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불교, 어떻게 믿을것인가-卍
남은 말할 것도 없고 친척, 심지어는 자식 까지도 믿을 것이 못된다. 뉴스나 광고는 물론이지만, 학설까지도 견해가 엇갈려 어떤 쪽을 따라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재산과 권리와 명예라는 것은 본래부터 덧없는 것이지만, 심지어 종교와 성직자까지도 불신을 받고 있다. '불교, 어떻게 믿을 것인가?’라는 주제는 불교 신앙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라는 믿음의 방법을 묻고 있는 말이지만, 불교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불신의 뉘앙스가 먼저 풍기는 것은 아이러니칼하다. 그러나 인간이 믿음을 상실하고 살수가 있을까? 오늘 힘들여 일하는 것은 내일을 믿기 때문이고, 오늘 힘들여 가르치는 것은 다음 세대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그만두고라도, 지금 이 시점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무엇인가를 믿고 그것에 의지하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믿음은 인간 존재를 가능케 하는 정신적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흔들릴 때 인간은 불안해지고, 그것이 제약될 때 인간은 외로워지고, 그것이 사라질 때 인간은 죽게 된다. 반대로 그것이 일어날 때 인간은 소생하고, 그것이 확장되고 튼튼해질 때 인간은 외로움과 불안을 극복하여 밝고 힘찬 삶을 맞게 되는 것이다. 믿음은 이와 같이 인간 존재의 정신적 바탕이 되기에, 사람들은 믿음의 위험성을 겪으면서도 믿음을 또한 구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번 속은 친구라면 아예 돌아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두번 세번 속는 것은 어리석음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믿고 싶은 인간성의 나약함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성의 나약함은 재산의 파탄이나 불치병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더욱 절실하게 믿음을 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아무 교설이나 닥치는 대로 믿음을 일으킨다. 그리고 간혹 그런 맹목적인 믿음은 강열하고 순수한 만큼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내는 절대적인 힘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믿음은 그 내용이 진리냐 아니냐에 관계없이 위대한 것이라고 말하고, 그런 믿음이 종교적 믿음의 특징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맹목적인 믿음을 진정한 종교적 믿음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진정한 믿음이란 끝내 허망(虛妄)하지 않은 영원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 대상은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어야 하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어야 하고,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의 대상을 우리 주변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종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인류가 발생시킨 여러가지 문화현상 중에서 영원한 진리와 진정한 가치를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그래도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종교 현황은 어떤가? 불교를 비롯해서 기독교, 유교, 도교, 무속 등과 같은 여러가지 종교관념이 난립해 있다. 공산주의적인 유물론도 고대 사회에서는 일종의 종교 관념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 종교가 내세우고 있는 진리의 내용은 왜 그렇게 서로 다른가? 불교에서는 세계를 인간의 마음이 만들었다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의 창조라고 하고, 유교에서는 음양(陰陽)의 원리에 의한 것이라 한다. 영원하고 궁극적인 진리는 하나여야 할 것인데, 왜 이렇게 각 종교의 주장은 서로 내용이 엇갈리는 것일까? 종교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자 할 때, 우리에게는 다시 이런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이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길은 두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어느 종교이든 하나를 골라 덮어놓고 믿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각 종교의 교설에 관심을 갖고 그것이 과연 진리인가 아닌가를 먼저 문제로 삼아 보는 경우이다. 이런 두 가지 방향에서 어떤 쪽을 택할 것인가는 각자의 자유이겠지만, 전자는 결코 종교적 자세라고 볼 수가 없다. 왜 그러냐면 종교는 항상 영원한 진리와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 종교나 하나 골라 덮어놓고 따른다는 그러한 마음은, 그것이 바라는 세속적인 물질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언제라도 딴 곳으로 눈을 돌린다. 따라서 진정한 종교적 믿음은 무엇보다도 먼저 종교적 교설의 진리성 여부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먼저 확인코자 하는데에 있다고 말할 수가 있다. 종교적 믿음의 선행 조건을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이제 판단의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그것은 아직 믿음의 단계에도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그 종교에서 설하는 교설의 내용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헤아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신을 인식할 수 없다고 하고, 불교에서도 참다운 진리는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주고받을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믿어 보기도 전에 교설의 내용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알고자 하는 것부터가 잘못이요, 오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범속한 인간의 지적 능력이 아무리 불완전한 것이라고 해도, 선.악이나 진위(眞僞)와 같은 것을 전적으로 식별한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불완전한 것은 아니다. 기독교와 같은 종교에서도 인간은 신을 완전하게는 알 수 없지만, 신이 스스로 그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啓示)하므로써 인간은 신에 대한 부분적인 지식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결혼 대상을 고를 때 먼저 그 사람이 믿음직한가 아닌가를 살펴보듯이 종교에 대해서도 과연 그것이 믿음직한 진리인가 아닌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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