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경 22-
우리가 마음과는 달리 의도적이 아니더라도 죄를 짓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대겁 생으로 살아오면서 몸과 마음속에 쌓인 업 때문이다.
억겁 생을 두고 저 먼 과거로부터 나쁜 생각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나쁜 생각이 나쁜 업을 만들어서 우리의 몸과 마음 가운데 배어진 까닭이다.
그래서 죄업도 여러 가지 이다, 죄업의 종류에 따라서 죄과를 맡아보시는 부처님의 역할이 다르다 .
그래서 업의 종류에 따라서 그 업을 소멸해 주시거나 감면해 주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다.
참제업장십이존불 (懺除業障十二尊佛) 업장을 소멸해 주는 열두 부처님
나무참제업장보승장불 (南無懺除業障 寶勝藏佛)
보광왕화렴조불 (寶光王火炎照佛)
일체향화자재력왕불 (一切香火自在力王佛)
백억항하사결정불 (百億恒河沙決定佛)
진위덕불 (振威德佛)
금강견강소복괴산불 (金剛堅强消伏壞散佛)
보광월전묘음존왕불 (普光月殿妙音尊王佛)
환희장마니보적불 (歡喜藏摩尼寶積佛)
무진향승왕불 (無盡香勝王佛)
사자월불 (獅子月佛)
환희장엄주왕불 (歡喜莊嚴珠王佛)
제보당마니승광불(帝寶幢摩尼勝光佛)
우리들 마음속의 참회를 받아주시는 분이 바로 위에 열거한 열두 분의 부처님이시다.
이 열 두 부처님은 고액 (苦厄) 가운데서 죄악을 느끼고 참회하여 해탈한 성자들이다.
때문에 이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면 죄업이 소멸되고 고액을 벗어날 수 있다.
나의 내면 깊숙이 진심 어린 기도를 통해 참회 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참으로 인간의 본성을 꿰뚫은 멋진 가르침 이다.
그러면, 우리들의 내면의 뉘우침을 받아주시는 열두 부처님의 역할을 하나하나 알아보자.
나무참제업장 보승장불
우리들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남에게 아무 대가(代價)도 치르지 않고 신세를 지게 되면 그것이 다 빚이 된다.
이 보승장 부처님께 참회를 하게 되면 그러한 허물과 빚들을 탕감 받는다고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애꿎게 짐승들을 때리고 학대하는 것,
모든 생명체를 괴롭히거나 신세를 젓거나 어떤 허물이라도
이 보승장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 이부처님께 참회 하면 소멸된다. 하였고
보광왕 화렴조불
돈과 재물로 사치하고 낭비하고 또 이런 것들로 남에게 상처를 준 허물이 있다.
자기 재물이라고 흥청망청 함부로 낭비한 죄. 공공기물을 함부로 다루는 것도 마찬가지 이다.
이런 죄를 보광왕화렴부처님께 기도드리면 용서를 받는다.
일체 향화자재력왕불
이 부처님은 진리의 향기를 뿌려서 세상의 더러운 때(垢)를 없애주시는 분으로서
이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 계행을 잘 지키지 않고 파괴한 죄를 탕감시켜 준다.
백억 항하사결정불
살생을 한 사람들이 이 부처님께 기도드리면. 살생죄의 많은 부분을 탕감 받게 될 것이다.
이 부처님은 死卽死罪 남을 죽었기 때문에 나도 죽는 벌을 받는 죄인을 돌보는 부처님이시다.
죽음을 앞둔 분들을 보살펴서 편안한 마을을 갖도록 한 선행으로 부처님이 된 분이시다.
요즘도 사형수 죄인 또 그 죄인의 가족을 찾아가서 돌보는 분들이 있다.
박삼중 스님은 그렇게 예를 쓰서 사형수가 사형의 죄를 면하게 한 것도 여러 번 있다.
진위덕불 : 은 삿된 음행, 사음 죄를 탕감해 주시는 부처님이다.
금강견강소복괴산불
이 부처님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굳고, 강한 마음으로서 모든 죄업을 부셔 흩어버리는
부처님으로서 지옥에 떨어질 죄도 소멸 되도록 하시는 부처님이다.
웬만큼 큰 죄도 이 부처님을 부르면 죄의 많은 부분이 상쇄될 것이다.
부처님께 참회하면 지옥 고를 면한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보광월전묘음존왕불
이부처님은 둥근 달과 같이 맑고 깨끗한 빛과 밝고 깨끗한 음성으로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부처님으로서
이 부처님을 부르면 설법을 들은 것과 같은 공덕을 짓는다 했다.
이 부처님은 법문을 많이 듣거나 공부를 많이 한 사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하고 불법을 펼친 그러한 사람이 죄를 지은 게 있을 때 변호해 주시는 부처님,
다시 말해 변호사 부처님이다. 그러기에 부처님 경전을 읽으면 공덕이 되어서
업장이 녹는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법문을 많이 공부하는 게 참으로 중요한다.
환희장마니보적불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걸핏하면 성질을 내는 마음,
더럭더럭 화를 내는 마음,
몸과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진심 때문에 죄를 지은 사람이
이 부처님을 불러 모시면 성낸 죄업을 탕감 받게 된다.
무진향승왕불 : 생고(生苦)와 사고(死苦), 태어나는 고통과 죽을 때의 고통이 크다고 하는데.
그와 같은 고통을 들어주시는 부처님이 무진향승왕불이다.
아이를 출산할 때 또 목숨을 마칠 때 임종 시에 고통이 덜해진다. 생사의 고통을 받을 죄업이 소멸한다.
사자월불
축생보(畜生報)를 받을 그런 죄업을 지은 중생들이
이 부처님을 불러 모시면 축생으로 태어날 업을 면하게 된다.
환희장엄주왕불
아무리 적은 물건이라도 주지 않았는데 가지면 도적질이라.
이 부처님은 도적질한 죄를 감면해 주시는 부처님이다.
제보당마니승광불
상대방을 괴롭힌 죄가 또한 큽니다. 그 죄보(罪報)를 탕감시켜 주시는 부처님이다.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중생도 진심으로 뉘우치면 반드시 용서를 하시다.
그것은 마치 아무리 말썽을 부리는 자식이라 할지라도 그가 새로운 사람이 되고
개과천선 (改過遷善)하였다면 부모는 그 자식의 지나간 잘못은 탓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열 가지 악업을 참회합니다.
살생중죄금일참회 殺生重罪今日懺悔 살생으로 지은 죄업 오늘 모두 참회하며
투도(偸盜)중죄금일참회 도둑질로 지은 죄업 오늘 모두 참회하며
사음(邪淫)중죄금일참회 사음으로 지은 죄업 오늘 모두 참회하며
망어(妄語)중죄금일참회 발림말로 지은 죄업 오늘 모두 참회하며
기어(綺語)중죄금일참회 속임 말로 지은 죄업 오늘 모두 참회하며
양설(兩舌)중죄금일참회 이간질로 지은 죄업 오늘 모두 참회하며
악구(惡口)중죄금일참회 악한말로 지은 죄업 오늘 모두 참회하며
탐애(貪愛)중죄금일참회 욕심으로 지은 죄업 오늘 모두 참회하며
진에(瞋 )중죄금일참회 성냄으로 지은 죄업 오늘 모두 참회하며
치암(痴暗)중죄금일참회 어리석어 지은 죄업 오늘 모두 참회합니다.
십악참회란 열 가지 악행을 알게 모르게 저지른 것을 참회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이 작은 몸뚱이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가.
인간의 죄업은 탐진치 삼독 을 근본으로 하여 몸과 입과 뜻을 동원해 나타내는 것이다.
그 몸과 입과 뜻으로 나타내는 죄업을 열 가지로 구분하였다.
첫째 몸으로 짓는 죄업은
1) 남의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 살생 죄 (殺生 罪)
2) 남의 것을 함부로 절취하는 투도 죄 (偸盜 罪)
3) 혼인관계에 있지 않는 남녀와 간음하는 사음 죄 (邪淫 罪)등이 있고,
둘째 입으로 짓는 죄업은
4) 거짓말 (妄語)
5) 발림 말 (綺語)
6) 이간질 (雨舌)
7) 악한 말 (惡口)하고,
셋째 뜻으로 짓는 죄업은
8) 탐애 (貪愛) 심 내고
9) 성 잘 내고 (瞋 )
10) 어리석고 (痴暗)한 것이 모두 자신도 모르게 혹은 알게 저지른 열 가지 무거운 죄이다.
이것은 마치 하찮은 불씨가 온 들녘과 산야를 불태우듯 하찮은 일들이 다른 중생에게는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는지 그것을 참회하자는 것이다.
진심 (眞心)으로 뉘우치는 (懺悔) 죄인은 누구나 그 업장이 소멸된다 하였다.
이제 우리 진심으로 참회하여 겹겹이 쌓인 업장 (業障)을 소멸하자.
우리가 짓는 죄가 어디 열 가지뿐이겠습니까? 그러나 그중에도 가장 자주 짓고 많이 지으며
결정적인 그런 악업이 바로 십악업(十惡業)입니다.
우리 삶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세 가지 요소, 그것을 부처님께선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짓는
신`구`의 삼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신`구`의, 삼업으로 해서 형성되어지는 악업이 바로 십악업 입니다.
살생, 투도, 사음은 몸으로 짓는 것이며, 망어, 기어, 양설, 악구는 입으로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탐애, 진에, 치암은 생각으로 짓는 것입니다.
앞의 십악참회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 합니다.
살생중죄금일참회
살생은 대우주의 법칙을 파기하는 것이다.
특히 불교에서는 모든 계율 가운데 살생죄를 대단히 중대하게 취급했다.
모든 삼라만상들은 생명을 바탕으로 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온 모든 생명들은
그것이 비록 미물중생이라 하더라도 살기 위해 나온 생명체이기에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은 물론 어떤 미물중생의 생명까지도 함부로 대한다면 그 죄업이 클 수밖에 없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생명을 함부로 하면 네 목숨으로 대신 갚아야 한다."고 하셨다.
요절하는 사람, 일찍이 인생을 등진 사람, 이런 사람들은 전생의 업으로 인해서
또는 금생에 지은 업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금생에 자주 살생을 하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내생이 좋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 제자 한 분이 부처님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 세존이시여! 세존께선 모든 미물 중생들은 그 모두가 생명이 수승하기 때문에
함부로 생명을 앗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가사(袈裟)가운데는 이가 있지 않습니까?
세탁을 하게 되면 이가 죽게 되는데, 그런 때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래, 너희들 말을 충분히 이해하겠다.
비육일(非六日)이어든 부득세완내의(不得洗 內衣)하라.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음력 엿샛날, 열엿샛날, 스무엿샛날 그 때는 방생을 제도하는 신장들이
이 지상을 시찰하며 다니시니까, 부득이 하여 죽는 생명들을 불쌍히 여기서 원한심이 없게 하고
방생하는 날이니, 그날 세탁을 하도록 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살생을 전혀 하지 말라 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사정에 따라서는 살생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또 다음과 같은 단서를 달았다.
건강을 위해서는 삼정육, 오정육, 칠정육, 구정육등을 얘기 하시면서
고기를 전혀 먹지 말라고 말리지는 않으신 것이 있다.
계를 보면 "너를 위해서 잡지 않은 고기, 너를 위해서 잡았다는 말을 듣지 않은 고기,
나를 위해서 잡았구나 하는 의심이 들지 않는 고기, 그 짐승이 죽을 때 비명소리를 듣지 않은 고기,
그런 고기들은 먹어도 괜찮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생명이 다해서 자연히 죽은 고기, 미리 약속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연히 먹게 되는 고기,
살생을 하지 말라는 말씀은 미물중생이라도 자비심이 없이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것이지
육류 음식을 전혀 먹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투도중죄금일참회
우리 인생은 수명이 정해져 있다. 수명은 무엇인가? 수명은 시간이다. 인생은 시간이고, 삶도 시간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시간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가르침 이다. 부처님께선
"지금 이 순간이 항상 너의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살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러한 각자의 귀중한 시간을 투자해서 재산도 모으고 명예도 얻고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한다.
그러기에 각자 그러한 자기 나름대로의 소중한 시간을 인생을 투자해서 형성한 물건을 훔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을 훔치는 것과 같다.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아야 한다. 남을 시켜서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노력을 들이지 않고 벌려고 하는 것은 결코 올바를 투자가 아니기에 재앙을 면키 어렵다.
남의 인생을 훔치는 과보야 말로 대단히 크지 않을 수 없다. 그 응보로 동물의 과보를 받게 된다고 했다.
사음중죄금일참회
사람도 생식본능에서는 짐승과 똑같다. 그래서 방종하기가 쉽다.
그런데 사람과 짐승이 다른 것이 짐승은 새끼가 필요할 때만 자웅이 만나는데
사람은 새끼하고 관계없이 아무 때나 만날 수가 있다. 그래서 사람이 방종을 하게 되면
그 영혼이 탁해지고 마음이 나빠진다.
그 나빠진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게 되기 때문에 사음을 해서는 안 된다는 하는 것이다.
정조를 함부로 여기면 마음이 산란해 진다.
사음을 하게 되면 몸에 그러한 기(氣)가 입혀져 버려서 번뇌가 많아진다.
같은 음행이라도 정음은 죄가 되지 않는 것은, 한사람과 한사람이 만나 영원을 향해 가는데
산란심이 없이 살아가는 마음 자세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망어중죄금일참회
거짓말 하지 말라.
거짓말 역시 재앙을 불러온다. 거짓말을 하게 되면 사회가 교란을 일으켜서 혼란을 가져온다.
이 사회에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 시키는 원인 중에 하나가 거짓말 때문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거짓말을 여사로 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없으면 시회가 그만큼 안정이 될 겁니다.
기어중죄금일참회
꾸며대는 말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지 않다. 보고 들은 되로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꾸며서 자기 의견을 가미해 말을 한다는 것은 거짓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나는 다르게 말한다 해도 몇 사람 거치다 보면 처음 말과는 전혀 다른 말이 되고 말겠지요.
그래서 자기의견을 넣어서 말하면 기어중죄가 됩니다.
원래 말한 사람의 의도하고는 다른 차원으로 전달되니까 죄가 되는 것이지요.
양설중죄금일참회
이간질 입니다.
이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쪽에 가서는 저렇게 말해서 싸움을 붙이는 두 가지 말입니다.
이간질을 하지 않았는데도 결과적으로는 이간질하게 될 경우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해서 말하다보면 이간질이 되는 수가 있다.
비록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똑같이 말하지 않다 보면
본의 아니게 이간질한 것이 되는 그런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말은 옮기지 말아야 하며, 남에게 이익 되는 말과 칭찬하는 말과 진리 이외의 말은
하지 않는 것이 부처님 뜻입니다.
악구중죄금일참회
욕설입니다. 남을 헐뜯는 말입니다. 남을 헐뜯는 것은 자기를 헐뜯는 일입니다.
남의 약점을 보기 전에 먼저 자기의 약점을 보라하셨습니다. 남을 헐뜯는 사람은 모자라는 사람입니다.
잘되는 법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남을 이기려고 하지 말고, 너 자신을 이기도록 해라"
"남을 헐뜯기보다, 너를 먼저 헐뜯어라"고 하셨습니다.
<망어 기어 양설 악구 4가지는 입으로 짓는 죄>
탐애중죄금일참회
탐애라고 하는 것은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심, 자기 혼자만을 위하는 마음이
밑바닥에 내가 깔려 있는 마음입니다. 불교에서는 나를 박멸하는 작업을 가장 중대하게 여깁니다.
탐욕은 나와 남을 갈라놓게 만드는 마음입니다.
진에중죄금일참회
걸핏하면 화를 내는 마음입니다. 참을성이 부족한 마음입니다. 참는다는 것은 기다림입니다.
기다리는 사람만이 성공합니다. 한 순간의 진심이 백겁 동안 쌓아 온 그런 공덕을 앗아 간다고 합니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좋은 관계를 가지는 사람이 적습니다.
치암중죄금일참회
치암은 어리석음. 우리는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배우는 만큼, 아는 것만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아는 것만큼 생각하고,
아는 것만큼 반성하고, 아는 것만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어리석음이라는 것은 모든 재앙의 근본입니다.
그러기에 모르는 것도 죄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살아오면서 어려가지 본이던 본의가 아니던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크기 때문에
항상 참회하는 마음으로 공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매일 매일 하루도 그르지 않고 참회를 해야 한다고 금일참회 하는 겁니다.
참회를 하는 것이 마음에 평화를 가져오는 길입니다. 안락을 가져오고 열반을 가져오는 길입니다.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백겁동안 쌓아 올린 많고 많은 죄, 한 생각 가다듬고 또 가다듬어서, 전부가 다 사라지게 해주십시오.
백겁 동안 쌓여져 온 많은 죄일지라도 일념, 진실로 참회하는 생각이 있으면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건초더미 한 순간에 태워버리 듯 그렇게 하나도 남김없이 소멸시킬 수 있다.
불씨 하나가 마른 풀을 다 태워버리는 것과 같이 참회하는 마음하나로 모든 죄가 남김없이 태워지리다.'하는
우리의 발원입니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忘)
죄망심멸양구공(罪忘心滅양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則名爲眞懺悔)
죄는 자성이 없고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죄는 본래 실체가 없지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있는 악심과 분별 망상 심을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다.
마음속에 분별망상심만 없어지면 (죄의 씨앗만 없어지면) 죄도 마음도 (죄의 씨앗) 모두 다 공해지면
이것을 불러 진 참회라 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가호지묘력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사노라면 여러 가지 어려운 일, 액난, 괴로움, 쓰라린 일들이 닥쳐옵니다.
이렇게 현실사회는 넘어야 할 능선도 많고 괴로움도 많기 때문에 지긋한 마음으로 천수경 한편을
척 독경하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면서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
우선적으로 먼저해야할 급한 일이 아니겠는가.
마음 가운데 삼보(三寶)를 모셔야 합니다. 삼보란 3가지 거대한 보배입니다.
마음이 보배가 아니면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제품도 보배가 될 수 없습니다.
즉 말도 보배가 될 수 없고, 생각도 보배가 될 수 없고, 행동도 보배가 될 수 없습니다.
말과 행동과 생각을 일으키는 마음이 문자 그대로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보배의 마음이 되어야만 합니다.
여기 한 그릇의 깨끗한 물이 있다. 이 물을 어진 소가 마시니 우유가 되는데 독한 뱀이 마시니 독이 되었다.
(所謂蛇飮水하면 成毒하고 牛飮水하면 成乳達)
마찬가지다.
사람도 본래의 자성은 저 물처럼 맑고 깨끗하건만 마음을 잘못 사용하여
같은 물이 독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완전히 무죄체(無罪體)로 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인간을 부처님의 분신(分身)이라고 합니다.
갈고 닦음에 따라서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에서는 인간을 모두 죄를 진, 원죄를 짊어진 존재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부터 많은 차이가 나게 됩니다. 불교는 만 중생이 모두 다 부처님의 분신이라 이야기하고
부처님과 한 덩어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가 짓는 죄가 어디 열 가지 뿐이겠습니까? 그러나 그중에도 가장 자주 짓고 많이 지으며 결정적인
그런 악업이 바로 십악업(十惡業)입니다.
우리 삶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세 가지 요소,
그것을 부처님께선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짓는 신`구`의 삼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신`구`의, 삼업으로 해서 형성되어지는 악업이 바로 십악업 입니다.
살생, 투도, 사음은 몸으로 짓는 것이며, 망어, 기어, 양설, 악구는 입으로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탐애, 진에, 치암은 생각으로 짓는 것입니다.
이렇게 누구라도 쉽게 지을 수 있는 열 가지 잘못된 것을 참회하라는 것이다.
참회를 함으로서 업장이 소멸된다 함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가령 사람을 죽였어도 참회만 하면
그 업장이 저절로 소멸된다는 그런 막연한 해설이 아니다. 업장이 소멸되도록 노력해야한다.
부처님께서 한 때에 왕사성중 기사 굴에 계셨다. 그때에 아란존자가 성중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벌판을 지나게 되었다.
들판에는 마침 오곡이 누렇게 맺고 있었다.
아란존자가 영글어 가는 곡식이 하도 탐스러워 손으로 어루만졌다.
존자가 기사 굴로 돌아가자 부처님께서 꾸짖었다.
아란존자여 그대는 농부가 피땀 흘려 지은 농사를 그대의 잘못으로 떨어뜨렸다.
그것은 비록 작은 잘못이지만, 그대는 모르고 저지른 잘못이나 그 업장이 해탈을 얻는데
얼마나 큰 과보의 지장이 될는지 모른다.
그 업장을 소멸하려거든 그 농부의 집에 가서 갚아 주고 오라. 」
이렇게 부처님 말씀이 끝나자 아란존자는 소가 되어
그 농부의 집에서 뼈가 빠지도록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소의 몸으로 3년 동안 일을 하고 있을 때 그날은 마침 과보의 업보가 끝나는 날이었다.
소가 된 아란존자는 주인을 불렀다. 주인은 소가 말을 하니 하도 이상하여 얼른 외양간으로 갔다.
오늘 이 집에 떼를 지은 도둑이 들어 올 테니 500명이 먹을 수 있는 떡과 술을 준비하고
그들이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도록 고방 (庫房)문을 열어젖히시오. 그
렇지 않으면 주인 목숨을 앗아갑니다.
죽는 것 보다는 재물을 잃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
집주인은 기이한 일이라 소가 시키는 대로 500명이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을 준비 해 놓았다.
그러자 과연 500명 떼도둑이 들이 닥쳤다.
당시 인도에는 떼를 지어 다니며 도둑질하고 살상을 일삼는 무리가 있었다.
주인은 그들에게 음식 대접을 잘하고 방문까지 열어 놓았으니
아무리 도둑떼들이지만 인명까지 해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양껏 먹고 마시고 떠들다가 고방에 있는 곡식이며 값진 물건을 한 짐씩 걸머졌다.
바로 그때였다.
외양간의 소가 엄금엉금 걸어 나와 소의 껍질을 벗고 본래의 아란존자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도둑들을 향해 설법을 하였다.
그대들은 들어라.
나는 왕사성중 기사 굴 부처님 제자였느니라.
들판을 지나다가 나도 모르게 곡식을 떨어뜨린 과보로 3년 동안 소의 몸을 받고
이 고통으로서 업보를 받았는데 그대들은 남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고 살상도 하였으니
그 업보를 어이 하려는가? 」
이렇게 아란존자가 설교를 마치고 왕사성중 기사 굴로 돌아가자 도둑들이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었다.
얼마나 많은 죄악을 저질렀는가! 그들은 모두 존자의 뒤를 따랐다.
그들 500명은 모두 부처님 제자가 되어 진심으로 참회하고 마음을 닦아 아라한과 (阿羅漢果)를 얻었으니
불러 오백나한 (五百羅漢)이다.
오백의 도둑이 오백의 아라한과 (阿羅漢果)를 얻었던 것은 참회로서 업장을 소멸했기 때문이다.
옛날 후한 (後漢)의 진식 (陳寔)이란 사람 집에 도둑이 들어왔다.
도둑은 방안에 사람이 있으니 물건을 훔치지는 못하고 들보위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먼저 알고 있는 진식은 아들을 불러놓고 일장훈계를 하였다.
저 들도 위에 양상군자 (梁上君子)도 환경에 의해서 저렇게 되었거늘 하물며.
대들보위에 숨어있던 도둑은 하도 미안하여 들보 위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였다.
이에 진식은 도둑을 용서하고 얼마간의 용돈을 주어서 보냈다.
그 후 도둑은 자기의 잘못을 뼈저리게 느끼고 참회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큰 황금덩어리를 주었는데 주인을 찾아서 돌려주었다.
남의 물건을 훔치러 다녔던 마음. 저절로 횡재한 물건을 돌려주는 마음이
모두 따지고 보면 종이 한 장 차이다.
도둑도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도둑이 되라는 법이 없다.
잠시 잠깐 성(性)속의 악(惡)이라는 사기꾼에게 속았던 것이다.
그러면 참회할 줄 모르는 경우엔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은 자기가 잘못 해 놓고 그 잘못을 합리화 시키려는 속성이 있다.
때문에 거짓말일수록 소리가 높고,
남을 속이고 사는 사람일수록 겉은 더 번지려 하다.
도둑질하는 사람이 자기가 도둑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 그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요,
잘못을 잘못으로 솔직히 시인하지 않고 그것을 합리화 하려고 하는 것은 참회가 아니다.
오늘날 형사범의 재범률이 40퍼센트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그들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기는커녕 사회와 격리된 교도소 생활을 하는 동안
또 다른 범죄를 구상하고 모의하고 있다면 그것은 본인은 물론이요,
사회를 위해서도 매우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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