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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

나와 남이 절대로 둘이 아니다,-청화스님

by 회심사 2022. 5. 3.

나와 남이 절대로 둘이 아니다,-청화스님


    우리 불자들이 그냥 당장에 쉽게끔 부처님이나 도인들 같이 "나와 남이 절대로 둘이 아니다. 천지 우주가 나와 더불어서 둘이 아니다." 하는 그 자리는 증명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증명은 견성오도를 해야 합니다.

    ​ 견성(見性)이라. 볼 견(見)자, 성품 성(性)자. 내 성품의 본성인 동시에 우주의 본 성품을 깨달아야 견성입니다. 이렇게 되면 저절로 자기 마음을 조작 않더라도 바로 저 사람과 나와 원래 둘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느껴 버리는 것이고, 우주가 하나의 생명으로 분명히 봐지는 것입니다.

    ​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는 설사 이렇게 법의를 입고, 알기로는 모두가 다 연기법이 아닌가. 이렇게 제법 알기는 알아도 여실하게 말로 뜻으로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

    우리는 지금 윤리의 퇴폐 문제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절감하고 있는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남한테 함부로 하지 말아라. 베풀어라. 이런저런 윤리적 덕목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도 우리의 사회는 윤리의 길로 나아가지를 않는단 말입니다.

    ​ 지금 기독교 인구만 보더라도 세계적으로 18억쯤 믿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불교는 그 반 틈도 못됩니다.
    그러나 유교, 도교, 이슬람교, 그런 종교 인구를 합할 때는 세계 인구 반 틈을 훨씬 상회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마땅히 그와 같이 종교 인구가 반 이상 된다고 생각할 때는 세계가 보다 화평스럽고 화해하고 정말로 평화스러운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못되고 있습니다.

    ​ 어느 종교든 봉사를 역설하고 또는 사랑을 역설하고 자비를 역설합니다.

    ​ 왜 그렇게 못 되는 것인가?
    이것은 바른 철학이고 바른 가치관이 확립이 안 되어 있습니다.
    우리 불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양보하면 모두가 쉬울 것입니다.
    홍로일점설이라, 모두가 서로 양보하고, 부처님 사상대로 따르면 다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 줌의 눈을 뜨거운 화롯불에 넣으면 순식간에 녹아 버리듯이 그와 같이 모두가 다 만사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사상이 제대로 안 베어져 있단 말입니다.

    ​ 부처님이 거짓말하신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고 하면 분명히 둘이 아닙니다.
    천지 우주가 오직 동일 불성, 일미 평등한 동일 불성에서 나왔다고 하면 분명히 그러한 것입니다.

    ​ 나는 제법 양심이 바르고 나는 지금 승복을 입었는데 그대는 불교도 안 믿고 승복도 안 입고 그대는 죄가 많지 않은가? 그대와 나는 거리가 굉장히 멀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이 드시겠지요.

    ​ 그러나 부처님의 차원, 성자의 차원, 바른 도리 차원에서 볼 때는 지금 도둑질한 사람과 나는 똑같습니다. 본질도 똑같고, 현상으로 나왔다 하더라도 사실은 원래는 똑같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에 제법(諸法)이 공(空)이라. 인연 따라서 나온 것은 모두가 공입니다.

    ​ 불자님들 장소가 더우셔도 이런 대승적인 진여 연기법에 대한 말씀은 잘 명심해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부산은 그야말로 부처님 가르침이 아주 열성적인 훌륭한 도읍지입니다. 그래서 기라성 같은 큰 스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많은 법문을 들으셔서 부산 불자님들은 굉장히 마음이 순숙해져서 정말로 진여불성에 가까워지신 분들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 그렇기 때문에 연기법이 조금 어렵더라도 그때그때 다시 또 듣고 또 듣고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다문선지식(多聞善知識)이라. 많이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잠재의식(潛在意識)에 참다운 부처님 도리가 차근차근 차곡차곡 거기에 축적이 되어서 우리 마음이 불성으로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 인연 따라서 잠시간 나왔기 때문에 무상(無常)입니다.
    어느 순간도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를 않습니다.
    저는 어느 법회 때마다 꼭 잊지 않고 말씀을 드립니다만 일 초 전과 일 초 후의 자기가 똑같지가 않습니다. 하물며 오늘 자기와 어제 자기는 현저한 차이가 있단 말입니다.

    ​ 우리 중생들은 10년 전이나 10년 후나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면 나도 나이가 많이 드는구나. 그렇게 느끼지만 순간순간은 미쳐 못 느끼지 않습니까. 사실 어느 순간도 같은 자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 전후단멸(前後斷滅)이라. 앞서 지나간 자기와 지금 자기가 같지 않은 것인데 우리 중생들이 이것이 연속되니까 고유한 내가 있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 어느 순간도 같은 것이 없습니다.
    어려운 말로 하면 어느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 따라서 어느 공간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물리학적인 도리 아닙니까. 어느 순간도 같은 모습이 없다고 생각할 때 그런 것이 어디 있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