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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

꿈에서 벗어나라.-청담 큰스님 법어록

by 회심사 2019. 11. 26.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꿈에서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르듯이,
    우리가 경험하는 소위 현실이라는 것도, 그대로 꿈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다.
    지금 살고 있는 생시가 바로 꿈이라고 하면, 펄쩍 뛰면서 아니라고 대들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그 꿈(생시)이 영원한 꿈인데도 꿈인 줄 모르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똑같기 때문이다.

    꿈에서도 연애 해 가지고
    아들딸 낳아서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또 장가들이고 시집보내서 손자를 보고 하여 잘 산다.
    이처럼 우리가 꿈속에서 겪는 세계나, 생시의 일들이 너무도 같기 때문에, 그 꿈을 깨기 전까지는 그게 꿈인 줄 모르는 것이다.​

    꿈속에서도 태양이 있고 지구가 있고, 산소 수소가 있으며, 온 우주가 다 거기 있다,
    꿈에서도 설탕은 달고 소금은 짜고, 춘하추동 사시절이 있어서 날씨가 차고 더우며, 어린애들 낳아서 키워보면 어려서부터 점점 자라서 커간다.
    그러니 이러한 것을 어떻게 꿈인 줄로 알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하다가 꿈을 깨어볼라치면, 시간은 불과 몇 분도 채 안 된다.

    인생이 꿈같은 것이 아니라 그대로 꿈이다.
    꿈으로 한 일, 그게 사실로 한게 아니고 모두 거짓말로 한 것이다.
    성불했다는 것도 역시 거짓말이다.
    성불 아닌 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불했다는 말이 있는 거지, 성불해야겠다는 말까지도 그게 꿈이다.

    정말 실상자리에서 보면 제대로 돼있으니 꿈꿀 사람도 없다.
    사람이 자는 시간도 대체로 하룻밤에 일곱 시간 내지 여덟 시간이므로, 내가 잠이 든 전 시간 동안에 꿈을 꾸었다고 해도, 여덟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꿈속에 들어가서는 여덟 시간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잠자는 동안 꿈속에서 경험하는 시간은, 닷새 사는 때도 있고 한 달 사는 때,
    한 해 사는 때, 몇 해 사는 때, 까딱 잘못하면 한평생을 사는 때도 있다.
    그러니까 밤을 새워가며 꿈을 꾸었다 하더라도, 여덟 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꿈에 들어가서는 일평생이 되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루나 반나절 꿈도 꾸지만은, 저녁마다 일평생 꿈을 꿀 수도 있는 것이므로, 생시에 반나절 꿈도 꾸지만은, 저녁마다 일평생 꿈을 꿀 수도 있는 것이므로, 생시에 반시간보다 꿈속에서 사는 시간이 훨씬 더 많게 된다.​

    꿈과 현실이 똑같은 것은 다 한마음이 세계이기 때문이다.
    꿈을 꿀 때에도, 이 몸뚱이 처자 재산을 다 그대로 놓아두고 마음만 나아가서 꿈세계를 창조해 놓는다.

    꿈을 깰 때에도 꿈속에 있던 몸뚱이 재산 처자를 만들어서, 꿈하고 똑같은 세계를 만든다.
    꿈만 꿈이 아니라 꿈 아닌 것도 꿈이다.
    망상은 꿈을 이룬다.
    이것은 곧, 주관은 객관을 조화한다는 실증을 말하는 것이다.
    주관밖에 개관이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므로, 주관이 곧 객관이며 객관이 곧 주관이다.
    뜨겁고 찬 것이 불과 물에 있을 수 없다.
    주객이 둘이 아니므로 우리의 인식밖에 기둥과 기둥이 있을 수 없으며, 기둥과 기둥의 모양 밖에 인식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주관을 쉬어버린 때에는 객관도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주관을 쉰 이 청정한 본래의 마음 법에는 기둥도 기둥 모양도 없다.
    그러므로 저 기둥한 가지를 볼 때에는, 곧 기둥이 나타나는 이치와 그 기둥을 나타낸,
    이 마음의 본연면목을 동시에 깨달을 수 있으리라.

    이와 같이 저 만물을 다루면 된다.
    꿈이 아무리 헛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꿈을 깨기 전에는 꼼짝 없이 사실인 고와 낙을 받는 것과 같이, 이 마음을 깨치지 못한 종생들을 업습에서 일어나는 천당 지옥의 꿈을 벗어날 길이 없다.

    꿈에서 죽고 꿈에서 태어난다.

    출처: 혼자 걷는 이 길을 /이 청담 큰스님 법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