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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불교자료실

불타(佛陀)와 불전(佛傳)-붓다의 마지막 여로(1)

by 회심사 2017. 5. 1.


-붓다의 마지막 여로(1)-
    1)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붓다는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시작한 이후, 사십여 년 동안 갠지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교화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붓다는 북인도의 거리에서 거리로, 마을에서 마을로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펼쳤습니다. 그동안의 활동에 대한 그 역사적 전후 관계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경전은 모두 붓다께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일에 대해서 설법했다고만 기록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붓다의 만년(晩年), 즉 입멸 전후의 사정에 관한 기록은 비교적 자세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전의 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 長部)의 세 가지 경전에서는 붓다의 마지막 나날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마하빠리닙바나 숫따(Mahāparinibbāna sutta, 大般涅槃經)]는 그 대표적인 경전입니다. 현재 팔리어 [대반열반경] 외에도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된 산스끄리뜨어 사본(寫本)의 단편과 티베트어역, 그리고 다섯 종류의 한역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이 경전은 다른 부파에서도 전승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제 역본들의 기록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모두 붓다 입멸 전후의 사정이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성(事實性)이 높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후대에 삽입된 부분도 포함되어 있음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약간의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전의 [대반열반경]에 묘사된 내용은 역사적, 지리적 사실에 가깝다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전의 핵심 내용은 위대한 분의 크나큰 죽음과, 그 죽음을 앞에 두고 설해 남기신 최후의 설법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경전이 지니는 가치와 크나큰 매력은 역시 이 크나큰 죽음의 사실과 그 최후 설법에 있어서의 주옥같은 가르침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대승경전에도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이라는 같은 이름의 경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전은 붓다께서 입멸할 때의 설법을 주제로 한 것으로 아주 딴 경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반열반경]은 팔리어 경전과 그에 해당되는 한역본을 가리키는 것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팔리어로 씌어진 남전의 [대반열반경]에 의하면, 붓다의 마지막 여정은 라자가하(Rājagaha, 王舍城)를 출발하여 갠지스강을 가로질러 베살리(Vesālī, 毘舍離城)에 이르러 안거를 마치고, 말라(Mallā)국의 도시였던 꾸시나라(Kusinārā, Kusinagara, 拘尸那竭羅)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입적(入寂)하게 됩니다. 그리고 붓다의 입멸 후 화장과 사리분배 등에 관한 후대의 기사까지 아주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제 여기서는 팔리어 경전에 근거하여 붓다의 마지막 여로에 대한 줄거리를 더듬어 보겠습니다.

    2) 라자가하에서 설한 칠불퇴법(七不退法)

    [대반열반경]은 붓다께서 입멸하기 반 년 내지 일 년 정도 전 라자가하의 깃자꾸따(Gijjhakūta, 耆闍崛山, 靈鷲山)에 머물고 있을 때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무렵 마가다국의 아자따삿투(Ajātasattu, 阿闍世) 왕은 밧지(Vajji)국을 정복할 야망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밧사까라(Vassakāra)라는 대신(大臣)을 붓다께 보내 그 의향을 여쭤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붓다는 아자삿투왕의 대신 밧사까라에게 직접 답하지 않고, 제자 아난다에게 밧지족 사람들이 다음의 일곱 가지 사항을 실행하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물었습니다.

    ① 밧지족 사람들은 자주 회의를 열고 회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가.

    ② 밧지족 사람들은 함께 집합하고 함께 일을 시작하며 밧지족으로서 해야 할 것을 함께 행하는가.

    ③ 밧지족 사람들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을 정하지 않고 이미 정해진 것을 깨뜨리지 않으며 옛날에 정해진 오래된 밧지족의 법에 따라 행동하는가.

    ④ 밧지족 사람들은 밧지족 중의 밧지 노인들을 존경하고 환대하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⑤ 밧지족 사람들은 종족의 부인이나 여자아이를 폭력으로 꾀어내거나 그것을 만류하지 않은 일은 없는가.

    ⑥ 밧지족 사람들은 내외(內外)의 밧지족 조상의 사당을 존중하고 공경하며 공양하고 그리고 이전에 바치고, 이전에 시행한 올바른 공양물을 버리지는 않는가.

    ⑦ 밧지족 사람들은 아라한에 대하여 올바로 보호하고 수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또 아직 오지 않은 아라한이 이 땅에 오도록 하고 이미 오고 있는 아라한이 이 땅에서 편안히 머물 수 있도록 하는가.

    밧지족 사이에 이러한 일곱 가지 사항이 그대로 행해지고 있다고 아난다가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붓다는 밧지족 사람들이 이러한 일곱 가지 사항을 실행하는 한 그들은 영원히 번영하고 결코 마가다국에 의해 멸망되지 않는다고 설했습니다. 그리고 경전에서는 이들 밧지족의 멸망을 초래하지 않는 일곱 가지 법(七不退法)을 설한 다음 계속하여 동일한 내용을 그대로 불교승가에 적용시켜 다음과 같이 설했습니다.

    ① 비구들이 자주 회의를 열고 회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한 비구들에게는 틀림없이 번영이 기대되고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② 비구들이 함께 집합하고 함께 일을 시작하고 함께 승가의 제반 행사를 치르는 한 비구들에게는 틀림없이 번영이 기대되고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③ 비구들이 이전에 정해진 적이 없는 것을 정하지 않고 이미 정해진 것을 깨뜨리지 않으며 모든 학처(學處=戒本)에 따라 행동하는 한 비구들에게는 틀림없이 번영이 기대되고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④ 비구들이 출가한 지 오래되어 경험이 풍부한 장로비구들, 승가의 어른들, 승가를 이끄는 사람들을 모두 존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구들에게는 틀림없이 번영이 기대되고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⑤ 비구들이 이미 생기(生起)해 있는 재생(再生)을 초래하는 갈애(渴愛)에 지배되지 않는 한 비구들에게는 틀림없이 번영이 기대되고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⑥ 비구들이 숲속의 좌와소(坐臥所)에 있기를 원하는 한 비구들에게는 틀림없이 번영이 기대되고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⑦ 비구들이 각자 자신의 마음을 단련하고 또 착한 수행자들을 거기에 오게 하고 또 거기에 오고 있는 수행자들을 편안하게 머물러 있게 하는 한 비구들에게는 틀림없이 번영이 기대되고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 외에도 교단이 쇠퇴하지 않는 다른 네 가지 종류의 칠불퇴법과 한 가지 종류의 육불퇴법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 자주 회의를 열고 회의에는 많은 비구들이 모이는 것, 비구들이 공동으로 승가의 제반 행사를 치르는 것, 정해진 학처(學處)에 따라 행동하는 것 등은 불교승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되는 사항들입니다. 이러한 승가 운영상의 중요한 사항들이 밧지족 사이에서 시행되고 있던 관습에 근거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 경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최후의 여정에 오름

    얼마 후 붓다는 80세의 노쇠한 몸을 이끌고 라자가하를 떠나 최후의 여정에 오릅니다. 붓다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북쪽의 베살리를 향해 라자가하를 출발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암바랏티까(Ambalatthika) 동산에 도착하였습니다. 붓다는 암바랏티까 동산의 ‘왕의 집(Rājâgārake)’에 머무셨습니다.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에도 비구들에게 수많은 가르침을 설하셨습니다.

    즉 “이것이 계율이다. 이것이 선정이다. 이것이 지혜이다. 계(戒)가 실천되었을 때, 정(定)의 큰 이익과 과보가 있다. 정(定)이 실천되었을 때, 혜(慧)의 큰 이익과 과보가 있다. 혜(慧)가 실천되면 마음은 번뇌, 즉 욕루(欲漏, kammâsavā), 유루(有漏, bhavâsavā), 견루(見漏, ditthâsavā), 무명루(無明漏, avijjâsavā)로부터 해탈하게 된다.” 계율과 선정과 지혜, 이 셋은 불교 전체를 통해 가장 기본적인 실천 형태이며, 흔히 ‘삼학(三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경우 학(學)은 배운다는 것이 아니고 ‘실천’이라는 뜻입니다. 이 삼학은 불교의 매우 중요한 교설로서, 이 경전에서 붓다는 반복해서 비구들에게 설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삼학에 관한 교설은 이 경전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암바랏티까 동산에서 마음껏 머무신 다음, 붓다는 나란다(Nālanda, 那爛陀)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붓다는 나란다에 도착하여 그곳의 빠와리까(Pāvārika)의 망고 숲에 머무셨습니다. 그 때 존자 사리뿟따(Sāriputta, 舍利弗)가 세존의 처소를 찾아와서 세존께 예배드리고 다음과 같이 사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신앙을 품고 있습니다.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도 바른 깨달음에 대해 세존만큼 심오하고 철저하게 도달한 사람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며, 현재에도 물론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붓다는 사리뿟따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사리뿟따는 자기는 과거, 현재, 미래의 제불세존(諸佛世尊)에 대해서 샅샅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릇 불세존이라는 분은 반드시 이와 같아야 함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목은 팔리문 [대반열반경]에는 있지만, 한역의 해당 부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내용이 팔리문과 한역(漢譯) 아함(阿含)의 다른 곳에 나와 있습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사리뿟따의 신앙 고백은 다른 기회, 즉 붓다의 입멸 직전보다 훨씬 앞서 있었던 일로 여겨집니다. 그러니까 팔리문 [대반열반경]의 편집자는 나란다 마을이라는 지명(地名)이 나오기 때문에 이 고장과 관련되어 알려진 사리뿟따의 고백을 여기에 삽입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4) 빠딸리 마을과 갠지스강

    이어 붓다는 나란다를 떠나 길을 서북쪽으로 잡고 갠지스강 남쪽 기슭에 있는 빠딸리가마(Pātaligāma, ‘빠딸리 마을’이라는 뜻)에 도착하였습니다. 붓다께서 빠딸리 마을에 도착하자 그 고장의 신자들은 붓다와 제자들을 환대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로 지은 공회당에 와서 법문해 주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빠딸리 마을 사람들에게 계율을 지킬 때의 다섯 결과와 계율을 지키지 않을 때의 다섯 결과를 설하셨습니다.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재산을 잃게 되고, 나쁜 소문이 일어나고, 모임에 참가할 때 자신이 없고, 죽을 때 우둔하게 죽게 되고, 죽고 나서 지옥에 가게 됨을 설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붓다는 빠딸리 마을 신자들을 위해 밤늦게까지 설법하여 격려해 주었습니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붓다의 분부로 신자들은 물러갔습니다. 붓다는 잠시 후 조용한 곳에 가서 쉬었습니다.

    당시 마가다국의 대신(大臣) 수니다(Sunīdha)와 밧사까라(Vassakāra)가 밧지족을 물리치기 위해 빠딸리가마에 요새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청정한 지혜의 눈으로, 수많은 신들이 빠딸리 마을을 수호하고 있음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다음 날 아난다에게 “고귀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중에서, 모든 상업의 중심지 중에서 빠딸리뿟따(Pātaliputta, Pātaliputra, 華氏城)가 가장 큰 도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빠딸리뿟따는 화재와 수재, 또는 내란[불화]의 위험이 염려된다.”라고 예언했습니다.

    한편 마가다국의 대신 수니다와 밧사까라는 붓다와 제자들을 초대하여 공양을 올렸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붓다께서 나간 문을 ‘고따마의 문(Gotama Gate)’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붓다께서 갠지스강을 건넌 장소를 ‘고따마의 나루터(Gotama Fort)’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붓다께서 갠지스강을 건너기 위해 강기슭에 도착했을 때, 강물이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배를 타거나 혹은 뗏목을 엮어 강을 건너려고 붐비고 있었습니다. 그때 붓다는 마치 역사(力士)가 굽힌 팔을 펴거나 혹은 폈던 팔을 굽히듯이 순식간에 저쪽 강가에 모습을 나타내는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이 기적에 관한 종교적 의미는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