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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불교자료실

불타(佛陀)와 불전(佛傳)-라훌라의 출가 인연

by 회심사 2017. 5. 1.


-라훌라의 출가 인연-
    1) 라훌라 어머니와의 재회 붓다께서 깨달음을 이루고 난 뒤, 처음으로 까삘라밧투((Kapilavatthu, 迦毘羅衛城)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까삘라밧투 방문의 둘째 날, 붓다는 거리에서 탁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라훌라의 어머니(Rāhulamāta)는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녀는 탁발하고 있는 붓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붓다의 훌륭한 인품에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때 그녀는 붓다를 찬탄하는 여덟 수의 게송을 읊었습니다. 이 게송들은 나라시하가타(Narasīhagātha, 人獅子偈)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붉은 성스러운 두 발은 탁월한 법륜으로 장식되고, 긴 팔꿈치는 성스러운 징표들로 치장되셨고, 발등은 불자(拂子)와 양산으로 분장되셨으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우아하고 고귀한 석가족의 왕자님, 몸은 성스러운 징표로 가득 차시고, 세상의 이익을 위하는 사람 가운데 영웅이시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얼굴빛은 보름달처럼 빛나고 하늘사람과 인간에게 사랑받으며, 우아한 걸음걸이는 코끼리의 제왕과 같으시니 인간 가운데 코끼리,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왕족으로 태어난 귀족으로서 하늘사람과 인간의 존귀함을 받는 님, 마음은 계율과 삼매로 잘 이루어진 님,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잘 생긴 목은 둥글고 부드러우며, 턱은 사자와 같고, 몸은 짐승의 왕과 같고, 훌륭한 피부는 승묘한 황금색이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훌륭한 목소리는 부드럽고 깊고, 혀는 주홍처럼 선홍색이고, 치아는 스무 개씩 가지런히 하야시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칠흑 같은 심청색이고, 이마는 황금색 평판처럼 청정하고 육계는 새벽의 효성처럼 밝게 빛나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많은 별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달이 창공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수행자들의 제왕은 성스러운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그날 붓다께서는 숫도다나(Suddhodana, 淨飯王) 왕의 초대에 응하여 왕궁에서 공양을 하셨습니다. 붓다께서 공양을 마치자 라훌라의 어머니를 제외한 왕궁의 모든 여인들이 붓다께 경의(敬意)를 표하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라훌라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녀에게 도덕적으로 어떠한 결함도 없다면 붓다께서 그녀에게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붓다는 그녀가 원했던 것처럼 붓다께 인사하도록 허락한다고 말하고, 두 수제자와 함께 그녀에게로 갔습니다. 그녀는 붓다의 발에 엎드려 손으로 발을 붙잡고 자신의 머리를 그곳에 대었습니다. 숫도다나 왕은 붓다께서 출가한 이후 라훌라의 어머니는 스스로 모든 사치를 포기하고, 붓다께서 가사를 걸치고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는 것을 듣고,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지냈다고 붓다께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붓다는 짠다낀나라 자따까(Candakinara Jātaka)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과거의 그녀 역시 충절이 대단했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팔리고유명사사전』에 의하면, 그녀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남전의 경전들에서는 라훌라의 어머니(Rāhulamāta) 또는 고따마(Gotama)의 부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녀는 밧다깟짜(Bhaddakaccā)로 불렸으며, 후대의 문헌들에서는 야소다라(Yasodharā), 빔바데비(Bimbādevī)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은 아마 빔바순다리(Bimbāsundarī)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북전의 경전들에서는 ‘야소다라’라는 이름을 선호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단다빤니(Dandapāni)의 딸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고따마의 부인 이름은 빔바(Bimbā)이고, 밧다깟짜(Bhaddakaccā), 수밧다까(Subhaddakā), 요사다라(Yosadhāra)와 그 밖의 이름들은 나중에 추가된 것으로 여겨지며, 그녀에게 적용했던 일종의 별명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고따마 왕실에서는 야소다라(Yasodharā)와 단다빠니((Dandapāni)의 딸이라고 불렸는데, 이것은 나중에 혼동되었을 것입니다. 주석서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의 몸이 빛나는 황금색이었기 때문에 밧다깟짜나(Bhaddakaccānā)로 불렸다고 하는데, 이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한편 그녀의 이름이 깟짜나(Kaccāna) 종족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깟짜나(Kaccāna)는 바라문 종족이었고, 석가족(Sākyans)은 바라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붓다께서 여인의 출가를 허락했을 때, 라훌라의 어머니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Mahāpajāpati Gotamī) 밑에서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2) 라훌라의 출가 인연

    라훌라(Rāhula, 羅睺羅)의 출가 사정에 대해서는 팔리 『율장(律藏)』「대품(大品)」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붓다께서 까삘라밧투를 방문한지 칠일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왕궁에서 공양을 마치고 붓다께서 떠나려고 할 때였습니다. 그때 라훌라의 어머니(Rāhulamāta)는 어린 라훌라에게 말했습니다. “라훌라야, 저 분이 너의 아버지이시다. 가서 너의 유산을 달라고 해라.” 라훌라는 세존께 다가가서 그 앞에 섰습니다. “사문이시여, 당신의 곁에 있으니 즐겁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렸습니다. 라훌라는 세존의 뒤를 따라 가면서 “사문이시여, 저의 유산을 주십시오. 사문이시여, 저의 유산을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는 사리뿟따(Sāriputta, 舍利弗) 존자에게 말했습니다. “사리뿟다여, 그대가 라훌라를 출가(pabbajjā)시켜라.”

    “세존이시여, 라훌라는 어떻게 출가시켜야 합니까?” 그러자 세존께서는 법을 설해 주고자 할 때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붓다는 비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나는 사마네라(Sāmanera, 沙彌)의 출가는 삼귀의에 의해 허락한다. 하지만 출가는 이러한 방법으로 해야 한다. 먼저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색 가사를 몸에 걸치게 한다. 그리고 한쪽 어깨에 상의를 걸치고, 비구들의 발에 예배하게 한다. 무릎을 꿇게 하고, 두 손을 올려 합장 한 채, 삼귀의를 낭송하게 한다. 곧 ‘저는 붓다(Buddha, 佛)께 귀의합니다. 저는 담마(Dhamma, 法)에 귀의합니다. 저는 상가(Sangha, 僧)에 귀의합니다. 두 번째 저는 붓다께 귀의합니다. 두 번째 저는 담마에 귀의합니다. 두 번째 저는 상가에 귀의합니다. 세 번째 저는 붓다께 귀의합니다. 세 번째 저는 담마에 귀의합니다. 세 번째 저는 상가에 귀의합니다.’라고 말하게 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사미의 출가는 이와 같이 삼귀의를 함으로써 이루어지느니라.”

    그리하여 사리뿟따 장로는 라훌라를 출가시켰습니다. 그러자 숫도다나 왕이 세존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세존께 공손히 절하고 한쪽에 앉은 뒤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고따마시여, 여래는 은혜를 초월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부탁은 적절하며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닙니다.”
    “고따마시여, 그렇다면 말해 보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출가하실 때 저는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난다(Nanda)가 출가할 때도 그러했는데, 이제 라훌라까지 출가하니 저는 너무나 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자식에 대한 애정이 저의 피부를 도려냅니다. 피부를 도려낸 뒤 살갗을 도려내고, 살점을 도려내고, 힘줄을 끊고, 뼈를 자르고, 골수를 뽑아내는 듯합니다. 세존이시여, 원하건대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은 아들은 출가시키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세존께서는 숫도다나 왕에게 법문을 베푸셨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 지니게 하고 격려하고 기쁘게 하셨다. 세존의 법을 받아 지니고 기뻐한 숫도다나 왕은 세존께 공손히 절한 뒤 오른쪽으로 도는 예를 올리고 떠났다.

    이러한 인연으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모이게 한 뒤 법문을 베푸신 뒤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은 아들을 출가시켜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자는 악작을 범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숫도다나 왕의 마음을 한번쯤 헤아려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는 붓다가 돌아온 후 아들 난다를 빼앗기고, 손자 라훌라마저 잃어버렸기 때문에 비통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특히 그 손자를 잃은 슬픔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왕계(王系)가 단절되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왕은 직접 붓다를 찾아가서 앞으로는 부모의 허락 없이는 자식을 출가시키지 못하도록 금해 주시기를 간정했던 것입니다. 붓다는 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렇게 하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 라훌라는 혹독한 수행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때에는 잠잘 곳이 없어서 붓다가 쓰는 뒷간에서 하룻밤을 보낸 일도 있었습니다. 붓다께서 라훌라에게 한 교훈의 말씀들을 보면 라훌라는 장난삼아 거짓말을 잘하는 버릇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버릇을 없애기 위해 붓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사문의 법임을 강조하였다고 합니다.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中部)에는 ‘라훌라에게 주는 말씀’이란 제목의 경전이 세 개나 실려 있습니다. 어린 라훌라에게 법을 가르치고 있는 이 경전들은 대부분 계율과 선정을 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마하라훌로와다-숫따(Mahā-Rāhulovāda Sutta)』의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라훌라야! 자애[愛, mettā]를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자애로운 마음을 닦으면 나쁜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더불어 아파함[悲, karunā]를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을 닦으면 잔인한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더불어 기뻐함[喜, muditā]를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을 닦으면 혐오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평온함[捨, upekkhā]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평온한 마음을 닦으면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육신의) 더러움[不淨, asubha]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더러움을 관하는 공부를 닦으면 애욕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무상의 개념(無常想, anicca-saññā)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무상의 개념을 관하는 공부를 닦으면 아만(我慢, asmi-māna; ‘내가 있다’ ‘나다’라는 생각)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출입식(出入息)을 염하는 공부(ānapāna sati)를 닦아라. 라훌라야! 출입식을 염하는 공부를 닦아 자주 익히면 얻는 바가 많아서 크게 이익되리라.”

    라훌라를 불전(佛典)에서 ‘학족제일(學足第一)’의 제자라고 칭찬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열심히 정진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의 주석서에 의하면, 라훌라는 12년 동안 침대에 눕지 않았다고 합니다. 라훌라가 읊은 네 개의 게송은 『테라가타(Theragāthā, 長老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행복한 라훌라’라고 부른다. 나는 두 가지 행운을 누리고 있다. 하나는 내가 붓다의 제자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일체의 도리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의 오염은 소멸되어, 이제 헛된 삶을 받는 일은 없다. 나는 존경받아야 할 사람, 공양받아야 할 사람, 세 가지 명지(明知)를 체득한 사람, 불사(不死)를 얻은 사람이다.

    그들은 갖가지 욕망에 눈이 멀어, 삿된 올가미에 걸리고 망집(妄執)에 들씌워져 게으름뱅이 친족들에게 얽매어 있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같이.

    나는 애욕을 떠나 악마의 속박을 끊고 애착을 뿌리 뽑아, 서늘해지고 평안해졌다.

    후대의 문헌에서는 라훌라를 붓다의 십대제자 가운데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밀행제일이란 계율을 정해진 그대로 세세한 것까지 지켜, 실천하는 데에 제일이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