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급수가 있다.
칠푼이 팔푼이만 급수가 있는 게 아니라
멀쩡한 사람도 다 급수가 있다.
그러나 학벌, 재산, 지위, 재주로 급수가 정해지는 게 아니다.
오직 한 가지,
세상 보는 눈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사람 급수가 드러난다.
동서양 역사책에도 없고,
학교 교과서에도 없고,
스승의 가르침에도 없는 세상 보는 눈은 전수 아니요 생성이다.
씨눈이 터여서 나무로 크는 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씨눈 어디에 나무가 들어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알밤을 그려놓고 이러쿵저러쿵 밤나무의 원초를 주장하고
정자 난자를 그려놓고 인간의 태초를 해설하나 공허하기 짝이 없듯이
세상 보는 눈도 딱 집어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쁜 년이 바람나면 여러 사내 신세 망치듯
유식한 놈에게 세상 보는 눈이 잘못 박히면
여러 사람에게 해독을 끼친다.
세상이 시끄러운 게 어디 못 배운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잘못 배운 놈들이 많아서 탈이지.
오욕칠정으로 범벅이 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빈 말이다.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으로 사람을 보고, 시대를 보고, 역사를 보면 무위의 자유를 찾게 된다.
저 이름 모를 들새의 날개만큼만 세상 보는 눈을 높여 보자.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계산된 허무이지만,
빈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유스러운 자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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