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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佛陀)와 불전(佛傳)-고행과 중도의 실천

by 회심사 2017. 5. 2.


-고행과 중도의 실천-
    1. 수정(修定)에서 고행(苦行)으로

    붓다는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이루기까지 몇 단계의 수행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출가하여 알라라 깔라라(Alara Kala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amaputta)라는 두 스승 밑에서 선정(禪定)을 주로 배우고 닦았습니다. 그는 곧바로 스승들의 경지를 체득하였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그들로부터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들 곁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언급할 수정주의(修定主義)의 포기를 의미합니다.

    석존은 라자가하(Rajagaha, 王舍城)를 떠나 남서쪽 가야(Gaya, 伽倻) 교외, 우루벨라(Uruvela)의 세나(Sena) 마을에 있는 네란자라(Neranjara) 강 근처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고행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부근에 고요한 삼림이 있었고 강물은 맑아 경치가 매우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오직 혼자서 여러 가지 고행을 실천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수정(修定)을 버리고 고행(苦行)으로 나아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행(苦行)은 당시 아지비까(Ajivika)나 자이나교(Jaina) 등의 사문들이 즐겨 실천했던 수행방법이었습니다. 아지비까는 숙명론자(宿命論者)였던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가 이끌고 있던 교단이었습니다. 아지비까라는 명칭은 원래 단순히 각각의 '생활법(生活法)에 따른 자'라는 의미이지만 교단의 명칭으로 사용하여 '생활법의 규정을 엄격히 지키는 자'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사상에서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고행하는 자'로 이해되었고, 훗날 한역경전에서는 '사명외도(邪命外道)'로 폄칭(貶稱)되었습니다. 아지비까에서는 고행도 자연의 정해진 이치, 즉 결정으로 보았다거나 고행 그 자체를 목적시하였다거나, 혹은 고행에 어떠한 실천적 의의를 인정하였을 것이라는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추정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아지비까 교도들은 생계수단을 위해서이건 철저한 고행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자이나교는 그 어느 종교 단체보다도 고행을 중요시하는 교단이었습니다. 자이나교의 교주 마하비라(Mahavira, 大雄)는 업(業, karma)을 미세한 물질로 보고 이 업이 외부로부터 신체 내부의 영혼에 유입(流入, asrava) 부착하여 영혼은 속박(bandha)하기 때문에 윤회의 생존이 되풀이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업에 의해 속박된 윤회에서 벗어나 영혼이 그 본성을 발현하여 해탈하기 위해서는, 미세한 업 물질을 지멸(止滅, nirjara)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율을 지키고 고행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출가수행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출가 수행자는 불살생(不殺生) · 진실어(眞實語) · 부도(不盜) · 불음(不淫) · 무소유(無所有) 등 '다섯 가지 대금계(大禁戒)' 즉 오대서(五大誓)를 엄격히 지키고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형(裸形)으로 여러 가지 고행을 행하였으며, 때로는 단식 수행으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붓다 당시 가장 엄격한 고행주의를 실천했던 사람들이 바로 자이나 교도들이었습니다.

    2. 고행의 실천 내용

    이러한 당시의 수행풍토에 따라서 석존도 본격적으로 고행을 실천했습니다. 석존께서 실천했던 여러 종류의 고행들을 경전에서는 언급하고 있는데, 석존은 그러한 모든 것들을 실수(實修)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마음을 제어하는 것, 호흡을 멈추는 것, 단식(斷食)에 의한 것, 절식(絶食)하는 것 등이었습니다.

    경전의 설명에 따르면 마음을 제어하는 고행이란 단정히 앉아 아랫니와 윗니를 맞닿게 모으고 혀는 위턱에 붙이고 마음을 억제하여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호흡을 멈추는 고행이란 먼저 입과 코로부터의 호흡을 막으면 귀로 숨이 들락날락하게 되며 커다란 이명(耳鳴)이 들려 격심한 고통이 따릅니다. 이 귀의 호흡을 막으면 날카로운 정수리를 빠개는 듯한 고통이 일어나며 또한 질긴 가죽끈으로 머리를 휘감는 듯한 고통을 느낍니다. 그 숨이 하복부로 옮겨가면 배를 가르는 듯한 고통이 따릅니다. 마지막으로 이같은 호흡을 막고 있으면 마치 힘이 센 남자들이 힘이 약한 남자의 팔을 잡아 잿불 속으로 집어넣어 불에 타는 괴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처럼 온몸에 타는 듯한 괴로움이 일어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앗기벳사나(Aggivesana)여, 신들은 나를 보고 이같이 생각하였다. '사문 고따마는 이미 죽었다'고. 어떤 신들은 이같이 생각하였다. '사문 고따마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러나 죽을 것이다'고. 어떤 신들은 이같이 생각하였다. '사문 고따마는 죽지 않았고 죽지 않을 것이다. 사문 고따마는 아라한이다. 실로 아라한의 경지는 이와 같은 것이다'고.

    석존은 그의 고행을 본 사람들이 그가 죽어버렸다고 여길 정도로 극심한 고행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극심한 고행을 실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평안은 얻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석존은 일체의 음식을 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절식(絶食)에 의한 고행, 감식(減食)에 의한 고행을 계속한 결과 석존의 전신은 살이 빠져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났으며 눈은 움푹 들어가고 몸의 털은 부식하여 뽑혀지고 피부는 생기를 잃어 그때까지 아름답게 빛나던 황금색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일을 회상한 석존의 말을 경전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앗기벳사여, 나는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옛날 어떤 사문 · 바라문이 어떠한 격심한 고통을 받았다 해도 내가 받은 것은 최고이며 그 이상의 고통은 없었다. 또 미래의 어떠한 사문 · 바라문이 어떠한 격심한 고통을 받게 되더라도 내가 받은 것은 최고이며 그 이상의 고통은 없을 것이다. 또 현재의 어떠한 사문 · 바라문이 어떠한 격심한 고통을 받는다 해도 내가 받은 것은 최고이며 그 이상의 고통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격심한 고행에 의해서도 나는 일상의 인간이나 법(法)을 초월한 최고의 지견(智見)에 도달할 수 없다. 깨달음에 이르는 다른 도(道)가 있을 것이다.

    이 밖에 초기경전에서는 석존이 실천하였던 고행으로서 식사에 관한 고행, 신체적인 고행, 항상 먼지나 오물로 더렵혀져도 결코 몸을 씻지 않겠다고 하는 따위의 맹세를 지키는 것 등의 고행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석존이 실제로 실수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석존은 고행은 심신(心身)을 훼손시키는 것일 뿐 깨달음에 이르는 도(道)는 아니라고 명확하게 단정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석존은 마음을 제어하고 호흡을 멈추고 감식(減食)하고 혹은 단식(斷食)하였습니다. 죽음에 직면할 정도로 육체를 괴롭혔으며, 그러한 고통을 극복함으로써 강한 의지를 확립하여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고행은 6년간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3. 중도의 실천

    그러나 그것으로도 역시 궁극의 해탈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석존은 고행이 해탈하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마침내 이것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먼저 고행에 의해 극도로 쇠약해지고 더러워진 몸을 네란자라 강물에 깨끗이 씻고, 마을 처녀 수자따(Sujata, 善生)가 바친 우유죽을 섭취하여 심신을 회복한 후 깨달음에 이르는 자기 자신만의 수행 방법을 강구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정주의와 고행주의의 두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 Majjhim Patipada)인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출가자는 두 가지 극단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하나는 모든 욕망에 따라 쾌락에 탐닉하는 것으로, 열악하고 야비하며 범부가 행하는 것이며 천하고 이익이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을 피로하게 하는 것에 탐닉하는 것으로, 괴롭고 천하며 이익됨이 없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에 가까이 가지 않고 중도(中道)를 깨달았다. 이것은 눈(眼)이 되고 지(智)가 되어 적정(寂靜) · 증지(證智) · 정각(正覺) · 열반(涅槃)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중도를 비고비락(非苦非樂)의 중도(中道)라고 하며, 구체적으로는 팔정도(八正道, Ariya-atthangika-magga)가 바로 그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팔정도란 고(苦) · 집(集) · 멸(滅) · 도(道) 네 가지 진리 가운데 도제(道諦)의 내용이 되는 것으로, 바로 '열반으로의 삶'이다. 중도는 고(苦)도 아니고 낙(樂)도 아닌 중도(中道)를 말하지만 이는 단지 중간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석존이 스스로 실천하여 정각에 도달한 도(道), 깨달음을 얻으려는 자라면 누구든지 실수(實修)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도(道)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초기경전에서 '도(道)'라고 할 경우 여기에는 두 가지 용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중도라고 할 때의 도(道, patipada)로서 석존이 정각을 얻은 행도(行道)로서의 도(道)이며, 다른 하나는 객관적인 도법(道法)으로서 도(道, magga, Sk. marga)입니다. 전자는 깨달음을 얻으려는 수행자가 석존의 실천방법에 따라 스스로 실천하는 주체적 도(道)이고, 후자는 객관적인 도로서의 도(道)입니다. 중도라는 것은 두 가지 극단을 떠나 정각을 얻은 석존에게 있어 눈(眼)이 되고 지혜(智)가 되어 깨달음으로 이끄는 도(道)이기 때문에 다만 객관적인 진리성을 나타내는 도(道)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실천하는 주체적인 도(道)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4. 중도의 실천적·철학적 의미

    한편 붓다 당시 인도의 철학과 종교는 크게 바라문(波羅門) 계통과 사문(沙門) 계통의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전자는 베다·우빠니샤드에 근거한 인도 정통파의 입장에 속하는 것으로, 유일의 원리인 브라흐만(Brahman, 梵)으로부터 전 세계가 생겨났다고 하는 점이 사상적 특징이라 할 수 있으며 보통 전변설(轉變說, parinama-vada)이라고 합니다. 바라문 계 사상에 있어서는 전 세계가 어떻게 성립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고찰할 때 먼저 브라흐만이라고 하는 근본원리를 세우고, 이러한 근본원리인 브라흐만이 자기 자신을 전개시켜 질료인(質料因)도 되고 동력인(動力因)도 되어 전 세계를 성립시킨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이러한 바라문 계 사상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 자유사상가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육사외도(六師外道)들이 주장한 사상의 특징은 유일(唯一)의 원리로부터 복잡한 현상세계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독립된 원리와 요소가 어떠한 형태로서 결합하여 이 세계가 구성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아지따 께사깜발린(Ajita Kesakambalin)은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의 네 가지 원소를 주장했습니다. 즉 인간은 이들 네 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체가 소멸함과 동시에 제(諸) 원소도 각각 분해한다고 설하였습니다.

    빠꾸다 깟차야나(Pakudha Kaccayana)는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 · 고(苦) · 낙(樂) · 명아(命我) 등 칠요소(七要素)를 인정하였고, 사명외도(邪命外道, Ajivika)로 대표되는 막갈리 고살라(Makkhali Gosala)는 살아 있는 것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영혼(靈魂) ·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 · 허공(虛空) · 득(得) · 실(失) · 고(苦) · 낙(樂) · 생(生) · 사(死) 등 12가지 원리를 주장하였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구성요소가 결합하여 인간 및 세계가 성립한다고 하는 주장을 초기경전에서는 적집설(積集說 또는 積聚說, arambha-vada)이라고 합니다. 이 적집설은 바라문 계의 전변설에 비해 유물론적 색채가 강하며, 업(業, karma)이나 인과응보의 이치를 부정하는 경향을 띠고 있습니다.

    종교상의 실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바라문 계의 사상은 한결같이 선정을 실수함으로써 해탈을 얻는다고 주장한 데 반해, 이 적집설의 입장을 취하는 자들의 수행방법은 고행이었습니다. 그들은 적집설의 입장에 서서 육체와 정신의 두 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인간은 정신이 육체에 의해 지배되어 더럽혀졌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육체를 고통스럽게 함으로써 정신이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석존이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의 가르침을 버리고, 또한 고행생활에 들어갔다가 이것마저 버렸다고 하는 사실은 수정주의(修定主義)로서 주장된 전변설과 고행주의의 근거로 삼는 적집설 양자를 극복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석존은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이러한 두 가지 입장과는 전혀 다른 새롭고도 보다 높은 차원을 획득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전변설과 같은 절대 유일의 원리를 주장하며 그것으로부터 세계가 전개하였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계는 상호 의존의 관계에서 성립하였다고 관찰하는 연기(緣起)의 입장입니다. 그것은 '모든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든 출현하지 않든 이 도리는 법으로서 정해져 있다'고 말하였던 것과 같은 우주의 이법(理法)이며,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는 자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보는 자이다'라고 설하였던 것처럼 석존은 이같은 연기를 자각하여 각자(覺者) 불타(佛陀)가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