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삼법인(三法印), 사법인(四法印), 제행무상(諸行無常)-卍
이와 같이 본질적인 난해성 이외에 불교용어가 일반사회의 용어와 다른 것이 많은 것도 불교를 난해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용어에도 체험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일도 있으며, 또 동일한 한역어가 서로 다른 인도 말에서 유래된 별개의 뜻을 지니고 있거나 동일한 인도 말이 발음으로 번역되거나 뜻으로 번역되어 있고 이들 번역어에도 신구의 갖가지가 있어 매우 복잡하다 또 인도어 자체가 동일 어에 여러 가지 개념내용을 포함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諸行無常의 行은 인도말로 상카라(산스카라)라고 하는데, 이 면에는 광협의 갖가지 뜻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行이란 가장 넓은 뜻으로 쓰이는 것으로서 생멸 변화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諸行無常이란 모든 현상계는 불생불멸의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생멸하고 변화하는 것임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불생불멸의 실체라던가 형이상학적인 본체라던가 하는 것은 결코 설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들의 경험적 인식할 수 없는 것이며, 또 비록 인식되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세계로서의 현상계와는 관계없는 것이라 하여 이를 다루는 것이 금지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문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세계로서의 현상세계뿐이다. 불교에서 일체의 존재라든가 제행(諸行)이라 할 경우에는 모두 현상세계만을 뜻한다. 법인 중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이 최초에 놓인 것은 물(物)이던 심(心)이던지 모든 현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여 순간도 정지하지 않는 것은 오늘의 자연과학에서도 사실로 인정할 뿐 아니라 2500년 전 세존께서도 이것은 증명을 요하지 않고 언제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라 하여 다른 법인을 설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이것을 먼저 설한 듯하다. 경전가운데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무아(無我)인 것이다]하고 설해 있으나 이것은 제행무아(諸行無我)의 법인(法印)의 근거로서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이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예로부터 전통적인 견해에 의하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면 세상의 현상이 좋은 방향으로부터 나쁜 방향으로 변화해 가는 것을 말한다. 권불십년(權不十年)과 같은 현상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였다 사람이 죽는 것을 「무상(無常)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뜻이다. 그러므로 무상(無常)이라는 말에는 염세적, 절망적인 뜻마저 포함되고 있다. 그러나 무상(無常)의 본래의 뜻은 순경(順境)으로부터 역경(逆境)으로 전락하는 것뿐 아니라 반대로 역경(逆境)으로부터 순경(順境)으로 발전 변화하는 것도 무상이다.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건강한 젊은이가 병이 나거나 노쇠하거나 사망하는 수도 있으며, 병약자가 건강해지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며, 어리석은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불만스러운 곤경을 벗어날 수도 있으며, 수양, 노력하는 보람도 있는 것이다. 세상이 무상(無常)하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끊임없이 움직일 뿐 아니라 인간사회도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항상 변화하고 있으며 자연계에 있어서도 소우주(小宇宙)로서의 원자(原子)와 전자(電子)는 끊임없는 운동을 계속하고 대우주(大宇宙)로서의 천체도 끊임없는 운동, 변화 속에 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영원한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왜 제행무상(諸行無常)이 불교의 근본명제로서 다루어지고 있는가 하면 거기에는 이론적인 이유와 실천적인 이유와 실천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론적으로는 제행(諸行)이 무상한 데서 세사에서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인식되지 않는다는 무아설(無我說)의 근거를 이루는 것이다. 「색(色)(물질(物質))은 무상한 것이다. 무상한 것은 고인 것이다. 고라는 것은 무아인 것이다. 」 라고 경전에 설(說)해놓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무상을 말하게 되는 실천적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이다. 실천적으로 무상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을 무상관(無常觀)이라 한다. 무상관(無常觀)의 제일의적인 것은 종교심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무상이란 사태가 잘 변화하는 것도, 나쁘게 변화하는 것도 뜻하는데, 나쁘게 변화하는 경우, 불행과 비애를 강하게 느끼고 무상의 느낌이 통절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고뇌와 비애를 해결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종교심이 싹트는 경우가 많다. 친한 사람이 죽었다거나 불행 등으로 무상을 경험하여 종교, 신앙 속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 것이 그것이다. 「무상하기 때문에 고이다」고 설해지고 있듯이 무상을 위해 고뇌를 경험하고 자기반성을 하여 사태를 조용히 정관(靜觀)할 수 있게 된다. 거기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세계가 펼쳐지며, 자기와 세상의 결함도 알게 되며, 이상으로 구하는 종교심이 싹트는 것이다. 무상관이 종교심을 일으키는 큰 동기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제2에는 무상을 관찰함에 따라 집착심과 교만심(驕慢心)을 제거하게 된다. 세상에는 무엇하나 상주 불변하는 것은 없다. 자기와 또는 친한 사람이라도 재산과 지위, 명예까지라도 언제 그것이 없어질는지 나쁘게 변화할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에 집착하거나 그것을 자랑하여도 그 것은 아무 소용없다. 언제 와해되고 소실될지 모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상의 사실을 바르게 관찰한다면 결코 헛되이 집착하거나 뻐기지 않고 언제나 겸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으며, 그러한 태도가 주위 사람들과도 융화할 수 있는 것이다. 제 3 은 무상을 관함에 의하여 사회와 인생의 움직임을 바르게 알고, 제행(諸行)을 아껴 정진, 노력하게 된다. 모든 사상은 시시각각으로 생멸(生滅) 변화하며 한번 지나가 버린 것을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생존은 전술한 바와 같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과거의 모든 경험의 집적으로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 경험은 시시각각 현재의 찰라뿐인 것이다. 현재 찰라의 경험만이 그 습관력(習慣力)을 남기는 것이므로 습관력(習慣力)이 집적된 지능, 성격, 체질 등의 소질이나 인격은 과거의 현재 찰라의 경험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 시시각각(時時刻刻)의 현재 찰라의 경험이 장래 우리의 소질과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인격을 만드는 것은 선악과 같이 현재 찰라의 경험뿐인 것이다. 따라서 때때로 지나가는 현재의 찰라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찰라에 모든 힘을 기울여 노력을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상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으며, 이것 이외에 방법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무상하기 때문에 순간순간의 현재를 소중히 하여야 한다. 이러한 뜻에서 무상관은 우리를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끄는 것이다. 석존이 제자들에게 최후의 유계(遺誡)로서 「제행(諸行)은 쇠멸무상(衰滅無常)한 것이다. 너희들은 방일하지 말고 목적완수를 위해 노력하여라.」하고 말씀하신 것은 그러한 뜻이다. 그러고 무상관에 의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수행을 충실하게 하라는 말씀으로 「현선일야(賢善一夜)의 게(偈)」라는 것이 원시경전 속에 다음과 같이 설해지고 있다. 과거를 따르지 말라. 그리고 미래를 원하지 말라. 과거는 이미 가고 없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나니 다만 현재의 법을 그때그때 관찰하여 흔들리지 않도록 움직이지 않도록 잘 요달(了達)하여 수습(修習)하라. 오늘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것,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랴……. 이와 같이 주(住)하고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는 자, 이를 적정(寂靜) 모니(牟尼)인 일야(一夜) 현자(賢者)라 하나니. 그리고 또 다음과 같은 시게(詩偈)도 있다. 과거를 생각하여 슬퍼하지 말고 미래를 원하여 구하지 말라. 다만 현재의 의하여 생활하면 그 까닭으로 안색도 명랑하리라. 요컨대 무상관은 염세적인 면에서 구도심(求道心)과 종교심을 일으키는 것도 되지만, 집착과 아집(我執)을 벗어난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고, 시간을 헛되이 하지 않으며 시시각각을 알차게 하고, 이상(理想)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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