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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

사람들은 왜? 괴로워하는가?

by 회심사 2017. 8. 7.



-사람들은 왜? 괴로워하는가?.-
    사람들은 본능적. 맹목적으로 나라는 것을 변치 않은 존재로 믿거나 믿고 싶어 한다.
    여기에서 모든 종류의 괴로움이 생겨난다.


    부처님은 괴로움의 원인은 무지와 집착 때문이라고 가르쳤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무지와 집착은 무명과 갈애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무지와 집착은 나와, 나의 것이라는 관념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인간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집착의 밑바닥에 놓인 나라고 하는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쳤다.

    불교에서는 사람을 유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정이라는 말은 팔리어 삿다(satta) 혹은 범어 삿드바(sattva)를 번역한 것이다.
    이 단어는 "욕탐에 의해 염착 되는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 되어 있다.
    즉 우리 유정은 본래 염착하며 집착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초기경전에서는 사람들의 집착을 네 가지 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1. 감각적 쾌락에 의한 집착.
    2. 잘못된 견해에 대한 집착.
    3. 계율과 의례 등에 대한 집착.
    4. 자아에 대한 주장에의 집착. 등이다.

    이 네 가지 집착 중에서 자아에 대한 집착은 오온에 대한 20가지 잘못된 견해를 말한다.
    이것을 유신견(有身見)이라고 부른다.

    사람의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가 모인 것을 오온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오온을 아무리 분석해 보아도 고정 불변하는 실체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은 다섯 가지 요소의 모임, 즉 오온에 불과할 뿐 영원불변하는 자아는 없다고 말 했다.
    다만 있는 것은 괴로운 현상, 즐거운 현상, 지각하는 현상들뿐이며,
    이런 현상들도 쉴 새 없이 변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온에 대하여 탐욕을 가지고 집착하고 염착한다.

    우리들 범부는 이 변하는 현상에 대해 순간순간 자기 자신이라고 집착한다.
    그리고 실상은 덧없고(無常), 괴로운 것이며(苦), 실체가 없다(無我)는 것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라는 자아의식이 생긴다.
    이로 인해 생사윤회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오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쳤다.
    즉 색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다.
    괴로운 것은 나가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이는 색(色)에서 해탈하고 수(受). 상(相). 행(行),식(識)에서 해탈한다.
    이러한 것을 생로병사와 우비고뇌(憂悲苦惱)에서 해탈 했다고 하는 것이다.


    오온의 집착을 쉬면 모든 고통과 근심,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초기 경전에서는 오온의 무상, 고, 무아를 여실이 아는 것이 해탈이라고 했다.
    나도 “금선사”에 머물면서 신도라는 집착에 억매여 살았던 것이다.
    나는 어리석게도 신도에 묶여 꼼짝 탈 짝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때까지 쓰던 집무실을 비우고 아랫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나를 멀리서 바라보면서 사는 홀가분한 삶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집무실을 떠나기 위해 많은 소지품들을 버리고 또 버렸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녀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 이다.
    집착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 몸마저도 버리고 떠나야 한다.
    내가 숨 질 때 가지고 갈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집착할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을 때 우리에게서 괴로움은 떠나는 것이다.
    나라고 주장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무소유로 살게 되면 집착도 적어지고 괴로움도 없어진다.
    매사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살아가자.


    불기2558년 1월 24일

    보산 법광 두 손 공손히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