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원효의 정토관
첫째는 각각 다른 淨土門에 대한 제사들의 의견을 和諍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각 정토 특성의 근거를 대부분 唯識論書에 두고 있으며, 셋째 중생이 모두 부처될 수 있다는 如來藏思想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의 특성은 원효 교학의 당연한 부분으로 원효의 전 저서 속에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쟁 사상은 『宗要』의 근본 사상으로서는 부적절하다. 정토에 대한 이설들을 화해하기 위해 이 책이 쓰여졌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원효는 제사들의 의견이 모두 한 측면만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서, 전체로 보면 모두 일리가 있다고 회통한다. 그러면 '전체로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전체는 곧 一心이며, 일심은 중생심이다. 즉 모든 중생을 포용한다는 거시적 이장에서는 모든 것이 화쟁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쟁이 주어가 아니라, 중생이 주어이다. 화쟁을 위해서 중생이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중심으로 제설을 평가하다 보니 화쟁이 나타난다. 둘째의 특성은 『宗要』에 나타나는 인용 논서를 위주로 생각할 수 있는 결론이다. 인용 논서만을 보면 종요는 유식적 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서가 인용되고 있다고 해서, 종요의 정토관을 유식적이라고 豫斷해서는 안 된다. 원효는 유식 논서의 인용을 아주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이들의 설도 냉정하게 평가한다. 유가론을 인용하여 개념들의 어의를 설명하고 있으며, 『攝論』은 그 내용의 분석을 시도하고, 『攝論釋』에서는 그 철학적 부분을 나타내는데, 이것은 원효가 인용을 절도 있게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종요의 많은 부분이 유식적 설명으로 서술되어져도 원효가 유식교학의 틀에서 정토관을 해석하려는 의도는 전혀 찾을 수 없기에, 원효가 유식의 대변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인용 논서의 횟수로 그 사상평가를 추측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러한 점은 인용경전이 거의 없는 중관계통의 사상을 역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중관론서는 눈에 띄지 않지만 그의 사상 전반에 중관사상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그의 사상적 태도가 곧 중관의 중도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원효의 根幹 思想으로 받아들이는 데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원효 자신이 여래장사상이라는 한 교파를 인식하고 있었는가 하는 데는 부정적이지만, "自性淸淨心 客塵煩 惱染"이라는 여래장적 모토에 대해서는 철저한 것으로 판단된다. 원효가 생각하고 있는 중생은 '가능성'의 입장에 서 있다. '가능성'이란 지금 번뇌 속에 있지만, 원래 청정한 자성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신념을 말하고, 그 신념이 표출된 것이 여래장사상이다. 사실 이러한 표현은 ??에서도 자주 보이는 것으로 『寶性論』등의 여래장 계열의 논서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원효가 생각하는 여래장의 의미는 중생이 자기의 여래장의 인식을 諸佛如來에 의해서 이룰 수 있다는 점에 더욱 잘 나타난다. 중생이 '나는 곧 부처'라는 확신을 갖게 될 수 있는 것은 불타의 무한한 자비의 설법에 스스로 응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중생은 이러한 설법을 통하여 시공을 초월하여 부처를 친견할 수 있으며, 이러한 문법은 깊은 종교적 체험을 심화시킨다. 이러한 종교적 체험은 모든 이에게 구제를 약속하는 타력적 대자비에 귀의하게 되고, 여기서 신은 완성된다. 결국 나에게 여래장이 있음은 부처의 자비적 원력에 의해 알려지는 것이다. 정토왕생은 위의 여래장의 구조와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종교의 진실한 출발은 교학적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世間의 상대적 가치 판단을 버리며, 자기의 자성을 여래의 그것에 맡기고, 두 존재의 커뮤니케이션을 인정하는 데 있다. 원효는 이러한 점을 『涅槃經宗要』에서 충분히 설명하는데, 정토왕생의 근거가 되는 부분이므로 『涅槃經宗要』에 나타난 여래장의 의미를 잠시 고찰하고자 한다. 『涅槃經宗要』의 因佛性에서는 과위의 불성을 所生果와 所了果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소요과는 열반의 果로서 곧 法身을 말함이고, 소생과는 菩提의 果로서 報身을 말한다. 이러한 법신과 보신의 시각은 『宗要』의 정토관에 그대로 연결되어 受用土의 내용에 잘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여래장 자체의 성질이 이러한 점을 가지고 있으며, 佛身의 體가 범부의 여래장에 용해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여래장의 성질은 구제의 근거를 잘 마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世間이 苦에 머물러 있는 현실도 잘 표현해주는 것이다. 원효는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宗要』를 쓰고 있으며, 이러한 점은 그가 여래장이라는 한학파의 대변자로서가 아니라, 그의 종교적 열정이 이러한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宗要』가 유식의 용어로 그 정토를 설명하는 부분이 많지만, 여래장사상이 근본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정토의 상보다 중생의 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정토의 다양한 설명 중에서 정토를 구분하는 기준이 왕생하는 자와 거기에 머무는 자가 어떠한 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좀 더 부언하면 정토의 그 體性은 중생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누가 왕생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론으로 원효는 모두가 왕생할 수 있다 했으며, 그 근거로 모든 중생이 자성청정하다는 것을 내세웠다. 물론 유식에도 여래장과 비슷해 아뢰야식이 있으나, 앞에서 피력했듯이 원효는 처음에는 유식설을 『攝論』의 것을 받아들이는 바, 『攝論』의 아뢰야식은 妄識의 입장에 서있다. 청정한 측면으로 九識을 내세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섭론』의 아뢰야식을 여래장과 동일시하여 唯識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한 여래장의 교설은 轉依의 측면에서도 적절하다. 여래장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어서 항상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만약 여래장을 고정된 실체의 무엇이라고 한다면 역동적인 전환을 기대할 수 없다. 전의를 유식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든지 여래장의 입장에 서 이해하든지 전의가 가능한 것은 그 중생의 마음이 실체가 아니라 무실체의 공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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