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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불교자료실

발 씻은 물은 마실 수 없다

by 회심사 2021. 10. 13.



발 씻은 물은 마실 수 없다.
    라후라가 도를 깨닫기 전이었다.
    그는 아직도 세속의 때가 남아 있어 심성이 거칠고 사나웠으며, 그 말에 진실성이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느 날 라후라를 불러 말씀하셨다.
    "너는 현제정사에 가서 있거라.
    말을 삼가고 마음을 잘 다스려서 경전과 계율을 부지런히 닦도록 하여라."

    라후라는 부처님 곁을 떠나 현제정사에서 90일 동안 머물면서
    자신의 허물을 부지런히 고쳐 나갔다.
    하루는 부처님이 그곳을 찾아오셨다.
    라후라는 반가이 부처님을 맞아들이고 평상을 펴드렸다.
    부처님은 평상에 걸쳐 앉으신 채 말씀 하셨다.
    "대야에 물을 길어 와서 내 발을 씻어라."
    라후라는 물을 떠와 부처님 발을 씻어 드렸다.

    발을 다 씻고 나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발 씻은 물을 보아라."
    "예, 보고 있습니다."
    "이 물을 먹거나 양치질 할 수 있겠느냐?"
    라후라는 부처님의 갑작스런 질문에 잠시 멈칫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물은 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래는 깨끗한 물이었으나
    발을 씻어 더러워졌기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들려주셨다.
    "너도 이 물과 같다.
    비록 나의 제자요,
    국왕의 손자로서 세상의 영화를 버리고 사문이 되었지만,
    너의 마음속에는 탐, 진, 치의 삼독이 가득차 있으니
    더러운 물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이렇게 말한 다음 다시 라후라에게 일렀다.
    "발 씻은 물을 버려라."
    라후라는 대야의 물을 버렸다.
    부처님이 또 물으셨다.
    "비어 있는 대야에 음식을 담을 수 있겠느냐?"
    "담을 수 없습니다.
    이미 발 씻은 대야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음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너도 이 대야와 같다.
    비록 사문이 되었으나 입에는 진실한 말을 담지 않고,
    심성이 거칠며 부지런히 수행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너에 대한 평판은 마치 발 씻은 대야처럼 나쁘게 나 있다."
    말씀을 마친 부처님은 대야를 발로 힘껏 차셨다.
    대야는 떼굴떼굴 굴러가다가 멈추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혹 저 대야가 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했느냐?"
    라후라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발을 씻은 그릇이요, 또 값싼 물건이라, 설사 깨어진다 해도 그렇게 아까울 것은 없습니다."

    "너 자신도 내동댕이쳐진 대야와 같다.
    계행을 지키지 않고 거친 말과 나쁜 욕설로 남을 중상하는 일이 많으므로 남들이 싫어하고 있다.
    나중에 죽으면 삼도에 윤회하면서 한없는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여러 부처님과 성현들이 너를 아끼지 않는 것은
    발 씻은 대야를 아까워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라후라는 부처님의 이 말씀이 끝나자
    비로소 자신을 깨닫고 부끄러워했다.
    부처님은 다시 말을 이으셨다.

    "내가 비유로 말을 하리니 잘 들어라.
    옛날 어떤 국왕이 큰 코끼리를 한 마리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코끼리는 매우 사납고 영리하여 싸움을 잘하였다.
    그 힘은 5백 마리의 작은 코끼리보다 세었다.

    어느 해 왕은 적국을 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이 코끼리에 갑옷을 입히고 양쪽 두 어금니에 각각 창을 붙들어 매고,
    두 귀에도 각각 칼을 붙들어 매었다.
    또 네발에는 굽은 칼을 붙들어 매고 꼬리에는 쇠몽둥이를 붙들어 매었다.
    이렇게 아홉 가지 날카로운 무기로 코끼리를 무장시켰다.

    그러나 코에는 무장을 하지 않았다.
    코끼리의 코는 연약해서 화살에 맞으면 곧 죽기 때문에
    그것을 밖으로 길게 내 뻗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코끼리는 주인이 제 자신을 잘 보호해주는 줄을 알았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간 코끼리는 코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싸우다보니 코끼리는 답답해 견딜 수 없었다.
    코끼리는 자기 코에다 칼을 붙여서 싸우고 싶었다.
    칼을 찾았다.
    그러나 왕과 신하들은 큰 코끼리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칼을 주지 않았다.
    코를 뻗었다가는 죽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말한 다음 부처님은 잠시 쉬셨다가 다시 말을 이으셨다.

    "사람이 아홉 가지 악을 범하더라도
    오직 입만은 단속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코끼리의 코를 보호하는 것과 같다.

    코끼리에게 코로 싸우지 못하게 한 것은 화살에 맞으면 바로 죽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도 입을 단속해야 하는 이유는 삼악도의 고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입을 단속하지 않는 사람은 큰 코끼리가 화살에 맞을 것을 생각지 않고 코를 뻗어 돌진하다가 제 목숨을 잃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람도 이처럼 입을 단속하지 않는 것은 삼악도의 지독한 고통을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몸과 입과 뜻을 잘 단속하여 열 가지 선을 행하면 그는 삼악도를 떠나 생사의 고뇌가 없어지느니라."

    이어서 부처님은 게송을 읊으셨다.

    『마치 잘 훈련된 코끼리가 왕이 타기에 알맞은 것처럼 자신을 잘 훈련시킨 훌륭한 자는 다른 사람의 신임을 받는다.』

    라후라는 부처님의 간곡하신 교훈을 듣고 난 후부터 열심히 수행하여 마침내 마음의 깨달음을 얻었다.

    -법구 비유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