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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불교자료실

3. 불교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by 회심사 2019. 6. 17.


3. 불교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이며, 종교에는 불변의 진리가 담겨있어야 하고, 보편타당한 객관적 합리성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신앙보다는 신행(信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실이 곧 과거 현재 미래임을 알고, 죽은 뒤의 극락과 천당이 아닌 현실의 만족에서 오는 극락, 천당을 실현해야 한다.

      현실의 만족은 참회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매사에 긍정적인 자세로 적응함으로서 찾아온다. 우리가 괴로워하고 불안에 떠는 것은 욕망으로 인하여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렇듯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신행(信行)에는 미신이라는 용어가 있을 수 없고, 다만 믿음만을 강조하는 신앙에서만 존재할 따름이다. 즉, 잘못 믿으면 망신(亡信), 미혹하게 믿으면 미신(迷信), 눈감고 믿으면 맹신(盲信), 미치도록 믿으면 광신(狂信)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목마르도록 애타게 신을 찾아 구원을 외쳐댄다 하더라도, 길 잃은 어린이가 어머니를 찾는 절규만은 못할 것이다. 비슷한 사람이 많아도 어머니만을 찾는 것은 절대적 생명의 보호자이며 의지 처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떠한 위험에 빠져있더라도 어머니 품안에서는 걱정하지 않고 안심한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어머니가 자신의 생명에 대해, 무능력하다는 것을 알고 그 대상은 변한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어서는, 어떤 것도 자신의 고통과 번뇌를 해결해 주거나,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이렇듯 자각이 빠른 사람은 근심하며 노력한다. 그러나 자각이 늦은 사람은 계속 구원자를 찾아 헤맨다.

      만해스님의 조선 불교유신론 서론에 보면 “이 세상에 어찌 성공과 실패가 그 자체로서 존재하겠는가. 사람에 의거하여 결정될 뿐이다. 모든 일이 어느 하나도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소위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는 것이니, 만약 사물이 자립하는 일이 없고 사람에 의존할 뿐이라면, 일에 성패가 있는 것도 결국은 사람의 책무일 따름이다.” 라고 했다. 이는 만약 신에 의해 만물이 창조되어지고 운행되어진다면, 모든 것은 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고,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있다.”고 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지닌바 자유를 완전히 상실케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사람에게 성공하기에 족한 노력이 있어도 하늘이 실패로 돌리기도 하고, 사람에게 실패할 만한 노력밖에 없는데도 하늘은 이를 성공시킬 수 있다면 이보다 사는 의미가 없는 것이 있겠는가,

      즉 사는 재미가 정말로 없을 것이다.
      파스칼도 “불행의 원인은 늘 자신이다.
      몸이 굽으면 그림자도 굽어 비친다.
      어찌 그림자 굽은 것만 한탄할 것인가.
      나 이외에는 아무도 나의 불행을 치료해 줄 사람은 없다.
      내 마음은 스스로 불행을 만드는 것과 같이 불행의 치료도 내 자신만이 할 수 있다. 내 마음을 평화롭게 가져라. 그러면 그대의 표정도 평화롭고 화애로와 질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94년 통계청에서 실시한 종교 인구 현황을 살펴보면, 다른 종교인의 증가 추세에 비해 불교인구 증가세가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인구수에 있어서는 아직도 불교인이 다소 많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이 불교의 교리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실천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한국 불교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새로운 신도를 맞이하는 포교도 중요하고 시급하지만 기존 신도를 바르게 교육시키고 수행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본다.

      그렇지 못할 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 불교인들이 갔어야 할 신행단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심 없이 믿고(信), 자신이 믿고 있는 가르침이 어떠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며(解),믿고 이해한 것을 일상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형태로 실천함으로서(行), 부처님께서 이미 깨달으신 것을 증득한다(證)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모습은 등 밝히기나 불사권선이 불자의 도리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면 불교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현실생활의 도피책으로 이용될 것이다.

      불교는 선을 행하라고 가르치지만 많은 이들은 선을 행하는데 관심이 없다. 적어도 잠시만이라도 질투, 자존심 그리고 사악함을 없애는 법을 배워간다면 불교를 실천할 올바른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나쁜 생각을 없애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을 마음속에 감추고 기르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이익과 권력을 위해 불교를 악용하고 있다.

      불교가 이 세상에서 독선적인 관념만을 쫓아 남들에게 피해나 주는 사람들의 현생과 내생을 보장해주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법의 힘을 가지고 강제적으로 종교적 신조를 퍼뜨리려고 해서는 안 되고 그 종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한다.

      즉 종교적 신앙은 남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신념에 따라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어떤 종교에서는 사람들의 사고가 그들 자신을 벗어나 알 수 없는 외부의 어떤 존재를 향해 있는데 불교는 그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향하도록 한다.

      자기 확신은 인간 생활의 모든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에 대한 모든 책임이 전적으로 그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불교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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