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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

도로 아미타불

by 회심사 2017. 7. 29.

    금강산 장안사에 만송(滿松)이라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만송스님 문하에 젊은 행자가 한분 있었는데, 머리가 나빠서 경학(經學)공부는 가망이 없는지라 석두(石頭)라는 별명으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송 스님은 석두 행자를 달리 가르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왕생극락의 원(願)을 세우고 아미타불만 계속해서 부르라고 일렀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단순하다던가요? 석두 행자도 만송 스님의 지시대로 10년 세월을 아미타불만 불렀습니다. 어느 날 만송 스님이 석두행자에게 편지를 주시며 직지사에 있는 도반에게 전하라는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금강산에서 직지사까지는 빨리 걸어도 일주일이 걸린답니다. 석두 행자는 편지를 건네받자 즉시 아미타불을 염송하면서 달려가다 보니 어느 결에 왔는지 직지사에 도착했습니다. 편지를 전해 받아 읽고 난 스님께서 석두에게 물었습니다. "너 언제 장안사에서 출발했더냐?" "아침 먹고 출발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먹고 출발했단 말이냐?" "오늘 아침 먹고 출발했습니다." "그래?" 편지에 기록된 날짜도 분명 오늘 날짜인데 하루 동안에 어떻게 이 먼 길을 걸어 올수 있었겠는가? 필시 신력(神力)이 없고서야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 스님께서 다시 묻기를, "네가 무슨 공부를 했더냐?" "공부인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만송 스님께서 아미타불만 하라고 해서 계속 그것만 외웠습니다. 무엇을 하든 그것을 하면 해가 뜨는지 밤이 오는지 모르고, 배가 고프고 춥고 더운 것도 모릅니다. 잠속에서 꿈을 꾸어도 아미타불을 외우는 것이 버릇이 되었습니다. 여기 올 때도 아미타불만 부르고 오니 강을 건넜는지 산을 넘었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왔습니다." "그래. 그렇겠다. 그런데 아미타불은 부처님의 명호니 부처님 이름만 부르는 것보다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하고 의지한다는 뜻의 '나무'를 넣어서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석두 행자는 10년을 '아미타불'만 해오던 것이 습관으로 굳어져서 갑자기 '나무아미타불'을 하자니 혼동이 되어 되돌아오는 길에서 염불을 하다가 자주 멈추게 되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하다가 다시 '아미타불'로 바꾸고 또 걸음을 멈추고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돌아오는 길에는 일주일이 꼬박 걸렸습니다. 만송 스님께서 어찌하여 이렇게 늦었냐고 묻자, "아미타불과 나무아미타불을 섞어서 부르다 보니까 어려워서 이렇게 늦었습니다." "야 이놈아, 아미타불이 나무아미타불이고 나무아미타불이 아미타불이다." 만송 스님의 이 말씀에 석두가 깜짝 놀라 깨닫고 나서 하는 말이, "도로 아미타불이네요. 그렇다면 그 타불이나, 이 타불이 똑같듯이 나도 과거에는 아미타불이었네."하고 외치면서 춤을 추었습니다. 석두는 스스로 간직하고 있던 자성미타(自性彌陀)를 깨닫고 큰 깨달음을 얻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도로 아미타불'은 석두 행자의 오도송(悟道頌)일 수도 있고 잃었던 자기 자신의 불성을 되찾았다는 의미심장한 뜻이 담긴 말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던, '지장보살'을 부르던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던 내 몸과 마음을 다해서 부르다 보면 저 석두행자처럼 내 자신 속에 숨겨져 있던 부처님을 뵈올 수 있겠지요? 오늘도 좋은 날 만드소서. 성불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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