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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

잠들기 전에 염불은 더욱 중요합니다.

by 회심사 2020. 6. 25.


잠들기 전에 염불은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육신을 나로 알고 세상살이를 합니다.
      그러므로 태어난 날이 있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죽는 날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금생만 이 세상에 태어나 사는 것이 아니라, 금생 이전에도 한량없는 세월동안 나고 죽는 것이 반복된, 즉 윤회의 삶을 이어왔습니다. 윤회속에 산다고 하는 것은 몸뚱이로 내가 산다고 할 때,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마침내 죽게 되는 과정이 반복됨을 말합니다.

      몸을 기준으로 살아갈 경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마음의 괴로움이 한없이 크고 슬프지만, 죽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면 비극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중생이 나서 죽을 때 흘리는 슬픔의 눈물이, 태평양과 같은 바다의 물보다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불법을 모르는 중생의 삶은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죽음을 맞이하고, 몸을 갖고 윤회하는 어리석은 삶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혹시 금생에 선근을 부지런히 쌓아서, 내생에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윤회를 피하지는 못하게 됩니다.

      내생을 결정하는 것은 업입니다.
      그 업은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짓는 행위를 말하며, 그 결과인 업은 나에게 돌려지는 것입니다. 3업 중에서 말과 몸으로 짓는 업은 남에게 그 행위를 감출 수 있다하더라도, 마음(생각)으로 짓는 업은 남이 심판하지 못하므로 스스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밝은 사람은 내가 죄를 많이 지었음을 알게 되지만,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자기 죄를 모르고 죄가 없다고 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죄에 찌들려 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지은 죄로 지옥이 결정되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세상을 어둡게 보고 자기 생명의 본질을 모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참 생명에는 나고 죽음이 없는 영원 절대생명이므로, 몸과 상관없이 자기가 지은 업에 의해 괴로움의 지옥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지옥이 결정되었다고 할 때, 아무렇게나 기분에 이끌려 제멋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죽음은 예고가 없이 어느 순간에 별안간 찾아옵니다. 지금 죽음이 찾아 왔을 때, 흔들림 없이 불안하지도 않겠는지 스스로 질문해 봅시다.

      모든 종교생활은 죽음을 준비하는 정신행위입니다.
      죽음이 온 순간 어둡고 불안하고 흔들리지 않고 슬프지 않을 수 있습니까?
      종교가 죽음을 준비하고 해결 한다는 것은, 생사해결을 위해 어둠의 삶을 청산하고, 본래의 참 생명으로 찾아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는 지위나, 돈, 명예와 관계없으며 복을 구하는 것과도 전혀 무관합니다.

      오늘 법회와 같은 종교집회는 불생불멸하는 참 생명을 확인하고, 나의 참 생명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부처님 앞에 나선 것입니다. 부처님의 큰 덕과 은혜는 몸과 관계없이, 참 생명을 찾는 지혜를 주시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지혜(진리를 아는 능력)입니다.
      몸을 구속하는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마하반야로 일컬어지는 지혜에 의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지혜광명은 온천지에 가득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입니다.

      내생명이 참 생명임을 새삼 알게 되면 주변 환경에 개의치 않고, 지금의 자기를 무한한 영광으로 알고 살 수 있습니다. 지옥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생명의 원리에 어긋나게 살면 그 곳이 지옥이고, 생명의 원리에 맞추면 그 곳이 바로 극락인 것입니다.

      보왕삼매론에서도 외부환경에 의해 나의 참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사윤회에서 벗어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 참 생명으로 가는 길임을 일어주고 있습니다.

      참 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미타"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영원 절대생명인 아미타의 세계로 가는 공부를, 충실히 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으며, 그것은"염불일법"임을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즉 염불을 통하여 생사윤회를 해탈해야 하는 것입니다.

      증일아함경에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마땅히 한 법을 수행하고, 널리 펴고 한 법을 수행하면 명예와 큰 과보와 선에 이르며, 무위처에 이르며 사문과를 얻으며 열반에 이른다, 그 한 법은 염불이 그것이다." "이 염불은 거닐 때, 머무를 때, 앉을 때, 누울 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닦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종교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면 육신의 기능이 정지되는 죽음이 이르렀을 때, 육신이 죽는 것에 끄달리지 않고 생사를 해탈하는 것이,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밤에 잠들 때 순간적으로 정신없이 잠에 떨어지는데 죽음도 이와 같습니다.

      정신없이 잠에 떨어지지 않도록 잠들기 전에, 염불하면서 정신을 놓지 않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면, 죽음이 올 때도 죽음에 빠져들지 않고, 염불을 함으로써 윤회의 바퀴에서 벗어나 극락정토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염불을 하고, 특히 잠들기 전에 염불은 더욱 중요합니다.

      염불을 통해서 괴로움, 근심. 걱정, 다툼과 답답함을 버리고, 나무아미타불로 무한가치의 실현을 일러 주심에 믿고 실천해야 합니다. 죽음의 단말마적 고통 속에서도 나무아미타불 할 수 있도록 연습을 부지런히 하면, 죽음도 나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몸이 죽는 것 때문에 윤회한다면, 생사해탈의 길은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는 것이며, 그럴 때 아미타 부처님은 죽음의 길목에서, 우리를 영접하여 서방정토에 왕생케 해주십니다.
      세상을 사는데 근심과 다툼과 미움과 성냄을 버리고 영원한 평안을 얻으며, 몸뚱이로 구속되는 삶을 살지 않는 세계에 들어가는 길은, 염불로 실천하는 길입니다.

      그렇게 되면 헛된 욕심을 버리게 되며 미움이 있을 수 없으므로, 탐, 진, 치가 스스로 없어지게 됩니다. 부처님이 내 생명 밖에 따로 계시지 않음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내 밖에 따로 있다거나 내 밖으로 찾아나서는 것은 "외도"라고 했습니다.

      불교는 우리의 참 생명 모두가 부처생명이며, 나무는 그 참 생명인 부처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나무아미타불 하여 내가 부처되는 길을 찾고, 그래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 됩니다. 관무량수경에서도 후세 말세에 어떤 중생이 나무아미타불하면, 그의 가장 친한 벗이 되겠노라고 관세음보살이 말씀하셨다고 이르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는 부처님의 무량하신 공덕과 원력이 잘 갈무리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무아미타불 하는 것은, 부처님의 원력으로 내 참 생명으로 돌아감을 말하며, 나무아미타불로 일체 모든 번뇌, 근심. 걱정, 어리석음, 성냄, 다툼을 버리고 가장 수승한 덕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세상은 본래 한 생명인 아미타 부처님생명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무아미타불로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불법을 배우는 것은 나를 배우는 것이요.
      나를 배우는 것은 중생인 나를 부정하고, 나의 참 생명인 부처님 생명을 찾는 길입니다.

      이 세계는 나와 대립된 생명이 없고 본래가 한생명인 까닭에, 끊임없이 주는 마음으로 살도록 나를 바꾸어 가야 합니다. 내가 바뀌면 내 가정과, 내 이웃과, 이 세상과 온 천지가 바뀌게 됩니다. 부디 나무아미타불로 나의 참 생명인 부처님생명을 찾아, 생사해탈을 하는 불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법문: 한탑 스님
      출처:-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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