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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

마음의 구김살를 제거하자

by 회심사 2017. 8. 3.

    불교는 깨침의 종교이다.
    깨침은 일체의 미망에서 환하고 밝게 되는 것이다. 미망이 가득 차 있으면 혼미가 난무한다.
    미망처럼 무섭고 가공할만한 것이 없다. 우리들 주변에는 미망한 것이 뒤엉켜 표류하고 있다. 표류하는 미망에 부딪치면 파괴되지 않는 것이 없다. 미망은 암초와 같고 빙하와 같은 것이다.

    항해하는 선장은 빙하를 만나거나 암초를 모면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난파하거나 침몰할까 두려워서다. 바다에는 빙하와 암초가 없을 때 순항이 보장받을 수 있다. 항해사는 평온한 바다를 희구한다. 이것은 항해가 순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서 있기 때문이다.

    깨침의 종교인 불교에도 미망의 암초나 빙하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중생들의 마음속에는 무한한 미망을 품고 있다. 이 미망이 바로 생활적인 마음이라 생각하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루의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부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서 육식하는 마음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고기를 먹는 것이 비린 것이 아니라 마음의 미망이 가득 차 있으면 그것이 육식의 비린행위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생을 하고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 도리어 그들을 해치려 하고, 성미가 나빠 욕심 많고 난폭하며 무례한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육식은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서 욕망을 억제하지 않고 맛있는 것을 탐내고, 부정한 생활에 어울리며, 허무론을 가지고 바르지 못한 행위를 하는 완고하고 어리석은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육식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현재적 자기만을 위하면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즉물적 생활이 만족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겸양이나 양보가 없다.
    겸양을 하는 것은 손해를 보고 양보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생각한다.
    절대로 내가 이겨야 하고, 언제든지 내가 독차지하여야만 한다고 억지와 고집을 부린다.
    그러므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이고, 빼앗고, 상해하고, 난폭과 무례로서 상대를 괴롭힌다.

    인간은 탐익 한 비행, 흉포한 야만성을 내 함하여 그 의식을 적절하게 작용하면서 극도의 고통을 부하하게 한다. 이것은 ‘비린내’ 나는 행위이다. 음식물에서 비린내가 나면 쉬이 제거할 수 있지만 마음의 비린내는 오래도록 제거되지 않는다. 우리는 마음속의 ‘비린내’를 멸진시켜야 한다. 욕망의 억제, 미탐, 부정, 허무주의, 우치 등 이 모든 것을 마음속에서 생성되는 ‘비린내’이다. 이 비린내를 나로부터 탈각시키고 탈진시키는 마음공부를 하여야 한다.

    불교가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를 달라지게 할 필요가 없다.
    불교는 깨침의 종교로서 표방된 진리이다.
    깨침은 변이, 변질, 변화할 수 없는 것이다.
    깨침은 항상 밝고 환하게 우주의 빛으로 변만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달라져야 하고 개혁되어야 한다.
    사람은 옛날과 같이 똑같은 비린내를 갖고 있으라 하면서 깨침이 달라져야 한다고 하는 것은 본질을 말소시키려는 미망의 소행이다.

    한국 불교인은 날마다 사찰에서 기도와 참회를 한다.
    발원적 신행도 앞서고 있기도 하지만 혹자에게는 기복적 형태로서 기도와 업장소멸을 염원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한국불교는 개인적 신앙에는 투철하지만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방면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있다. 사실 인간은 자기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자기 옆에는 이웃과 사회가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여야 한다. 이 사회에 깊은 관심을 쏟아 넣는 신앙을 가져야만 한다. 대사회적 상관관계가 결여된 신앙은 개인소득을 증장시키는 일밖에 하지 않는다.

    이제 불교를 신앙하는 사람은 깨침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 볼 기회를 가져야 한다.
    깨침은 중생의 삶을 빛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임을 자각하여 나가는 것이다.
    미망, 무지, 탐애가 밤에 활동하는 암흑의 무명이라고 하면 깨침은 밝음의 한복판에서 일체중생을 두루 비추는 한낮의 광명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한국불교는 깨침이 원력이 되고 기도가 되는 신앙으로 전향되어야 한다.
    이렇게 변화하는 불교인이 되면 깨침과 삶이 하나가 되는 성스러운 불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보산 법광 두 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