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오욕(四蛇五欲)
“이 광주리 속에는 각각 성질이 다른 네 마리의 뱀이 들어 있다. 이 뱀들을 한 광주리 안에서 키우되, 한 마리라도 성내게 하거나 죽게 해서는 네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왕의 명령을 받고 광주리를 들고 온 신하는 첫날부터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네 마리의 뱀은 그 모양에서부터 색깔 · 습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각각이라서, 한 광주리 안에 넣고 키운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신하는 우선 뱀들의 머리 모양부터 살펴보았습니다. 방원장단(方圓長短). 한 마리는 모가 났고(方), 한 마리는 동그란 공과 같은 머리를 하고 있었으며(圓), 한 마리는 길쭉하면서 가늘고(長), 한 마리는 짧고 통통했습니다(短). 또한 몸의 색깔도 청 황 적 백으로 각각 파랗고 노랗고 빨갛고 흰 색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네 마리 뱀이 지닌 독 또한 각각이어서 견허촉교(見噓觸咬)의 독을 내뿜는 것이었습니다. 쳐다보기만 하여도(見)상대방에게 독이 오르는 뱀, ‘후-’하고 김만 쏘여도(噓) 그 독기운으로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뱀, 몸에 닿기만 하여도(觸) 상대방이 독이 올라 죽는 뱀, 상대방을 물어서(咬) 죽이는 뱀이 다 모인 것입니다. 네 마리 뱀의 성질은 더욱 각각이었습니다. 곧 견습난동(堅濕煖動)으로서 딱딱한 것(堅: 地)을 좋아하는 놈, 습기 차고 물렁한 것(濕: 水)을 좋아하는 놈, 따뜻한 것(煖: 火)을 좋아하는 놈, 요동치는 것(動: 風)을 좋아하는 놈이 함께 모인 것입니다. 신하는 자기를 신임하는 임금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정성껏 광주리 속의 뱀을 기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네 마리 뱀의 특성이 서로 달라 여간 힘 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성껏 돌보아 주는 자기를 틈만 나면 죽이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네 마리의 뱀과 같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4대도 그 성질이 매우 고약합니다. 조금만 열 기운이 있어도 다른 요소들은 ‘나 죽는다. 며 야단이고, 물기가 조금만 없어도 탈수현상을 일으켜 병이 듭니다. 또한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만 바람이 들어 풍(風)이 오는 것입니다. 신하가 뱀 키우는 것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던 어느 날, 길 가던 나그네가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비록 왕이 네 마리의 뱀이 든 광주리를 주면서 잘 키우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니 몸뚱아리와 같은 것이어서 아무리 껴안고 있어도 영검이 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 광주리를 버리고 도망을 가는 것만이 그대의 살 길입니다. 빨리 도망을 치십시오. 도망을 가다 보면 강이 나타날 것인데, 그 강만 무사히 건너게 되면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나그네의 말에 결심을 굳힌 신하는 광주리를 내팽개치고 강 있는 쪽을 향해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곧바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은 진노하여 다섯 명의 포졸을 풀어 신하를 잡아오게 하였습니다. “감히 왕의 명령을 어기고 뱀이 든 광주리를 팽개친 채 도망을 가다니! 얼른 그 놈을 잡아들이도록 하라.” 왕은 오음전다라라는 다섯 명의 포졸을 파견했습니다. 색 · 수 · 상 · 행 · 식(色受想行識)으로 분류되는 오음(五蔭:五蘊이라고도 함). 이것은 육체와 결합하여 목숨이 다할 때까지 모든 번뇌 망상을 만들어내고 고정화된 사고방식을 조장하는 정신적인 요소입니다. 따라서 해탈을 하려면 반드시 오음을 벗어나야 합니다. <반야심경>에서 “오온(五蘊)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고 일체의 괴로움과 액난을 벗어났다”고 한 말씀이 바로 이것을 뜻합니다. 다섯 명의 포졸이 쫓아오자 신하는 죽을힘을 다하여 도망을 쳤습니다. 한참 도망을 가다 보니 더 이상 포졸도 쫓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오음 속에 갇힌 고정화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한숨을 돌리고 쉴 곳을 찾아 주위를 살펴보니 눈앞에 여섯 채의 좋은 집이 보였습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하나같이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집들이었습니다. ‘옳지, 되었다. 여기에서 좀 쉬다가 가야 되겠군.’ 한 집에 들어가서 앉아 있자니 갑자기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기에 머물다가는 죽음을 면하지 못하리라. 오늘 밤에 여섯 도적이 나타나서 그대를 죽일 것이다.” 이때의 여섯 도적은 육근대적(六根大賊)으로서, 물질세계를 받아들이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눈·귀·코·혀·몸·생각)을 가리킵니다. 아직도 감각기관의 습관은 잠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신하는 다시 마을을 빠져나와 열심히 도망을 쳤습니다. 신하는 육근대적도 무사히 피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잠재의식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신하는 강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갔습니다. 드디어 강이 저 먼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신하는 뛸 듯이 기뻐하며 잠깐 쉴 곳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길옆에는 조그마한 주막집이 있었습니다. 주막집 여인은 아리따운 얼굴과 자태에다 곱게 화장을 하고서 아양을 떨었습니다. “손님, 쉬어 가세요. 이곳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세요.” 신하는 여인의 미모와 부드러움에 취해 여인에게 이끌려 주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것도 나를 잡아두려는 작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여인도 왕이 파견한 밀자로서, 나를 붙잡아두고 오늘 밤에 죽이려 할지도 모른다. 여기 머물다가는 큰일 나겠다.’ 그는 여인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시 도망쳐 나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를 닦는 이가 가장 끊기 어려운 은애사친자(恩愛詐親煮)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순경계(順境界), 이성과 부모 · 형제에 대한 사랑이 가장 뿌리치기 어려운 장애인 것입니다. 이처럼 오음전다라, 육근대적, 은애사친자를 다 떨쳐버리고 열심히 가다 보니 마침내 큰 강물이 나타났습니다. ‘옳거니! 이제야 강물이 나타났구나. 저 강물만 건너면 피안(彼岸)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강을 건너기 위해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배도 뗏목도 없었습니다. 그는 주위에 있는 널빤지와 갈대 · 칡덩굴 등으로 뗏목을 엮었습니다. 뗏목을 완성한 다음에 그것을 강물에 띄우고 몸을 실은 다음 강 저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의 뗏목은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입니다. 도의 성취를 도와주는 서른일곱 가지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 뗏목을 타고 몇 번을 떨어지고 곤두박질을 치며 죽을 고비를 넘긴 다음, 드디어 강 저편의 피안의 세계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도착하니 그곳은 푸른 버들과 갖가지 꽃이 만발한 이상향, 열반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열반경>800가지 비유 가운데에서 가장 길고 극적인 비유담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봅니다. 이 비유에서 왕은 심왕(心王), 네 마리의 뱀을 담은 광주리는 우리의 몸뚱아리, 네 마리의 뱀은 몸을 구성하고 있는 사대(四大)를 나타낸 것입니다. 뱀을 버리고 피안의 세계로 도망갈 것을 일러준 사람은 선지식(善知識)이고, 그 신하는 구도자입니다. 다섯 명의 포졸은 오음전다라이고, 여섯 개의 빈 집은 육경(六境:색깔· 소리· 향기· 맛· 감촉·법)이고 여섯 도적은 눈·귀·코 등의 육근입니다. 밤을 이용하여 도망을 쳤다고 하였으니 밤은 무명(無明)을 뜻하고, 육근대적이 온다고 도망갈 것을 일러준 목소리는 자신의 양심이며, 주막집의 여인은 은애사천자입니다. 강은 생사대해(生死大海), 뗏목은 삼십칠조도품, 강 건너의 피안은 열반의 세계입니다. 이 비유담에서처럼 열반의 세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네 독사로 비유된 4대부터 놓아버려야 합니다.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의 네 가지 기운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 이 몸에서 숨이 끊어지면 머리카락· 털· 손톱· 이빨의 발모조치(髮毛爪齒)와 피부· 살· 힘줄· 뼈의 피육근골(皮肉筋骨), 골수· 뇌 및 빛깔과 모양이 있는 것들은 전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침· 콧물· 고름· 피 등과 몸에서 생겨나는 갖가지 액체는 모두 물로 돌아갑니다. 또한 따뜻한 기운은 불로 돌아가고 몸을 움직이는 힘은 바람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기운 중에서 사람이 죽으면 바람기운이 제일 먼저 빠져나가게 되므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몸이 먼저 굳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따뜻한 기운이 없어지게 되어 몸이 싸늘하게 식어갑니다. 또한 죽고 나서 사흘 이내로 몸의 모든 물기가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코· 입· 항문 등의 모든 구멍을 솜으로 막아서 물이 흐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 기운이 모두 빠지고 나면 몸이 홀쭉하게 줄어들어서 껍데기만 남게 되고, 마지막으로 온몸은 썩어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몸은 모두 흙· 물· 불· 바람으로 돌아가고 마는 허망한 것에 불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몸에 대한 애착을 버리라는 것이며, 이 몸이 추구하는 오욕락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몸을 함부로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몸은 감로수를 담고 있는 감로병과 같습니다. 감로병에 구멍이 뚫리면 감로수를 보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이 몸을 학대하거나 무참하게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흔히들 오욕락(五欲樂)에 빠져드는 것이 이 몸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 이상 더 큰 착각도 없습니다. 오욕락에 빠지면 몸은 더욱 빨리 망가집니다. 맛있는 음식, 이성과의 잦은 관계, 재물을 모으기 위해 밤낮을 잊고 행하는 노동········. 그 결과는 4대의 부실로 이어지고 마침내는 4대의 붕괴로 끝을 맺게 됩니다. 4대의 붕괴. 그것은 죽음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 나를 위하고 쾌락을 위하여 남의 희생을 자초하게 한 데 대한 업(業)만을 걸머지고 삼악도를 향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디 네 마리의 뱀, 이 몸의 노예가 되지 맙시다. 그냥 감로수를 담고 있는 감로병 역할만 제대로 할 수 있을 정도로만 몸을 돌봅시다. 그리고 욕심이 일어날 때마다 마음을 비워봅시다. 이렇게 몸을 돌보고 마음을 비우면 삼악도는 우리들 주위에서 얼씬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도심(道心)은 저절로 자라나게 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것은 오직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부디 명심하여 보다 자유로운 삶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당부 드립니다.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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