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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불교자료실

화엄경-제 11장 보살십주품(菩薩十住品)

by 회심사 2017. 4. 28.


-화엄경-제 11장 보살십주품(菩薩十住品)-
    그때 법혜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서 보살의 무량한 방편의 삼매에 들었다.

    법혜보살이 삼매에 들자, 시방의 무수한 부처님 나라와 그 밖의 무수한 부처님들이 삼매의 힘으로 나타났다. 이 부처님들의 이름은 모두가 법혜(法慧)였다.
    그때 모든 부처님은 법혜보살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대는 능히 보살의 무량한 방편의 삼매에 들었도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 삼매에 든 것은 시방의 무수한 부처님이 그대에게 신통력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 일체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서원의 힘과 선근력(善根力)에 의한 것이다. 또 그대로 하여금 넓은 가르침을 설하게 하고자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또 가르침의 지혜를 키우고 진리의 세계를 열며, 중생의 세계를 분별하게 하고 장애를 없게 하여 장애 없는 경지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선남자여,
    참으로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오묘한 진리[法]을 설하여야 한다."
    그때 모든 부처님은 저마다 오른쪽 팔을 뻗쳐 법혜보살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법혜보살은 삼매로부터 일어나 모든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모든 불자들이여,
    보살의 본성은 광대하고 깊어 흡사 허공과 같습니다.
    일체의 보살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의 본성으로부터 생긴 것입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보살의 십주(十住)의 행(行)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설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십주(十住)라고 합니까. 그것은 초발심주(初發心住), 치지주(治地住), 수행주(修行住), 생귀주(生貴住),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 정심주(正心住), 불퇴주(不退住), 동진주(童眞住), 법왕자주(法王子住), 관정주(灌頂住)를 말합니다. 이것이 보살의 수행이 머무는 열 가지 장소입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첫째 보살이 머무는 초발심주(初發心住)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부처님의 위덕을 잘 드러내는 원만한 상호를 지니신 부처님을 보며, 혹은 부처님의 신통을 보고, 설법을 들으며, 또 일체 중생의 무량한 고통을 보고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켜 일체지(一切智)를 구하되 결코 퇴보하지 않습니다.

    이 보살은 초발심에 의하여 열 가지 힘을 얻습니다.
    예를 들면, 도리와 도리가 아닌 것을 분별하는 지혜이며, 업보로 인하여 주어진 생의 번뇌와 청정을 아는 지혜이며, 과거의 생애를 아는 지혜이며,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를 볼 수 있는 지혜이며, 모든 번뇌와 그 남은 악업이 없어지는 것을 아는 지혜 등입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이 보살들은 열 가지 덕목을 배워야 합니다. 즉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며, 모든 보살을 찬탄하며, 중생의 마음을 지키며, 현명한 자를 가까이하며, 끊임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찬탄하며, 부처님의 공덕을 닦으며, 모든 부처님의 앞에 태어난 것을 찬탄하며, 방편에 의하여 삼매를 익히며, 생사의 윤회를 떠나기를 바라며, 괴로움에 젖은 중생을 위하여 스스로 귀의하는 곳이 되도록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에 의하여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보다 더 견고하게 할 수 있으며, 위없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완성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진리를 들을 수 있으면 스스로 이것을 듣고 이해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에 의하여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보다 더 견고하게 할 수 있으며, 위없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완성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진리를 들을 수 있으면 스스로 이것을 듣고 이해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두 번째로 보살이 머무는 치지주(治址住)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일체의 중생에 대하여 열 가지 마음을 일으킵니다. 그 열 가지 마음이란 즉, 대비심(大悲心)과 대자심(大慈心), 안락심(安樂心), 안주심(安住心), 연민심(憐愍心), 섭수심(攝受心), 수호심(受護心), 동기심(同己心), 사심(師心), 여래심(如來心)입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이 보살들은 열 가지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자주 가르침을 듣기를 원하며, 탐욕을 떠나 삼매를 닦으며, 선지식을 가까이하여야 합니다. 또 그 가르침에 따라서 말할 때에는 적절한 때를 선택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니지 않으며, 진리의 깊은 뜻을 깨닫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요달하여 진리 그대로를 행하며, 마음의 어리석음을 떠나 움직이지 않는 마음에 안주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하여야만 일체 중생에 대하여 대자비를 증진하고자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만약 들을 수 있는 불법이 있다면 스스로 듣고 이해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세 번째로 보살이 머무는 수행주(修行住)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모든 존재를 관찰하는 열 가지 길을 닦습니다. 즉 모든 존재는 무상(無常)하며, 괴로움[苦]이며, 공(空)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주체는 없다는[無我] 것과 모든 존재는 즐거워할 것이 아니며, 모이고 흩어지는 일도 없으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모든 사물은 허망하고, 거기에는 견고함이 없다고 관찰합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다음과 같은 열 가지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모든 중생의 세계, 진리의 세계, 땅[址]의 세계, 물[水], 불[火], 바람[風]의 세계, 욕망의 세계, 형상이 있는 세계, 형상이 없는 세계를 알도록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하여야만 보살은 모든 사물에 대해서 맑고 밝은 지혜를 증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들을 수 있는 진리가 있으면 스스로 이를 듣고 이해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네 번째로 보살이 머무는 생귀주(生貴住)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거룩한 가르침 안에서 태어나 열 가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합니다. 즉 부처님을 믿고, 진리를 실현하며, 선정(禪定)에 들고, 또 중생과 부처님의 나라와 세계와 모든 업과 과보와 생사의 열반 등을 아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열 가지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고 과거, 현재, 미래의 가르침을 수행하며, 과거, 현재, 미래의 진리를 몸에 갖추고,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것을 관찰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밝게 요달하고 마음의 평등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들을 수 있는 진리가 있으면 스스로 이를 듣고 이해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해서 깨닫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불자들이여,
    다섯 번째로 보살의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살은 열 가지 가르침을 듣고 수행하여야 합니다.
    즉, 보살이 수행하는 공덕으로써 일체 중생을 구호하고, 일체 중생에게 연민하며, 일체 중생의 인격을 완성하고,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재난을 떠나게 하고, 일체 중생을 생사의 고뇌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일체 중생을 기쁘게 하고,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를 극복하게 하며, 모두가 열반을 얻도록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열 가지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중생은 무변하고 무량하며, 무수하고 불가사의하며, 여러 가지 형태를 갖고 있으며, 무상하고 자재하지 못하며, 진실하지 못하며, 의지할 곳이 없고, 자성(自性)이 없다고 하는 것을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자기의 마음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들을 수 있는 불법이 있으면 이를 듣고 이해하고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여섯 번째로 보살의 바른 믿음[正心住]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살은 열 가지 가르침을 듣고 믿음을 결정하여 흔들리지 않는 마음[決定心]을 얻습니다.
    만약 부처님을 칭찬하거나 비방하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진리를 찬탄하거나 비방하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보살을 칭찬하거나 비방하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보살의 행하는 진리를 찬탄하고 비방하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중생의 수는 유한하거나 혹은 무한하다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중생은 더럽혀져 있다든가 혹은 더럽혀져 있지 않다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중생은 구원하기 쉽다. 혹은 구원하기 어렵다고 하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진리의 세계는 유한하다거나 혹은 무한하다고 하여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계는 생성(生成)되어 있거나 혹은 파괴되어가고 있다고 하여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계는 실재한다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안정되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열 가지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습이 없는 것이며, 본성이 없고, 수행할 수도 없으며, 실체가 아니며, 진실하지도 않고, 자성도 없으며, 흡사 허공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고,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은 것이라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일단 얻은 공덕을 다시는 잃지 않는 경지[不退轉]에서 불생불멸하는 절대적인 진리를 깨달은 평온함[無生法忍]을 체득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불법은 스스로 이를 듣고 이해할 것이지 결코 타인을 의지하여 깨닫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자들이여,
    일곱 번째로, 깨달음을 확약받은 보살이 머무는 경지[不退住]는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열 가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도 그 마음은 견고하여 흔들리지를 않습니다. 즉, 부처님은 존재한다고 하든 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

    진리가 있다고 하든 혹은 없다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이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있어서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의 행(行)이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있어서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의 행이 미혹을 초월한다고 하든 초월하지 않는다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

    과거의 부처님과 미래의 부처님과 현재의 부처님이 각각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

    최고의 깨달음을 여신 부처님의 지혜가 다함이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존재가 동일한 모습이라고 하든 동일한 모습이 아니라고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열 가지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하나[一]는 많은 것[多]이며, 많은 것[多]은 하나[一]이며, 가르침에 따라서 의미를 알고, 의미에 의하여 가르침을 알며, 비존재(非存在)는 존재이며 존재는 비존재이며, 모습을 갖지 않는 것이 모습이며, 모습이 모습을 갖지 않는 것이며, 본성이 아닌 것이 본성이며, 본성이 본성이 아닌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모든 사물에 있어서 방편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들을 수 있는 불법이 있으면 스스로 이를 듣고 이해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을 하지 아니합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여덟 번째로, 보살이 머무는 동진주(童眞住)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살은 열 가지 사물에 있어서 마음을 안정할 수 있습니다. 즉 마음과 말과 행위에 있어서 청정하게 되고, 뜻대로 생을 받으며, 중생의 마음과 바라는 것과 본성과 업을 알고, 세계의 생성과 소멸을 알며, 초인적인 힘은 자유자재하여 장애를 받는 일이 없습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열 가지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모든 부처님의 나라를 알고, 관찰하고, 진동(震動)하며, 지속하고, 또 모든 부처님의 나라와 그 밖의 모든 세계에 이르러 헤아릴 수 없는 진리를 문답하고, 초인적인 힘에 의하여 온갖 모습을 나타내며, 무량한 음성을 이해하고 한 생각 안에 무수한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을 익혀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여러 가지 방편에 의하여 모든 법(法)을 완성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진리를 듣고 이해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아홉 번째로, 보살이 머무는 법왕자주(法王子住)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열 가지 사물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중생의 나라들, 모든 번뇌, 그리고 이별의 아쉬움, 헤아릴 수 없는 진리, 방편, 모든 예의와 작법(作法), 모든 세계의 실정,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의 흐름, 세간의 도리와 궁극의 진리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열 개의 덕목을 익혀야 합니다.
    즉 법왕(法王)이 머무는 곳과 법왕의 작법, 법왕이 있는 곳에 안주하는 것,
    법왕이 있는 곳에 절묘히 들어가는 것,
    법왕이 있는 곳을 분별하는 것,
    법왕의 진리를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
    법왕의 진리를 칭찬하는 것,
    법왕이 완전하게 진리를 실현하는 것,

    두려워하지 않는 법왕의 진리,
    집착을 떠난 법왕의 진리 등을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모든 사물에 있어서 장애를 받지 않는 지혜를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들을 수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다면 스스로 이를 이해하고 결코 타인을 의지해서 깨닫지 않습니다.

    불자들이여,
    열 번째로 보살이 머무는 관정주(觀頂住)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열 가지 지혜를 완성합니다. 즉 헤아릴 수 없는 세계를 진동하고, 비추며, 지속하고, 청정하게 맑히고 또한 그 세계에 들며, 또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마음과 행위와 감관의 작용을 알고 온갖 방편에 의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를 극복하고 깨달음을 얻게 합니다.

    불자들이여,
    보살의 실체는 알 수가 없습니다.
    즉 그가 선정에 드는 것이나, 초인적인 힘이 자유 자재한 것이나, 그의 과거, 현재, 미래의 지혜와 모든 부처님의 모든 나라를 밝히는 지혜와, 그의 마음을 경계 등을 낱낱이 알 수가 없습니다.

    불자들이여,
    보살은 열 가지 지혜를 익혀야 합니다.
    즉 과거, 현재, 미래의 지혜, 최고의 깨달음을 여는 부처님의 지혜, 진리의 세계는 장애를 받지 않는다고 하는 지혜, 진리의 세계는 무량무변이라고 하는 지혜, 모든 세계를 비추고 지속하며 충실하게 하는 지혜, 모든 중생을 분별하는 지혜, 최고의 깨달음을 여는 무량무변한 부처님의 지혜 등을 익혀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모든 종류의 지혜를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들을 수 있으면 스스로 이를 듣고 이해하여야 하며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여 깨닫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때 부처님의 신통력에 의하여 시방의 무량한 부처님 나라는 온갖 모양으로 진동하고 하늘의 꽃과 꽃다발과 하늘옷이 비오듯이 뿌려지고 하늘의 음악은 스스로 소리를 내며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