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경 17-
육향육서 란 말은 여섯六자 향할 向자, 여섯 가지로 마음이 향할 때
그곳으로 가지 않겠다고 하는 여섯 가지 서원 맹세입니다.
아약향도산 我若向刀山 도산자최절 刀山自催折
아약향화탕 我若向火湯 화탕자소멸 火湯自消滅
아약향지옥 我若向地獄 지옥자고갈 地獄自枯渴
아약향아귀 我若向餓鬼 아귀자포만 餓鬼自飽滿
아약향수라 我若向修羅 악심자조복 惡心自調伏
아약향축생 我若向畜生 자득대지혜 自得大智慧
이것이 육향 육서입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 인생을 돌아봅시다.
흔히들 인생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몸이라는 자동차를 주인공인 운전수가 오르막길로 운전하면서 사는 것이고,
하나는 주인공인 운전수가 전신을 잃고 자동차가 구르는 대로 내려가면서 사는 겁니다.
자동차인 이 몸이 욕망을 따라 흘러갈 때, 내려갈 때는 쉽고 재미도 있지만은
결국은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고 한 맺힌 후회가 뒤따르게 됩니다.
반대로 올라가는 길은 어렵고 힘들지만 정상에 서게 되면 온천하가 나의 눈 안으로 들어오면서
뿌듯함과 보람이 함께 합니다.
우리 불자들은 비록 힘들지라도 올라가는 쪽으로 나아가야 갰지요.
이 육향육서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풍족하고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자리로
스스로 끌어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도 부처님 앞에서 이 육향육서를 명세 했든 겁니다.
이제 육향육서 하나하나를 살펴보도록 합니다.
아약향도산 : 내가 만일 칼산에 가게 되면
도산자최절 : 칼산이 저절로 꺾어져 무너지고
刀는 칼 도자 칼끝이 뾰쪽, 뾰쪽하게 솟아있는 `칼산지옥' 내가 칼산지옥에 가면, 칼산이 절로 무너져라.
나무대비관세음 하는 마음으로 살게 되면 도산자최절이 된다는 것입니다.
앞에 십원에서 나무대비관세음 하는 말이 10번 되풀이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그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내 마음이 만일 도산지옥의 마음이 되었더라도 내가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스스로자, 무너질 최, 꺾어질 절, 스스로 도산지옥의 마음이 무너지고 꺾어진다는 뜻입니다.
아약향도산(我若向刀山) 내 마음이 칼산으로 향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칼산지옥의 마음이 있습니다.
남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분노할 때 거친 기운이 마음의 칼이 되어서
차곡차곡 쌓이게 되어서 칼산을 만들고 만다.
아약향도산이란 내가 만약에 도산지옥에 가게 되면'으로 풀이되지만은 이 말의 참뜻은
그렇게 남을 미워하고 원만 하는 마음이 바로 자기 마음속에 도산지옥의 마음이 된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을 콕콕 찌르고 아프게 하는 못된 마음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스런 마음들입니다.
남 안되길 바라는 마음, 남이 아파서 괴로워하고 비명을 울리면 위로해 줄 생각을 하지 않고
고소하다는 식으로 좋아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상대방의 마음을 찌르고 아프게 해서 상대방의 마음에서 피를 흘리게 합니다.
우리 피부에서 나오는 상처는 이내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아물기가 힘듭니다.
마음에 상처를 낸 상대방을 용서하기가 무척 힘든 모양입니다.
`용서해야지, 용서해야지' 하면서도 생가하면 생각할수록 분하고 원통하다,
`이해해야지, 이해해야지' 하면서도 이해가 안 된다고 하지요,
이를 때가 바로 도산지옥 에 빠져있는 겁니다.
자기 스스로 도산지옥을 만들어서 빠졌기 때문에 자기가 스스로 빠져나와야 한다.
어떻게 관세음보살 하던지 나무대비관세음 하던지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하고
염불 하면 빠져나와요.
참으로 분명한 사실은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저절로 마음이 착 가라앉고
마음이 맑고 깨끗해지더라." 관세음보살님과 같은 마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 내가 만약 칼산지옥에 가게 되면 칼산이 저절로 무너지고
아약향화탕 (我若向火湯) 화탕자소멸(火湯自消滅)
아약향화탕 내가 만약 끓는 물에 들어가면, 화탕자소멸 끓는 물이 스스로 없어지고, 라는 말인데
어떤 학자는 원문에 아약향화탕 화탕자소멸 할 때 여기 소멸 하고 아약향지옥 지옥자고갈 할 때
고갈 하고 두 글자가 바꿔지면 뜻이 더 자연스러운 말이 된다고 주장을 해서
어떤 책에는 이 부분이 바꿔져서 인쇄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아약향화탕 화탕자고갈 이렇게 읽으면 내가 만약 끓는 물에 들어가면 끓는 물은 스스로 말라지고,
물이니까 없어진다는 말보다 고갈, 말라서 없어진다는 말이 더 자연스럽지요,
아약향지옥 지옥자소멸 하면 내가 지옥을 향하게 죄면 지옥이 스스로 없다져라.
이렇게 해석이 되니까 더 맞는 말이 되는가. 같기도 해요
그런대요. 안 바꾸는 이유가 있어요, 우리가 흔히 화가 날 때 열 받는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요,
그 열을 내부에서 식히지 못하고 밖으로 뿜어내기도 합니다,
화가 너무 나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하지요.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화탕지옥이라 하는데
이렇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은 원래는 없어요,
내가 마음을 잘못 다스려서 생겼기 때문에 그 잘못 다스려서 생겨난 것만 없애버리면 자연
화탕지옥도 없어져 버립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아약향화탕 화탕자소멸 해야 맞는 말이 됩니다.
내가 만약 화탕지옥을 향하게 되면 그 화탕지옥으로 향하도록 생긴 그 마음이 없어지리다.
어때요 어색하지 않지요.
이렇게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고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살면 부글부글 끓는 마음도 가라앉고,
차디찬 얼음 같은 마음도 다 녹아 없어져서 자연 그 화탕이다 소멸되어 말라버리고 말겠지요.
아약향지옥 (我若向地獄) 지옥자고갈 (地獄自枯渴)
아약향지옥 내가 만약 지옥으로 향해 가면, 지옥자소멸 지옥이 절로 말라져라
우리의 마음 가운데는 지옥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그런 지옥 같은 마음이 될 때가 있습니다.
정말 어떻게 감당 할 수 없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 괴로움 이 말라서 없어지듯이, 지옥자소멸 하면 자연히 없어진다는 말인데,
지옥자고갈 하면, 오뉴월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물이 서서히 줄어들다가 끝내는 바싹 말라버리듯이
말라서 없어져 버리면, 일부러 물을 뿌리기전에는 비가 오기 전에는 물이 다시 생길 수 없습니다.
그르듯이 지옥도 바싹 말라버리면 다시 지옥갈 일을 저지르기 전에는 지옥에 갈일은 없다,
이런 뜻으로 지옥자고갈입니다.
신문 사회면에 보면 그런 지옥의 마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술집 여자와 바람을 피웠는데,
그 여자가 걸핏하면 부인한테 알리겠다면서 돈을 요구했답니다.
그 남자는 돈을 갖다 주면서도 지옥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여자들에게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자칫 실수로 악마들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시달림을 주고받는 마음들이 다 지옥의 마음들입니다.
지옥의 마음이 그런 것뿐일까요?
자신의 실수를 남들이 비난하고 질시할 때 마음은 찢어지는 듯이 아픕니다.
이런 지옥 같은 마음은 한번 죄를 지어서 한 번에 생긴 지옥이 아니라
한번 두 번 차곡차곡 쌓인 지옥이니까,
없어지는 것도 물이 서서히 말라서 없어지듯이
나무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기도로 마음을 다스리면 `지옥자고갈'
지옥도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해서 끝내는 다 말라서 없어져 버리게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아약향화탕 화탕자소멸 아약향화탕 내가 만약 끓는 물에 들어가면,
화탕자소멸 끓는 물이 스스로 없어지고,
아약향지옥 지옥자고갈 하면 내가 지옥을 향하게 죄면 지옥이 스스로 말라 없어져라.
이렇게 해석 되니까 더 맞는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아약향화탕 화탕자고갈 아약향지옥 지옥자소멸
이렇게 바뀌어 해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아약향아귀 (我若向餓鬼) 아귀자포만 (餓鬼自飽滿)
아약향아귀 내가 만약 아귀세계 가게 되면, 아귀자포만 굶주린 아귀 배 저절로 배가 부르짖고
아귀가 왜 되느냐, 나보다 더 가져가는 것 보면 배 아파하는 사람이 있어요.
남들 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눈에 불을 켜고 덤벙거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그저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합니다. 죽을 때 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
쌓아 놓고 구경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입니다.
죽은 다음 묏자리만 잘 쓴다고 발복(發福)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크고 호화롭게 만든다 하더라도 아귀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다간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것이 됩니다.
내 마음이 만약 아귀의 마음이 되면 어떠하겠어요?
내 마음 가운데 아귀의 마음이 생길 때 기도하면, 아귀가 스스로 포만감을 느껴 물러갑니다.
기도는 불안으로 부터의 해방입니다.
아귀로 부터의 해방입니다. 자꾸만 기도를 하면 마음이 안정됩니다.
서울에 어느 보살님이 불교 잡지에 글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보살님의 남편이 상당히 청렴결백한 공무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보살님은 적은 공무원 월급으로 겨우 밥을 먹는 처지라, 외식하려 나가자 소리도 못하고,
애들을 유행 따라 잘 입히지도 못하고, 본인도 멋을 부릴 수가 없어서 마음이 항상 허전하고
친구들 보기도 부끄럽고 해서 남편에게 항상 불평을 하셨답니다.
그래서 매일 절에 올라갔다나요.
그런데 불교 공부를 하고 계속 기도를 하다 보니까 저절로 마음이 채워지더라는 것입니다.
옛날엔 항상 마음이 허전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고혈압, 당뇨병 걱정하고 살 뺄 걱정하는데, 남편 항상 건강하고,
아이들도 공부 잘하고 속 안 썩이고,
자기도 절을 많이 해서 그른지 살도 별도 안찌고 그래서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무대비관세음'을 계속하면 욕망의 때가 제거되니까 나름대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자꾸만 기도를 하게 되면 마음이 뿌듯하게 부처님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자꾸 좋은 일을 베풀어주십니다.
사람들이 다 좋아 보이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착하고 고맙게 보이며 의미로운 존재로 생각됩니다.
기도는 참으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약향수라, 악심자조복
아약향수라 내가 만일 수라의 마음이 될 때,
악심자조복 수라와 같이 화내는 나쁜 마음들을 스스로 다 항복받게 해 주소서
수라의 의미는 전투를 일삼는 깡패귀신의 일종을 의미합니다. 경전에서는 천인(天人),
즉 제석천 등과 항상 싸움을 벌이는 악신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공덕을 짓는 것 하고 마음을 닦는 것 하고는 다릅니다.
누가 무엇을 얻으러 왔는데 주기는 싫은데 체면상 안줄 수가 없어서 마지못해 주면,
주기는 주었으니 공덕이 되기는 해요, 그른 경우 마음 수행하고는 거리가 멀 잔 아요,
돈백만원 얻으러 왔는데 십만 원 주면서 아나 이거나 가져 가가라,
좀 더 달라면 이거면 되었지 뭘 더 달라 하느냐,
소리 지르고 윽박지르면 수라보 받는다.
이렇게 수라보를 받는 과보는 본래 마음은 닦이지를 안했으나
그래도 공덕지은 것은 있어서 받게 되는 경계라 합니다.
그래서 어디가나 항상 싸우기를 즐겨한다 합니다.
우리가 흔히 수라장이니 아수라 같다. 라고 말 할 때
무엇인가 혼란되고 마음이 악한 사람을 의미하는 말인데,
마시는 술이란 말이 수라에서 왔답니다. 술의 원래 말이 수라 라요.
아수라 할 때 아 는 없다, 라는 뜻이고
수라는 술이니까 술을 전혀 먹지 않는, 술을 전혀 쓰지 않는 세계랍니다.
술을 한모금도 하지 않으니까 정신은 말짱한데. 꽁한 마음으로 남의 잘못만 밟히고
자기고집만 부리면서 흥분 잘하고 싸울 듯이 달려들고 하면, 죽어서 아수라가 되기 때문에
여자들이 많이 가는 세계라나요.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싸우기 잘하는 마음, 화를 내서 다투기 잘하는 그런 마음을 수라라 하는데
그른 악심을 스스로 항복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는 흔히 싸우기 잘하고 흥분을 잘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이 같은 마음 역시 나무 대비 관세음 하면 그른 악심을 스스로 항복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약향축생 (我若向畜生) 자득대지혜 (自得大智慧)
아약향축생 내가 만일 축생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자득대지혜 큰 지혜로서 내 마음 다스려지게 하여 주소서.
축생의 마음이란 동물의 마음, 돼지 소의 마음을 말합니다. 벌레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머리가 없어 지혜의 마음이 없습니다.
정신병원에 가보면 동물 같은 행태를 부리는 이상한 증세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보, 멍청이 같은 이런 사람들도 자꾸만 나무대비관세음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시키면
자득대지혜 큰 지혜를 얻게 됩니다.
흔히 저 사람은 돼지보다도 못하고 개만도 못하다 는 참혹한 욕을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도 동물의 마음들이 있습니다. 뱀의 마음도 있고, 여우의 마음도 있고,
강아지의 마음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러한 축생의 마음을 자꾸만 녹여내려야 합니다.
축생들은 머리가 나쁘니까 계속 축생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할 때 공부한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무엇이든지 몸으로 익히고 마음으로 새기는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들을 때 그저 귀로만 듣는 그러한 자세를 버리고, 마음으로 익혀서
참다운 부처님의 아들딸이 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참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무량한 세월이 흐른다 하더라도,
그리고 언제 어느 곳에 간다. 하더라도 항상 복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참다운 삶이 아니고 그릇된 마음을 가진 삶은,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항상 긍정적인 삶을 엮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항상 부처님 말씀을 벗 삼아서 삶을 슬기롭게 이끌어 가는
그런 자세를 끊임없이 몸과 마음 가운데 익혀 나가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언제 어느 곳에 어떠한 삶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항상 무량한 복덕이 가득한 그러한 삶을 열어 갈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대개 그 사람이 잘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을 나름대로 예측해 분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가, 아니면 부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가에 따라
그의 앞날을 어느 정도 판별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진리를
몸과 마음에 익히면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만 합니다.
이 육향 육서는 육도 윤회를 면하기 위해서 세운 명세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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