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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해설-제2강 화엄경의 편찬과 유통

by 회심사 2019. 7. 19.


제2강 화엄경의 편찬과 유통

      1. 인도·서역의 화엄경 편찬

      《화엄경》은 화엄부의 대표적인 경전으로서 '대방광불화엄경'의 준말이다.
      《화엄경》의 원 범명은 인수 없으니 원본인 범본이 Dasabhumika(다사부미카)라고 불리는〈십지품〉과 Gandavyuha(간다뷰하)라고 불리는〈입법계품〉 외에는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엄의 제목에 대해서는 현재 크게 세 가지로 재 번역되고 있다.
      즉 Maha-Vaipulya-Buddha-Ga a-Vy ha S tra(마하 바이풀리야 붓다 간다뷰하 수트라, 대방광불화엄경), Buddh vata saka(붓다바탐사카, 불화엄경), Avata saka S tra(아바탐사카 수트라, 화엄경) 등이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경의 한역본으로는 60권· 80권· 40권으로 된《육십화엄》·《팔십화엄》·《사십화엄》등 3부《화엄경》이 있다. 이중《사십화엄》은〈입법계품〉만의 별역이다. 이중《육십화엄》과《팔십화엄》을 화엄대경(大經)이라고 부른다.

      《육십화엄》은 동진시대에 불타발타라에 의해 418∼420년에 번역되었고 교정을 거쳐 421년에 역출되었다. 이를 진본(晋本)이라 하고 또는 화엄대경 중 먼저 번역되었다 하여 구경(舊經)이라고도 부른다.《팔십화엄》은 대주(大周, 695∼699)시대 실차난타에 의해 역출되었으니 이를 주본(周本) 또는 신경(新經)이라 한다.《사십화엄》은 당(唐, 795∼798)의 반야다라가 역출하였으며 정원본《화엄경》으로 불리고도 있다.

      그러나《육십화엄》이나《팔십화엄》은 처음부터 대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화엄경》을 구성하고 있는 각품이 별행경(別行經 또는 支分經)으로 먼저 성립되어 있었으며, 그 지분경을 모아 어떤 의도 하에 조직적으로 구성한 것이 웅대한 화엄대경인 것이다.

      화엄부 경전으로는 《화엄경전기》에 《도사경》 1권(지루가참 역, 178∼189)·《보살본업경》(지겸 역, 222∼228)·《여래흥현경》4권(축법호 역, 291) 등을 위시하여 36부 150권의 지분경이 열거되어 있다.

      이들 경은 그 역출 시기(2세기~10세기)로 보아, 용수(N g rjuna, 150∼250) 이전까지〈십지품〉·〈입법계품〉등을 비롯하여 상당수가 이미 성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용수보살이《십지경》에 대한 주석을 한 데서도 당시에《십지경》이 크게 유통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 품으로 구성된, 현《화엄경》과 같은 대경의 조직은 대략 250년에서 350년대의 편성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입법계품〉등의 성립은 남방인도에서라고 생각되나 대경인《화엄경》의 편성은 우전(于 )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 지방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대승불설비불설 논쟁이 한동안 크게 일어나 있었다.
      대승경전은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내용이 입으로 전래되어 오다가 문자화된 아함부 경전과는 다르니, 대승경전은 모두 불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승비불설에 대해 대승불설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니 대승경전이 비록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글자 그대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부처님의 근본정신을 새로운 문자로 다시 편찬한 경전이기에 불설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화엄부 경전 자체 내에서도 경의 설처(說處)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보리도량이며, 설한 시기도 성도 직후로 되어 있다.《팔십화엄》에는 시성정각(始成正覺)이라 하고,《육십화엄》에도 시성정각이며 세친(世親)이 지은《십지경론》의 저본이 된《십지경》에는 제이칠일(第二七日)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천태교판에서도 이를 최초 삼칠일이라고 하였다. 즉, 아함경을 12년간, 방등경을 8년, 반야경을 21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화경을 8년간 설하시고,《화엄경》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최초 삼칠일, 즉 21일 동안 말씀하신 경이라는 것이다〔阿含十二方等八 二十一載談般若 終說法華又八年 華嚴最初三七日〕.

      그러나 이것은《화엄경》의 역사적 성립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화엄경》의 사상적 특징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화엄경》은 부처님의 세계를 드러낸 것임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2. 화엄경의 유통과 주석 ― 인도· 서역

      《화엄경》의 유통과정을 보면 법장의〈화엄경전기〉에는 서역에서 전해졌다〔西域相傳〕고 하였고, 〈용수전〉에는 용수보살이 바다에 들어가 용궁에서 가져왔다는 용궁장래설이 있다. 즉 용수보살이 용궁에 들어가 보니 3본 《화엄경》이 있는데, 상본과 중본《화엄경》은 그 양이 방대하여 외우기 불가능하였다고 한다. 그 상본《화엄경》은 십삼천대천세계 미진수게송과 일사천하 미진수품이 있었다고 한다(이 내용은 우리가 아침에 예불하기 전에 치는 쇠송 염불문에도 들어 있다). 용수보살은 하본《화엄경》십만게 사십팔품을 외워서 세상에 유통시켰으며 지금 전해지는 한역된 삼대부는 그 중 약본 《화엄경》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은 용수 이전부터 있었던《화엄경》을 용수가 비로소 크게 유통시켰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용궁이란 용을 토템으로 하는 종족에게서 유통되고 있었음을 뜻하기도 하고 남해지방에서 가져온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도 한다.

      용수보살은《화엄경》을 주석하여《대부사의론》100권을 지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이는〈입법계품〉에 해당하는《불가사의해탈경》에 대한 주석이다.
      용수보살은《십지경》에도 주석을 하였으나 남아 있지 않고〈십지품〉의 일부인 초지와 제이지가 구마라집(鳩摩羅什) 역출의《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娑論)》으로 유통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용수보살의 화엄보살도 사상을 읽을 수 있다.
      용수의 화엄사상은 이외에도 그가 지은《대지도론(大智道論)》을 비롯해《보행왕정론(寶行王正論)》·《대승이십송론(大乘二十頌論)》·《육십송여리론(六十頌如理論)》·《보리심이상론(菩提心離相論)》등에서 발견된다.

      4세기(320∼400) 혹은 5세기(400∼480)경에 활약한 것으로 보이는 세친(Vasubandhu)보살은《십지경론》을 지어《십지경》을 크게 유통시켰다. 이《십지론》은 중국에 전래되어 화엄종의 선구인 지론종의 소의가 되었으며, 여기서 보이는 육상설은 화엄 육상원융론의 기초가 되었다. 이렇게 용수와 세친은《대승기신론》의 저자로 알려진 마명(A vaghosa, 50∼150)과 함께 화엄조사로 숭앙받게 되었다.

      마명보살은 용수보살보다 100년경 앞선 50∼150년경에 사셨던 분으로 여겨지는데, 이때의 마명보살이《대승기신론》을 지었다고 볼 수 없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원효의《대승기신론소》· 《별기》에만 해도 이 점을 알 수 있다. 원효는《대승기신론》의 여래장사상을 특징짓기를, 인도 대승불교사상의 양대 조류라 할 수 있는 중관과 유식의 양 사상을 회통시킨 것이라고 보았다.

      중관이 파하기만 하고 세울 줄 모르며, 유식이 세울 줄만 알고 파할 줄 모르는 데 비해, 《대승기신론》의 여래장사상은 세우고 파함이 무애하고〔立破無碍〕 열고 닫음이 자재하다〔開合自在〕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대승기신론》의 여래장사상은 중관이나 유식사상보다 먼저 성립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기에 세친과 용수보살보다 앞서 살았던 마명보살이 여래장사상이 담긴《대승기신론》을 지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마명보살이《대승기신론》의 저자였기에 후에 화엄종조로 받들어 모셨던 일은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위와 같이《화엄경》은 역사적으로 4세기경에 현재의 대경으로 편성되었으나 각 품들의 최초 성립은 용수 이전에 이미 이루어져 있었던 초기 대승경전에 속하며, 대승적 깨달음의 세계를 개현한 경전 가운데 핵심적이고 대표적인 경에 속하는 것이다.

      또, 용수보살의 저서로 되어 있는 것 중에〈화엄경약찬게〉가 있다.
      〈화엄경약찬게〉는 갖추어서는 '대방광불화엄경 용수보살약찬게'이며 줄여서 단지 '약찬게'라고만 부르고도 있다.〈약찬게〉는 《팔십화엄》의 조직과 구성을 간략히 엮어 놓은 게송으로서 현 한국불교교단에서 널리 독송되는 대표적인 염불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팔십화엄》의 유통은 이〈화엄경약찬게〉의 수지독송에 힘입은 바도 크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약찬게〉의 저자가 용수보살로 되어 있으나 이는 몇 가지 점에서 재고할 여지가 많다.

      첫째로〈약찬게〉의 소의경전인《팔십화엄》의 유통과 용수보살과는 연대에 차이가 있다. 〈약찬게〉가《팔십화엄》을 소의로 한 것은 '삼십구품원만교(三十九品圓滿敎)'라든지 '육육육사급여삼 일십일일역부일(六六六四及與三 一十一一亦復一)' 등〈약찬게〉내용을 보면 명확하다.《팔십화엄》은 39품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를 9회에 배대한 것이 육육 등(六六 云云) 품이기 때문이다.

      용수보살은 2, 3세기에 활약하였고 화엄대경은《육십화엄》까지도 용수보살보다 후에 3, 4세기경의 편성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팔십화엄》은 용수보살 시대보다 뒤에 편찬된 것이다. 따라서《팔십화엄》의 구성을 간략히 엮은〈약찬게〉가 2, 3세기에 활약하였던 용수보살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둘째로〈약찬게〉의 저자가 용수보살이라면 번역한 이가 있어야 하는데 역자를 알 수 없다.
      셋째로〈약찬게〉가 한국에서만 그 문헌이 유통됨을 볼 수 있으며 그것도 가장 오래된 판본이 용성천오(龍星天旿)가 광서(光緖) 11년(1885)에 편찬한《화엄법화약찬총지(華嚴法華略纂摠持)》이다. 그 가운데〈약찬게〉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상으로 볼 때〈약찬게〉는 우리나라에서 지어진 것이 용수보살에게 가탁된 것이 아닌가 한다.
화엄경 해설-제2강 화엄경의 편찬과 유통.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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