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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佛陀)와 불전(佛傳)-악마의 유혹

by 회심사 2017. 5. 2.


-악마의 유혹-
    붓다께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악마의 유혹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불전문학(佛傳文學)에서는 붓다의 성도(成道)와 악마(惡魔)의 유혹(誘惑)을 결부시켜 서술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후대의 불전에서는 악마의 유혹과 그것의 극복이 성도 직전의 일인 것처럼 씌어져 있으나, 그것은 후대의 불전작가들이 성도의 극적 효과를 인상적으로 강하게 하기 위해서 그와 같이 묘사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기 어렵습니다. 초기의 불교도들은 후세의 불전작가들과는 달리 부단한 정진, 유혹에 대한 7년간의 부단한 투쟁이 붓다의 수행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악마들은 태자가 출가하여 수행하는 동안 줄곧 따라다니면서 깨달음[正覺]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려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악마의 유혹이라는 전설입니다.

    1. 고행과 애욕의 유혹

    악마의 유혹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수따니빠따(Suttanipata, 經集)>에 편찬되어 있는 <빠다나-숫따(Padhana-sutta, 精勤經)>입니다. 이 경전은 붓다께서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회상(回想)하여 술회(述懷)한 것인데, 그 내용은 제자들에게 열심히 정진하라고 당부한 가르침입니다. 이 경전에 나오는 악마와의 대화는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네란자라 강 기슭에서 명상에 전념하고 있을 때, 실제로 붓다의 내면에서 일어났던 갈등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우선 경전의 내용을 읽어보겠습니다.

    네란자라 강 기슭에서 평안을 얻기 위해 힘써 닦고 명상하는 나에게,
    악마 나무찌(Namuci)는 위로의 말을 건네며 다가왔다.
    "당신은 야위었고 안색이 나쁩니다. 당신은 죽음에 임박해 있습니다.
    당신이 죽지 않고 살 가망은 천에 하나입니다. 당신은 살아야 합니다.
    생명이 있어야만 모든 착한 일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베다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청정한 행을 하고 성화(聖火)에 제물을 올리는 고행을 쌓는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애써 정진하는 길은 가기 힘들고 행하기 힘들며 도달하기도 어렵습니다."

    이 같은 시를 읊으면서 악마는 눈뜬 분 곁에 섰다.
    악마가 이렇게 말하자, 스승(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게으름뱅이의 친척이여, 악한 자여, 그대는 세속에 선업(善業)을 구해서 여기에 왔지만, 내게는, 세속의 선업을 찾아야 할 필요는 털끝만큼도 없다. 악마는 선업의 공덕을 구하는 자에게 가서 말하라. 내게는 믿음이 있고 노력이 있고 지혜가 있다. 이처럼 전념하는 나에게 너는 어찌하여 생명의 보전을 묻는가. 힘써 정진하는 데서 일어나는 이 바람은 강물도 마르게 할 것이다. 오로지 수도에만 정진하는 내 몸의 피가 어찌 마르지 않겠는가.

    몸의 피가 마르면 쓸개도 가래침도 마를 것이다. 살이 빠지면 마음은 더욱더 밝아지리라. 내 생각과 지혜와 순일한 마음은 더욱더 편안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토록 편안히 살고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으므로 내 마음은 모든 욕망을 돌아볼 수가 없다. 보라, 이 마음과 몸의 깨끗함을!

    너의 첫째 군대는 욕망이고, 둘째 군대는 혐오이며, 셋째 군대는 기갈, 넷째 군대는 애착이다. 다섯째 군대는 권태와 수면, 여섯째 군대는 공포, 일곱째 군대는 의혹, 여덟째 군대는 겉치레와 고집이다. 잘못 얻은 이득과 명성과 존경과 명예와 또한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는 것. 나무치여, 이것들은 너의 병력(兵力)이다. 검은 악마의 공격군이다. 용감한 사람이 아니면 그를 이겨낼 수가 없다. 용자는 이겨서 즐거움을 얻는다. 내가 문자풀을 입에 물 것 같은가? 이 세상의 생은 달갑지 않다. 나는 패해서 사는 것보다는 싸워서 죽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들은 너의 군대에게 패해버리고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덕 있는 사람들의 갈 길조차 알지 못한다.

    병력이 사방을 포위하고 악마가 코끼리를 탄 것을 보았으니,
    나는 그들을 맞아 싸우리라. 나를 이곳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라.

    신들도 세상 사람도 너의 병력을 꺾을 수 없지만, 나는 지혜를 가지고 그것을 깨뜨린다. 마치 굽지 않은 흙 단지를 돌로 깨뜨려버리듯이.

    생각대로 사유(思惟)를 하면서 신념을 굳게 하고 이 나라 저 나라로 편력할 것이다. 여러 제자들을 거느리고. 그들은 내 가르침을 실행하면서 게으르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 그곳에 가면 근심할 것이 없고, 욕망이 없는 경지에 그들은 도달하리라."

    악마는 말했다.

    "우리들은 칠 년 동안이나 그를 한 걸음 한 걸음 따라다녔다.
    그러나 항상 조심하고 있는 정각자(正覺者)에게는 뛰어들 틈이 없었다.

    까마귀가 기름을 발라놓은 바위 둘레를 맴돌며 ?이곳에서 말랑말랑한 것을 얻을 수 없을까. 맛 좋은 먹이가 없을까?하며 날아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 맛있는 것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까마귀는 날아 가버렸다. 바위에 가까이 가 본 그 까마귀처럼, 우리는 지쳐서 고따마를 떠나간다."

    근심에 잠긴 악마의 옆구리에서 비파(琵琶)가 뚝 떨어졌다.
    그만 그 야차는 기운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 경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악마 나무찌가 나타나 고행 중인 석존에게 고행을 포기할 것을 유혹합니다. 그러나 석존은 이에 굴하지 않고 더욱더 정진함으로써 그 유혹을 극복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악마의 군대가 나타나 석존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석존은 지혜로써 악마의 여덟 무리 군대를 격파시켜 버렸다는 것이 이 경전의 핵심입니다.

    이 경전에서는 악마와의 결투를 아주 리얼하게 잘 묘사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악마의 여덟 무리의 군대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됩니다. 즉 악마의 군대는 ①까마(Kama, 애욕), ②아라띠(arati, 혐오), ③꿋삐빠사(khuppipasa, 기갈), ④땅하(tanha, 갈애), ⑤티나밋다(thinamiddha, 혼침 수면), ⑥비루(bhiru, 공포), ⑦위찌낏차(vicikiccha, 의혹), ⑧막카탐바(makkha-thambha, 위선과 오만) 등의 여덟 가지를 말합니다. 이것은 모두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욕망과 미혹과 나태의 측면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명백합니다.

    위에서 인용한 <수따니빠따>에 나오는 악마의 유혹과 비슷한 내용이 한역 아함경에도 실려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때에 마라 빠삐만(Mara papiman, 惡魔波旬)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사문 고따마는 지름 우루벨라촌 네란자라 강가에 계시는데, 보리수 밑에서 도를 이룬 지 오래지 않다. 나는 거기 가서 교란시키리라."

    그는 곧 젊은이로 화해 부처님 앞에 가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혼자서 쓸쓸한 곳에 들어와 선정에 들어 고요히 생각한다.
    나라와 재물 이미 버리고 여기서 다시 무엇을 구비하는가.

    만일 마을의 이익을 구한다면 어찌하여 사람을 친하지 않는가.
    이미 사람을 친하지 않거니 마침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것은 악마 빠삐만의 교란시키려는 짓이다' 생각하시고,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미 큰 재물의 이익을 얻어 마음이 만족하고 편하고 고요하다.
    모든 악마를 무찔러 항복 받고 어떠한 욕망에도 집착하지 않노라.

    혼자 고요히 생각하면서 선정의 묘한 기쁨 먹고 있거니
    그러므로 구태여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가까이 친하여 않노라.
    악마는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고따마여, 만일 스스로 그 안온한 열반길 알았거든
    너 혼자 스스로 무위(無爲)를 즐겨하라.
    무엇하여 구태여 남을 교화하려는가.

    악마의 속박 받지 않는 이 내게 와 '저 언덕' 건너기 물으면 나는 곧 그에게 바른 대답으로써 그로 하여금 열반을 얻게 한다.

    악마는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어떤 흰 돌이 어린 기름 같아서 새가 날아 와 먹으려 하였으나
    마침내 그것을 맛보지 못하고 주둥이만 다치고 허공으로 돌아갔네.
    이 나도 또한 그 새와 같거니 헛되이 수고하고 하늘로 돌아가네.

    악마는 이렇게 말하고 근심과 슬픔을 품고 마음으로 뉘우쳤다. 그래서 머리를 숙이고 땅에 엎드려 손가락으로 땅을 그었다.

    경전은 계속됩니다. 석존과의 대화에서 패배하고 돌아온 빠삐만에게 애욕(愛欲), 애념(愛念), 애락(愛樂)이라는 세 딸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그 아버지를 대신하여 석존을 유혹하고 돌아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석존을 유혹시키지 못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경전을 근거로 후대의 불전작가들이 악마의 유혹에 대해 좀더 윤색하고 보완하여 드라마틱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실제로 앞에서 인용한 {수따니빠따}에 나오는 악마의 군대는 <본행집경(本行集經)>과 <방광대장엄경(方廣大莊嚴經)>에 그대로 기술되어 있으며, 나가르주나(Nagarjuna, 龍樹)의 <대지도론(大智度論)>에도 인용되고 있습니다.

    2. 악마유혹 전설의 의미

    악마의 유혹에 관한 이야기는 석존이 성도한 후의 일화에서도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빠삐만(波旬)이라고 불리는 악마는 석존을 공포에 몰아넣으려고 때로는 거대한 코끼리의 상왕(象王)으로, 때로는 큰 뱀(大蛇)의 왕으로 변하여 큰 바위를 부수고 큰 굉음을 울리며 석존에게 접근했지만 그럴 때마다 석존은 이를 피하곤 했다고 합니다. 다시 마왕은 석존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 특히 비구니(여성 출가자)를 유혹하거나 협박했습니다. 경전에는 악마가 "당신은 젊고 아름답다. 나 역시 한창이니, 함께 와서 즐겁게 악기를 타면서 놀자"거나, "여성의 몸으로 정각을 얻어 성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니, 어서 수도를 단념하라"는 유혹을 던진 이야기가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들 악마는 마라(mara, 죽음의 신), 나무찌(namuci, 한역 경전에는 '장해탈(障解脫)'이라고 번역되어 있음), 깡하(kanha, 검은 것), 아디빠띠(adhipati, 통치자), 안따까(antaka, 죽음의 신, 죽음의 악마) 등, 갖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통틀어서 ?악한 것? 즉 빠삐만(papiman)이라고 불립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악마유혹의 전설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석존이 출가할 때 국왕의 자리로써 유혹 받았다는 전설이나, 네란자라 강변에서 고행을 할 때 건강을 유지하여 생명을 보존하고 정통 바라문교도들이 행하듯이 행실을 삼가며 한 가정의 장으로서 성스러운 불에 제물을 바치고, 아그니(agni, 불의 신, 火天) 호트라의 제사를 지내고, 공덕을 쌓으라는 권유를 받았다는 전설 등은 모두 일반 세속세계로의 복귀, 즉 세속적인 욕망에 대한 유혹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팔마군(八魔軍)의 유혹은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주목되는 것은 악마 빠삐만의 세 딸에 의한 석존 유혹의 전설입니다. 땅하(tanha, 갈애), 아라띠(arati, 혐오)이며, 라가(raga, 탐욕)라 불리는 세 딸은 부친인 빠삐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린 소녀, 젊은 처녀, 남의 아내, 노파 등으로 모습을 바꿔 가면서 석존에게 접근했지만, 일체의 번뇌를 떠나 정각의 경지에 도달한 석존은 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내 마음은 고요하다'라는 말로써 일축해 버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세 마녀의 유혹에도 성적 충동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하는 옛 전설({수따니빠따})이나, 또는 후대의 한역 경전에서 볼 수 있는 전설, 즉 우루벨라 마을의 네 명의 여자가 유혹했다는 이야기와({사분율, 四分律}) 아울러 생각해 볼 때, 금욕 생활을 지켜나가려는 석존에 대한 유혹이 투영된 전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 경전에 나타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악마에 의한 유혹의 전설은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즉 인간 존재의 근원에 깔린 욕망과 불안, 공포, 고뇌 등이 인간과 벌이는 투쟁의 경과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번뇌에 대한 인식 및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후대의 경전에서는 악마의 수가 더욱 증가하고, 그 내용도 여성뿐 아니라 추상적으로 발달해 갑니다. 불상이나 불화의 제작이 시작되어 항마성도(降魔成道)의 주제가 많이 이용됨에 따라서, 사람들은 실제로 악마가 달려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