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의 9가지 비유
첫째, <비유품(譬喩品)>에 나오는 유명한 '화택 비유(火宅 譬喩)'이다. 집에 불이 났건만 그것을 모르고 철없이 노는 아이들을 보고, 아버지가 양거, 녹거, 우거가 문밖에 있다고 방편(方便)을 써서 달래어 화택(火宅)에서 아이들을 구해내는 이야기인데, 그 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문 밖으로 나와보니 세 수레는 간 곳 없고 그 대신에 대백우거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은 물론 우리들 중생이고 아버지는 부처님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그 동안 방편으로 한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을 전부 다 모아 성불이라는 일불승(一佛乘)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비유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삼계는 부처님 당시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탐(貪) 진(瞋) 치(痴) 삼독(三毒)에 물들어 고통과 갈등의 삶을 살아가지만 결국은 다 그것을 끊고 성불의 길로 나아간다는 크나 큰 선언이 되는 것이다. 둘째, <신해품(信解品)> 에 나오는 '궁자 비유(窮子 譬喩)'이다. 궁자가 집을 나와 헤매다가 차츰차츰 아버지의 재산 상황을 알게 되고 마침내 아버지의 전 재산을 물려받는다는 비유로, 낮은 수준에서부터 수행(修行)을 쌓아가면서 지견(知見)이 열려 마침내 부처님의 온전한 지혜와 덕을 모두 이어받아 마침내 성불한다는『법화경』의 생명(生命)을 가르치는 비유가 된다. 이 비유는 부처님이 열어 보이는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그 동안 부처님이 법을 펴오신 과정과 자신들의 넓게 열리는 근기를 부처님께 사뢰는 것이다. 셋째, <약초유품(藥草喩品)>에 나오는 '약초비유'이다. 한 구름에서 내리는 비는 고루 넓게 사방의 어디에나 내리지만 비를 맞는 숲 속의 풀과 나무들은 같지 않아서 크고 작게 자라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한량없는 법은 일미평등(一味平等)인데, 중생들의 성품에 따라 각각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고 작건 간에 풀과 나무들이 당연히 자라고 있는 것처럼 세간 중생들이 점차로 수행하여 보살도(菩薩道)를 행하여 성불한다는 것이다. 넷째, <화성유품(化城喩品)>에 나오는 '화성비유'이다. 지혜가 뚫린 한 도사가 먼길을 가느라고 극도로 피곤해 있는 대중들에게 길 도중에 하나의 성을 변화시켜 그 속에 들어가게 하여 피로를 풀게 한 후에 다시 성을 없애고 진실을 설해준다는 비유이다. 이것은 중생을 교화(敎化)할 때에 각자의 근기에 맞는 방편(方便)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다섯째,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授記品)>에 있는 '계주비유(繫珠譬喩)'이다. 어떤 사람이 친구를 찾아갔을 때 친구가 매우 값나가는 구슬을 술에 떨어져 자고 있는 그 사람에게 넣어 주었지만 그 사람은 구슬이 있는 줄을 모르고 다른 나라에 가서까지 고생고생을 하였다. 그러다가 조금 소득이 생기면 만족하고 사는 정도였는데, 하루는 구슬을 넣어준 친구를 만나게 되어 무가보주(無價寶珠)가 자기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들이 끝내 얻어야할 것이 부처님의 지혜인데 그 동안은 번뇌가 사라진 열반에만 만족하고 살았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비유이다. 여섯째, <안락행품(安樂行品)>에 있는 '왕계비유(王繫譬喩)'이다. 전쟁에 나가 공을 세웠을 때 그 부하에게 땅이나 보물은 줄지언정 전륜왕(轉輪王)의 상투 속에 있는 구슬은 주지 않는 법이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구슬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권속(眷屬)들이 크게 놀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이 중생들로 하여금 멸도케 하여 열반에는 이르게 하였지만 이 『법화경』을 설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여래(如來)의 으뜸가는 법인 『법화경』을 이제서야 설해주는 것은 왕이 자신의 상투 속에 있는 구슬을 내어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일곱째,『법화경』의 안목이자 바로 불교의 안목이라는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에서 밝히는 '의사비유(醫師譬喩)'이다. 의사인 아버지가 집에 없을 때 아이들이 독약을 잘못 마셔 가지고 괴로워하였다. 아버지가 집에 와서는 그 모습을 보고 양약을 주었으나 본심(本心)을 잃은 아이들은 그 약을 먹지 않아 아버지는 다시 길을 떠나며 "아버지가 죽었다"하라고 일러 본심을 되찾은 아이들이 양약을 먹어 병을 낫게 한다는 이야기이다. 아버지인 의사는 물론 부처님이고 아이들은 중생들이다. 본심을 잃은 아이들은 아버지의 처방을 한번에 듣지 않으므로 아버지는 방편을 써서 본심을 되찾게 하였다는 것으로 여기서도 근기가 낮은 중생들에게 내리는 방편으로 제도하였다는 단순한 이야기도 되고, 나아가서는 태어나고 수행하고 열반의 모습까지도 방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은 방편으로 열반을 보이셨기 떄문에 부처님의 진실은 끝간데 모를 과거로부터 미래에까지 닿아 있다는 부처님 생명의 영원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여덟째, <법사품(法師品)>에 '착정비유(鑿井譬喩)'가 나온다. 우물을 팔 때 깊이에 따라 마른 흙에서 차츰 젖은 흙으로, 다시 물기가 많은 흙이 나오는 것을 보면 물이 가깝다는 것을 알게된다는 이야기로 이『법화경』을 듣고 이해하여 닦고 익히면 보리심(菩提心)에 가까이 온 줄을 알 수 있다는 비유이다. 아홉째, <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에 있는 '부소비유(父少譬喩)'이다. 부처님이 성도하고 교화한 지 40여년 밖에 되지 않는데, 땅으로부터 수많은 보살들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언제 이렇게나 많은 보살들을 교화하였느냐"는 감탄으로 스물 다섯의 젊은이가 백 살된 노인을 보고 아들이라 하고, 백 살된 노인 또한 그 젊은이를 보고 아버지라 한다면 누가 믿겠느냐는 비유이다. 《법화경》의 사상 중의 '법신 사상(法身思想)'은 부처님의 몸은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으로 나뉘는데 이는 소승의 사상에 대한 반발로서 그분의 깨달음이 영원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부처님의 죽음을 부파 교단에서는 영원한 결별로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경지를 얻을 수 없다고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법화경》에서는 깨달음의 영원성으로서 그 단절을 극복하려 한다. 법신으로서 부처님은 언제나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사상경향을 지닌 또 하나의 경전이 바로 《열반경》이다. 열반이란 니르바나(nirvana)의 음역으로 통상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완전한 소멸을 뜻하기도 한다. 《열반경》에서는 그 죽음을 새롭게 해석해 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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