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제 10장 보살운집묘승전상설게품-
그때 세존께서는 두 발의 발가락에서 아름답고 무수한 광명을 발하여 시방세계의 궁전을 비추었다. 그리하여 거기에 모인 보살들의 광명 속에 떠올랐다. 그때 법혜(法慧)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서 시방세계를 남김없이 관찰하고 게송(偈頌)을 읊었다. "일체의 모든 부처님은 수미산 정상에 있는 제석천의 묘승전(竗勝殿)에 나타나셨습니다. 부처님을 받드는 이 무수한 보살들은 시방으로부터 찾아와 결가부좌하였습니다." 그리고 법혜보살은 대중을 향하여 말하였다. "모든 보살들이여,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합니다. 여래의 위신력에 의하여 모든 세계, 모든 사람 앞에 부처님이 계십니다. 지금 우리는 부처님께서 제석천의 묘승전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시방세계의 묘승전도 또한 같습니다. 이는 한결같이 여래의 자재력에 의한 것입니다. 모든 세계 안에서 뜻을 세우고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자는 먼저 청정한 서원을 일으켜 보살행을 닦아야 합니다. 보살은 헤아릴 수 없는 긴 세월을 수행하고, 가르침을 펴는 데에도 장애가 없으며, 시방을 비추어 어리석음의 어두움을 제거하고 있으니 그 힘은 무엇에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일체혜(一切慧)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서 시방세계를 남김없이 관찰하고 다음과 같이 찬탄하였다.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항상 부처님을 뵈올 수 있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바른 가르침 안에서도 아직도 진실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망상에 얽매이고 생사에 윤회하며 마음의 눈은 감겨서 부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또 모든 사물을 관찰하지만 아직도 실상을 볼 수 없습니다. 일체의 모든 사물은 생멸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 관념에 얽매여 있습니다. 만약 일체의 사물은 생하는 일이 없고 멸하는 일도 없음을 깨달을 수가 있으면 모든 부처님은 항상 눈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모든 사물은 본래가 집착도 없고, 변하지 않는 주체[我見]가 있는 것도 아니며, 공적(空寂)하여 진실 그 자체까지도 없습니다. 모든 부처님은 본래 공하여 헤아려 알 수가 없습니다. 일체의 모든 사물을 헤아려 알 수가 없다고 깨닫는 자는 어떠한 번뇌 속에 있어서도 그 마음이 오염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공덕혜(功德慧)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서 시방세게를 남김없이 관찰한 후 게송을 읊었다. "모든 것은 꼭두각시와 같이 허망하여 실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에 집착하여 항상 생사에 윤회하고 있습니다. 여덟 가지 바른 길[八正道]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여 자기의 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또한 도리에 어긋난 견해로 인하여 여러 가지 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공함을 보지 못하고 항상 무량한 고뇌를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청정한 눈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일체의 마음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눈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진실한 부처님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부처님을 보고서 자기의 마음에 집착하지 아니하면 모든 것의 진실을 깨달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실로 이 진실한 가르침으로 중생을 교화하십니다." 또한 선혜(善慧)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시방세계를 남김없이 관찰하고 게송을 읊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한량없는 부처님들은 해심(害心)을 떠나 스스로 생사를 넘고, 해탈하여 중생들도 눈을 뜨게 합니다. 세간의 모든 모습은 모두가 공하여 실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혹한 사람은 이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모든 것에는 그 자체의 본성은 없으며, 이 본성이 없는 것으로 성품을 삼아 그 성질이 마치 허공과 같습니다. 만약 이러한 모양을 설한다 하여도 설하여 다 마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지혜 있는 자는 이것을 다함이 없다고 설하지만, 그것 또한 다 설한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의 본성이 허공과 같아 다함이 없기 때문에 불가사의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진혜(眞慧)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입어 시방세계를 납김없이 관찰하고 게송을 읊었다.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모든 고뇌를 받고 생사 속에 유전하고 있는 것은 부처님의 이름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부처님은 인연에 의하여 생긴 것이 아닙니다. 과거, 미래의 부처님도 또한 그러합니다. 일체의 모든 것은 차별을 초월한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의 참 성품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모든 것의 깊은 뜻을 관찰하면 무량한 부처님의 영원불멸한 진실의 모습 그 자체를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진실을 진실이라고 알며,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지 아니하다고 아는 이것이 최후의 가장 뛰어난 깨달음이며, 그것을 부처님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은 이와 같이 닦았으면서도 한 가지의 법도 얻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에 의하여 많음을 알고, 많음에 의하여 하나를 압니다. 또 모든 것은 의지하는 곳이 없이 다만 인연에 의하여 일어납니다. 활동의 주체도, 활동 그 자체도 함께 얻는 바가 없으며, 이것을 구하여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이 얻을 수 없는 것이야말로 모든 부처님이 의지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에는 의지하는 바가 따로 없고 깨달은 이에게는 집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많은 보살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시방세계를 남김없이 관찰하고 게송을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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