스런 부모가 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부부끼리 혹은 집안 식구들 사이에 대화를 이루려면 기본적인 원칙들이 지켜져야 한다.
첫째, 대화할 때 중요한 것은 내가 말하는 것보다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일이다. 아내가 어린 자식들이라 할지라도 대등한 인격체로서 그들을 대해야만 온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일방적인 훈계나 타이름은 결코 대화가 아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며 바라고 있는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듣는가이다.
둘째, 대화를 할 때는 우리가 미리 짐작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
한집안에서 살아온 가족들이므로 오래전부터 가까이서 지켜보아 온 관념 때문에 새로운 면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생각이나 몸이 굳어 있지만, 아이들은 꽃처럼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고 있기 때문에 낡은 자로 재려고 해서는 그들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영혼에는 나이가 붙지 않으므로 나이가 어리다고 지레짐작으로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더 따질 것도 없이, 우리 자신들이 어렸을 때,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완고한 부모님들과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을 되돌아보라. 대화에는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도록 해야 한다.
셋째, 대화할 때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려고 논쟁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거나 이기려고 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우리가 대화를 갖는 것은 우리 마음과 느낌을 서로 나누기 위해서다. 나눔으로써 이해의 길이 열리고 풍요로워진다. 대화에는 이기거나 지는 일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느낌을 상대방에게 드러내고 상대방의 느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는 자신의 느낌이 받아들여질 때 바로 자기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의 느낌이 거절당할 때는 자기 자신이 거절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와 같은 느낌을 통해 사람의 사이가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정에서는 유교적인 근엄 때문인지 칭찬과 격려의 말이 적다.
자식이나 아내 자랑은 못나고 어리석은 불출로 몰아붙였다. 우리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아도 꾸중과 야단을 맞았던 기억만 남아 있지,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들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가족과 친지들에게서 듣는 칭찬과 격려의 말은 우리 삶을 이루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이 칭찬과 격려가 우리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얻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시간과 친절과 관심을 기울일 때, 또는 집안 식구들과 우리 자신을 나눌 때, 그것은 결코 그날 하루 일어났다가 곧 잊혀 지고 말 일이 아니다. 이 기울임과 나눔은 평생을 두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쉰다. 오늘의 체험은 내일의 기억이 된다. 부부간이건 부모 자식 간 이건 가족 상호 간의 관계가 이해와 사랑에 바탕을 둔 관계일 때, 그 가족이 이해와 사랑을 삶의 원리로 택했을 때, 이 이해와 사랑은 그 집안의 울타리를 넘어 이웃에 널리 퍼져 나간다. 이것이 사랑의 메아리다.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라. 이해와 사랑으로 열린 대화를 나눔으로써 차디차고 무표정한 집을 맑고 향기로운 집안으로 바꾸어야 한다. <96.1>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법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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