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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승(三乘)과 『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

by 회심사 2017. 4. 26.


卍-삼승(三乘)과 『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卍
    1. 삼승(三乘)

    삼승(三乘)에서 '승(乘)'이란 '수레와 같은 것을 탄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삼승(三乘)이란 '3가지의 탈 것'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탈 것'이란 불교의 궁극적 경지인 깨달음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 의지해야 하는 가르침을 수레에 비유한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곧 이 차안(此岸)의 세계에서 피안(彼岸) 세계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가르침을 이처럼 탈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 수레[乘]나 지혜의 배[船]로 비유하곤 합니다.

    삼승의 각 항목을 살펴보면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을 말합니다.
    첫째, 성문승(聲聞乘)이란 '소리 듣는 것을 탄다'라는 의미로, 사성제(四聖諦)의 법문에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부처님께서 설하신 사성제의 법문을 듣고 이를 관(觀)하여 해탈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문승(聲聞乘)은 초기 불교의 이상으로서 부처님의 제자가 타는 수레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둘째, 연각승(緣覺乘)이란 '인연(因緣) 깨닫는 것을 탄다'라는 의미로 12인연법에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파불교 시대의 이상이었던 연각승은 스승을 찾지 않고 스스로 12인연법을 관(觀)하여 깨달음의 세계로 갑니다. 그래서 연각승을 달리 독각승(獨覺乘)이라고도 부르는데 말 그대로 '혼자서 깨닫는 자의 탈것'이란 뜻입니다.

    셋째, 보살승(菩薩乘)이란 '보살이 탈 것'이라는 의미로 큰 수레(大乘)를 타는 구도자가 의지해야 할 6바라밀의 법문을 말합니다. 보살은 초기 대승불교의 이상인데 보살은 육바라밀에 의지하여 자신과 남을 해탈케 하고 마침내 성불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습니다.

    2. 일승(一乘)과 이승(二乘)

    이렇게 불교사의 발전에 따라 등장하는 이상과 그들이 의지하는 가르침에 따라 성문, 연각, 보살이라는 삼승이 생겨났습니다. 이 삼승 가운데 성문승과 연각승만을 따로 떼어내어 이승(二乘)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일승(一乘)이란 삼승은 모두 방편이고 모두가 부처님이 되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것만이 참된 진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달리 일불승(一佛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3. 『묘법연화경』과 일불승(一佛乘)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이나 부처님을 지향하는 일승(一乘) 사상에 중점을 두고 성문승과 연각승을 '작은 탈 것'이라는 의미에서 소승(小乘)이라고 낮춰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각각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성문승(聲聞乘)을 '작은 크기의 탈 것[小乘]', 독각승(獨覺乘)을 '중간 크기의 탈 것[中乘]', 보살승(菩薩乘)을 '큰 크기의 탈 것(大乘)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화경』에서는 이 같은 분별적 구분을 넘어 진실한 것은 오직 일승(一乘)뿐이라고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은 모두 일승(一乘)을 지향하는 방편(方便)일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모두 일불승(一佛乘)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법화경』의 가르침입니다.

    오늘날 유통되고 있는 『법화경』은 그 내용이 한꺼번에 성립된 것이 아니고 약 100여 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성립한 경전입니다. 『법화경』은 이 같은 성립시기에 따라 세 부분으로 분류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성립한 부분이 2품에서 9품에 해당하는 8개품입니다. 이들 8개품을 제 1류라고 부르는데 기원후 약 50년경에 성립된 부분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법화경』의 가장 원형적인 내용이며 그 핵심 사상은 바로 일승(一乘) 사상입니다.

    4. 삼차(三車)의 비유

    『법화경』에는 이 삼승(三乘)을 설명하기 위해서 네 종류의 수레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바로 '양이 끄는 수레[羊車]'입니다. 양이 끄는 수레이다 보니 힘이 약합니다.
    이것은 바로 초기 불교의 이상이었던 성문(聲聞)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사슴이 끄는 수레[鹿車]'가 등장합니다. 여전히 많은 짐을 실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양보다는 힘이 뛰어납니다. 이는 부파불교 시대의 이상이었던 연각(緣覺)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소가 끄는 수레[牛車]'가 등장합니다. 바야흐로 튼튼하고 많은 짐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수레가 등장했습니다. 이는 바로 초기 대승불교 시대의 이상이었던 보살(菩薩)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삼승(三乘)입니다. 풍부하고 아름다운 비유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법화경』에서는 삼승을 이처럼 수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법화경』에서는 소가 끄는 힘센 수레가 등장했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하나의 수레가 등장합니다. 바로 '크고 흰 소가 끄는 수레[大白牛]'입니다. 그것은 바로 『법화경』의 핵심 사상인 불승(佛乘) 또는 일승(一乘), 일불승(一佛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5. 회삼귀일(會三歸一)

    이상과 같이 『법화경』에서는 비유를 통해 성문, 연각, 보살이라고 하는 차별적 삼승(三乘)을 보여 준 뒤 이들 삼승은 결국 일승(一乘)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설합니다.

    일승의 드높은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삼승이라는 도구를 빌렸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에서는 그 같은 삼성의 차별상을 버리고 일승의 세계로 돌아오라고 설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참된 진실의 세계이기 때문에. 초기불교의 성문과 부파불교의 연각, 초기 대승불교의 보살로 대변되는 삼승은 모두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 각각의 방편을 버리고 진실한 세계, 즉 '오직 하나의 수레'인 일승(一乘)으로 돌아오라.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타는 수레인 불승(佛乘)이다. 이처럼 차별적 방편을 버리고 진실의 세계로 돌아와 하나가 되는 것을 회삼귀일(會三歸一), 즉 셋이 모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법화경』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