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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

어느 곳이 더러운가?

by 회심사 2017. 8. 1.

    일엽초비조각추 一葉初飛早覺秋요 격장견각변지우 隔墻見角便知牛라 성전언하통소식 聲前言下通消息이라도 유시붕전소부두 猶是棚前小部頭로다. 한 잎 떨어지니 초가을을 느끼고 담 너머 뿔을 보니 소 있음을 안다. 말 앞뒤의 소식을 통하더라도 여전히 무대 앞의 광대일세. 반산보적 선사가 만행을 하다가 푸줏간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선비가 고기를 사러 와서 백정에게 말했습니다. “깨끗한 곳으로 해서 한 조각 주게나.” 이에 백정이 칼을 집어던지고는 팔짱을 끼고서는 말했습니다. “서방님! 어느 부분이 더러운 곳입니까 ?” 곁에서 이 말을 들었던 보적 선사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보적 선사가 장터에서 만난 백정은 백정이 아니라 바로 선지식입니다. 선비는 그냥 선비가 아니라 법을 묻는 선재동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두 선지식이 한꺼번에 선사 앞에 나툰 것입니다. 선지식은 이처럼 정해진 모양이 없습니다. 말 나온 김에 백정이야기 몇 마디 더 하고자 합니다. 원(元)나라 때 복건성의 도운사(都運司) 벼슬을 하고 있는 모(某)씨는 자기 생일날 잔치에 초대되어 갔습니다. 상 위에 놓여 있는 소고기를 보고는 놀라서 치우게 하였습니다. 모두 의아해 하면서 그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도운사는 찬찬히 그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내 젊은 시절 외가의 아우와 함께 한 백정 집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막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 이었습니다. 마침 그 백정은 왼손에는 칼을 들고 오른손에는 송아지가 있는 암소 한 마리를 끌고 와 처마 기둥에 묶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잠깐 볼 일이 있어 칼을 땅에 놓아두고 나갔습니다. 그러자 송아지가 갑자기 칼을 입에 물고 채소밭으로 달려가 발로 땅을 파헤치고는 그 칼을 묻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후 백정이 돌아와서 칼을 둔 곳을 쳐다보았습니다. 칼이 보이지 않자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면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칼이 보이지 않자 화를 내기에 내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칼을 찾아와서는 문턱에 걸터앉아서 한참 동안 탄식을 하더니 그 칼로 자기의 머리를 깎고 처자를 버린 채 바로 출가해 버렸습니다. 아무리 전생의 업장이 두텁다하여도 한마음 돌이키면 바로 그 자리에서 녹아 버립니다. 광액도아(廣額屠兒)가 칼을 놓으니 그 자리에서 바로 성불을 해 버린다는 것이

    바로 이 말입니다. 곡천(谷川) 선사는 기인(奇人)이었습니다. 늘 형색이 초라하였고 반쯤은 속복차림으로 다녔습니다. 한번은 형산(衡山)방을 가다가 푸줏간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백정이 칼로 고기를 자르는 모습을 보고는 그의 옆에 서서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고기를 가리켰습니다. 한참 있다가 다시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백정이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벙어리냐?” 그러자 스님은 아무 말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에 백정이 몹시 불쌍하게 여겨 고기를 크게 잘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태연스럽게 받아서 그 곳을 떠났습니다. 자비심은 자비심으로 받아 주는 것이 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인들은 선방이나 시정이나 어느 곳에도 걸림이 없이 자기의 공부를 지어나갔습니다. 그래서 푸줏간 앞에서도 안목이 열리는 계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공부인은 어느 곳이든지 공부 처인 것입니다. 마조 스님의 제자인 반산보적 선사나 분양선소의 제자인 곡천 선사도 그 중의 한 명입니다. 법을 나누는데 술'고기가 기연(機緣)이 되기도 합니다. 천황도오(天皇道悟) 선사는 평소에 늘 쾌활(快活)하노라고 늘 큰소리 떵떵 쳤습니다. 그런데 임종할 무렵이 되어 병이 들어 누워서는 괴롭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괴롭다. 원주야! 나에게 술을 가져다가 먹여다오. 고기를 가져다가 먹여다오. 염라대왕이 나를 잡으러 온다.” 그러자 원주 스님이 곁에 와서 물었습니다. “화상께서는 평상시에는 쾌활쾌활 하시더니 지금은 왜 괴롭다 하십니까?” 이에 선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 마디 내질렀습니다. “말해 보라! 쾌활쾌활할 그때가 옳은가? 고기를 달라면서 괴롭다 하는 지금이 옳은가?” 이에 원주는 그만 말문이 꽉 막혀 버렸습니다. 그러자 선사는 퇴침을 밀어내고는 바로 열반에 들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간절히 법문을 했는데도 눈 어두운 사람은 마지막까지 그 말을 못 알아들었습니다. 분양선소(汾陽善昭) 선사가 하루는 대중에게 일렀습니다. “간밤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나타나서 술과 고기 그리고 지전(紙錢)을 찾았다. 그러니 속가 법식대로 제사를 모셔야겠다.” 그리고는 곳간에서 이 일에 쓸 물건을 마련하고 위패를 모시고는 속가에서처럼 술잔과 고기를 올리고는 종이돈을 불살랐습니다. 제사를 마친 뒤 도감 스님과 입승 스님을 오게 하고는 소반에 남아 있는 음식을 주었습니다. 하나같이 모두가 수행자가 이런 것을 먹을 수 없다며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분양 선사는 혼자서 가운데 자리에 앉아 태연하게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중들은 술과 고기를 먹는 스님을 어떻게 스승으로 모실 수 있겠느냐 하고는 걸망을 싸 짊어지고는 모두 떠나 버렸습니다. 그래도 스님을 신(信)하는 석상자명 스님, 대우 스님, 곡천 스님 등 일고여덟 명은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튿날 분양 스님은 법상에 올라가 법문을 하였습니다. “수많은 잡귀신 떼를 한 상의 술 고기와 두 뭉치의 종이돈으로 모조리 쫓아 버렸다. 이 대중 속에는 가지와 잎은 없고 오로지 진짜 열매만이 남아 있구나.” 선사의 진정한 뜻은 죽은 귀신을 보내려는 것이 아니라 산 귀신들을 쫓아 버리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공부하지 않는 대중을 파(破)해 버리는 방편이었던 것입니다. 시회대중이여! 푸줏간에 고기를 사러 온 사람이 “깨끗한 곳으로 한 조각 주게나.” 하는 말에 백정이 칼을 집어던지고는 팔짱을 끼고서 “서방님! 어느 부분이 더러운 곳입니까?”라는 한 마디에 보적 선사는 크게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사실 보적 선사는 깨닫기는 하였으나 따로 사량(思量)한 것이 있습니다. 그 때 스승인 마조 대사가 옆에 있었더라면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등줄기를 한 대

    갈겨 주었더라면 신기루로 만들어진 성(城)을 밟아 쓰러뜨렸을 뿐 아니라 보적 선사 역시 몸 돌릴 길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보적 선사를 알고자 합니까? 그는 단지 정신을 희롱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저사종래불복장 底事從來不覆藏이니 두두물물자상당 頭頭物物自相當이라 천언만어무인회 千言萬語無人會하고 우축류앵과단장 又逐流鶯過短墻이로다. 그 일은 원래부터 가릴 수 없으니 사건마다 경우마다 모두가 걸맞네. 천 마디 만 마디 아는 사람이 없으니 꾀꼬리가 또다시 낮은 담을 지나간다.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