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경 (1)-
부처님의 수행법 [如來因地法行] 이때 문수사리보살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엎드려 절하며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두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비하신 세존(世尊)이시여, 원하옵니다. 이 법회에 온 모든 대중을 위하여 여래께서 본래 일으키신 청정한 인지법행(因地法行)을 말씀해 주소서. 그리고 보살들이 대승(大乘)에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 모든 병을 멀리 여읨을 설하시어, 미래의 말세 중생으로서 대승을 구하는 이들로 하여금 사견(邪見)에 떨어지지 않게 해주소서." 이렇게 말씀드리고 오체를 땅에 대어 절하며[五體投地] 이같이 세 번 거듭 청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재선재로다. 선남자(善男子)여, 그대가 능히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여래의 인지법행을 물으며, 또 말세의 일체 중생들 가운데 대승을 구하는 이들을 위하여 바르게 주지(住持)함을 얻어서 사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니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때 문수사리보살이 가르침을 받들어 기뻐하며 모든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들었다. "선남자여, 위없는 법왕[無上法王]이 대다라니문(大多羅尼門)이 있으니 원각(圓覺)이라 한다. 일체 청정한 진여(眞如)와 보리(菩提)와 열반(涅槃)과 바라밀(波羅蜜)을 흘려내어 보살을 가르쳐 주시나니, 일체 여래께서 본래 일으키신 인지(因地)에서 청정각상(淸淨覺相)을 원만히 비춤에 의하여 영원히 무명을 끊고 바야흐로 불도를 이루셨느니라. 어떤 것이 무명(無明)인가.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옛부터 갖가지로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을 장소를 바꾼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잘못 알아 자기의 몸이라 하며, 육진(六塵)의 그림자를 자기의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이 허공꽃[空花]이나 제이의 달[第二月]을 보는 것과 같다. 선남자여, 허공에는 실제로 꽃이 없는데 병든 자가 망령되이 집착을 하나니, 허망한 집착 때문에 허공의 자성을 미혹할 뿐 아니라, 또한 실제의 꽃이 나는 곳도 미혹하느니라. 이런 까닭에 허망하게 생사에 헤매임이 있으니 그러므로 무명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무명이란 것은 실제로 체(體)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꿈 속의 사람이 꿈꿀 때는 없지 아니하나 꿈을 깨고 나서는 마침내 얻을 바가 없는 것과 같으며, 뭇 허공꽃이 허공에서 사라지나 일정하게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함과 같다. 왜냐하면 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이 남이 없는 가운데서 허망하게 생멸(生滅)을 보니, 그러므로 생사에 헤맨다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의 인지에서 원각을 닦는 이가 이것이 공화인 줄 알면 곧 윤전(輪轉)이 없을 것이며, 또한 몸과 마음이 생사를 받음도 없으리니, 짓는 까닭에 없는 것이 아니라 본성이 없기 때문이니라. 지각(知覺)하는 것도 허공과 같으며, 허공인 줄 아는 것도 곧 허공꽃의 모양이로되, 또한 지각하는 성품이 없다고도 말할 수 없으니, 있고 없음을 함께 보내면 이를 곧 정각(正覺)에 수순한다고 이름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허공의 성품이기 때문이며, 항상 요동[動]하지 않기 때문이며, 여래장(如來藏)중에 일어나고 멸함이 없기 때문이며, 지견이 없기 때문이며, 법계의 성품이 구경에 원만하여 시방에 두루한 것과 같기 때문이니, 이것을 인지법행(因地法行)이라 하느니라. 보살이 이에 의하여 대승 가운데 청정한 마음을 일으키나니, 말세 중생이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사견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문수여, 그대는 마땅히 알아라. 일체 모든 여래께서 본래의 인지(因地)로부터 다 지혜의 깨달음으로써 무명을 요달하셨느니라. 그것이 허공꽃인 줄 알면 곧 능히 유전을 면할 것이며, 또 꿈 속의 사람을 깰 때에 얻을 수 없음과 같느니라. 깨달음이 허공과 같아서 평등하여 움직여 구르지 않으니 깨달음이 시방계에 두루하면 곧 불도(佛道)를 얻으리라. 뭇 환(幻)이 멸하여도 처소가 없으며 도를 이룸도 또한 얻음이 없으니 본성이 원만한 때문이니라. 보살이 이 가운데서 능히 보리심을 일으키나니 말세 모든 중생들도 이를 닦으면 사견을 면하리라. 제2. 보현보살장 수행의 실제 그때 보현보살(普賢菩薩)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하며 오른 쪽으로 세 번 돌고 두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원하옵니다. 이 모임의 여러 보살들을 위하시며, 또 말세의 모든 중생들로서 대승을 닦는 이들을 위하소서. 이 원각의 청정한 경계를 듣고 어떻게 수행하여야 합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저 중생이 환(幻)과 같은 줄 아는 자이면 몸과 마음도 또한 환이거늘 어떻게 환으로서 환을 닦습니까. 만일 모든 환성(幻性)이 일체가 다 멸했다면 곧 마음이 없으니 누가 수행함이 되며, 어찌하여 또 수행함이 환과 같다고 하겠습니까. 만일 중생들이 본래 수행하지 않는다면 생사 가운데 항상 환화(幻化)에 머물러 있어 일찍이 환같은 경계를 요지(了知)하지 못하리니, 망상심으로 하여금 어떻게 해탈케 하겠습니까. 원하오니, 말세의 일체 중생들을 위하소서. 무슨 방편을 지어서 점차 닦아 익혀야 중생들로 하여금 온갖 환을 영원히 여의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말씀드리고 오체를 땅에 대어 절하며, 이같이 세 번 거듭 청하였다. 이때 세존께서 보현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재선재로다, 선남자여. 그대들이 능히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들을 위하여 보살의 환같은 삼매를 닦아 익힐 방편과 점차를 물어서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환을 여의게 하는구나.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때 보현보살이 가르침을 받들어 기뻐하며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들었다. "선남자여, 일체 중생의 갖가지 환화가 모두 여래의 원각묘심(圓覺妙心)에서 남이, 마치 허공꽃이 허공에서 생긴 것과 같다. 환화는 멸할지라도 허공의 본성은 멸하지 않나니, 중생의 환(幻)과 같은 마음도 환에 의해 사라지나 모든 환이 다 사라졌다 하더라도 본각(本覺)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느니라. 환에 의해 각(覺)을 말함도 또한 환이며, 만일 각이 있다고 말할지라도 오히려 아직 환을 여의지 못한 것이며, 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이 까닭에 환이 멸함을 이름하여 부동(不動)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일체 보살과 말세 중생들이 응당 일체 환화인 허망한 경계를 멀리 여의어야 하나니, 멀리 여의려는 마음을 굳게 집착하는 까닭에 마음이 환같은 것도 또한 멀리 여의며, 멀리 여읜 것이 환이 된 것도 또한 멀리 여의며, 멀리 여읨을 여의었다는 환까지도 또한 멀리 여의어서, 더 여읠 것이 없게 되면 곧 모든 환을 제(除)하리라. 비유하면 불을 피울 때 나무를 서로 비벼 불이 붙어 나무가 타서 없어지면 재는 날아가고 연기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과 같다. 환으로써 환을 닦는 것도 이와 같아서 모든 환이 비록 다하나 단멸에 들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환인줄 알면 곧 여읜지라 방편을 짓지 아니하고, 환을 여의면 곧 깨달음이라 점차도 없느니라. 일체 보살과 말세의 중생들이 이에 의해 수행할지니, 그리하여야 모든 환을 영원히 여의리라."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현아, 그대는 마땅히 알아라. 일체 중생들의 비롯함이 없는 환의 무명이 다 모든 여래의 원각심에서 생겼느니라. 마치 허공꽃이 허공에 의해 모양이 있다가 허공꽃이 만일 사라져도 허공은 본래로 요동치 않음과 같아서 환이 원각에서 생겨났다가 환이 멸하면 각이 원만하나니 본각의 마음은 요동치 않는 까닭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이 항상 응당 환을 멀리 여의면 모든 환을 다 여의리니 나무에서 불이 일어남에 나무가 다하면 불도 멸함과 같으니라. 깨달음은 점차가 없으며 방편도 또한 그러하니라. 제3. 보안보살장 수행의 방편 이때 보안보살(普眼菩薩)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며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두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원하옵니다. 이 법회의 모든 보살들을 위하며 말세의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보살이 수행하는 점차를 말씀해 주소서. 어떻게 생각[思惟]하며 어떻게 머물러야[住持] 합니까. 중생들이 깨닫지 못하면 무슨 방편을 써야만 널리 깨닫게 할 수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중생들이 바른 방편과 바른 생각이 없으면 부처님께서 삼매에 대해 설하시는 것을 듣고서도 마음이 미혹하고 어지러워 곧바로 원각에 깨달아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원하오니,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들과 말세 중생들을 위하여 방편을 말씀해 주소서." 이 말씀을 마치고 오체투지하며, 이와 같이 세 번 거듭 청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보안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재선재로다, 선남자여, 그대들이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들을 위하여 여래에게 수행하는 점차와 사유와 주지와 갖가지 방편 설함을 물었으니,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으라. 그대를 위하여 설해주리라." 이때 보안보살이 가르침을 받들고 기뻐하면서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들었다. "선남자여, 새로 배우는 보살과 말세 중생이 여래의 청정한 원 각의 마음을 구하고자 한다면 응당 바른 생각으로 모든 환을 멀리 여의어야 되느니라. 먼저 여래의 사마타(奢摩他)행에 의하여 금계(禁戒)를 굳게 지니고, 대중에 편안히 거처하거나, 조용한 방에 단정히 앉아서 항상 이 생각을 하라. 나의 지금 이 몸은 사대(四大)로 화합된 것이다. 이른바 머리카락, 털, 손발톱, 치아, 가죽, 살, 힘줄, 뼈, 골수, 골, 더러운 몸뚱이는 모두 흙[地]으로 돌아가고, 침, 콧물, 고름, 피, 잔액, 점액, 가래, 눈물, 정기(精氣), 대소변은 다 물[水]로 돌아가고, 따뜻한 기운은 불[火]로 돌아가고, 움직이는 작용은 바람[風]으로 돌아간다. 사대가 각각 분리되면 지금의 허망한 몸은 어디에 있겠는가. 곧 알라. 이 몸이 필경 실체가 없거늘 화합해서 형상이 이루어진 것이 진실로 환이나 허깨비와 같도다. 네 가지 인연[四緣]이 임시 화합해서 망령되이 육근(六根)이 있으니, 육근과 사대가 안팎으로 합쳐 이루거늘 허망하게도 인연기운[緣氣]이 그 가운데 쌓여서 인연의 모습이 있는 듯하게 되니 가명으로 마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허망한 마음은 만일 육진(六塵)이 없으면 있을 수 없으며, 사대가 분해되면 티끌[塵]도 얻을 수 없으니, 그 가운데 인연과 티끌이 각각 흩어져 없어지면 마침내 반연하는 마음도 볼 수 없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중생이 환의 몸이 멸하기 때문에 환의 마음도 멸하며, 환의 마음이 멸하기 때문에 환의 티끌도 멸하며, 환의 티끌이 멸하기 때문에 환의 멸함도 멸하며, 환의 멸함이 멸하기 때문에 환 아닌 것은 멸하지 않느니라. 비유하면 거울을 닦음에 때가 다하면 밝음이 나타나는 것과 같느니라.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몸과 마음이 다 환의 때이니, 때의 모습이 영원히 사라지면 시방이 청정하리라. 선남자여, 비유하면 청정한 마니 보배구슬이 오색에 비치어서 방향을 따라 각각 달리 나타나면 어리석은 이들은 그 마니 구슬에 실제로 오색이 있다고 보는 것과 같느니라. 선남자여, 원각의 청정한 성품이 몸과 마음을 나타내어 부류에 따라 각각 응하면 어리석은 이들은 청정한 원각에 실제로 그와 같은 몸과 마음의 제 모습[自相]이 있다고 함도 또한 그러하다. 이 까닭에 환화를 멀리 여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몸과 마음이 환의 때라 하노라. 환의 때를 여읜 이에 대하여 보살이라 이름하니, 때가 다하고 대(對)가 없어지면 곧 대(對)와 때[垢], 그리고 이름을 붙이는 이도 없느니라. 선남자여, 이 보살과 말세 중생들이 온갖 환을 증득하여 영상을 멸하면 그때에 문득 끝없는 청정을 얻으리라. 끝없는 허공이 깨달음[覺]에서 나타난 바이니라. 깨달음이 두렷하고 밝은 까닭에 마음의 청정함을 드러내고, 마음이 청정한 까닭에 보는 티끌[見塵]이 청정하고, 보는 것이 청정한 까닭에 안근(眼根)이 청정하고, 근이 청정한 까닭에 안식(眼識)이 청정하고, 식이 청정한 까닭에 듣는 티글[聞塵]이 청정하고, 듣는 것이 청정한 까닭에 이근(耳根)이 청정하고, 근이 청정한 까닭에 이식(耳識)이 청정하고, 식이 청정한 까닭에 느끼는 티끌[覺塵]이 청정하다. 이와 같이 내지 비(鼻), 설(舌), 신(身), 의(意)도 또한 그러하니라. 선남자여, 근(根)이 청정한 까닭에 빛[色塵]이 청정하고 , 빛이 청정한 까닭에 소리[聲塵]이 청정하며, 냄새[香], 맛[味], 닿음[觸], 법(法)도 그러하니라. 선남자여, 육진이 청정한 까닭에 지대(地大)가 청정하고, 지대가 청정한 까닭에 수대(水大)가 청정하며, 화대(火大), 풍대(風大)도 또한 그러하니라. 선남자여, 사대(四大)가 청정한 까닭에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이십오유(二十五有)가 청정하고, 그들이 청정한 까닭에 십력(十力), 사무소외(四無所畏), 사무애지(四無碍智), 불십팔불공법(佛十八佛工法),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이 청정하다. 이와 같이 내지 팔만사천 다라니문이 일체가 청정하느니라. 선남자여, 일체 실상의 성품이 청정한 까닭에 한 몸이 청정하고, 한 몸이 청정한 까닭에 여러 몸이 청정하고, 여러 몸이 청정한 까닭에 이같이 내지 시방 중생들의 원각도 청정하느니라. 선남자여, 한 세계가 청정한 까닭에 여러 세계가 청정하고 여러 세계가 청정한 까닭에 또한 허공을 다하며, 삼세를 두렷이 싸서 일체가 평등하여 청정하고 요동치 않느니라. 선남자여, 허공이 이와 같이 평등하여 요동치 않으므로 깨달음의 성품도 평등하여 요동치 않는 줄 알며, 사대가 요동치 않으므로 깨달음의 성품도 평등하여 요동치 않는 줄 알며, 이와 같이 팔만사천 다라니문이 평등하여 요동치 않으므로 깨달음의 성품도 평등하여 요동치 않는 줄 알지니라. 선남자여, 깨달음의 성품이 두루 원만하여 청정하고 요동치 아니하여 두렷함이 끝이 없으므로 마땅히 육근이 법계에 변만한 줄 알며, 근(根)이 변만하므로 육진이 법계에 변만한 줄 알며, 진(塵)이 변만하므로 사대가 법계에 변만한 줄 알며, 이와 같이 내지 다라니문이 법계에 두루 변만한 줄 알지니라. 선남자여, 저 묘한 깨달음의 성품이 변만한 까닭에 근의 성품과 진의 성품이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으며, 근과 진이 무너짐이 없는 까닭에 이같이 내지 다라니문이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느니라. 마치 백, 천 개의 등불의 빛이 한 방에 비치면 그 빛이 변만하여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는 것과 같느니라. 선남자여, 깨달음이 성취된 까닭에 마땅히 알라. 보살이 법의 속박을 싫어하지 않으며, 법의 해탈을 구하지 않으며, 생사를 싫어하지 않으며, 열반을 좋아하지 않으며, 지계하는 이를 공경하지 않으며, 금계 범한 이를 미워하지 않으며, 오래 수행한 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처음 배우는 이를 가벼이 여기지도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일체가 깨달음이기 때문이니라. 비유하면 안광(眼光)이 눈앞의 경계를 볼 때에 그 빛이 원만하여 미워할 것도 좋아할 것도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빛의 체는 둘이 아니어서 미워하고 좋아할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이 보살과 말세 중생으로서 이 마음을 닦아 익히어 성취한 자는, 이에 닦음도 없고 성취함도 없느니라. 원각이 널리 비추어 적멸이 둘이 없으니 그 가운데에 백천만억 불가설 아승지(阿僧祗) 항하사(恒河沙)의 모든 부처님 세계가, 마치 허공꽃이 어지러이 피었다가 어지러이 멸하는 것과 같아서 즉함도 아니고 여읨도 아니며 속박도 아니고 해탈도 아니다. 비로소 알라. 중생이 본래성불(本來成佛)이며 생사와 열반이 지난밤의 꿈과 같다. 선남자여, 지난 밤 꿈과 같으므로, 마땅히 알라, 생사와 열반이 일어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옴도 없고 감도 없다. 그 증득할 바를 얻음도 없고 잃음도 없으며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다. 그 능히 증득하는 이도 맡김[任]도 없고 그침[止]도 없고 지음[作]도 없고 멸함[滅]도 없다. 이러한 증득함도 없고 증득하는 이도 없어서 일체 법의 성품이 평등하여 무너지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들이 이와 같이 수행하며, 점차로 하며, 사유하며, 주지하며, 방편을 쓰고, 깨달아야 하니, 이와 같은 법을 구하면 또한 답답하지 않으리라." 그때에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안아, 그대는 마땅히 알아라. 일체 중생들의 몸과 마음이 다 환과 같아서 몸의 모습은 사대에 속하고 마음의 성품은 육진으로 돌아가나니 사대의 체가 각각 여의면 무엇이 화합한 자가 되리오. 이와 같이 점차 수행하면 일체가 모두 청정해져서 요동치 않고 법계에 변만하여 지음도 그침도 맡김도 멸함도 없고 능히 증득하는 이도 없으리라. 모든 부처님 세계들이 마치 허공꽃과 같아서 삼세가 다 평등하여 필경에 오고 감이 없느니라. 처음 발심한 보살과 말세의 중생들이 불도에 들기를 구하고자 하면 마땅히 이같이 닦아 익힐지니라. 제4. 금강장보살장 미혹의 본질 그때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두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비하신 세존께서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여래 원각의 청정한 대다라니의 인지법행과 점차 방편을 선양하시어 모든 중생들의 몽매함을 개발케 해주시니, 모임에 온 법회 대중들은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입고 환의 가리움이 밝아져서 지혜의 눈이 청정해졌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중생들이 본래 성불이라면 어찌하여 다시 온갖 무명이 있습니까? 만약 모든 무명이 중생에게 본래 있다면 무슨 인연으로 여래께서는 다시 본래 성불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시방의 다른 중생들이 본래 불도를 이루고 후에 무명을 일으킨다면, 일체 여래께서는 어느 때에 다시 일체 번뇌를 내시게 됩니까? 오직 원하오니 막힘이 없는 대자[無遮大慈]를 버리지 마시고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수다라교의 요의(了義)법문을 듣고 영원히 의심을 끊게 해주소서." 이렇게 말하고는 오체투지하고 이와 같이 세 번 거듭 청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금강장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재 선재라, 선남자여. 그대들이 능히 모든 보살들과 말세 중생들을 위해서 여래에게 깊고 깊으며 비밀스러운 구경 방편을 묻는구나. 이는 모든 보살들의 최상의 가르침인 요의 대승인지라, 능히 시방 세계의 수학(修學)하는 보살과 모든 말세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결정한 믿음[決定信]을 얻어서 길이 의심을 끊게 하니,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이에 금강장보살이 가르침을 받들어 기뻐하면서 모든 대중들과 조용히 들었다. "선남자여, 모든 세계의 시작하고 마치고 생기고 멸하고 앞서고 뒤지고 있고 없고 모이고 흩어지고 일어나고 그침이 생각 생각 상속하여 순환 왕복함에 갖가지로 집착하고 버리는 것이 다 윤회이니라. 윤회에서 벗어나지 않고 원각을 변별하면 그 원각성(圓覺性)이 곧 한가지로 유전하리니, 만약 윤회를 면한다면 옳지 못하리라. 비유하면 움직이는 눈이 능히 잔잔한 물을 요동시키는 것과 같으며, 또 움직이지 아니하는 눈이 회전하는 불을 따라서 도는 것과 같다. 구름이 지나감에 달이 움직이는 것과, 배가 지나감에 언덕이 움직이는 것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움직이는 것이 쉬지 아니함에 저 물건이 먼저 머문다는 것도 오히려 얻지 못하거늘, 어찌 하물며 생사에 윤전하는 때묻은 마음이 일찍이 청정하지 아니하고 부처님 원각을 관함에 뒤바뀌지 아니하겠는가. 이런 까닭에 그대들이 다시 세 가지 미혹[三惑]을 일으키느니라. 선남자여, 비유하면 환의 가림으로 망령되이 허공 꽃을 보았다가 환의 가림이 만약 없어지면, 이 환의 가림이 이미 멸했으니 어느 때에 다시 일체 모든 환의 가림을 일으키는 가라고 말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환의 가림과 허공꽃 두 가지가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허공 꽃이 허공에서 멸할 때에 허공이 어느 때에 다시 허공 꽃을 일으키는 가라고 말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어서 일어나고 멸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사와 열반은 한가지로 일어나고 멸하거니와, 묘각이 뚜렷이 비춤에는 꽃도 가림도 여의느니라.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허공이 잠시도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잠시도 없는 것이 아니거늘, 하물며 다시 여래의 원각이 수순해서 허공의 평등한 본성이 됨이겠는가. 선남자여, 금광석을 녹임에 금은 녹여서 있는 것이 아니며 이미 금을 이루고 나면 다시 광석이 되지 아니한다. 끝없는 시간이 지나도록 금의 성품은 무너지지 않으니, 마땅히 본래 성취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 부처님의 원각도 또한 다시 이와 같느니라. 선남자여, 일체 여래의 묘한 원각의 마음은 본래 보리와 열반이 없으며, 또한 성불과 성불하지 못함이 없으며, 망령된 윤회와 윤회가 아닌 것도 없느니라. 선남자여, 단지 모든 성문들이 원만히 한 경계도 몸과 마음과 말이 다 끊어져서 마침내 저가 친히 증득하여 나타난 열반에 이르지 못하거늘, 어찌 하물며 능히 사유하는 마음으로 여래의 원각경계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마치 반딧불로써 수미산을 태움에 마침내 그럴 수 없는 것과 같이, 윤회하는 마음으로써 윤회의 견해를 내어 여래의 대적멸 바다에 들어간다면 마침내 능히 이르지 못하느니라. 이런 까닭에 내가 설하기를, '일체 보살들과 말세 중생들이 먼저 비롯함이 없는 윤회의 근본을 끊으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음이 있는 사유는 유위의 마음[有心]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다 육진의 망상 인연 기운이요, 실제 마음의 체는 아니다. 이미 허공 꽃과 같으니 이러한 사유를 사용해서 부처님 경계를 분별한다면, 마치 허공 꽃에다 다시 허공과 일을 맺는 것과 같아서 망상만 점점 더해질 뿐이니, 옳지 못하니라. 선남자여, 허망하고 들뜬 마음이 공교한 견해가 많아서 능히 원각방편을 성취하지 못하니 이와 같은 분별은 바른 물음이 아니니라."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을 설해 말씀하셨다. 금강장이여, 마땅히 알아라. 여래의 적멸한 성품은 마치고 시작함이 일찍이 있지 아니하니 만약 윤회하는 마음으로 사유한다면 곧 뒤바뀌어서 다만 윤회하는 경계에 이를 뿐이요 능히 부처님의 바다에는 들지 못하느니라. 비유하면 금광을 녹임에 금은 녹인 까닭에 있는 것이 아니며 비록 본래 금이나 마침내 녹임으로써 이루어지니라. 한 번 진금의 체를 이루면 다시는 거듭 광석이 되지 않느니라. 생사와 열반과 범부와 모든 부처님께서 한가지로 공화상(空花相)이라. 사유도 오히려 환화이거늘 어찌 하물며 허망함을 힐난하리오. 만약 능히 이 마음을 요달하면 그런 후에야 원각을 구하리라. 제5. 미륵보살장 윤회의 본질 그때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비하신 세존께서 널리 보살들을 위하여 비밀장을 여시어 대중들로 하여금 깊이 윤회를 깨닫고 잘못되고 바른 것을 분별하게 하시어 능히 말세 모든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는 도안(道眼)을 베푸시어 대열반에 결정신을 내어서 다시는 거듭 윤회의 경계를 따라 순환하는 견해를 일으킴이 없게 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들과 말세 중생들이 여래의 대적멸 바다에 노닐고자 한다면 어떻게 마땅히 윤회의 근본을 끊으며, 저 윤회에 몇 가지 종성(種性)이 있으며, 부처님 보리를 닦는데 몇 가지 차별이 있으며, 진로(塵勞)에 돌이켜 들어감에 마땅히 몇 종류의 교화방편을 베풀어 모든 중생을 제도해야 합니까? 오직 원하옵니다. 세상을 구제하시는 대비를 버리지 마시고 모든 수행하는 일체 보살들과 말세 중생들로 하여금 지혜의 눈이 맑고 깨끗해져서 마음 거울을 밝게 비추어 여래의 위없는 지견을 뚜렷이 깨닫게 하소서." 이렇게 말하고는 오체투지하고 세 번 거듭 청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재선재라, 선남자여. 그대들이 능히 모든 보살들과 말세 중생들을 위해서 여래에게 깊고 오묘하며 비밀스럽고 미묘한 뜻을 물어서 보살들로 하여금 지혜의 눈을 맑게 하며, 일체 말세 중생들로 하여금 영원히 윤회를 끊고 마음으로 실상을 깨달아서 무생인(無生忍)을 갖추게 하니,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이에 미륵보살이 가르침을 받들어 기뻐하며 모든 대중들과 조용히 들었다. "선남자여, 모든 중생들이 옛부터 여러 가지 은애(恩愛)와 탐욕이 있는 까닭에 윤회가 있느니라. 만약 모든 세계의 일체 종성인 난생(卵生), 태생(胎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이 다 음욕을 인해서 성명(性命)을 세운다면 마땅히 알라, 윤회는 애욕[愛]이 근본이 되느니라. 온갖 탐욕[慾]이 있어서 갈애(渴愛)의 성품이 일어나도록 돕나니, 이런 까닭에 능히 생사가 상속케 한다. 탐욕은 갈애를 인하여 생하고 목숨[命]은 탐욕을 인하여 있는지라, 중생들이 목숨을 사랑하는 것이 도리어 탐욕의 근본에 의지함이니 애욕은 원인이요 목숨을 사랑함은 결과이다. 탐욕의 경계를 말미암아 모든 어기고 따름[違順]을 일으킨다. 경계가 사랑하는 마음에 위배되면 미워하고 질투함을 내어서 갖가지 업을 지어 다시 지옥, 아귀에 떨어진다. 탐욕이 싫어해야 될 것인 줄 알고 업을 싫어하는 도를 사랑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즐겨하면 다시 하늘이나 인간에 나타난다. 또한 모든 애욕이 싫어하고 미워해야 될 것인 줄 아는 까닭에 애욕을 버리고 버리는 법[捨]을 즐겨도 도리어 애욕의 근본을 도와서 문득 유위의 증상선과(增上善果)를 나투나니 모두 윤회하는 까닭에 성스러운 도(道)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중생이 생사를 벗어나고 모든 윤회를 면하고자 한다면, 먼저 탐욕을 끊고 갈애(渴愛)를 없애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변화하여 세간에 시현(示現)하는 것은 애욕이 근본이 됨이 아니다. 단지 자비로써 그로 하여금 애욕을 버리게 하려고 온갖 탐욕을 빌어서 생사에 들어간 것이다. 만약 모든 말세의 일체 중생들이 능히 온갖 탐욕을 버리고 증애(憎愛)를 없애서 영원히 윤회를 끊고 여래의 원각경계를 힘써 구하면 청정심에 문득 깨달음을 얻으리라. 선남자여, 일체 중생들이 본래 탐욕을 말미암아 무명을 발휘하여 오성(五性)이 차별해서 같지 않음을 드러내며, 두 가지 장애에 의하여 깊고 얕음을 나타내느니라. 무엇이 두 가지 장애인가? 하나는 이장(理障)이니 바른 지견을 장애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사장(事障)이니 모든 생사를 상속함이니라. 무엇이 오성인가? 선남자여, 만약 이 두 가지 장애를 단멸치 못하면 성불하지 못한 것이라 한다. 만약 모든 중생들이 영원히 탐욕을 버리되 먼저 사장은 제했으나 이장을 끊지 못하면 단지 성문, 연각에 능히 깨달아 들어감이요, 능히 보살의 경계에 머무르지는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말세 일체 중생들이 여래의 대원각의 바다에 노닐고자 한다면 먼저 마땅히 발원하여 부지런히 두 가지 장애를 끊어야 한다. 두 가지 장애가 이미 조복되면 곧 능히 보살의 경계에 깨달아 들어가리라. 만약 사장과 이장을 영원히 단멸하면 곧 여래의 미묘한 원각에 들어가서 보리와 대열반을 만족하리라. 선남자여, 일체 중생들이 모두 원각을 증득하나니 선지식을 만나서 그가 지은 인지법행을 의지하면 그때 닦아 익힘에 문득 돈, 점(頓漸)이 있음이요, 만약 여래의 위없는 보리의 바른 수행의 길을 만나면 근기에 대, 소(大小)가 없이 모두 불과를 이루리라. 만약 중생들이 비록 착한 벗을 구하나 삿된 견해를 가진 이를 만나면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하리니 이를 곧 외도 종성(外道種性)이라 이름하나니, 삿된 스승의 잘못이요 중생의 허물이 아니다. 이를 중생의 오성 차별(五性差別)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오직 대비의 방편으로써 모든 세간에 들어가서 깨닫지 못한 이를 개발케 하며 내지 여러 가지 형상을 나타내어 역경과 순경계에 그와 더불어 동사(同事)해서 교화하여 성불하게 하니, 다 비롯함이 없는 청정한 원력에 의함이니라. 만약 말세의 일체 중생들이 대원각(大圓覺)에서 증상심(增上心)을 일으킨다면, 마땅히 보살의 청정한 대원을 일으켜 응당 이렇게 말하리라. '원하옵니다. 내가 이제 부처님의 원각에 머물러서 선지식을 구하오니 외도와 이승(二乘)은 만나지 말아지이다.' 원에 의지하여 수행해서 점차 모든 장애를 끊으면 장애가 다하고 원이 원만함에 문득 해탈의 청정한 법 궁전에 올라 대원각의 묘한 장엄 경계를 증득하리라."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미륵이여, 그대는 마땅히 알아라. 일체 중생들이 대해탈을 얻지 못함은 모두 탐욕을 말미암아 생사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미움과 사랑 그리고 탐진치를 능히 끊으면 차별한 성품에 인하지 않고 다 불도를 이루리라. 두 가지 장애가 길이 소멸하여 스승을 구하여 바른 깨달음을 얻어서 보리원에 수순하며 대열반에 의지하리라. 시방의 보살들이 모두 대비의 원으로써 생사에 들어감을 시현하나니 현재 수행하는 이와 말세의 중생들이 모든 애견(愛見)을 부지런히 끊으면 문득 대원각에 돌아가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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